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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21:07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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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철

"베트남에서 시집온 응웬씨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둘째 출산을 앞둔 때였다 기적처럼 남편은 일어났으나
구제역으로 소 열 마리를 묻었다
응웬씨의 꿈도 다시 묻힐 위기에 빠졌으니…

응웬씨는 베트남 신부다. 베트남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이역만리 한국의 농촌총각에게 시집왔지만, 응웬씨의 삶은 늘 행복했다. 순박한 시골총각인 종수씨와 사이에 두 살 딸이 있고,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최소한 베트남에서처럼 끼니 걱정에 눈물지을 일은 없다. 종수씨가 몇 마리 소와 작은 농사(農舍)를 가지고 있었고, 농기구 수리기술까지 있어 세 식구 건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응웬씨가 병원에 올 때는 늘 종수씨가 따라왔다. 응웬씨가 한국말이 서툴러 의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착한 응웬씨의 눈에는 곶감 같은 걱정이 줄줄 매달렸다. 유달리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종수씨는 그런 아내가 좋았고, 응웬씨에게 종수씨는 누구보다 듬직한 남편이었다.

어느 날 부부가 병원에 왔다. 그때는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부탁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심한 백내장으로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응웬씨 어머니를 종수씨가 한국으로 모셔온 것이다. 응웬씨가 종수씨에게 눈물로 부탁을 했다고 했다.

종수씨가 말했다. “선생님 우리 장모님이 베트남 사람이라 의료보험이 안 됩니다. 집사람이 저리 원을 해서 모시고는 왔는데 제 형편은 빤하고, 선생님 죄송하지만 아는 안과에 수술비를 조금만 싸게 해달라고 부탁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종수씨에게 몇 백만원의 수술비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대학 후배인 안과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배려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종수씨의 장모는 백내장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종수씨가 농기구를 수리하던 중에 갑자기 두통이 생겼다. 구역질도 나고 어지럼증이 생겨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검사를 기다리던 중에 쓰러지고 말았다. 뇌혈관이 파열되는 뇌졸중이 발생한 것이었다. 상태가 상당히 위중했다.

종수씨는 대구로 후송되었고, 모 대학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했지만, 워낙 뇌부종이 심해 경과를 기약할 수 없었다. 뇌에 이미 큰 손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며칠 후 응웬씨가 병원에 들러서 그 이야기를 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을 담고, 부정확한 우리말로 종수씨의 상황을 설명했다. 정확한 사정을 알아보려 대학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주치의를 찾았더니 “기적 외에는 기다릴 것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때 응웬씨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딸 하나뿐이었던 종수씨가 아들을 원했고, 그런 바람대로 두 번째는 아들이라고 했다. 출산을 며칠 앞두고 종수씨가 쓰러졌던 것이다. 이미 부를 대로 부른 배로 두 살짜리 아이의 손을 잡고 남편의 경과를 물어보는 응웬씨의 얼굴에는 불안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응웬씨는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종수씨는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남겨진 베트남 출신 부인과 두 살 된 딸, 그리고 피붙이 아들의 운명이 풍전등화가 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 편에 들려온 소식은 암담한 것이었다. 시댁식구들이 응웬씨를 베트남으로 돌려보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종수씨의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그것이 응웬씨를 위한 일이었을지 모르나, 응웬씨가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갈 베트남은 그녀를 반겨줄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청이나 사회단체에서도 그 상황에서는 마땅한 도움을 줄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종수씨가 회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소를 돌보거나 가벼운 일은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고, 응웬씨가 종수씨의 재활을 위해 헌신적으로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적은 있었다. 하늘이 도왔을 것이다. 아빠를 잃고 이역만리 베트남으로 버려질 뻔했던 그의 두 아이들과 응웬씨의 커다란 두 눈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에 응웬씨가 또다시 실의에 빠졌다. 구제역으로 인해 종수씨의 소 열 마리가 땅에 파묻혔다. 몸이 조금 회복된 종수씨가 소 마릿수를 조금 늘려보려고 우사를 증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종수씨와 응웬씨의 꿈도 그 자리에 같이 묻혀버릴 위기다. 다시 응웬씨의 깊은 눈이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들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느냐”는 질문에 미하일이 사랑이라고 대답했듯, 종수씨네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물으면 그들의 답 역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만의 사랑으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구제역으로 시름에 빠진 이 땅의 농가들도 같이 일어날 것이다. 그분들에 대한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사랑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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