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성령의 인격성(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1/28/17

by 김명호 posted Jan 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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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일 안식일

일몰오후 551

 

연구범위 : 16:13~14, 8:14~16, 15:13, 14:6, 17:17, 5:5

 

기억절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성령은 성경에서 경우에 따라 바람, 물과 같은 비인격적인 용어로 묘사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령이 일종의 신적인 능력이며 비인격적인 존재라고 결론짓는다. 그들의 견해에 비춰보면 그분은 인격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우리에게 힘을 제공하는 전류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어떤 부분들이 성령의 비인격적인 작용 또는 감화를 암시하는 부분인지를 살펴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분의 인격성을 적극적으로 입증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더욱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 심사숙고해야 할 말씀들이 많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성령의 인격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연구하려고 한다. 이러한 진리는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감당하시는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된다. 그리고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영적인 생애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요긴하다. 우리가 그분에 대한 바른 사상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사랑과 존경과 확신과 순종을 바칠 것이다.

 

핵심요지

깨닫기 : 성령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능력이 아니라 신적인 인격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느끼기 : 매일 성령을 더욱 의지하는 신앙을 경험한다.

행하기 : 마음을 열어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분의 지도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이 성령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오인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분을 표상하는 표현들 때문이다.

예수님이 성령을 다른 보혜사로 소개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인격성에 대해 어떤 증거가 됩니까?

예수님이 보혜사이시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인격체로서 다른 보혜사이시다.

성령은 어떤 상황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언급되셨습니까?

침례를 베풀 때, 은사를 주실 때, 창조하실 때에도 언급되었다. 성경 전체로 보면 그렇다.

성령이 진리의 영으로 불린다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령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인격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성령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소유하시도록 어떻게 우리를 그분께 맡길 수 있을까요?

말씀을 따라 굴복할 때.

 

결론 : 성령이 신격의 제3위이시며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의 사역에 마음을 열면 그분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성품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며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첫째 날() 성령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

122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6~18).

 

1. 16:13~14, 15:26~27, 14:17, 26을 읽어 보라.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어떤 인격적인 속성들을 성령의 것으로 설명하셨는가? 예수님이 성령을 조력자 또는 위로자(파라클레토스)라고 설명하셨다는 사실은 그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16:13,14]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15:26,27]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14:17,26]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증거하시고, 말하시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이런 표현들은 인격적 개체가 하는 일들이다. 보혜사라는 표현은 우리 곁에 늘 계셔서 도우시는 분임을 뜻하는 칭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전적으로 의뢰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성령은 인도하고, 말씀하며, 듣고, 알리며, 주의 영광을 나타내신다(16:13~14). 성령은 또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신다(14:26).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14:17), 증언하시고(15:24, 26), 책망하신다(16:8). 이런 활동들은 비인격적인 힘이라기보다는 지고의 인격체가 펼치는 활동처럼 들린다.

 

2. 14:16~18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약속은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제자들은 어떻게 버려지지 않을 것인가?

[14: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예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시고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신다고 하신 말씀은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님과 같은 역할을 제자들에게 하신다는 역속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돌보신다. 그분은 그들을 고아처럼 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구체적으로 다른 보혜사또는 위로자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단어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분은 그냥 다른 보혜사가 아니라 또 다른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다. 여기서 사용된 그리스어는 알로스이다. 신약성경에서 알로스는 다른 개체이면서 성질이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다른, 그러나 성품은 같은, 즉 그분과 비슷한 다른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었다. 즉 예수님은 자신과 같은 분,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실 분, 우리 안에서 그분의 사역을 지속시키실 분, 그분을 대표하실 분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신다.

성령의 이러한 사역은 보혜사 또는 위로자로서의 사역이다. 성경은 지원을 요청받은 사람, 돕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를 사용한다. 예수님이 인격체이신 것처럼 성령도 인격체이시다. 인격적인 속성들이 성령의 것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 이런 개념을 지지한다(14:26, 15:26, 15:28, 8:26, 고전 12:11, 딤전 4:1).

 

<부가설명> 성경에서 성령에 대하여 가장 자세히 기록한 곳은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그들이 의기소침한 상태에 있을 때에 그들을 북돋우시고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과 동등한 능력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다. 이 표현은 예수님이 보혜사라는 것을 전제로 하신 표현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보혜사가 되셨는데 이제 제자들을 떠나실 것이니까 예수님의 보혜사 직무를 대신할 다른 한 분 보혜사를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그분이 성령이시다. 예수님이 인격적 개체이신 것과 똑 같이 다른 보혜사도 인격적 개체일 수밖에 없다. ‘알로스라는 말은 같은 종류인데 개체가 다른 것을 말한다. 사과 한 개가 있는데 또 다른 사과하나를 가지고 오라고 할 때에 알로스를 쓴다. 만일 사과 한 개가 있는데 배를 가지고 오라고 하면 다른 과일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이때는 헤테로스를 쓴다. 과일이지만 종류가 다른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과 같은 신성, 곧 삼위일명 하나님 중에 예수님과 다른 알로스이신 것이다. 그분이 예수님이 인격적 활동을 하신 것과 같이 인격적 활동을 하신다는 것을 위에 기록한 구절에서 여러 사실을 가르치신 것이다. 요한12:1에는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했다. 거기는 대언자라고 번역되었는데 헬라어로는 보혜사라고 번역한 말과 똑 같은 파라클레토스이다.

 

교훈 :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이 그분과 동일한 성품을 가진 또 다른 인격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날() 성령의 인격적인 특성들 1

123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4~16).

 

1.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고 이 말씀들이 비인격적인 힘에 관한 것처럼 들리는지 신적인 인격체에 관한 것처럼 들리는지 자문해 보라(8:14~16, 27, 15:30, 고전 2:10, 8:29, 10:19~20, 28:25).

[8:14~16,2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10:19~20]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 이 구절들은 모두 성령께서 인격적 개체이심을 증명하는 구절들이다.

 

비인격적인 힘이 우리를 위해 중보할 수 있는가? 비인격적인 영 또는 힘이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우리에게 계시할 수 있는가? 비인격적인 감화력이 말할 수 있는가? 성령이 어떤 비인격적인 힘이 아닌 인격적인 존재라야 이 모든 성경적인 진술들이 앞뒤가 맞는다.

 

2. 다음의 성경절을 읽어 보라. 어떤 인격적인 속성들이 성령의 것으로 간주되는가?(4:30, 5:3, 9, 고전 12:11, 15:30)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5:3,9]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고전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 근심하신다. 시험의 대상이 되신다. 자기 뜻대로 행하신다. 사랑하신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인격자가 아니면 나타낼 수 없는 인격적 속성들이다.

 

우리는 인격체의 뚜렷한 특징으로 지식(또는 이해력), 감정, 의지를 든다. 오직 인격적인 존재만이 슬퍼할 수 있다. 오직 인격적인 존재만이 속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오직 인격적인 존재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의지야말로 인격체의 가장 뚜렷한 특성 또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인격적인 존재만이 사랑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추상적이거나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 사랑은 매우 인격적인 접촉을 통해 온다. 인격의 이런 특성들은 성령이 사랑이 가능한 존재, 즉 자기의식적이고 자각적이며 자기의지적이고 자기결정적인 존재임을 뜻한다. 성령은 어떤 어렴풋한 감화력 또는 비인격적인 본질이 아니다. 성령이 이렇게 인격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인격적인 신이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성령은 개성이 있는 단독으로도 여호와 하나님이신 분이시다. 인격적 개체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인격이라는 말은 많이 쓰지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쉽지 않은 말이다. 사전의 도움을 얻어 보자. “인격: 사람으로서의 품격. ② ⦗심리개인의 지적(知的정적(情的의지적 및 신체적 측면을 총괄하는 전체적 통일체. ③ ⦗윤리도덕적 행위의 주체로서의 개인. 자기 결정적이고 자율적 의지를 가지며, 그 자신이 목적이 되는 개인. ④ ⦗법률법률 관계, 특히 권리·의무의 주체이며, 법률상 독자적 가치가 인정되는 자격.”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런 정의들은 개체를 가지고 지성적 정서적 의지적 활동을 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성령은 바로 그런 분이심을 위의 성경구절들이 잘 나타낸다. 성령은 완전한 신성을 구비하신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특히 로마서 8:26,27은 성령이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하나님과는 독립적인 개체이시고 개성이 있으신 인격체라는 것을 잘 표현한 구절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고 계시하였다. 아버지 하나님과는 독립적 존재라는 것을 잘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고 하였다.

 

교훈 : 성령은 비인격적인 힘이 아니라 지식, 감정, 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서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셋째 날() 성령의 인격적인 특성들 2

124

 

우리는 어렴풋한 방법으로나마 하나님을 아버지로 상상해 볼 수 있다. 또 많은 이들이 복음서의 묘사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분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러나 성령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분은 실체를 알기 힘들고, 아버지나 아들보다 이해하기가 훨씬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그냥 비인격적인 힘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그런 생각은 성령의 본질을 정말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성령이 정말 비인격적인 힘 또는 신적인 능력에 불과하다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성경의 진술들이 있다.

다음의 말씀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을 비인격적인 으로 바꾸면 의미가 통하는지 주의 깊게 읽어 보라. 왜 성령이 정말 인격체일 때만 이 말씀들이 의미가 통하는가?

너희에게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성령과 우리는옳은 줄 알았노니”(15:28)라는 진술은 성령이 그냥 힘 또는 비인격적인 감화력에 불과하다면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 진술은 아버지와 아들이 인격적인 존재인 것처럼 성령이 또 다른 인격적인 존재임을 가리킨다.

더욱이 아버지와 아들은 인격체인데 성령은 인격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신자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28:19) 침례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건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침례를 받을 때에 그 세 분은 함께 한 이름에 참여하는 분으로 언급되었다. 여기서 성령은 결국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과 동일한 지위에 계신 분으로 나타났다.

엘렌 G. 화잇은 하늘에는 이와 같이 살아계신 세 분이 있는데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복음전도, 615)이 계신다고 진술했다. 그 역시 성령의 실존하는 인격성에 대해서는 매우 분명한 입장을 나타낸다.

 

<부가설명> 성경에는 성령을 표상하기 위하여 여러 비인격적 사물을 사용하였다. 바람, , , 부어준다, 등이 그것이다. 이런 기록 때문에 성령이 비인격적 사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표상이나 상징은 한 표현으로 전체를 나타낼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상을 실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이런 비인격적 사물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께도 사용하였다. 하나님을 빛, 반석, , 등으로 표현하였고, 예수님도 포도나무, 반석, , 등등으로 표상하였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께 이런 표현을 썼기 때문에 그분들을 비인격적 존재라고 하지 않는다. 오직 성령에 대하여서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인간들이 자기 이해를 기준으로 성령을 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대로 성령은 인격적 개체를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깨닫도록 계시하였다. 지난 1~3과에서도 성령이 하나님이신 구절들을 많이 찾아보았다. 성경에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한 것 같이 아들도 하나님이라고 하였고(요일5:20),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한 것을 사도행전 5:3,4에서 보았다. 동시에 아버지도 주, 예수님도 주, 성령도 주(고후3:18, 쉬운성경, 공동번역) 라고 하였다. 또 예수님도 여호와 아버지도 여호와 성령도 여호와라고 계시하였다. 마태 28:19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가.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한 이름이라고 분명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열 필요가 없다.

 

교훈 : 성령을 비인격적인 존재라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성경의 진술들이 많다. 오히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한 선상에서 성령을 언급한다.

 

 

넷째 날() 진리의 영

125

 

1. 14:617: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진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예수님이 진리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7).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핵심 용어이다. 진리에 대한 현대인들의 이해는 매우 추상적이고 이론적이다. 서양 문화 속에서 그것의 의미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성경에서 특히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인격적이고 구체적인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예수님이 진리(14:6)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도 진리로 충만하지만(17:17, 119:142 비교), 하나님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 속에서 가장 잘 계시된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은 성경이 증언하는 분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2. 15:2616:13을 읽어 보라.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시는가?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예수님을 증거하시고 사람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16:13)

16:13에서 우리는 진리의 영이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는 말씀을 듣는다.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여주며, 그분이 하신 말씀(15:26)과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도록 도움으로써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신다. 성령이 우리에게 소개하려는 진리는 매우 인격적인 특징이 있다. 성령은 예수님을 높이며 우리를 그분과의 살아있고 진실한 관계 속으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하실 때에 그분은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4:24).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 그분은 우리를 길이요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신다(14:6).

성경에서의 진리는 철학에 등장하는 추상적인 주제나 이론이 아니다. 진리는 진리의 하나님”(32:4, 31:5 비교)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와의 매우 인격적이고 진실한 관계를 내포한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은 진리의 영”(14:17, 16:13)이라고 불리시기에 합당하며 그 칭호는 그분의 인격적인 특성뿐 아니라 그분의 신성을 가리킨다.

 

<부가설명> 예수님을 심문하던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대답하신 기록이 없다. 어떤 사람이 예수가 대답하지 못한 한 가지 질문이 빌라도의 이 질문이라고 했다. 참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에 대하여 조금은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진리는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다. 성경이 계시하신 진리는 인격체이다. 곧 예수님이시며 성령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빌라도의 질문은 학문적으로는 합당한 질문인지 모르지만 성경적으로는 잘못된 질문이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 아니고 진리가 누구냐고 물어야 바르게 묻는 것이다. 진리는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삼위는 각각 다 진리이시고 생명이시고 영이시고 하나님이시다. 이 삼위일면 진리를 만나는 곳이 바로 성경말씀이다. 이 말씀은 진리이시고 우리에게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보혜사로 오신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비로소 바르게 깨닫는다.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교훈 : 성경에서 진리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우 인격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다. 예수님이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처럼 성령도 진리의 영으로 소개되었다.

 

 

다섯째 날() 왜 그것이 중요한가?

126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5).

 

성령의 인격성의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분은 신령한 분인데 우리가 그분을 비인격적인 감화력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그분께 돌려야 할 경외심과 영광과 사랑을 빼앗는 것이다.”LeRoy Edwin Froom, The Coming of the Comforter, p. 40.

우리가 만약 성령을 하나의 신비한 신적 능력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을 더 얻게 될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반면 성령을 거룩한 인격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우리 자신을 성령께 더 맡길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핵심은 그대는 성령을 소유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성령이 그대를 소유해 주시기를 원하는가?’이다. 그대는 그분의 감화력을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즐겨 순종하며 기꺼이 그분을 따를 것인가?(8:12~14, 5:18~24 참고) 그대는 자신의 계획을 위해 성령을 이용하는가? 아니면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대에 대한 성령의 계획을 행할 수 있도록 그분께 의지하는가? 그대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고전 6:19)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대의 삶을 통해 기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1. 5:5, 2:18~19을 읽어 보라. 성령과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그러한 관련성은 그대 개인과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2:18,19]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그래서 모든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가게 되고 하늘 시민으로 하나님의 권속이 된다.

 

 

오직 인격체만이 의식적으로 상호 협력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께 협력하여 일하도록 권유를 받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분은 개별적으로는 우리 개개인을, 집합적으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하며 변화시키신다. 만약 우리가 성령을 삼위의 한 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그분을 무시할 것이며 그분의 권함에 귀를 닫고 삶을 변화시키는 그분의 감화력에 대하여 우리 마음을 굳게 할 것이다.

우리는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타락하고 죄로 훼손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임하시는 성령의 촉구를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릴 필요가 있다. 성령이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시는 거룩한 인격체임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 중심에 서신다.

 

<부가설명>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 삼위의 한 위이신 인격체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기의 뜻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신다. 성령의 은사 없이는 올바른 그리스도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성령이 단순한 하나님의 감화력이나 능력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사람이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할 것이다. 이 능력을 더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으로 여김을 받을 것이고 그런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믿음의 실상이 아니다. 믿음 겸손하게 하고 섬기게 하는데 그것을 전적으로 주장하는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이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면 그의 뜻을 따라 사람들에게 은사를 베풀고 예수님을 위하여 섬기도록 주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령이 어떤 분인지 올바르게 깨닫고 의지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성령의 역사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온전히 순복해야 한다.

 

교훈 : 성령을 하나의 능력으로 생각하면 성령을 소유하기를 원할 것이지만 그분을 신적인 인격으로 믿는다면 그분이 우리를 소유해 주시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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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망>, 669~672<복음전도>, 613~617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실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단수)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신 말씀에 주목하라.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들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름(오노마)’이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이신 우리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본성의 강력한 증거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6:4). 이번 주 교과가 이미 지적했듯이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의 인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왜 성령의 인격과 개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는가?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다정하고 자상하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그 하나님이 바로 성령이시다. 우리 곁에 계시는 분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인격체임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물론 그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 우리가 빛이나 바람같이 간단한 것의 본질도 다 헤아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성령의 본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왜 예수님은 진리가 되십니까? 진리가 단순한 개념이나 명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진리를 이해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인격이 참이신 분이시다. 그분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7:26) 이시며 그분 자신이 규정이며 바른 길이고 생명이시며 사망을 이기시고 만민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인격이다.

 

이번 주에 살펴봤던 성령의 특성을 다시 복습해 보십시오. 어떤 점이 그대에게 특별히 위로가 됩니까? 그분의 어떤 특성이 그대에게 가장 의미가 큽니까?

그분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예수 안에서 주신 생명을 풍성하게 유지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날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시는 분이시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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