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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들과 성경통독 모임을 갖고 있는 중학생입니다. 창세기부터 차례대로 읽고 있는데요. 얼마 전 전도서를 마치고 아가서 차례가 됐는데 저도 그렇고 친구들도 읽기를 꺼려했습니다. 저희는 미성년자니까요. 그래서 아가서가 성경에 포함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알려주세요. 목사님.

아름다운 중학생 친구! 성경 통독 모임을 갖고 성경을 통독한다니 질문 글을 읽기만 해도 내 마음이 무척 기쁘네요. 친구들이 모여서 창세기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성경을 깨닫는 지혜를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열심히 읽고, 그 뜻을 구원의 복음적으로 깨닫기를 바래요.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목적을 알고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 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어요. 성경을 주신 목적을 모르고 그냥 읽으면 읽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기는 어렵게 된답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은 사람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거든요.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생명을 얻게 한다는 말은 성경을 읽고 깨닫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거든요.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생하는 생명이 없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어가는 것이거든요. 성경 열심히 읽고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꼭 이루도록 하세요.
아가서는 두 주인공 솔로몬과 술람미 여자가 연애하는 내용이지요.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연애시라고 해요. 그런데 이것은 곧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지요. 솔로몬은 예수님을 표상하고 술람미 여자는 교회를 표상한답니다. 솔로몬은 뜻이 평화의 사람이고 술람미도 평화의 여자예요. 예수님이 평강의 왕이거든요.(사9:6) 예수님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면 우리도 평화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도록 사랑하셨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지요. 그래서 술람미 여자는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아6:10)라고 했는데, 이것은 교회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가리키는 표현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아2:5)고 했고,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아8:6)라고 했지요.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은 질문한 학생도 병이날 정도로 사랑하신답니다. 죽음 같이 강한 사람으로 사랑하시지요. 우리 모두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지요.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기 위하여서요.(요5:24,25) 이런 예수님의 사랑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자의 서로 사랑하는 사실을 비유로 삼아서 예언적으로 표현한 것이랍니다. 예수님과 그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형성된 교회와의 사랑의 관계를 연애 시처럼 표현한 것이지요. 성경은 교회를 여자로 표상했거든요.(고후11:1)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서 얻는 생명의 기쁨이 시로 쓰인 것임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면서 읽어보세요. 그리고 학생도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하세요. 참 아름다운 질문을 고맙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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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이 암호로 돼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방문해봤는데요 정말 신기하게도 성경 안에 있는 암호를 해석하니 현대의 중요한 사건들의 예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목사님.

질문자께서 게마트리아 방식으로 성경을 풀이하는 사이트를 본 것 같군요. 한글은 그렇지 않지만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라틴어 등은 자모에 수치(數値)가 있습니다. 라틴어는 I가 1이고 V가 5, X는 10, L은 50, C는 100, D는 500, M은 1,000 이렇게 자모에 수가 있지요. 히브리어도 알레프(ב)는 1, 베드(א)는 2 이렇게 수치가 있습니다. 헬라어도 알파(α)는 1, 베타(β)는 2, 이렇게 수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게마트리아라는 것은 히브리어 단어를 이런 수치로 바꾸어서 뜻을 새기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수학과 연결시켜서 해석을 하면서 마치 점치는 것과 같이 미래를 예언한 방식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포로가 되었을 때 자기 집에서 기른 318명을 데리고 롯을 찾아오는 전쟁을 해서 승리하는 기록이 창세기 14장에 있는데, 아브라함의 충실한 종 다메섹 엘리에셀이 있습니다. 히브러어로 엘리에셀을 수치로 계산하면 318일 됩니다. 엘리에셀(rz<[<ylia) 히브리어는 오른 쪽에서 왼 쪽으로 읽습니다. 그러니까 괄호 속에 들어 있는 엘리에셀이라는 히브리어는 오늘 쪽부터 읽습니다. 수치는 오른 쪽에서 읽으나 왼쪽부터 말하나 변함이 없지만요. 첫 글자부터 차례대로 수치를 보면, 알레프=1, 라멧=30, 요드=10, 아인=70, 자인=7, 레쉬=200입니다. 합하면 318이 됩니다. 창세기 14장에서 318인을 데리고 갔다는 것은 15장에 엘리에셀을 아브람이 후사로 세우겠다는 예언적 숫자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큰 고기가 153마리가 잡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11절) 그것을 게마트리아 식으로 설명하면 153을 히브리 글자로 대치하면 (!~yhila>h; ynEb]==베니 하엘로힘)입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 낙는 어부가 될 예수님의 제자들의 그물에 걸리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사실을 그날 새벽 그물에 걸린 고기의 숫자로 가르쳐주셨다는 말입니다. 이런 해석을 게마트리아 식 해석이라고 합니다. 질문자가 물은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암호라고 하는 것이 바로 게마트리아를 말하는 것 같아서 대답을 합니다만, 제 대답이 전혀 틀린 대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암호화하여 풀이하는 것이 언제나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암호로 해석하게 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을 사람의 문자로 기록하게 한 것이기 때문에(사55:8,9) 해석도 하나님께 있습니다.(창40:8)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지도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그 원칙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히브리 문자를 게마트리아식을 해석하면 그것은 점쟁이 점치는 것과 비슷하고 밀교(密敎)의 신비 문자를 푸는 것과 같은 방식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푸는 것은 사단의 올무에 걸릴 위험이 아주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의 암호를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누구나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읽으면 기록된 문자 그래도, 번역된 문자 그대로 깨닫도록 성령께서 지도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런 암호 식 설명은 흥미는 있어도 진리를 깨닫는 정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물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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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언의 신엔 엘렌 화잇의 의견이 일절 포함돼 있지 않나요? 교회의 어떤 어르신들께서 예언의 신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적은 것으로 개인의 의견이 포함될 수 없다고 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목사님.

참 좋은 질문을 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교인들이 이 문제에 흥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요.
엘렌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그 저작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아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각 권(各卷)의 같지 않은 문체는 그 각 기자들의 같지 않은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대개 계시된 진리는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말로 표현되어 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종들의 정신과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셨다. 그분께서는 꿈과 이상(異像)과 표상과 상징을 주셨고 진리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은 그 사상을 각각 인간의 말로 나타내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고 당신의 손으로 직접 쓰셨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성문화(成文化)하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사람의 말로 표현한 성경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연합을 나타낸다. 그와 같은 연합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본성 가운데서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 1:14)신다는 진리는 그리스도에게 해당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해당된다. 
성경은 신분과 직업, 지적·영적 소양이 크게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아 각기 다른 시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다루어진 주제(主題)의 성격에 있어서는 물론이요, 그 문체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다. 기자에 따라서 그 표현 방법이 각각 다르며 때로는 같은 진리라도 어떤 기자는 다른 기자보다 그것을 더욱 예리하게 표현한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몇 사람의 기자가 어떤 문제를 각기 다른 관점과 관계에서 소개하는 경우에, 피상적이고 주의성이 없거나 편견을 가진 독자들에게 서로 모순되거나 일치되지 않는 것같이 생각될지 모르나 밝은 통찰력을 가진 사려 깊고 경건한 연구자는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조화를 발견하게 된다. 
진리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제시되었으므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소개되었다. 어떤 기자는 한 주제의 어떤 면에 더욱 강한 감동을 받고 자기의 체험과 이해력과 인식력 등에 부합시켜서 그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 또 어떤 기자는 그와는 다른 면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각각 성령의 지도 아래 자기의 마음에 가장 깊이 감명된 바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이와같이 계시된 진리는 결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통일을 이루게 되어 생애의 온갖 환경과 경험에 있어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에 적합하게 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저자서문 6쪽)
[제가 남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에 형제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수 주일 동안 그 곳에 있는 우리 요양원 사업의 발전에 관하여 생각하는 일과 지진과 그 교훈에 관하여 제가 받은 계시들을 기록하는 일 때문에 시간과 힘을 바쳤습니다.
지금 저는 형제와 또 다른 이들에게서 받은 편지들에 대하여 답장을 쓰기로 했습니다. 형제의 편지 사연 가운데 어려서 받은 교육 배경의 감화로 증언들에 대한 전적인 신앙을 갖고 있음을 말하였으며 또 형제는 언급하기를 “저는 화잇 여사께서 공중 앞에서나 개인적으로 하신 모든 말씀과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 쓰셨든지 여사께서 쓰신 모든 서신은 마치 십계명처럼 영감으로 기록된 것임을 확실히 믿게 되었으며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라고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제가 쓴 글들을 열심히 연구하였으므로 제 글 가운데서 저 자신이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을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과거에 우리 사업을 이끌어 나가신 선구자들도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1기별 24)
[내가 계시를 받으면서, 내가 본 것들을 기록할 때에 주님의 영을 전적으로 의존하기는 하나, 내가 본 광경들을 묘사할 때에 사용하는 언어들은 내 자신의 것이며 천사가 직접 나에게 말한 것만은 언제나 인용문의 표시로 따옴표를 한다.(리뷰 앤드 헤랄드, 1867년 10월 8일)] [무오설에 관하여 나는 결코 그것을 주장한 일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만 절대로 오류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시고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약 1:17)다. ― (서신 10, 1895년).] [나는 남 캘리포니아에서 다년간 교역자였던 A형제로 말미암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이상한 말들을 하였으며 나의 증언 가운데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있다고 하여 증언 전체를 부인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지적하는 모순이란 내가 한 말 가운데 파라다이스 밸리 위생 병원의 병실 숫자가 틀렸다는 것이다. A형제가 남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형제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병원에는 병실이 38개밖에 없는데 내가 40병실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A형제는 이 점을 들면서 증언들에 대한 자신의 신뢰심을 전적으로 상실했다고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 주고 있다. …
파라다이스 밸리 위생 병원의 병실 수에 관하여 소식을 전한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적인 의견으로 말한 것뿐이었다. 과거에 우리 위생 병원들의 병실의 정확한 숫자를 계시로써 보여 주신적이 결코 없었으며 그런 일들에 대하여 내가 지식을 얻게 된 것은 그것들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 내가 한 말 가운데 그러한 지식을 주님께서 주신 계시로서 알게 되었다든가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믿을 만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 (1기별 37)
[성령께서 주님의 사업에 관련된 기관들에 대하여 혹은 인간의 심령과 정신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하여 어떤 사실들을 나타내 보이실 때, 또는 과거에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이러한 사실들을 증거하셨을 때 주신 기별은 그 빛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빛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신령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혼동한다는 것은 커다란 실수이다. 이러한 경향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은 영혼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원수가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기별 38)
이 말씀을 보면 화잇 여사의 기록 중에 신령한 것도 있고, 일반적인 것도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닐까요? 바로 파라다이스 벨리 위생병원 병실 수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잇 여사의 증언을 읽을 때에 문자에 너무 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화잇 여사가 말하려는 것은 병실 수에 대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주신 그 병원에 대한 기별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병실 수를 대강 언급한 것일 뿐입니다. 그 기별을 통하여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지 병실 수가 38개인데 40개리고 했으니 화잇 여사의 글은 계시와 영감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신령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언의 신의 증언을 읽을 때에 성령의 지도를 받으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내가 묵시를 받고 이를 기록할 때에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에 의지하긴 하지만 내가 본 것을 설명할 때에 쓰는 말은 내가 스스로 택해서 쓰는 말이다. 만일 그 묵시가 천사로 말미암아 내게 말하여진 것이면 나는 항상 그것을 인용 부호로 표시를 해 놓았다.”](교권 17)
[성경은 감동을 입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며 성경 자체가 하나님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표현 양식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사상과 표현에 있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로서 대표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어떤 표현은 하나님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논리와 수사(修辭) 가운데 당신 자신을 두어 성경상 시련의 대상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필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의 필촉이 아니었다. 여러 다른 저자들을 관찰해 보라.
성경의 말씀 자체가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영감은 인간의 언어나 표현 방법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 자신에게 작용하는 것이며 그는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이 그 감화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개인적인 정신의 감명을 받게 된다. 거룩한 정신으로 물들여진다. 거룩한 정신과 의지가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혼합하게 되어 인간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 ― 원고24, 1886년(1886년 유럽에서 기록함).](1기별 20)
화잇 여사는 자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별의 필자이지 필촉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나 글은 자기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잇 여사의 글이 축자영감으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축자영감이라는 것은 글자 한자 한자마다 성령이 그 글자를 쓰라고 일일이 지시하셨다는 주장입니다. 화잇 여사 자신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위에 인용한 파라다이스 병원 병실 수에 대한 기록은 전적으로 화잇 개인의 의견인 것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영감이 아니고 그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에 인용한 대쟁투 서문에 그렇게 말하였지요. “한 주제의 어떤 면에 더욱 강한 감동을 받고 자기의 체험과 이해력과 인식력 등에 부합시켜서 그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 또 어떤 기자는 그와는 다른 면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각각 성령의 지도 아래 자기의 마음에 가장 깊이 감명된 바를 소개하고 있다.”는 표현이 바로 그런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성경도 그렇지 않은데 화잇 여사의 글만은 그렇다고 하는 사상은 화잇 여사의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이 혹시라도 독자들에게 화잇 여사의 증언, 곧 예언의 신의 증언을 가볍게 여기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화잇 여사가 하나님의 선지자인 것을 철두철미 믿는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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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언의 신을 보면 저자인 엘렌 화잇이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사실이라면 구약에 보면 모세도 하나님의 발뒤꿈치밖에 못 봤다던데 엘렌 화잇은 어떻게 예수님의 얼굴까지 볼 수 있었던 건가요? 궁금해요 목사님.

질문자님은 예수님 얼굴 보는데 관심이 많은 것 같네요.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그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출애굽기 33장 17절부터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거든요. 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17~20) 모세가 보기를 원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지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위하여 등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 보여 달라고 한 줄 오해합니다. 질문자가 말한 것처럼 발뒤꿈치를 본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오해가 사실처럼 퍼져나가게 되지요. 또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이야기 하셨다고 했지요.(민12:8) 그러니까 모세도 하나님을 대면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광이 빛나는 얼굴로 대면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창세기 18장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만났고 대접하고 대화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때에 하나님은 보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도록 하여 보게 하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본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5,16에는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1:18에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에 아브라함이 본 여호와는 삼위일체의 한 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엘렌 화잇이 계시 중에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당신의 몸을 만지게도 했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계시 중에 화잇 여사가 예수님 얼굴 보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요. 그렇게 보고 온 얼굴을 자세히 묘사해서 우리교인 화가가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 초상화가 대총회 사무실에 걸려 있다고 하는데 저도 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초상화보다 더 확실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형상이고 그분을 믿는 성도들이 바로 그 예수님의 형상을 옳게 반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 속에 초상화로 또 동영상으로 계십니다. 질문자께서도 성경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그분의 형상을 닮아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의 모습과 삶 속에서 보도록 해야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2013. 1. 31.(목) 2:1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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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재림신문에 실렸던 질문과 답 2012. 11.23 (하나님의 뜻, 단3장에 다니엘에 관하여) usjoy 2016.11.06 3576
146 재림신문에 실렸던 질문과 답 2012. 11.6 (전도, 정치, 예배를 꼭 교회서?에 관하여) usjoy 2016.11.06 3286
145 재림신문에 실렸던 질문과 답 2012. 9.26 (드럼, 예수님의 인종, 성경 기록없던 2500 년간에 관하여) usjoy 2016.11.06 3462
144 재림신문에 실렸던 질문과 답 2012년 5.24 (오리고기, 하나님의 모습, 안식일오후, 스포츠에 관하여) usjoy 2016.11.06 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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