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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요일 5:7 KJV).

엘렌 화잇은 ‘킹제임스성경’을 애용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위 번역을 보면 삼위일체 교리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교회 상당수 목회자는 성서공회(알렉산드리아 사본, 바티칸사본) 발행 성경을 애용하고, 안디옥사본 킹제임스역성경은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류가 많거나 참고할만한 가치가 없거나 다른 이유가 있으신지요?

우리교회에서는 공식 성경을 정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번역이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한 일도 없지요. 아마도 그것이 한글로 번역되어 나온 것이 개역판보다 훨씬 후에 나왔으니까 손에 익은 성경을 보는 것일 뿐이지요. 대한성서공회에서 한글로 번역할 때에 아마도 처음에는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참고하여 번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개역을 하면서 RSV를 주로 참고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저에게 옛날 게일 선교사가 번역한 1926년 12월 26일 발행한 성경이 있습니다. 거기에도 질문자가 인용한 구절은 없네요. 그렇기 때문에 한글킹제임스 번역에 오류가 있다든지 참고할 가치가 없다든지 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번역하는 분들의 신학적 입장이 번역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단독으로 성경번역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번역한 성경을 사용하더라도 우리가 깨달은 진리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번역한 성경을 사용하면 상대가 너희 번역이니까 그렇지라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질문자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기 원하시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번역을 보면 다른 곳을 일일이 채크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창1:28절은 명백한 오역이라고 보이는데, 그 번역은 그들의 신학사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구절을 땅을 다시 채우라고 번역했습니다. 킹제임스 번역의 “replenish”를 다시 채우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은 충만하라고 번역해도 되는 단어가 아닙니까. 채우다, 다시 채우다, 이런 뜻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다시 채우라고 번역했는데, 이유는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한 땅에 천사들이 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가 반역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로 덮어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천사가 아닌 사람이 살도록 다시 창조하시고 둘째 날 물을 궁창 위의 물과 아래 물로 나눌 때 물 아래 가두어두었던 타락한 천사들이 올라와서 활동할 수 있게 되어서 둘재 날에는 좋았더라고 하지 않았다면서 천사들로 채우려고 한 것이 실패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다시 채우라고 명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사상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사상입니다. 이런 그들의 신학이 반영되어 있는 번역이라는 것을 참고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용한 요일 5:7에 대하여서 이야기를 좀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먼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질문에 대하여 제가 대답할 소양을 갖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질문하신 분 보다 저는 더 모르는 처지에 있다는 느낌이니까요.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보고 정답을 드릴 처지는 아니고 저의 생각을 적어보는 것도 참고가 될까 하여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답이 아니고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참고 사항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을 논쟁거리로 삼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질문하시는 분은 평범한 평신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을 익숙히 참고하셨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하틀랜드의 스텐디쉬 박사의 주장을 익히 아시는 분이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저의 생각을 적어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당시에는 사본이 지금처럼 많이 발견된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한된 사본을 사용했지요. 질문자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이 안디옥 사본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들이 어떤 사본을 사용했는지 모르고 말씀보존학회에서 그렇게 주장한 글을 읽은 기억은 있습니다. 그리고 에라스무스가 안디옥 사본을 출판했다고 한 것 같더군요. 에라스무스는 인문주의자이지요. 그는 당시 가톨릭에 속해 있었는데, 루터의 개혁운동 초기에 함께 참여했다가 루터와 사상적으로 일치 하지 않아서 탈퇴한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는 성경헬라어를 인쇄해야할 필요를 느끼고 아마도 헬라어 성경을 최초로 인쇄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1516년에 요하네스 프로베니우스라는 사람에 의하여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지요. 성경 제목은 영어로 번역하여 쓰면 New Instrument all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2판에서 악기라는 말 대신에 Testament를 사용하였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대본으로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1판과 2판에 킹제임스판에 있는 요일5:7이 없었습니다. 이 부분을 학자들은 요한의 컴마라고 합니다. 이것을 읽어본 가톨릭 사제들과 학자들은 대단히 노해서 에라스무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흥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자기가 찾아본 헬라어 사본에는 그 구절을 결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항의하는 세력이 점점 거세게 되자 에라스무스는 만약에 그 문장이 있는 헬라어 사본이 있다면 다음 출판에는 그 부분을 넣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사제단은 프란시스코 커뮤니티에서 그 구절이 있는 사본이라고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1552년 제3판에서부터 그 구절을 삽입하여 출판했고 그것이 킹제임스 번역의 대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 고찰을 보면 삼위일체 교리를 강력하게 주장한 교부들의 대부분이 이 구절을 인용한 글이 없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삼위일체를 주장하면 요5:8을 인용하였지만 요일5:7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또 터툴리안도 요10:30만 인용했습니다. 4세기에 기록된 제롬의 글에도 그 구절이 없고요, 다만 258년경에 삼위일체를 주장한 글을 쓴 키프리안의 글에서 처음으로 그 구절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 외에 삼위일체를 주장한 아타나시우스, 시벨리우스, 오리게네스 등의 글에도 그 구절을 인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 구절이 요한의 원래 서신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평학자들은 라틴어 난외주에 기록된 것이 다음 필사본에 본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대략 800년경으로 보네요. 그런데 지금 수 천 개의 신약사본들 중에 이 구절이 포함된 것은 8개만 현존한다고 합니다. 8개뿐이라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구절이 없어도 성경에서 삼위일체는 넉넉히 증명됩니다. 삼위일체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가톨릭 교회에서는 1927년 피우스 11세 때에 이 구절의 진위성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해서 1979년판 라틴어 성경에는 그것이 제외했고 뉴아메리칸 성경에도 그 구절이 없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이 변개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킹제임스 번역을 너무 중하게 생각하는 분들의 고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경의 핵심 기별이 훼손되지 않았고 그 구절이 없다고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도 아닌데, 그 구절 빠진 것을 두고 변개된 성경이라고 우기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구절이 없기 때문에 삼위일체를 증거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적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전체로 삼위일체 사상은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분들은 개역성경에 (없음)이라는 구절들에 대해서도 변개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없음)이라는 구절은 한 구절도 빠지지 않고 난외에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빠진 구절은 없습니다. 왜 그것을 난외에 넣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질문2. 

‘성령(聖靈)’이란 말의 ‘성’자는 임금이나 천자에게 붙이는 극존칭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님’자를 붙여 성령님이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미사어구가 아닌가요? 또 단지 건물에 성전라고 극존칭 표현을 쓰는 건 건물을 높여 부르는 모순이자 우상숭배가 아닐까요?

잘 생각하지 않는 질문을 하셨군요. 질문자께서는 성(聖)자에 대한 동양 특히 한국이나 중국의 사상을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영을 “거룩한 영”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 1:18과 20에 예수님 탄생이 성령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말할 때에 “프뉴마토스 하기우” 곧 “프뉴마토스”는 영, “하기우”는 거룩한 입니다. 또 구약성경에는 시편 51:11과 이사야 63:11에 성신이라고 번역된 말이 “거룩한 영”이라고 번역해도 되는 단어입니다. “루악흐 코데쉬” “루악흐”는 영, “코데쉬”는 거룩한 이지요. 그러니까 거룩한 영이라는 말인데, 간단히 한자(漢字)를 빌려서 성령(聖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루한 영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성경에 성부 성자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많이 있지요. 즉 “거룩한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삼위가 다 거룩한 자입니다. 그래서 마태28:19에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했을 때, 아버지, 아들에는 성자가 붙어 있지 않지만 성령에는 성자가 붙어 있습니다. 즉 “하기우 프뉴마토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버지, 아들에게도 성부, 성자라고 부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성령님이라고 님자를 붙이는 것은 예수님, 하나님이라고 삼위일체 중에 아버지와 아들에게 님자를 붙이는 습관에 의하여 성령께도 그렇게 붙이는 습관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가장 거룩하신 분께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것이 무어 그리 허물이 될 것 같이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질문자께서 부담이 되시면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님”자 대신에 “께”를 붙여도 좋겠지요. 즉 성령께, 또는 성령께서라고 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성전이라는 말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거든요.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고 하셨지요. 그래서 교회당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개념으로 성전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옛날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지요. 그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기 때문이지요. 성경에 기록된 이런 의미로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상숭배가 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성전이라는 말이 교회당을 우상화하여 부르는 것은 아니지요. 
성경에는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거룩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네가 선 땅이 거룩하다고 하셨지요.(출3:5) 여호수아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수5:15) 이런 경우 모세나 여호수아가 선 땅을 거룩한 땅, 곧 성지(聖地)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극존칭을 사용했기 때문이 그 땅을 우상화했다고 생각되지 않거든요.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하여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적으로 잘못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불편한 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질문3.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일화 조금과 공생애를 제외하면 그분의 삶에 대해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 외에 여러 문헌에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그리고 믿을만한 기록인가요?

글쎄요. 과연 믿을만한 그런 책들이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 외에 기록들은 성경을 신뢰하는 것처럼 신뢰할 수 있는 글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약이 39권입니다. 이것 외에 옛날에는 읽어서 유익한 책이라고 하던 것을 1540년대 천주교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제2정경이라고 결정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구약에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외경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외경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위경(僞經)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에서 위경이 많습니다. 신약은 신약성경 27권 외에는 모두 위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때 사람들에게 관심을 모았던 도마복음, 또는 유다복음 이런 글들 다 위경입니다. 복음서가 사복음서로 완성된 후에 사람들이 보니까 예수님의 어린 시절 성장에 대한 기록이 오직 누가복음 2장에 12살 때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내려온 것 외에 없으니까,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성장기의 예수님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썼습니다. 예수께서 이적행하신 것을 빗대어서 어린 예수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상상하여 쓴 것이지요. 그 외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름을 거의 무단으로 사용해서 복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은 다 사람들의 상상에 의하여 쓰인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록 자료는 신구약 성경으로 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데 충분하닥 보셨기 때문에 성경 66권으로 완성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12살 이후 침례 받으시는 30세까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서 그 기간 동안 예수는 인도에 가서 불교를 연구했느니 어쩌느니 하는 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터무니없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12세 때 성전에 올라가셨다가 부모와 함께 집에 돌아와서 순종하며 받드시더라고 기록했습니다.(눅2:51,52) 예수님은 사람들에 목수라고 알려졌습니다.(막6:3)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목수라고 알 수 있게 되도록 예수님은 나사렛 요셉의 목공소에서 목수 일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12세에 집으로 돌아가서 30세에 침례를 받고 공중봉사에 나타나기까지 예수님은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여 받드시면 목수로서 생활했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서는 성경 안에서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감 없이 기록한 다른 책들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불순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시록 19장 12절에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라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것을 사람들이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이리저리 뜯어본다고 해도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오직 예수님만이 아는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것을 간단한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오묘를 우리가 다 알 수 없다고 했지요.(욥11:7) 그래서 성경은 권합니다.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잠19:27) 우리는 성경의 지시를 잘 따라는 것이 지혜임을 확신하고 오직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2월 16일(일) 4:2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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