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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16:05

초겨울의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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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

아내는 울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아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여보, 울 것 없어요. 내가 당신의 남편이니까 아무래도 편견이 있을는지 몰라도, 이번 일을 상당히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잖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당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애. 울지 말아요.”

“·········”

“사람들이 말이오, 예수 잘 믿는다는 모습을 저렇게 나타내면서, ····· 일의 원인이 전혀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결과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기도하고 있으니, ····· 참.”

우리는 환경이 결코 낙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잠시 동안이라도 낙원 변경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아쉬운 눈으로 돌아보면서 O 기관에 있던 두어 달 남짓한 생활을 뒤로하고, 속상한 모습으로 동생네 집을 향하여 천천히 차를 몰고 있었다. 흐린 하늘에 초겨울의 싸늘한 아침 바람이 차창 틈으로 애잔한 소리를 지르며 가슴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우리가 O 기관에 들어가게 된 것은 영어 때문이었다. 갓 이민 온 나를 기억하는 교인이 있어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담임 목사로 일하기를 원하였다. 이민 보따리를 아직 풀기도 전에 들려온 이 소식은 나를 흥분하게 하기에 족했다. 그런데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영어 때문이었다. 그 교회는 미국인 교회에 소속된 한인 교회로서, 한국인 목사가 오면 미국인 교회의 한국인 담당 부목사가 되어야했다. 그러자니 영어를 제법 해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편이었다. 말뿐 아니라 읽고 쓰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한 교인의 소개로, 우선 영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지름길도 되고 미국 사회의 신앙생활의 모습도 익힐 수 있는 방법으로 O 기관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이 기관은 미국인이 운영하는, 평신도를 훈련시켜 자급으로 전도하는 일꾼을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그러므로 기관 운영 계획에 의하여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배정된 일을 해야만 하였다. 그렇다고 학교와 같은 제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들어온 사람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그 기관 안에 있는 여러 부서에서 일하게 하며, 저녁 시간에는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성경과 전도법을 연구하는 그런 제도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자니 미국인들과 하루 종일 생활할 수 있고, 필연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동안, 식생활과 주생활에 대한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다.

기관에서는 거기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방을 무료로 제공하고 모든 유틸리티를 기관이 담당해 주었다. 또한 8살짜리 우리 아이의 교육 문제도 생각보다 좋은 교육 수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기관 안에 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여선생이 있는 가정 학교가 있어서 기관 내의 학령기 아이들을 모아서 정도에 따라 학교 교과 과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기관에 들어온 3일째 되는 날부터 가정 학교에 출석하며 기관 안에 사는 여러 어린이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식생활을 위하여서는 그 기관에서 발행하는, 그 기관 안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그 안에 사는 모든 식구들에게 지불하였는데, 마치 어린이들 소꿉장난에서 쓰는 종이 돈 같았다. 그들은 그것을 훠니 머니(funny money)라고 불렀다. 그 돈은 한 사람당 한 끼에 50전씩 계산하여 일주일분씩 지급되고 있었다. 50전으로 어떻게 한 끼를 살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하루를 지나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기관 안에 있는 모든 생필품들은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아주 싼값으로 제공되었다. 그래서 실은 50전이면 한 끼 식사를 하고도 돈이 남았다. 우리는 세 식구에 하루 4불 50전으로 일주일분 31불 50전을 지급 받아 와서 신기하게 그 돈을 들여다보면서 훠니 머니, 훠니 머니 하고 되뇌었다. 참으로 훠니 머니요, 훠니 라이프처럼 보였다.

거기에는 한국인 닥터 주(周)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닥터 주는 그 기관에 임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제법 큰 도시에 O 기관이 설립한 클리닉의 의사였다. 그는 한국인 목사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을 아주 좋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국인만을 위한 이런 훈련 기관을 설립할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배려로 그의 소유인, 방이 세 개 있는 모빌 하우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우리 식구들은 그 집을 집 차라고 불렀다. 세 식구가 살기에는 넉넉한 집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편한 환경이요, 장소였는지 우리들은 아주 만족해하였다. 조용한 환경에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되어 있었다. 우리는 낙원 변경에 온 것처럼 즐거워하였다. 미국인의 신앙생활의 한 면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나와 나의 식구들의 신앙을 북돋을 수 있는 기회도 되기를 기대하였다.

내가 그곳에 들어간 지 달포가 가깝도록 기관에서는 내가 해야 할 적절한 일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데다가 목회를 하던 사람에게 일하도록 배정할 적당한 부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저녁 성경 공부 선생을 하면 제격이겠는데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 목사이고 보니 나를 위한 일거리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관에서 나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닥터 주의 부탁대로 우리의 월동 준비를 위하여 나무를 자르고 도끼로 장작을 패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겨울을 앞두고 기관 안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월동을 위하여 화목(火木)을 준비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닥터 주도 3시쯤 클리닉에서 돌아오면 나와 함께 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팼다.

그는 깡마른 체구에 키도 별로 크지 않은 섬약한 체질로 보였는데, 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패는 일이 여간 당차지 않았다. 어쩌면 이 기관에 들어와서 단련된 체력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육체노동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던 내가 그와 보조를 맞추어 일하기란 무척이나 힘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자주 앉아서 쉬었고, 때로는 허리가 아파서 굴신에 어려움을 느껴, 일하는 것이 굼뜨고 서툴기가 짝이 없었다. 처음 한두 번은 닥터 주가 이해하는 눈길을 보내기도 했으나 나의 일하는 상태가 성의가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나를 보는 그의 눈에 멸시의 빛이 차츰 서리는 것을 나는 느끼기 시작하였다. 사실 나는 성의 없이 일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장담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전혀 하지 않던 일이라 힘이 들고 고단했기 때문에 일이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 닥터 주의 표정은 마치 <커다란 덩치에, 그리스도인 정신도 없이 꾀를 부리고 있어, 이 기관에서 그런 식으로 일하면 쫓겨나기 안성맞춤이지.>라고 말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사람이란 배운 것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른데, 따뜻이 이해하며 격려 할 수 없을까. 그것이 믿음의 모습이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생활 태도 일 텐데. 그러나 닥터 주는 그렇지 않은 것같이 느껴졌다. 사실 이런 나의 생각이 옳다고 하더라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일에 대한 불평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상대방을 타박하는 그런 정신이 내 속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나서, 실제로는 상대방의 생각과 상관없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여튼 닥터 주는 단호하였고 자기가 신앙적으로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면 그것을 표준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해석해 버리곤 하였다. 그래서 이해와 양보가 아쉬운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닥터 주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시간을 얻지 못한 채로 지나면서 이러한 나의 느낌을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닥터 주의 눈치를 살피는 날이 많아지면서, 미국인과 어울려 영어 배우는 일은 시작도 못 해본 채 훠니 라이프가 사그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런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어느 날 닥터 주가 클리닉에 나가는 이른 시간에 우리 집에를 들렀다. 이렇게 일찍 우리를 찾은 일은 전에는 없었다.

우리 식구는 반색을 하면서 그를 맞았다. 나를 위한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가지고 왔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기대와는 전연 엉뚱한 것이었다.

그는 미즈(Ms.) 신(辛)이라는 한국인 한 간호사 가족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 가족이 이 집에 함께 살아야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말이라면 클리닉에서 돌아온 후에 이야기해도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바쁜 시간에 서둘러 이야기하는 것일까? 나는 자못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 바쁜 시간에 일부러 오셨습니까? 일 갔다 와서 나무를 패면서 천천히 말씀하셔도 될 텐데요.”

“아, 예, 아침에 미즈 신과 통화를 막 끝냈거든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바로 들렀지요.”

“아, 그랬었군요. 그럼 물론 그렇게 해야지요, 좋습니다. 나로서는 가타부타할 처지가 아니잖는가. 그래서 아주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후에 미즈 신의 가족이 도착하였다. 그들은 우리 집 차의 큰 방에 짐을 풀었다.

미즈 신은 보기에 수더분하고, 그 얼굴에 믿음의 열정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데리고 온 아들딸은 아직 어린데도 질기고 고집 있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내가 준비한 저녁 식탁에 미즈 신의 식구들과 닥터 주의 식구들이 함께 둘러앉았다. 식사를 하면서, 미즈 신은 이곳에 오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였다. 꿈에 하나님이 이곳을 보여주며 가서 일하라고 계시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닥터 주와 연락이 되었고, 닥터 주도 비슷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다고 맞장구를 쳤다.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계시하셨을까? 나는 목사이지만 성경을 떠나서 내 개인 생활에 대한 어떤 계시도 직접 받아본 일이 없다. 나는 나의 믿음이 낮은 차원에 있는 것 같아서 슬그머니 부끄러워지는 심정을 느끼며 듣기만 하고 있었다.

아내는 좁은 집에 두 가정,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아야 하니 하나뿐인 부엌을 서로 불편 없이 사용하는 일이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닥터 주의 식구들이 돌아간 후에, 아내는 미즈 신에게 부엌 사용에 대하여 이런 제안을 하였다.

“미즈 신, 이렇게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모든 일에 서로 불편 없이 믿음으로 잘 지내도록 삽시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데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 ?”

미즈 신은 아내의 말에 의아하게 쳐다보며 약간 언짢은 음성으로 대꾸하였다.

“무슨 다른 불편이야 있겠어요. 다만 부엌이 문젠데, 두 집이 한 부엌을 써야 하니까, ···· 한꺼번에 식사 준비를 하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좁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어떻겠어요?”

“어떻게요?”

“나는 주로 집에 있을 것이니까, 식사를 좀 늦게 해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미즈 신이 먼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난 후에, 우리가 부엌을 쓰는 식으로 말입니다.”

“····· 생각해 보겠어요.”

외모를 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어딘지 다른 반응에 나는 적이 놀라고 있었다.

우리는 먼 여행에 피곤한 사람을 붙잡고 오래 이야기하는 것도 미안해서, 여기서 이야기를 끊고 저녁 예배를 드린 다음 얼른 잠자리에 들기로 하였다.

저녁 가족 예배에서 미즈 신의 기도는 간절하였고, 그의 신앙의 열도가 잘 드러나 보였다. 그런데도 나는 아내와 미즈 신의 대화중에 그녀가 반응하는 모습에서 느낀 부정적인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해 보겠다는 말인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한 솥에 밥해 먹겠다는 작정인가? 만일 그렇게 하겠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나는 자리에 누워 그렇잖아도 점점 평안을 잃어가는 상태에 더욱 가중되는 압박을 느끼며,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는지 믿음 없는 궁리를 하며 끙끙대었고, 아내도 역시 같은 생각으로 심란한 모양이었다.

과연 간밤의 염려는 이튿날 현실로 우리 앞에 찾아왔다. 닥터 주가 찾아온 것이다.

“목사님, 사모님, 어떻게 할까요, 훠니 머니를 여섯 식구 한 가족으로 하여 타오는 것이 좋겠지요? 아무래도 그렇게 살림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예? 그렇게 살림을 하다니요?”

“오, 미즈 신이 말 안했습니까? 미즈 신은 저와 같이 클리닉에 가서 일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아침 일찍 나가야 합니다. 클리닉이 50마일이나 되니까요. 그래서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이 아이들도 좀 돌봐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내의 얼굴이 조용하게 일그러졌다.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내는 어떤 궁리를 하는 눈치였다.

“아, 그렇습니까. 미즈 신은 그런 말은 안했는데요. 그렇다면 그렇게라도 도와야지요. 그렇지만 돈은 각각 따로 받아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한 식구로 타도록 하지는 마세요.”

아내는 그 순간의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주 선생님, 아침 식사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일찍 일 갈 준비가 바쁠 테니까요. 그러나 저녁 살림은 미즈 신이 돌아온 다음에 직접 해도 되겠지요?”

“아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미즈 신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주위 환경을 돌아보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닥터 주는 우리와 나눈 이야기를 미즈 신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와 의논 한마디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통고만 하는 식이었던 일이었으나, 이와 같이 하여 두 집이 어떻게 살 것인지 일단 합의를 본 셈이 되었다. 그리고 그 훠니 머니는 각각 따로따로 지급받아 오게 되었다.

미즈 신은 이틀 후부터 클리닉에 나간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내는 이틀 동안 미즈 신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하며 여섯 식구가 같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식사 버릇이 영 말이 아닌데다가, 아내가 아껴 쓰는 조미료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 기관에는 없는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는 마구잡이로 떼를 쓰며 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닌가. 아내의 얼굴이 결코 밝아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한술 더 떠서 미즈 신은 아무 말 없이 그 조미료 통을 들고 와서 아이들의 요구대로 음식에 쳐주고 있었다. 아내는 곤혹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런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니까 이 아이들이 질기고 고집쟁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마침내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하였다.

“그것은 조금씩 아껴 쓰는 것인데,·····”

“또 사오면 되잖아요.”

미즈 신은 시큰둥하게 말하였다.

“그것은 여기서 파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럴 리가 있나요.”

그녀의 이런 반응에 아내는 아연해하였다.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말인가>하는 표정이었다.

“마켓에 가보세요, 있는가.”

“그래요, 가보면 알겠지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느라 아내는 얼굴을 숙이고 말이 없었다.

닥터 주의 부인은 부드럽고 온순한 모습이었다. 닥터 주와 미즈 신이 일을 나가면 기관 안에 한국인은 미시스 주와 그들의 어린 아들과 우리 식구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우리는 미시스 주의 점심초대를 받았다.

푸짐하게 건강 식단으로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아 즐거운 식사를 나누면서 우리는 미시스 주와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우리는 이 기관의 성질에 대하여, 또 이곳의 생활 방식에 대하여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닥터 주와 미즈 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곳에 오게 된 내력도 듣게 되었다.

이야기는 대강 이러했다.

닥터 주는 개업 의사였다. 그는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성실하게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의 성실하고 친절한 봉사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서 동양인인 그의 오피스에는 많은 백인 환자들까지 늘 붐비고 있었다. 그러니 수입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민의 땅 미국에서 수준 높은 생활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신앙의 열심히 특심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닥터 오피스가 잘 운영되어 경제적으로 넉넉하면 시간을 내고 재물을 바쳐서 하나님 사업을 열심히 해야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 오피스가 기대 이상으로 성황을 이루어 수입이 늘어나자 재물을 드리는 것은 잘 감당하겠는데, 그 때문에 너무 바빠져서 하나님 사업에 시간을 바치는 일이 무척 어렵게 되어가면서부터 그는 개인적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같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저버리는 것같이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좀 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는 그 잘되는 오피스를 팔기로 결심을 했다.

그는 계시를 받은 것이었다.

그의 설명으로 계시이지, 미시스 주가 듣기에는 그저 평범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O 기관에 들어가서 일하라는 확실한 계시라고 고집하였다. 그것은 꿈에 자기가 가서 일하던 건물과 환경을 실재로 찾아본 결과 O 기관의 환경과 건물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O 기관에 들어가서 무보수 봉사로 자신의 의술을 오직 복음 전도를 위하여 쓰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쉽게 찬성을 할 리가 없었다. 그들의 사이에 투쟁이 계속되었다. 이제 오피스가 에스크로에 들어가고 아내는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녀는 고민으로 소화가 안 되었다. 얼굴은 노랗게 뜨고 마르고 있었다. 그러나 닥터 주의 생각은 요지부동이었다. 병이 든 아내의 호소도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여보, 꼭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금처럼 당신이 일하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며,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봉사하면 되지 않겠어요?”

아내의 이런 애원에 그는 하나님의 계시에 거역하는 것은 반역하는 것이라고 역설(力說)을 하고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는 마태복음 10:36-38의 말씀으로 대답을 끝맺곤 하였다. 그런데 그는 이 대답을 할 때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는 36절을 제일 마지막에 인용하곤 하였다.

예수를 믿는 신앙에 스스로 도취되어 같은 예수를 믿는 아내를 자기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원수로 표현하는 말을 들을 때 그녀는 원망스럽기도 하고 소름이 끼치도록 두렵기도 하였다.

<신앙으로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나님은 참으로 이런 하나님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남편의 신앙 자체에 대하여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마침내 그녀는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는 날을 맞이하였다.

그녀도 계시를 본 것이다. 즉 꿈을 꾼 것이었다. 그녀가 꿈에 지시를 받기까지 남편은 아내에게 확신을 달라는 기도를 쉬임 없이 계속하였고 마침내 그 응답을 받은 것이다. 꿈에 분명히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남편의 계획을 거역하지 말고 따르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고집을 꺾었습니다. 이렇게 들어와서 세상의 분요를 다 잊어버리고 전적으로 신앙에만 몰두하게 되니까 참으로 좋은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잘 인도하여 주셨다고 생각하고 만족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그렇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몰두한다는 것이 꼭 이런 삶을 사는 것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어쨌든 만족하시니 좋습니다. 그리고 이곳 환경이 참 좋으네요. 별일이 없으면 우리도 여기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는 조금 간격을 두고서 말했다.

“미즈 신은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는지 특별한 계기라도 있습니까?”

“도착한 날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지 않았습니까. 그도 계시를 본 것이지요.”

“그래요? 죄송하지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계시일까요? 아니면 평범한 꿈을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한 것일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요. 또 나의 꿈도 참 기이하지 않습니까. 요즘도 그이는 종종 꿈을 꾼답니다. 그리고 치료에 대하여도 꿈에 어떤 지시를 받는다고 하니까요. 미즈 신이 온 것도 그이의 꿈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에 들으신 대로 두 사람의 꿈이 일치한 것이지요.”

“그리고 미시스 주는 미즈 신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였다.

미시스 주는 미즈 신을 전부터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일 년쯤 전에 이혼을 당했다는 것이다. 원래 불신자인 남편과 금슬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불만을 소위 신앙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예수님에 대한 신앙적 열정이 특심한 사람이 되어갔다. 별로 정이 없는 남편과, 그래서 재미가 없어진 가정보다 교회가 더 좋았다. 방문이다, 성경 공부다, 찬양 연습이다, 특별 집회다. 등등. 교회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쉽던 차에 그녀의 열심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그녀는 남편이 그녀를 필요로 하는 시간에도 집을 쉽게 비우고 남편 곁에 있지를 않았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같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자주 성화를 부렸다. 그러한 아내의 성화에 남편도 마지못해 교회에 다니기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남편이 교회에 다니기로 동의했을 때 기뻐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교회출석은 신앙 때문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아내의 마음을 조금 어루만지려는 호도 책(糊塗策)에 불과하였다. 그러한 남편의 저의가 점점 드러나자 그녀는 배신당한 것 같은 실망을 느끼며 스스로는 더욱 소위 신앙적으로만 되어갔다. 그랬는데 그녀의 그런 더욱 극성스런 신앙의 자세는 남편으로 하여금 그나마 억지로 교회에 나가는 일에도 염증을 내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남편이 그런 그녀의 생활 태도에 대하여 투정을 하면 태도를 고치려고 하기는커녕,

“당신이 내게 대하여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러는 것이지 뭐요.”라고 타박만 하였다. 그래서 남편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던 무렵 잠깐 반짝하던 기쁨은 멀리 사라지고, 원래 정이 탐탁찮은 그들은 더욱 정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짜증이 많아진 남편과 다툼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이봐, 성경 어디에 주부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그런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이 있어?”

남편은 교회에 다니며 얻어들은 풍월로 성경을 들먹이면서 아내에게 공격을 하였다.

“아니, 여보, 당신도 믿고 살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왜 그래요? 당신이 나처럼 철저히 믿음으로 살려고 해 봐요. 그러면 서로 재미있을 것 아니겠어요. 내가 뭐 나쁜 짓 하느라고 그러나, 믿음대로 살려고 그러지. 자기는 믿음대로 살 마음이 없으니까 자꾸 트집을 잡는 거지.”

“믿음대로 살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당신은 남편의 신앙적 필요도 돌보지 않는단 말이야.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거야? 차라리 교회에 안 다닐 때가 내게는 훨씬 편했어.”

“어머머, 이이 좀 봐, 그래도 믿고 살기로 한 사람이 또 왜 그런 말을 해.”

이틀이 멀다하고 이런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그녀는 자타가 인정하는 믿음 있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래서 교인들과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교회에서 하는 작고 큰 일에 믿음 있는 사람으로서의 일방적인 주장을 고집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런 결과로 마찰이 일어나면, 그녀는 그 원인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결과만을 가지고 탓하면서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곤 하였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그러한 그녀의 신앙적 태도를 양식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염려하고 있었다. 또 일부에서는 그런 그녀를 빈정거리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외롭게 소위 신앙에 몰두하여 가고 있었다.

남편은 마침내 서비스가 좋고 싹싹한 외국인 여자를 사귀면서 교회에 나오기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남편은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둘은 이혼을 하고 만 것이었다.

그때 그녀는 조금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믿음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는 중에 그녀의 믿음에 보상이라도 주듯 이 계시를 보았다는 것이다. 꿈에 그녀는 이삿짐을 싣고 어디론가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인지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어느 날 O 기관을 소개한 부로슈(brochure)를 교회에서 보게 된 것이다. 거기에 실린 사진들이 자기가 꿈에 이사를 간 장소와 같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녀는 O 기관에 전화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즈음에 닥터 주는 클리닉에 같이 일할 간호사를 찾고 있었다. 자기와 같이 무보수로 봉사할 그런 간호사였다. 그런데 미즈 신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한국인이 전화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기관의 유일한 한국인 임원인 닥터 주에게 연결되었다. 전화를 받은 닥터 주는 이렇게 첫마디를 말했다.

“전화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나, 어떻게요?”

“꿈에 지시를 받았지요.”

“그렇습니까, 저도 꿈을 꾸고 전화를 하는 건데요.”

이렇게 해서 서로의 꿈은 전선을 타고 서로에게 전달되었고, 미즈 신은 그 먼 곳에서 감미로운 환상을 가지고 장장 일주일을 달려 O 기관에 오게 된 것이다.

닥터 주가 너무 쉽게 그녀가 오는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미시스 주는 적이 당황하였단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미즈 신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본 후에 오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괜찮아요, 그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이곳에 들어오려고 할 때의 꿈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틀림없소.”

“그래도 내가 미즈 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에 대한 믿음의 평판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던데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긴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일방적이고,···· ”

“그런 이야기 할 것 없어요. 사실 나도 미즈 신이 전화하기 전에 그곳 교회의 다른 사람한테 조금 들은 것이 있어요. 그러나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기에 와야 해요. 아직은 그가 미숙해서 그렇단 말이오. 이곳에 와서 더욱 성숙한 신앙을 배워야지요. 당신이 잘 도와주구려.”

닥터 주의 신앙적 태도를 잘 아는 자기로서는 더 할 다른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식구는 계시 없이 들어온 사람이었다. 또 이곳에서 무보수 봉사를 목적으로 온 사람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다분히 나의 이익과 편리를 탐하고 온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호흡이 잘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즈 신이 온 후로 우리는 닥터 주와의 호흡이 더욱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여보, 닥터 주가 미즈 신과 일을 하면서부터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좀 변한 것 같지 않아요?”

아내는 가끔 이런 의문을 던지곤 했다.

“뭐 그럴라고,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나무 베는 일을 하면서 내가 느끼는 그런 감정과 같은 것일 거요.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항상 같은 태도로 대하는 연습을 합시다.”

“미즈 신이 일하면서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내게 어떻게 한 것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그런 결과로 내가 자기를 좀 언짢게 대한 이야기들을 말이에요.”

“그러면 자기가 잘못된 거지 뭐. 그렇게 열심히 믿음대로 살려는 사람이 설마 그럴라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 다 버립시다.”

“이런 기분으로 여기 오래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영어는 한 마디 연습도 못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

닥터 주와도 소원해진 느낌 속에 미즈 신과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런대로 무사히 세 주일이 지나갔다.

엄마가 없는 동안에 아이들의 극성을, 아내는 그런대로 잘 참아내고 있었다. 아내는 그 아이들의 버릇없는 개구쟁이 행동과 질기고 비뚤어진 태도를 달래면서 우리 아이에 대한 염려를 자주 하였다. 그리고 항상 아이에게 그들과 싸우지 말고 동생들처럼 잘 놀아주라고 부탁하였다. 우리 아이는 엄마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이 웃기만 하곤 하였다.

또한 미즈 신이 시장 심부름을 아내에게 부탁할 때도, 아내는 기분 좋게 심부름을 해주었다. 그러나 매일 아침 식사를 혼자 마련하고 그 극성스러운 아이들을 돌보는 수고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는 클리닉에서 일을 하니까 사모님은 당연히 집에서 그런 일을 해야 된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아내는 점점 역겹게 느끼기 시작하였다. 또한 그녀는 시장 볼 그 훠니 머니를 미리 주면서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을 본 후에도 돈을 빨리 지불하는 성질도 아니었다. 그 하기 싫은 돈 달라는 말을 두세 번 하고서야 겨우 그 훠니 머니를 주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미시스 주에게서 들은 그녀의 생활 방식을 들먹였다.

“저러니까 남편이 어찌 같이 살겠나. 저런 삶을 살면서도 믿음으로만 산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참.”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내를 나무라곤 하였다.

“사람이 다 개성이 다르고 받은 은혜가 다른데 그 사람의 성격을 가지고 그렇게 탓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이오.”

“아이, 여보, 당신도 좀 생각해 봐요. 내 말이 잘못되었나. 믿음으로 산다는 진정한 뜻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그저 열정만 있고 말끝마다 주여, 주여 하고 기도는 뜨겁게 하는데 삶의 방식이 저래서 되겠어요.”

“아마 같이 사는 동안에 고쳐지게 되겠지요. 그럴수록 우리가 더 잘해야 되지 않겠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저처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을 가지고 투덜대면 그것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잖소.”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종종 오가게 되었다.

그런저런 일로 하여 아내는 심기가 매우 편치 않았고,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즐거움은 간 곳이 없어지고, 낙원 변경이 아니라 매일이 지옥 근방에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미즈 신은 여전 즐거운 모습이고, 열심히 찬송하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매주 한국인들인 우리 세 가정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는 닥터 주와 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계시적 해석을 열심히 하곤 하였다. 내가 곁에서 듣노라면 그냥 개꿈 같은데, 그들에게는 중요한 계시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그들의 믿음은 목사인 나를 부끄럽게 하고 있었다.

그날도 미즈 신은 여전히 그 훠니 머니를 미리 주지 않은 채 아내에게 시장 부탁을 하고 클리닉에 나갔다.

그날 저녁이었다. 아내는 그녀가 부탁한 물건들을 그녀에게 넘겨주면서 계산서를 내밀었다. 그녀는 계산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의아한 눈길로 아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니, 소야진(Soyagen)이 왜 이렇게 비싸죠?”

“글쎄요, 그렇게 받던데요.”

“아무리 그럴라고, 가보면 알겠지.”

아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계속적인 그런 생활 태도에 대한 쌓인 충격으로 이제는 자제력을 잃고 있었다. 아내의 일그러진 표정은, <아니, 이 여자가 뭐라고! 전에도 그러더니 또 같은 소리야. 이 여자가 자기 일하는 동안에 그 극성스러운 아이들 돌보는 일이나 마켓을 보아주는 일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그 훠니 머니를 제때에 잘 주지도 않으면서 기도나 하고 찬미나 즐거운 듯이 부르면서 어떻게 남의 심정에 이렇게 상처만 주고 있는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얘긴가요? 그 계산서를 내가 조작했다는 거요, 뭐요. 가보면 알 거라고, 전에도 그렇게 말했죠? 그래, 가봐서 틀린 것 발견했어요? 기도는 혼자 하고 예수는 혼자 잘 믿는 것 같은데, 도대체 사람 안 믿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어요?”

아내는 그래도 꽤 억제된 목소리로 마침내 삼 주일 간 한집 생활을 하면서 쌓인 부아를 터뜨렸다.

아내의 말소리가 커지자 미즈 신은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저 사모님도 용서해 주세요.”

저 여자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바로 저런 버릇으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아내의 뇌리를 스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기도하는 모습은 아내의 화를 더욱 돋우는 것 같았다. 아내는 상당히 흥분한 모습으로 그녀의 방으로 달려가서 기도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미즈 신, 지금은 기도가 아니라 얘기를 해서 사실을 밝혀야 할 때라고요.”

“이야기 더 할 필요 없어요.”

그녀는 흥분한 소리로 대꾸하고는 계속 중얼중얼 기도만 하였다.

“미즈 신, 예수를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에요. 믿음으로 살려거든 바로 믿고 사세요, 응? 누가 속을 뒤집어놓고, <하나님, 사모님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답디까? 자신이 생각해도 뻔뻔스럽다고 생각이 안돼요? 아이 참, 기가 막혀서. 일을 누가 만들었는데.”

아내의 목소리에 노기가 실망과 겹쳐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사모님 잘못했습니다.’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더욱 목소리를 높여 기도만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엉거주춤 망연히 서 있는 아내의 모습은 그지없이 가련하게 보였다. 아내는 나의 도움을 요청하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더 이상 얘기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옆에서 구경만 하는 꼴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냥 둘 수는 없었다. 흥분한 아내를 달래어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방으로 돌아오면서 귀에다 대고 가만히 속삭였다.

“여보, 이럴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것인지를 우리가 배워야 될 것 같구려, 더 곤란한 일이 생기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피차 신앙과 인성이 더 상하면 곤란하지 않겠어?”

아내는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 고통스런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 아내는 이삿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하룻밤이 지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초겨울의 싸늘한 아침 공기는 아내의 마음을 상당히 가라앉혀 준 것 같았다. 그러나 악몽 같은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나주 떠날 생각이오?”

“당신이 그러자고 했잖아요. 그래요, 아주 떠나요.”

아내는 단호하게 그러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여보, 그럼 어떻게 할까?”

“뭘 어떻게 해요?”

“아무래도 아주 떠난다고 인사는 하고 가야지?”

“아이구, 그만 그냥 갑시다. 쑥스럽게 무슨 인사는, 그 사람들 다 계시로 사는데 오늘 우리가 떠날 것도 계시로 봤을 것 아니겠어요? 아마 두 사람 모두 지난밤에 우리가 떠나는 꿈을 꾸었을는지도 모르잖아요.”

“가서 한 번 확인해 봅시다.”

나는 웃으며 대꾸하고, 아무래도 인사를 하고 떠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미즈 신이 우리가 짐을 꾸리며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방을 나오고 있었다.

“아니 뭘 하세요?”

아내는 아무 대꾸 없이 쳐다보지도 않고 짐만 꾸리고 있었다.

“잘 주무셨어요? 보시는 대로 떠나려고 짐 쌉니다.”

“떠나시다니요?”

나는 미즈 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주 천진한 모습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판단은 종잡을 수 없이 헤매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어제 일이 꿈이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사모님, 어제는 참 미안했어요.>라는 말을 한마디쯤은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려고 짐을 꾸리는 우리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워낙 짐이랄 것도 없는 터라 짐 꾸리기를 끝낸 아내는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차에 싣고 있었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동생 집으로 도로 가야지요.”

“섭섭하네요.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내의 표정은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여보, 빨리 갑시다.”

아직도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차로 데리고 가면서 아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하였다.

“미즈 신, 잘 지내십시오. 기회가 되면 또 만나겠지요.”

우두커니 서 있는 미즈 신을 뒤로하고 차를 몰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나는 닥터 주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목사님, 이렇게 일찍 어쩐 일입니까?”

“닥터 주,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제 그만 여기를 떠나려고요.”

“아니, 갑자기 왜 떠나세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우리가 여기 잘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재미있게 지내시는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고, ···· 그래서 떠나기로 했습니다.”

닥터 주는 더 이상 다른 말을 묻지 않았다. 정말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떠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그런 모습 같기도 하였다.

“예, 하기야 목사님이라서 적당한 일이 잘 마련되지 않네요. 그렇지만 이렇게 일찍 떠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아마 이곳 생활이 목회 하시던 분에게는 안 맞을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또 목사님의 신앙 태도가 조금은 비판적인 것 같고, 또 너무 합리적인데도 문제가 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합리성을 고집하다 보면 아주 신앙적이기가 어렵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이런 곳의 생활은 극단적인 것 같은 느낌도 있을 것이고, 아무튼 익숙지 않은 곳에 오셔서 고생했습니다.”

아내는 시종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더니 고개만 꾸벅하고 인사를 대신하였다. 미시스 주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아내의 묵묵부답에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예, 잘 보신 것 같습니다. 주신 말씀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얼른 식사하시지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수고 많이 하십시오.”

나는, 내가 느껴온 그들의 신앙생활의 모순 같은 것을 한마디 이야기할 기회도 만들지 못하고 그들의 눈에 못난 신앙인으로 비친 모습 그대로 쭈그러진 몰골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나를 속으로 나무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한마디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떠나는 마당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치 분풀이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나는 닥터 주의 말을 그냥 듣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즈 신이나 닥터 주의 신앙이 참된 신앙인지, 또한 우리의 이런 모양의 신앙이 참된 신앙인지, 나는 수수께끼 같은 현실 앞에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아마 아내가 좀 더 자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목사인 나는 아내를 나무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처지에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곳을 나설 때보다 더 마음이 착잡한 모양이었다. 얼굴에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올 때 꽤나 곱던 단풍도 이제는 칙칙하게 쭈그러졌고, 하늘을 가리도록 빽빽하던 잎새들도 훤하게 공간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 공간으로 바라보이는 음산한 하늘은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바람은 계속 불고 차창 틈으로 새어드는 이른 아침 싸늘한 바람은 눈이라도 올 듯이 낮아지고 있었다. 좌우의 숲에서는 낙엽이 흩날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팽개치고 온 훠니 라이프의 훠니 머니같이 바람을 타고 고속도로 위에도 흩어지고 있었다.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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