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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과 새 언약의 삶

(62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57)

 

연구 범위: 요일 1:4, 5:24, 3:24,25, 고후 5:21, 요일 4:16, 2:11, 20:6,14, 21:8

기억절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이번 한 기 동안 우리는 언약에 대해 공부했다. 언약의 의미를 가장 단순하게 요약한다면 하나님께서 이것이 내가 너희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방법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물론 언약의 결과 혹은 종국은 새로워진 세계에서 누릴 영생이지만, 우리는 그 언약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그 장엄한 날이 오기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는 현재 우리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시며, 지금 우리가 최선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언약이란 네가 이것과 저것을 행하면 먼 훗날에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식의 거래가 아니다. 선물로 주어지는 상급은, 믿음으로 언약 관계에 들어간 자들이 지금 여기서도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마지막으로 언약에 관해 공부하는 이번 주 교과에서, 우리는 언약의 현재적인 축복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 심령에 흘러들어온 약속들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이번 주에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축복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시작, 결코 끝나지 않을 놀라운 축복의 시작에 불과하다.

 

*학습 목표

깨닫기

새 언약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깨닫는다.

느끼기

언약의 백성들에게 분명히 약속된 축복이 있음을 감사한다.

행하기

새 언약의 백성답게 새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간다.

2.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경험해야 할 기쁨의 근원은 무엇일까요?(요일 1:3, 4)

아버지와 아들과 사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생에 참여한 기쁨이다.

3. 언약은 어떻게 우리를 죄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나요?(8:1, 2)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처리해주셨기 때문이다.

4. 새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3:17~19)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의 생명과 그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5. 언약의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위대한 사명은 무엇일까요?(28:19, 20)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6.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지금 그대에게 허락하시기 원하는 기쁨을 맛보며 살 수 있을까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며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울러 그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결론

새 언약은 미래에 있을 최종적인 축복을 약속할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축복을 약속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주는 기쁨 속에서 은혜로 허락하시는 새 마음을 품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축복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620() 기쁨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 1:4).

 

요한이 기록한 위의 말씀을 주목해 보라. 그는 단순한 말로써 언약의 백성들인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큰 이점 중에 한 가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쁨의 약속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말라.” “신앙은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을 초월해야 된다.’ 등의 말을 많이 듣는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만일 우리가 감정과 정서와 기분을 가지는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감정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가능한 한 그것을 잘 조절하여 그것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위의 본문은 우리에게 기쁨이라는 감정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충만히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위의 본문 말씀을 감정을 부인하라는 말로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겠는가?

 

요일 1장 맨 처음부터 시작하여 위의 말씀이 기록된 문맥을 살펴보라. 요한은 어떠한 사실이 초기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기록하고 있는가? 왜 그 사실이 그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하는가?

[요일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생명의 말씀이 나타나신 것과 그분과 함께 사위일체 하나님과 사귐으로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할 수밖에 없다.

 

요한은 처음 열두 제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삼년 반의 사역이 시작될 때부터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그분의 가장 놀라운 광경들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는 변화산에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그리고 십자가 곁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목격자로서 확실히 이 주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자기 자신에게 강조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에게뿐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사귈 수 있도록 해주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갖는 밀접한 관계에 들어가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으며, 이 교제의 결과로 기쁨을 누리게 하셨다. 요한은 그가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고 들은 예수님에 관하여 전한 내용이 진실임을 독자들이 알기를 원했다. 이를 통해 그들도 그들을 사랑하시며 아들을 통해 자신을 내어 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기쁜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기대했다.

 

<묵상>

요일 1:3을 보십시오. 성도들에게 참된 기쁨의 근원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 아버지와 아들과 사귈 수 있는 것이 기쁨의 근원이라고 했다.

 

<부가설명> 사귐은 친교를 뜻하는 말이다. 헬라어는 코이노-니아인데, ‘참여, 나누어줌, 교제, 친교, 기부등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버지와 아들과 코이노-니아하는 것은 주님의 생명에 참여하여 영생을 얻는 것과, 그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 또 생명이신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과 친교하는 것 등등이 포함된다. 나누어주는 것과 기부는 같은 뜻이 아니겠는가?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을 만나서 교제하는 사람들은 그것은 나누어서 함께 생명을 공유하고 함께 기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사망의 존재가 생명의 존재가 되며 영원히 소멸하여 생명과 존재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산 자의 땅에서 산 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영생하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27:13)라고 노래하고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11)라고 찬양하였다. 성도들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않과 기도하면 범사에 감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아멘.

 

교훈: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교제하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도록 해 주셨다.

 

 

621()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한 젊은 여인이 잔인하게 살해되었는데, 범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그녀의 무덤에 비밀 마이크를 설치해 놓았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에 한 젊은 남자가 무덤으로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울면서 그녀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물론 경찰은 그 범인을 체포하였다.

무엇이 그 남자로 하여금 무덤으로 가게 만들었는가? 바로 죄책감이었다.

물론 우리 중에는 위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젊은 남자만큼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유죄한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한때, 지우고 싶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새 언약의 보혈로 인해 감사를 드리자. 우리는 아무도 죄책감의 오명을 간직한 채 살아갈 필요가 없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최후의 재판관께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죄책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셔서 마치 우리가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무죄한 자로 여겨주시기 때문이다.

 

다음 성경절들은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5:24, 3:24, 25, 고후 5:21)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예수님과 그분의 구속을 믿을 때 그 사람은 모든 죄와 죄책에서 사유함을 받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 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주님과 더불어 언약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약속들 중 하나는 우리가 더 이상 죄책감의 짐에 눌려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 관계에 들어가기로 선택하고 믿음과 회개와 순종의 삶을 살기로 선택한 자들은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죄책감의 짐을 떨쳐 버릴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악하고 죄가 많아 하나님 앞에 가납될 수 없다고 사탄이 우리 귀에 속삭일 때, 우리도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신 예수님처럼 성경 말씀을 인용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롬 8:1은 우리가 인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씀일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죄의 실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맺고 있는 언약 관계로 인해 그 죄의 정죄함 아래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죄의 형벌을 받으셨고 이제 아버지 곁에 서셔서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분 자신의 의를 나타내시며 우리를 위해 흘리신 자신의 피를 가지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묵상>

로마서 8:1을 다시 한번 읽고 그 의미를 묵상해 보십시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분명한 조건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은 쉬운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인지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성경은 에녹이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였다. 어떻게 동행했을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얻으려고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분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축복으로 가득찬 하늘 나라를 갖고 계신다. 그는 그 축복을 열렬히 구하는 자들에게 내려 주시고자 하신다. 그 분만이 그 축복을 나누어 주실 수가 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에게 구하고 허락하신 모든 말씀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가운데서 한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곁에 아주 가까이 있었으며 그의 모든 말씀을 계속 순종하였다그의 생활은 하나되는 생활의 훌륭한 본보기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동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과 절친한 우정을 나누며 살았다”(원고 111, 1898). 에녹은 그의 사상이 온전히 예수님 사상에 물들어버린 사람이 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상태이다. 증언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정신으로 물들어있어야 한다고 했다(202139일 아침기도력=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191~192).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의 현실적이고 경험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교훈: 새 언약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당당히 주장하며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622() 새 언약과 새 마음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7~19).

 

이번 기 교과의 앞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 새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마음에 법을 두시는 방편이다(31:31~33).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그 안에는 율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도 함께 계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그분의 율법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율법이 우리 마음에 있고,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도 함께 계심으로써 우리는 또 다른 언약의 위대한 축복 중의 하나인 새 마음을 얻게 된다.

 

우리에게 새 마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새 마음을 가진 자들은 어떤 변화를 나타내게 되는가?

[3:17~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우리는 원래 옛 사람이기 때문에 새 마음이 없다. 그래서 거듭나서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 그 안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진다. 동시에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충만함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라. 바울이 사랑에 대해 강조하면서 그 안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한다고 말한 사실에 주목해 보자. 이 말씀은 사랑의 기초 안에 변함없이 견고하고 확고하게 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22:37~39, 고전 13). 그런데 이 사랑은 우연히 임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때 이르러 온다. 그 사랑의 결과로 우리의 삶은 바뀌고, 우리의 마음도 변화되어, 마침내 우리는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욕망과 새로운 목표를 가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반응할 때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방법일 것이다.

 

<묵상>

요일 4:16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은 바울이 엡 3:17~19에 말한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 같은 사상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실천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15:7~10).

 

<부가설명>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그 안에 사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요한복음 151~10에서 말씀 하셨다. 위 답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거 거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2,3).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 안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태는 숯불을 예로 설명할 수 있다. 숯불은 불이 숯 안에 있고 숯이 불 안에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숯불이라고 표현한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거듭났을 때만 가능한 상태다.

 

교훈: 새 언약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새 마음을 받게 됨으로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을 깊이 사랑하는 충만한 사랑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623() 새 언약과 영생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영생에는 두 가지의 차원이 있다. 현재적 차원은 신자들에게 지금 풍성한 삶의 경험을 가져다 주는데(10:10), 그것은 지금 우리의 삶을 위한 많은 약속들을 포함한다.

미래적 차원은 당연히 몸의 부활의 약속인 영생이다(5:28, 29, 6:39). 비록 미래에 속해 있지만, 몸의 부활은 다른 모든 것을 가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사건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소망을 완성시키는 사건이다.

 

오늘의 본문을 연구해 보라. 예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예수님을 믿으며 산 자들은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참조, 2:11, 20:6,14, 21:8)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20:6,14]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예수님의 부활로 증명된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몸은 죽어도 그 생명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결코 죽지 않는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 생명을 돌려주셔서 부활하게 하시고 영생이 현실이 된다.

 

물론 우리 모두는 죽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죽음이 잠이며 일시적인 중단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그분을 믿는 자들은 마침내 생명의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불멸의 몸으로 일어날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살아 있는 성도들도 순식간에 불멸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죽은 자와 예수님께 속한 모든 산 자들이 같은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불멸의 삶이 시작된다.

우리의 종국이 무덤이 아니며, 우리가 영원히 계속될 새 생명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한 육체가 되신 것은 우리가 그와 더불어 한 정신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무덤에서 나오게 되는 것은 이러한 결합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이는 단지 그리스도의 능력의 나타남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그 진정한 품성 그대로 보고 그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다”(시대의 소망, 388).

 

<묵상>

영생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요?

사람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극복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이 가슴 아프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는다면 우리는 세상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소망 가운데 죽음 너머를 바라보는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부가설명> 영생은 2단계로 오는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날 때 그는 영생을 얻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5:24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었다고 하셨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그 순간에 영생의 생명을 얻는다. 그 영생의 생명의 능력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배한다. 그래서 의롭게 살 수 있게 된다. 바울은 이것을 갈2:20에서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라고 고백했다. 그리스도인은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셔서 그 사람의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값으로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이라고 한 것이다(고전6:19,20).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12:1,2). 그리고 몸은 아담에게서 받은 것이기 때문에 한 범 죽는 것이 정해져 있어서 수명이 다하면 죽는다. 그러나 그 영생의 생명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보관된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 영생의 생명으로 부활하게 불멸하는 몸으로 산 자의 하나님과 함께 산 자의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할 때 현실이 되는 것을 영생의 둘째 단계라고 하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생의 생명은 한 번 받는 것이다. 그래서 뱃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하신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이 땅에서도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실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축복으로 주신다.

 

 

624() 새 언약과 사명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9,20)

 

세계 곳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종종 남아프리카 출신의 작가인 로렌스 포스트(Laurens Van Der Post)가 말한 무의미함의 고통과 더불어 씨름한다. 사람들은 생명의 선물을 받았으나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들은 이 선물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마치 어떤 사람에게 희귀한 책들로 가득 찬 도서관을 주었으나 그 사람은 그 책들을 읽기는커녕 불을 피우는 데 사용해 버리는 것과 같다. 그토록 소중한 것을 그렇게 낭비해 버리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나 새 언약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와 같은 문제는 그들이 씨름할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알고 또한 개인적으로 경험한 자들은 그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다. 28:19,20에서 말씀하신 명백한 부르심을 숙고해 볼 때,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하는 분명한 사명과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소중한 특권인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이 세상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일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목적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 안에는 어떤 일들이 포함되어 있는가? 그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는 약속은 무엇인가?

 

: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셔서 온 세상에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신다. 영생을 가진 생명의 사람들은 이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묵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대한 사명을 맡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그리스도인이 영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명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를 초청하셔서 그분과 동역하는 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이 위대한 사명은 우리들의 삶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맡겨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바랍니다.

 

<부가설명> 28:19,20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사명이다. 산 자들에게 주신 사명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라는 권능을 행사하라는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인 사람이 되라고 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생하는 생명을 받으라고 전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서 부활로 영생하는 불멸의 생명과 몸을 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고 죽지 않는 영혼이 몸이 죽은 후에 좋은 곳에 가서 사다는 것을 믿는 것 같다. 그것이 믿기가 쉬운 모양이다. 초대교회부터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분을 믿을 때는 그 부활하는 영생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전파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1:21,22). 사도행전은 예수님 부활증거 행전이다. 오늘날 교회도 예수님의 부활을 힘있게 외쳐야 한다. 그 생명이 바로 죽지 않는 영생하는 생명이다. 예수님을 믿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이 복음은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시고 사탄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생하는 생명을 우주에 증명하신 것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을 때 이 생명을 받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믿는 사람도 그 생명으로 부활하여 영생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전파하는 것이다. 즉 죽은 사람을 살리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명인가! 생명의 성령께서 이 일을 능히 감당하도록 깨닫게 하시고 능력을 주소서. 아멘.

 

교훈: 새 언약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구속의 위대한 계획을 성취하는 일에 한 몫을 담당하라는 고귀한 특권을 위임받았다.

 

 

625()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 635~645,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정로의 계단>, 115~126, ‘주안에서 기뻐함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께서는 자기 자신이 져야만 할 아무런 죄나 슬픔을 갖지 않으셨다. 우리 모두의 죄가 그에게 놓여졌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짊어지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거룩한 동정심을 통하여 자신을 인간과 연결시키셨으며, 인류의 대표자로서 자신을 죄인처럼 취급당하도록 내어 맡기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 때문에 생겨난 비애의 깊은 심연을 바라보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줄 다리가 되시기로 작정하셨다”(엘렌 G. 화잇, Bible Echo, 1892. 8. 1).

 

나의 형제여, 오라! ... 자비가 아직 머물러 있는 동안, 지금 곧 오라. 고백하고 통회하면서 오라. 하나님께서는 넉넉히 용서해 주실 것이다. 기회를 등한히 하고자 하지 말라. 죽은 상태에서 일어나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빛을 주기 위하여 호소하는 자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지금 매 순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한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들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교만과 불신으로써 그분의 자비를 더 이상 거절하지 않도록 하라. 그대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마침내,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8:20)고 탄식하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5, 35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프란시스코 모레노(Francisco Jose Moreno)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온 우주 속의 한 존재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의 무지와 무능력을 발견한다. 그 결과 우리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두려움과 인간의 상태, 1977, 7) 이 진술을 이번 주에 공부한 엡 3:17~19의 말씀과 비교해 보라. 이 둘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라.

 

영생을 가진 사람과 영생이 없는 사람의 상태를 나타낸다.

 

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기쁨을 약속하신다. 기쁨과 행복은 같은 것인가? 우리는 항상 행복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의 삶을 통해 배우는 교훈은 무엇인가?

 

행복하면 기쁨이 있다. 그러나 기쁨이 있으므로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지 모른다. 사지에서 생명을 건진 사람은 기쁠 것이다. 그러나 그 현재 상황이 행복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이런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3. ‘하나님의 충만하심’(3:19)으로 채워진다는 개념을 더 깊이 토의해 보라. 이것이 무슨 뜻인가? 우리 삶에서 이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벧후1:4, 2:9,10). 그러면 삶이 신의 성품으로 나타나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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