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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과 가족 관계 속에서 쉼을 누림

(8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34)

 

연구 범위: 34, 11:17~22, 4:29, 요일 3:1, 2, 39, 6:1~13

 

기억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7, 18).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만큼은 예외이다. 우리 중에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완벽한 가족과 완벽한 가족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부모와 형제자매를 갖게 되는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 경우 이러한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경험한다.

많은 경우에 있어 가족 관계는 복잡하고 고통스럽다. 그로 인해 마음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 상처를 입는 때도 있다. 또한, 이러한 불편한 가족 관계로 인해 품게 된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 내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가족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쉼을 경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요셉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문제가 많은 가족에게 어떻게 치유와 정서적 쉼을 가져다 주시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완벽하지 않은 가족이지만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노력할 때 회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에 감사한다.

행하기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모든 관계 속에서 성경이 제시하는 원칙을 실천한다.

 

2. 요셉의 가문에는 어떤 문제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나요?

가족간의 갈등이 이어져내려왔다.

3. 요셉은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결심을 했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자기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했다.

4.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어디에서 발견해야 할까요?(요일 3:1,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해야 한다.

5. 요셉은 자신에게 다가온 유혹 앞에서 어떤 성경적 원칙을 실천하였습니까?(39:9)

오직 하나님 앞에 깨끗한 삶을 사는 원칙을 실천했다.

6. 관계를 공격하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6:10~13)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다.

7. 가족 관계 속에서 성경적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요?

항상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께 굴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결론

문제 많은 가정에서 태어난 요셉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위기의 순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결심하고 그가 맺고 사는 모든 관계 속에서 성경의 원칙을 실천하며 살아감으로 참된 쉼을 경험했습니다.

 

 

81() 가정에서 마주하는 문제들

 

요셉은 문제 있는 가정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의 증조부모였던 아브라함과 사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출산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라는, 아브라함을 설득하여 자신의 종 하갈과 동침하게 했다. 하갈이 임신을 하자마자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이스마엘과 이삭은 긴장 관계를 자신들의 가족에까지 이어 갔다. 이삭은 에서를 더 많이 사랑했고, 야곱은 평생 아버지의 사랑과 존중을 얻기 위해 애써야 했다. 훗날, 야곱은 속임수에 빠져 두 자매와 결혼했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들은 아이를 낳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고, 야곱의 자식을 낳는 일에 자신들의 여종들까지 참여시키게 되었다.

 

창세기 34장에 기록된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라. 이 사건이 가족 전체와 어린 요셉에게 어떠한 정서적 그리고 관계적 영향을 미쳤겠는가?

 

: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을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 받으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속이고 세겜 족속을 다 죽이고 그들의 여자와 재물을 약탈한 사건이다. 당연히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머니들 사이에 있었던 경쟁 관계는 분명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그들은 언제든 다툼을 벌일 준비가 된 자들로 성장하였다. 요셉의 형들은 청년이 되었을 때 이미 세겜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학살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맏형이었던 르우벤은, 라헬의 여종이자 야곱의 몇몇 자녀들의 어머니였던 빌하와 동침함으로 그의 늙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을 드러냈다(35:22). 또한 요셉의 또 다른 형 유다는 과부가 된 자신의 며느리를 창녀인 줄로 알고 동침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쌍둥이를 낳았다(38).

야곱은 요셉에게 값비싼 색동옷을 만들어 입혀(37:3) 자신의 가족 가운데 존재하던 긴장의 불길 가운데 기름을 부었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문제 많은 집안을 꼽는다면, 아마 이 집안이 손에 꼽힐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골치 아픈 가족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름이 히 11:17~22절에 믿음의 영웅들로 기록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1:17~22]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 그들은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영웅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종종 그들 자신과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언급된 이름들이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이유는 그들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그들은 가정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믿음과 사랑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

 

<묵상>

혹시 가정에서 경험하는 문제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굴복하는 것이 왜 그리도 중요할까요?

 

: 하나님은 사람들의 충심을 보신다. 그 마음이 주님께 정직하고 충성스러우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신다(9:7,8).

 

<부가설명> 가정은 생명을 전해 받은 장소가 된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생명을 받았다. 가정은 자녀들에게 에덴동산이 되어야 하는데 죄의 세상에서 가정은 그렇지 못하다. 아담의 후손은 그 존재자체가 사망이라서 가정에서도 사망의 성질이 판을 치려고 한다.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도 사탄은 사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속삭였고 아브라함은 그 속삭임에 홀딱 넘어갔다. 사탄은 가정에 비극을 심는데 성공하였고 대대로 하나님의 복음 사업을 대적하는 세력을 거대한 세력으로 자라게 했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았는데 리브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전달되었으나 그의 식욕으로 에서를 장자로 세우려고 하는 유혹에 빠졌다. 리브가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속임수를 썼다. 야곱의 앞길이 험했고 외삼촌에게 계속 속임을 당하고 그 속임의 결과로 네 아내를 거느리게 되고 가정의 행복과 경건은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요셉을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굴복하는 정신을 기르고 그 하나님을 믿었으니 그가 마음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리게 된 것은 아마도 애굽을 팔려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도록 가족 전체가 주님께서 이루어주시도록 굴복하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야곱 가정의 모습을 거울삼아 재림 성도들의 가정이 에덴의 가정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이 세상에 완벽한 가정은 없다. 하지만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82() 새로운 방향을 선택함

 

요셉은 노예로 팔리게 될 애굽으로 여행하면서 마음속의 아픔과, 복잡한 관계들과, 불안한 마음을 모두 품고 갔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가야 했던 그 길은 결코 편안한 여정이 아니었다.

다시 도단에서 일어났던 광경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그는 성난 형제들을 보았고 그를 향한 그들의 사나운 눈초리를 느꼈다. 그가 몸부림치며 애걸할 때 그를 향해 쏘는 듯한 모욕적인 말들이 그의 귀에 쟁쟁하게 울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는 장래를 내다보았다. 귀엽게 고이 자란 아들이 멸시 받고 의지할 데 없는 노예가 되다니 얼마나 큰 환경의 변화인가! 친구도 없는 외로운 몸, 그가 가고 있는 낯선 땅에서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동안 요셉은 억제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에 빠졌다.

그 때 요셉의 생각은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향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때때로 그는 아버지의 장막에서 야곱이 그의 집으로부터 도망해 나와서 방황하던 때에 그가 본 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이제 이 모든 귀한 교훈이 그의 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요셉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여호와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고 이스라엘의 수호자 하나님께서 그가 유랑하는 땅에서도 그와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였다(부조와 선지자, 213,214).

 

어떤 문화권에서는 개인보다 공동체적 가치를 더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어떤 문화권에서는 공동체적 가치보다 개인의 역할을 더 강조한다. 성경에서는 이 둘의 균형을 발견하게 되는데,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헌신을 요구하실 때도 있고 공동체적 헌신을 요구하실 때도 있다. 요셉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개인적인 결심을 통해 그가 경험했던 관계적인 문제들로부터 쉼을 얻기 시작했다.

 

<묵상>

다음 성경절들이 개인적인 헌신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나요?(4:29, 24:15, 대상 16:11, 14:2, 8:10, 55:6)

[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대상16:11]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 이 구절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가 확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참된 쉼을 찾기 위하여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개인적인 결심을 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아무리 영적인 거목들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믿음과 영성이 우리에게 그대로 유전되지는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사람이 창조될 때 한 사람을 창조한 것을 분명히 계시하였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에게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가족이 되고 민족을 이루어게 하셨다. 이것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지구에 사람이 충만하게 된 상태에서는 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맺은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그 집단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다음은 그 원리에 의하여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곧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졌다는 보증이 되지 않는다. 그 집단이 가진 원리가 바른 관계를 맺는 바른 원리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그 원리를 따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남은 자의 사상이 바로 이런 사상이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는 집단의 한 사람이었다. 그 집단이 다 배도했을 때 그는 나만 남았거늘이라고 하나님께 말했다. 그때 하나님은 7,000인을 남겼다고 했다. 7,000인이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각각 이스라엘에서 남은 자로 하나님과 개인적인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확실한 사람은 복잡한 상태에서도 쉼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교훈>

우리가 개인적인 결심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기로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다.

 

 

83() 진정한 자존감 찾기

 

요셉이 도망하여 고향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면, 그 꿈은 애굽에 도착하여 고위 관리의 집으로 곧장 되팔리게 되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39:1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로의 신하 친위 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우리의 가족들 그리고 우리가 맺고 사는 관계들은 자존감을 개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셉은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의 맏아들로서 그동안 자신이 매우 특별한 존재인 것으로 믿으며 자라왔다(29:18). 그는 아버지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었으며 색동옷을 선물 받은 유일한 아들이었다(37:3,4).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해 사고 팔리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의 상황이 얼마나 빠르게 변했는지 살펴보라.

요셉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교훈을 깨달았다.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자주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의 존재와 됨됨이를 좋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우리의 현재 모습이나 역할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에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을 어떻게 바라보시는가?(참조, 43:1, 3:17, 1:12, 15:15, 8:14, 요일 3:1,2)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3: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요일3:1,2]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 하나님을 믿는 개인을 자녀로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코팅된 안경을 통해 우리를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능성과 아름다움과 재능을 우리에게서 보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창조된 목적에 따라 살 기회를 얻도록 우리를 위해 죽으실 것이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와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가 치러졌는지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들인지도 말해 준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무엇이라 평가하든지와 상관없이, 심지어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평가하는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현재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죄의 권세뿐만 아니라, 그 죄가 가져오는 영원한 죽음에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힘써 일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묵상>

우리의 참된 가치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참된 가능성을 아시는 분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 하나님께서 우리를 개인적으로 보시는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왕자로 출생한 사람은 그가 비록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도 왕자로 대접을 받게 되어 있다. 왕은 그를 더 불쌍히 여기며 사랑을 베풀 수 있다. 우리가 물과 성령을 거듭나는 경험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되었다면 당당히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인식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인식이 바르게 되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아야 한다는 자각이 생길 것이다. 그는 생각, 언어, 감정, 태도를 하나님의 아들답게 나타내려는 정신이 생활에서 발로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살면 사람들이 지탄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신분에 관하여 바른 인식이 있을 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는 정신이 생기고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쓸 것이다. 이것이 그의 인격과 생활에 고통이 되는 것이 아니고 쉼을 준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처럼 생활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식이 그를 괴롭힌다. 이 괴로움도 없다는 그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정말 우리는 재림신자로서 엘리야처럼 나만 남았다는 그런 정신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인 확정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는 자주 우리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평가를 통해 발견하려고 하지만 우리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에 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84() 하나님의 방법으로 관계 맺기

 

애굽에서 살게 된 요셉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흐르는 듯 보인다. 요셉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겼고, 하나님께서 요셉을 축복하심으로 보디발의 집에서 생각지도 못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게 된다.

 

요셉의 삶에 임한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요셉의 대인 관계는 어떠한가? 39:1~6을 읽어 보라.

[39:1~6]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가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사람들이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알 수 있게 살았다.

 

요셉은 보디발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보디발의 집과 그의 밭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도 원만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제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집에 있던 누군가가 들썩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셉은 어떤 관계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가? 그는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기로 선택하였는가? 39:7~10을 읽어 보라.

[39:7~10]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요셉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충성하기로 선택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와 문제를 겪었다.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사용해도 되는 물건으로 보았다. 그녀는 요셉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었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39:6). 성경은 어떤 사람을 설명할 때 그 사람의 외모를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요셉의 잘생긴 외모는 순결함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원칙에 충성하려고 하는 그에게 오히려 방해가 되는 듯 보인다.

이 악한 여인의 끈질긴 고집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무엇인가 손해 보는 것 같은 행동을 한다. 그는 모든 관계 속에서 성경적 원칙을 적용했다. 주인의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관계를 위한 성경적 원칙은 결코 구시대적이거나,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는 이것이 단발적인 유혹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보디발의 아내는 반복적으로 요셉을 유혹했다(39:10). 요셉은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려 했으나(39:8, 9) 그의 노력은 잘 통하지 않는 듯했다.

요셉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선택을 조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기로 결심했다. 요셉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해는 그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묵상>

비록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그대가 맺고 살아가는 모든 관계 속에서 성경적 원칙들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 보았습니까? 5:43~48을 읽어 보십시오. 이렇게 사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인격과 정신 상태에 관한 말씀이다.

 

<부가설명> 찬미가에 옥중에 매인 옛성도 양심은 자유 얻었네.’라는 내용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죄의 세상, 사탄이 넘겨받았다고 주장하는(4:5~7) 사탄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탄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요셉이 그런 공격을 받았다. 예수께서 세상에 사실 때에 이렇게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분은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물리치셨다. 요셉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겠다는 그의 믿음으로 승리하였다. 결과는 육신의 고생이었다. 예수님은 얼마나 큰 고난의 삶을 사셨는가?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고난을 겪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는 보증이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로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서 내일 사형 집행이 될 것인데도 잠에 빠졌다. 양심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도 이런 경지 이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그분의 생명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순간마다 해방하실 때 가능하다(8:2). 아무쪼록 우리에게 이런 쉼이 있도록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해주시기를 기도한다.

 

<교훈>

모든 관계 속에서 성경적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된다.

 

 

85()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쟁투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39:11~20), 요셉은 그가 내린 원칙에 따른 결정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요셉은 결국 감옥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러한 비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39:21) 기록하고 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공정하지 않다.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항상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악한 일을 했다고 해서 즉시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식이 있다. 요셉은 비록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그곳에서 쉼을 찾을 수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일어난 불공정한 상황을 곱씹으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분을 떠나기로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어떤 일을 했는가?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았는가? 39:21~40:22을 읽어 보라.

[39:21~40:22] 요셉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간수장이 감옥의 일을 요셉에게 맡겼다.

 

요셉은 감옥에서 이상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감옥에서 만난 인연들은 그가 바라던 이상적인 인간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고, 그들을 도왔다. 그리고 그 자신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 도움 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왕의 술을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후 자신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6:1~13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관계에 관한 거시적인 관점은 무엇인가?

[61~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모든 경우에 예수님 안에서 바른 관계를 유지하라고 권했다. 그것은 투쟁의 삶이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삶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맺고 살아가는 관계들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이어져 온 대쟁투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도 완벽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우리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일그러뜨리고 망가뜨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싸움에서 홀로 남겨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관계들에 대한 원칙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1:5) 우리를 둘러싼 관계에도 적용된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복잡한 관계들로 인해 힘들어 할 때, 우리와도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묵상>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이야기하기도합니다. 이를 알고 공격하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의지할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전장(戰場)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전쟁터에서 적군을 대하여 싸움하고 있는 군인들의 삶이다. 에베소 611~18은 전투복을 잘 갖추어입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빛의 갑옷이다(13:12).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흑암의 세상에 빛으로 싸워 이겨야 한다. 사실 우리가 이기는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에 승리를 잘 지키는 전투이다. 그래서 에베소 6장의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는 공격용 무기가 없다. 칼이 있지만 그것은 멀리서 공격하는 원수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원수는 불화살을 쏜다. 그것을 믿음의 방패로 잘 막아야 한다. 방어 전투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시고 그것을 성령님의 도움으로 잘 보전하고 원수의 공격을 잘 방어하라고 하신 것이다. 요셉은 방어에 성공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하셨다. 우리는 여호와의 방패 안에서 예수님의 이기심이 내것이 된다는 은혜를 바르게 깨달아서 방어 전투에서 잘 버티어야 한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매 교회에 이기는 자에게 있는 보상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기는 자는 예수님이시다(16:33).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이기는 자가 된다. 내가 싸워 이긴다고 생각하면 무엇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 이김을 지켜야 한다. 성령께서 도우시기 위하여 보혜사로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염려해야 할 이유는 없다. 믿음으로 감사하고 굴복함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아메.

 

<교훈>

사탄은 우리가 이 땅에서 맺고 살아가는 관계를 이용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매일의 대쟁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86()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보디발의 아내와 연관되어 요셉에게 일어난 일에 관하여 엘렌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다. “이 땅에서 살게 될 모든 사람을 위한 예가 여기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돕기 위해 함께 하실 것이며, 성령님께서 그들의 방패가 되어주실 것이다. 비록 강력한 유혹들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그들이 의지하고 적용하므로 물리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있다. 요셉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생각해 보라.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로부터 유혹이 다가 왔으나 요셉은 즉시 그 유혹을 물리쳤다. 그는 자신의 명예와 관심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 비록 그가 잠시동안 수고하고 고생하여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원수의 가혹한 공격으로부터 그의 명예를 안전하게 지켜주셨고, 그의 정하신 때에 반짝반짝 빛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감옥마저 그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셨다. 올바르게 행한 모든 일은 때가 되면 그 보상을 주게 될 것이다. 요셉의 마음을 막아주었던 방패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의 태도였다. 그 태도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충성하며 진실하게 행동하게 했다. 비록 그가 몰래 행동함으로 자신의 주인을 속일 수도 있었지만, 주인의 신뢰를 저버리는 그런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였다” (엘렌 G. 화잇, The Spirit of Prophecy, vol. 1, 13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또는 재림교인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쉼을 얻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명목상의 재림교인과 참된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겉으로 그리스도인인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 인격이 거듭난 경험이 없는 상태이다.

 

2.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족은 인류가 가진 죄의 문제로 인해 모두 다 저마다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모든 구성원들이 사랑, 용서, 이해, 배려와 같은 성경적 원칙들을 따라 각 가정에 치유와 회복을 가져오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겠는가?

말씀과 기도, 그리고 말씀에 완전히 굴복하는 정신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3.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에 갑작스럽게 생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가정들이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며 사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모든 것이 평안할 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시련의 시간을 위해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항상 믿음으로 사는 것은 위기의 때를 위한 준비된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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