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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과 너는 여호와를 기다리라

(33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53)

연구 범위: 27:14, 8:18~25, 131:, 18:3, 126:, 92:, 16:1~8, 벧후 1:19

 

기억절: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편 27:14).

 

지금까지의 영적 여정을 통해 우리는 장엄한 창조주, , 재판관 앞에서의 경외심, 하나님의 구속과 용서, 구원을 통한 기쁨, 슬픔과 애통함 속에서 굴복하는 순간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에 대한 영광스러운 약속과 하나님을 향한 전 우주적인 예배에 대한 기대감을 나누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이 궁극적으로 성취될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 가운데 우리의 여정은 계속된다. 그런 여정 가운데 있는 우리가 시편에서 발견하는 마지막 중요한 주제는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나태함과 절망에 찬 자포자기한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신뢰와 믿음으로 가득한 행위이며, 그것이 일관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암울한 저녁을 밝은 새 아침에 대한 기대감으로 변화시킨다(30:5, 143:8). 우리의 마음은 매일 새로운 희망과 평안으로 힘을 얻는다. 그것은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게 해주고 주님의 선교지에서 풍성한 수확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126:6, 9:36~38). 주님을 향한 기다림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며, 그분은 모든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풍성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37:7~11, 18, 34, 71:1, 119:137, 138).

 

*학습 목표

깨닫기: 시편은 우리가 소망과 인내 가운데서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느끼기: 그분의 역사를 기억하고 살아있는 관계에 있을 때 우리는 안식과 소망을 경험할 수 있다.

행하기: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하고 주님이 다시 오실 영광의 아침을 기다린다.

 

TMI 위로

2.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12:1)

*: 거리기는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 하늘 향해 달음질 할 것이다.

3. 자신을 높이는 교만과 비교되는 속성은 무엇으로 나타나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131:2)

*: 젖뗀 아기가 엄마 품에서 평온한 것으로 나타난다.

4. 하나님은 성경의 역사를 봄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고 어떻게 적용되기를 원하십니까?(126:6)

*: 울며 씨를 뿌려도 거둘 때는 기쁨이 넘친다.

5. 안식일을 위한 시편은 어떤 개념을 담고 있으며 그것은 기자의 어떤 마음을 표현합니까?(92:10)

*: 창조와 구원을 기념하는 사상이다. 성도의 승리에 대한 개념이다.

6. 시편기자들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들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까?(30:5)

*: 흑암과 사망의 세상에서 빛과 생명의 아침을 기다리는 것이다.

7. 제자들은 얼마나 주님의 날을 고대했습니까? 그들이 그 압박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2:13)

*: 하나님께서 행하도록 하는대로 살면서 주님이 오늘 오실 것처럼 기다렸다.

 

결론 기다림은 아무리 열정이 넘치는 사람도 무너지게 할 수 있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것을 오늘의 찬양으로 바꿀 수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를 성별하게 하며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 거하게 한다. 우리가 소원을 가지고 시편을 통해 하나님을 매일 만날 때에 마침내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시는 소망의 아침을 맞을 것이다.

 

324() 기다리라는 부르심

 

시편 27:14, 37:7, 9, 34, 39:7, 40:1, 69:6, 갈라디아서 5:5, 로마서 8:18~25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무엇을 하라고 간청하는가?

[27: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37:7,9]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69: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8:18~25]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라고 한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는 기다림일 것이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인생의 어떤 위치에 있든, 우리 모두는 때때로 무언가를 기다려야 한다. 매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부터 의학적 진단을 듣는 일까지 기다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어떤가? 주님을 기다린다는 개념은 시편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 가득하다. 기다리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인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물리치는 최고의 약속이다.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을 확신하고 기다린다. 당장은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상황을 그분께 맡기고 주님이 최선을 다해서 일하실 것을 확신하고 기다릴 수 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단순히 주님께 매달리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겪는 극심한 목마름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이다(63:1). 시편 기자들은 그분이 주시는 여러 가지 복을 기다리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열망이야말로 인생의 다른 어떤 갈망과 필요를 뛰어넘는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과 온 피조물이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복된 만남이 이루어질 마지막 때를 고대하고 있음을 감동적으로 기록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8:19).

얼마나 고대하는 약속인가? 우리가 궁극적인 구원과 하나님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동안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8:22)지만 주님은 성령을 통해 지금도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신다. 우리는 새롭게 창조하심으로 절정에 달할 구원의 계획을 증거하도록 부름받았다(1:4~8).

재림이라는 이름 자체에 우리가 기다리는 소망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듯이 새로 지으심은 재림교인으로서 우리가 기다리는 소망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성취이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지만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초림하셨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그분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분명하게 한다.

 

<교훈> 우리는 문제, 상황의 해결만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때를 고대하며 기다린다. 인내는 의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고 기다리게 한다.

 

<부가설명> 성경구절에 나온 바라라는 말과 기다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똑같은 카와. 기다리는 것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카와소망이라는 뜻도 있다. 바라는 것은 소망하는 것이고 더 쉬운 말로는 희망이다.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세상에서 영원히 살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이다. 그들은 영원한 본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여행은 공간 여행이 아니다. 시간여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으나 엄격히 따지면 시간여행도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기대하는 여행이다. 이기간을 올바르게 잘 살면서 이 죄의 세상에서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해야 한다. 성도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고도를 기다리며하는 유명한 연극이 있다. 고도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사망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 깊이 있는 의식을 끄집어내보이는 연극인 것 같다. 사람들은 그것을 희망이라고 한다. 희망이 없으면 삶의 의욕이 상실된다. 그 희망이 현실적이든지 이상적이든지 그렇다. 성경은 영생의 희망을 약속하였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이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요일5:11,12).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6:17~19). 하나님은 약속과 맹세로 우리의 기다림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보증하셨다.

 

325() 젖뗀 아이의 평안

시편 131편을 읽어 보라. 이 시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131:1~3]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성도는 젖뗀 아이가 엄마 품에 있는 것 같은 안정되고 고요한 중에 하나님의 품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백성은 신실한 자들을 괴롭게 하는 유혹과 고난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시편 기자를 위로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생생한 확신이다. 그는 자신의 교만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고백한다. 교만은 사람을 속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 자신 너머를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더 높은 실재를 볼 수 없다.

반면에 의인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다(123:1, 2).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기에 겸손해지고 이기심과 헛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큰 일""너무 높은 일"을 구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131:1, 흠정역). 이 일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한다. 현대 과학은 "가장 단순한" 것조차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적어도 현재로서는 우리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놀라운 역설이 있다. 물리적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우리 앞에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더 많이 펼쳐진다.

시편 131:2에 기록된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는 모습의 은유는 평온을 찾고 하나님의 품에 안긴 사람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어린 시절의 아이가 다양한 단계에서 어머니와 맺는 사랑의 관계를 가리킨다.

실체 없는 야망과 교만의 젖을 떼게 하시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4:34, 5:12~14)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단한 음식의 더욱 풍성한 영양을 제공해 주신다. 젖뗀 아이와 같다고 표현한 시편 131편의 신뢰는 사실 삶의 고난을 통해 시험과 시련을 겪으며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신 분임을 발견한 성숙한 믿음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안녕을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하게 하는 데 활용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에 대해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을 여러 같지 않은 이유로 여전히 신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증거는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교회 안에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알아야 할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교훈> 교만은 자신을 속이고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하기에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실재를 볼 수 없다. 의인은 겸손한 아기처럼 눈을 들어 그분을 의지하고 바라본다.

 

<부가설명> 어린아기에게는 엄마 품이 모든 것이다. 거기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 배고플 염려도 없다. 그런 것을 챙기는 것은 아기가 아니고 엄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긴 아기라면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챙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사랑의 아버지시다.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시는 분이다(6:32). 아기가 엄마 품에 있으면 본능적으로 염려가 없어진다. 엄마는 아기에게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환경은 죄와 사망의 환경이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보호하시는 아버지의 품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17~19). 우리는 성령의 안약으로 마음 눈을 밝히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정한 아기처럼 믿음으로 살아가자.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326()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시편 126편을 읽어 보라. 무엇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힘과 희망을 주는가?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어떤 말씀이 이 맥락 속에 기록되어 있는가?

[126:1~6]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셔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약속이다.

 

주님께서 베푸셨던 기적적인 구원은 마르지 않는 영감과 미래에 대한 소망의 원천이다. 주님의 구원은 믿을 수 없는 꿈이 현실이 되는 위대한 경험이었다(29:7, 8).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 생활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시편 126편을 기록한 기자의 세대(126:1)는 실제로 포로 상태(126:4)에 있었다.

그러나 과거 역사의 기쁨과 안도감이 찬양을 통해 회복되고 그것이 오늘의 현실에 적절하게 적용된다. 이후 세대는 스스로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성경의 역사를 오늘의 경험으로 생생하게 이어간다. 산 믿음은 과거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그분의 위대한 일들을 단순히 과거의 누군가를 위해 행하신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로 소중히 여긴다.

실제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오늘을 향한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남방 시내들"(126:4)의 심상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갑작스럽고 강력하게 행동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은유이다. 유다의 남부지역은 건조한 사막 지역이다. 그러다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면 갑자기 하천을 형성하고 급류로 흘러내린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한 해 농사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11:14, 28:12). 마찬가지로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두는 모습은(126:5, 6) 어려운 현재에서 행복한 미래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약속이다.

추수가 끝나면 고대 히브리 순례자들은 한 해의 열매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가지고 온다(34:22, 26). 추수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적 교훈을 제공한다.

밭과 과수원, 포도원에 씨를 뿌리고 돌보는 고된 노동이 풍성한 수확의 기쁨으로 보상받는 것처럼, 하나님 백성이 겪고 있는 현재의 시련도 마지막 때에는 구원의 기쁨으로 열매 맺게 될 것이다. 큰 추수의 장면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왕국을 회복하시는 것을 가리킨다(아모스 9:13~15, 9:37). 여기에서도 기다림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추수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도 수고의 열매와 결과를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교훈> 산 믿음은 과거에 행하신 그분의 위대한 일을 우리를 위한 일로 소중히 여긴다. 그들이 경험하는 현재의 시련도 마지막에는 구원으로 열매 맺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사탄은 아담 부부를 유혹하여 성공하는 것으로 이 지구를 자기 통치 지역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는 예수님께 이 세상은 자기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주장했다(4:5,6).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지구의 장자권을 회복하실 때까지 사탄의 이 주장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담의 자손들은 사탄의 포로들이다. 그것은 사망의 포로라는 말과 같다. 그래서 아담의 자손들은 출생으로 생이 시작되는 것이 곧 사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이 같이 간다. 이것이 따로 떨어져 있다가 언젠가 사망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같이 있다. 사망이 사람을 사망하게 하는 그 시점이 있을 뿐인데, 그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 다를 뿐이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면할 수 없다. 이런 사망의 포로들을 생명으로 돌이키기 위하여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사망을 폐하셨다. 그래서 마귀를 멸하셨다(딤후1:10, 2:14).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포로에서 해방되고 생명의 나라로 옮긴다(1:13, 5:24). 예수께서 이렇게 생명을 거두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생명의 나라로 데려갈 때까지 이 사망의 땅에서 고난을 당한다. 사탄은 우리의 생명을 포기하도록 온갖 공작을 다 한다. 그것을 견디며 예수께서 오실 날을 기다린다. 소망으로 기다린다. 그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곳에 기뻐하며 함께 있을 것이다. 아멘.

 

327() 하나님의 안식일의 쉼을 기다림

시편 92편을 읽어 보라. 이 노래는 안식일의 어떤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가?

[92:1~15]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2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3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6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7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9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찬양한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찬양(92:4, 5)하는 것과 의인을 에덴동산 같은 광경으로 묘사(92:12~14)하는 것은 분명 안식일이 기념하는 첫 번째 측면인 창조를 가리킨다. 이 시편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원수들을 이기신 주님을 찬양하며(92:7~15), 안식일의 두 번째 측면인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강조한다(5:12~15). 따라서 시편 92편은 과거의 창조와 현재의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평화와 질서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92:1)이시기 때문에 저 높이 계신 그분의 탁월한 지위는 백성들에게 적들이 넘볼 수 없는 우위를 제공하며 안식의 쉼을 누리게 한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은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낮은 곳으로 손을 펼쳐 주신다. 주님의 창조와 특별히 그 창조하신 세계를 구속하신 역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사랑하도록 영감을 준다. 결론적으로 구원의 소망이 없는 타락한 피조 세계 가운데 산다면 특별하게 기뻐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고, 고통받고, 죽으며, 소망 따위는 없는 삶을 산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을 기쁨으로 찬양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다!

"신선한 기름"은 새롭게 성별된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분을 섬기겠다는 기자의 새로운 헌신을 의미한다(92:10). 기름 부음은 제사장이나 왕과 같이 선택된 사람을 성별하기 위해 행해졌다(40:15, 삼상 1. 10:1). 시편 92편의 기자는 기름 부음을 묘사하기 위해 일반적인 기름 부음과는 다른, 기름과 제물의 다른 부분을 "섞는 것"을 의미하는 독특한 히브리어 발랄(balal)을 사용했다(29:2, 2:4, 5). 이는 자신을 주님께 산 제물로 드리며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기 원함을 의미한다(12:1).

안식일을 위해 봉헌된 시편에서 성별함의 개념을 발견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안식일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표징이기 때문이다(31:13). 레바논의 종려나무와 백향목의 모습은 하나님 백성의 믿음이 자라나,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과 사랑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안식일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표징이다(20:20). 따라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수적인데, 그 이유는 안식일이 주님께서 언약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것을 신뢰하며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4:1~10).

 

<교훈>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고 주관하시는 분을 찬양하며 다가올 평화와 질서를 소망한다. 안식일은 약속을 기다릴 쉼과 힘을 주고 그 사람을 성별하게 한다.

 

<부가설명> 창조와 구원은 제칠일 안식일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업적과 약속의 측면이다. 창조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 것이다. 구원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능력이다. 이 둘은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은 초석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4:17). 이것은 안식일에 들어있는 영원한 진리다.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5:24).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다(3:16). 이 말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다. 멀리서 바라보고 믿었다(8:56~58).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되었다(15:6). 구원은 재창조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다(고후5:17).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이 창조의 기념이 되는데(20:8~11) 그것은 또 구원의 기념도 된다(5:12~15). 이것은 안식일은 창조좌 재창조의 기념이며 창조주이시며 재창조 곧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표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는 선언이 된다. 92편은 이것을 시적으로 감격하여 기록하였다.

 

328() 아침에 기쁨이 오리로다

 

시편 5:3, 30:5, 49:14, 59:16, 92:2, 119:147, 베드로후서 1:19, 요한계시록 22:16을 읽어 보라. 아침이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시간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30: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49: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59: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92:2]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11914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벧후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

 

시편에서 아침은 전형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는 시간이다. 아침은 절망과 고난의 긴 밤을 끝내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준다(130:5, 6). 시편 143편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현재의 죽음의 흑암(143:3)을 새 아침의 빛(143:8)으로 바꾸어 주시고 무덤(143:7)에서 "바른 길"(143:10, 쉬운)로 옮겨 주실 것이다.

 

마가복음 16:1~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의 아침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 일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16:1~8]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 예수께서는 아침에 부활하셨다. 그처럼 아침은 부활의 생명의 날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은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아침을 열어주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는 시편 30:5의 약속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했다. 우리의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다(30:5, 7).

샛별이 새날의 시작을 알리듯이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는 영생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기대하게 한다(벧후 1:19).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별(22:16)이시며 우리는 그분이 더 이상 밤과 죄악과 사망이 없는 나라를 세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린다(21:1~8, 25). 우리가 주님을 기다린다고 말할 때 무엇보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이것은 확실히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

"갈라진 요셉의 무덤 너머로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승리를 선포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산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느냐에 따라 생사가 좌우된다.

가장 높은 스랍으로부터 가장 낮은 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생명의 근원되시는 분에게서 생명을 공급받는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분만이 나는 내 생명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성 속에 죽음의 속박을 깨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시대의 소망, 785).

 

<교훈> 아침은 절망과 고난의 긴 밤을 끝내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원을 주며 죽음의 흑암을 새 아침의 빛으로 바꾸어 주신다.

 

<부가설명>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밤이다. 아담의 후손은 사망의 밤 세상에 죽어가고 있다. 시인은 143편에서 그 사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143:3~8). 그러나 아침을 기다린다. 그때 성도는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옮긴다. 우리의 기다림은 이날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약속하시고 맹세로 보증하신 하나님은 때가 차면 그날이 이른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부활로 그것이 실제적인 것을 증명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을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17:31).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그분이 시작하신 구원, 곧 재창조의 큰 일이 완결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으로 일어나서 할렐루야, 거룩하다고 외칠 것이다. 이날을 기다린다. 이 소망이 확실하기 우리의 기다림은 즐거운 기다림이다. 인내로 이 기다림이 찬양이 되도록 하자.

 

329()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정로의 계단 8"그리스도께 이르기까지 자라남"을 읽어 보라.

"주 안에서 안식하고 끈기 있게 그분을 기다리라"(37:7, 흠정역). 우리의 기다림이 힘겹고 불확실하며 외로울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던 날의 제자들을 기억해야 한다(1:4~11). 제자들의 눈앞에서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고 그들은 알 수 없는 어느 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이 땅에 남겨졌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그날의 제자들보다 열망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들은 분명히 "주님, 지금 우리도 함께 데려가옵소서"하며 간절히 바랐을 것이지만 그들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 생각과 달리 제자들은 좌절과 실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은사를 기다렸고, 권능을 받아 세상에 전했다(1:12~14, 2:).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지 않는다면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이행 불가능한 명령이다. 아무리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도 기다림의 무게가 우리의 연약한 자아를 누르는 압박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그분과 인격적 관계를 갖는 것만이 그 압박을 견디게 해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면 그는 우리 속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2:13)실 것이다. 우리는 그가 행하신 것 같이 행하게 될 것이요 또한 같은 정신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사랑하며 그의 안에 거함으로써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4:15, 정로의 계단, 75). 시편에서 평안과 만족을 찾으며 기도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주님을 기다리면서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날마다 만날 것이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기다림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의 기다림에 대해 토의해 보라. 기다림은 어떻게 그들의 믿음을 정결케 하고 강하게 하였는가? (4:19~22, 히브리서 11).

*: 하나님의 약속을 현재 성취된 것으로 생각하고 인내하며 자기를 다스리고 기다렸다.

2. 우리의 기다림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37:34~40)? 모든 것이 마침내 해결될 때 우리는 무엇을 약속받게 될 것인가? 예를 들자면 이 구절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오랫동안 실종된 정의에 대해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37:34~40]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35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36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37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 악인은 망하고 정직한 자들은 평안한 삶을 누린다.

3. 죽은 자들에 관한 한(9:5), 왜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기다림은 완성되었는가? 그 대답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부활해서 하나님의 판결이 집행되는 것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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