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성령과 교회(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3/04/17

by 김명호 posted Feb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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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 안식일

일몰오후 629

 

연구범위 : 1:22~23, 고전 12:13, 6:3~7, 17:11, 4:5~6, 2:4~11

 

기억절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4:3~5).

 

종종 우리는 성령이 개인적인 차원 또는 신자 개인의 삶에 임하여 일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차원의 이러한 사역은 영적인 공동체의 토대를 이룬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교회의 존속을 끝까지 책임지신다.

우리는 자주 교회의 존속과 성장이 다양한 전도 활동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물론 하나님은 교회를 위한 그분의 찬란한 계획들을 성취하기 원하시며 우리의 협력을 통해 그렇게 하신다. 그러나 교회가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는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기 때문도 아니며, 효율적인 조직과 행정 때문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성령을 통하여 이미 행하셨고, 계속 행하시는 일들 때문에 존재한다. 영적인 공동체를 세우고 사귐을 조성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교회는 동일한 영의 감동을 받아 믿음과 행위의 권위로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교회의 신학적인 연합의 토대가 된다. 성령의 사역이 없다면 교회는 존속하지 못하며 연합된 사명을 계속 수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깨닫기 : 교회의 연합이라는 성경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우리의 관계를 발견한다.

느끼기 : 교회 연합의 토대가 되는 성경의 진리에 순종하고 다른 사람들을 겸손하게 대하는 태도를 기른다.

행하기 : 교회 연합이라는 대의를 위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 유익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2:20~22에서 성경은 교회의 연합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께 연합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

이번 주 기억절(4:3~5)은 교회가 연합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성령이 하나, 믿음도 하나, 주도 하나, 침례도 하나이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줄로 매신다.

교회가 연합하기 위해 동일한 믿음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올바른 교리 위에 믿음을 세우기 때문에 교회는 이 바른 믿음으로 연합할 때 바른 전도를 하고 주님의 일을 이루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연합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은 신자들이 모두 복음을 전하고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의견에 얼마나 동의합니까?

복음 전도와 봉사는 바른 교리에 세워진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 우리 교회가 연합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요?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진리의 말씀에 겸손히 굴복하는 것이다.

 

결론 :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도록 설득하시는 성령께 반응할 때에 겸양과 순종이 자존심과 자만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길잡이가 되고 섬김과 증언이 우리의 열정이 됩니다. 연합은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되고 그리스도의 섬김에 헌신하는 거듭난 심령들의 결실입니다.

 

 

첫째 날()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킴

226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

성령은 복합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연합시킨다. 성령이 먼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교회로서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1:22~23, 5:23 참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모든 구원의 은혜의 기초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 안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로 입양됨, 칭의, 성화, 죄를 이기는 삶, 마지막으로 영화롭게 됨은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받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신앙 경험의 기초가 되셔야 한다.

 

1. 2:18, 20~22과 벧전 2:6~7을 읽어 보라. 교회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와 성령은 어떤 역할을 하시는가?

[2:18~22]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벧전2:6,7]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 예수님은 교회의 모퉁이돌이시고 성령은 그 위에 교회 성전을 건축하신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기초이신 반석이시며, 그분 위에 성전의 다른 모든 부분들이 세워진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성령의 사역이 모여서 특정한 믿음의 공동체 즉 교회를 형성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동을 받으면 교회 안에 성령의 교통하심이”(고후 13:13) 일어난다. 개별적인 신자들은 성령 안에서”(2:22) 하나님의 새로운 영적 집으로 지어져 간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4:3)켜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되 타협할 수 없는 것들은 타협하지 않으면서 신자들과의 사귐 가운데서 연합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부가설명> 성령은 교회와 교회 신자와 신자 사이에 통신망이다. 성경은 성령의 교통하심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을 계시한다. 교회와 신자는 성령 안에서 통일되고 하나님이 거하실 집이 되기 때문이다. 성령의 일하심을 용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교회,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계시를 주시면서 역사적 일곱 교회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 성령은 각 시대에서 그 시대에 일하는 교회를 진리 안에서 교통하게 하시며 또한 역사적으로 연결되는 진리의 사상으로 교통하게 이끄신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진리와 말세 교회의 진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고 그 일관성 있는 진리로 각 시대의 교회와 신자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 교통의 길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고 그 길 위에 바르게 달리도록 이끄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교통이 막힌다. 신지와 신자 사이에 교통이 막히고 교회와 교회 사이에 교통이 막히고 역사적 시대의 진리교회와도 단절된다. 성령은 교회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역할은 교회를 진리로 살게 하는 생명의 피의 순환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에 전적으로 굴복하되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는 중에 그렇게 되도록 날마다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신자 개인을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들은 신자들을 하나의 교회로 연합시킨다. 우리는 성령의 교통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연합을 힘써 지켜야 한다.

 

 

둘째 날() 침례를 통하여 연합시킴

227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1. 고전 12:13을 읽어 보라. 침례는 어떻게 우리를 그리스도와 성령께 연합시키는가?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침례는 성령으로 받는데 그 성령은 한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침례 받아 거듭난 사람은 성령 안에서 연합하게 되고 성령으로 호흡하고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연합할 수밖에 없다.

 

우리를 믿음의 한 몸으로 연합시키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로 들어가는 공적인 입국은 침례를 통해서 이뤄진다. 우리는 침례를 받고 특정한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다. 침례는 공동체적으로 뚜렷한 차원이 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스스로 살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지원, 격려,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홀로 거룩한 사명을 완수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셨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다른 신자들과의 사귐 속에서 그분을 따른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침례와 교회는 신자들에게 가시적인 요소가 된다.

 

2. 6:3~7을 읽어 보라. 성경에서 말하는 침례에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가?

[6:3~7]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즉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난 것을 나타낸다.

 

침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물속에 장사되고 우리 구주 예수와 연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일어나는 행위는 옛 생애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였다는 공적인 고백을 상징한다.

침례란 자신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권위 아래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 원하는 모든 자들이 준수해야 하는 긍정적인 절차이다. 다른 말로, 침례는 진정한 회개, 옛 생애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며, 새로운 탄생 또는 회심을 상징한다. 침례를 받는 신자가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에 충성하기로 서약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지 그분의 도움을 의지할 수 있도록 보증하신다.

 

<부가설명> 침례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을 일차적으로 상징하고 물속에 들어갈 때에는 죽어서 장사되어 존재를 상실한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것을 상징한다. 죽는 것은 호흡이 끊어지는 것이다. 물속에 들어가서 호흡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세례는 물속에 잠그지 않는다. 세례를 하는 동안 계속 호흡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상징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죽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베드로는 회개하여 침례를 받으라고 했다.(2:38) 회개는 죽은 사실을 인정하고 그 죽음을 예수님 안에서 처리하고 다시 예수님으로부터 부활의 생명을 받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이고(6:1) 또 생명을 얻는 것이다.(11:18) 이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침례를 받는 것이 성경적이다. 이런 복음의 내용을 모르고 그냥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는다고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침례만 받고 교인이 되어 교회생활을 하면서 나중에라도 침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서 마음으로 다시 진정한 침례의 경험을 하지 않으면 그런 교인은 쭉정이나 가라지가 될 것이다.

 

교훈 : 침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했다는 표시이자 동시에 그분의 몸인 교회 공동체에 연합했다는 가시적인 고백이다.

 

 

셋째 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합하게 하심

228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17:17, 21).

 

1. 17:11과 요 5:39, 46~47, 8:31~32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는 뚜렷한 표식은 무엇인가? 성경이 그토록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분을 충성스럽게 따르라고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5:39,46,47]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때문이고, 성경말씀의 진리를 따라 생명을 얻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말씀진리 안에서 사망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기 때문이다.

 

성령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신다. 성경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믿을만한 자료이다.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성경은 영적인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데 필요한 권위 있는 자료이다. 바울이 베뢰아 신자들을 칭찬한 이유는 자신들이 들은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열심히 성경을 살피고 연구했기 때문이다(17:11).

모든 개혁과 영적인 부흥은 그것이 우리 개인과 교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와 상관없이 반드시 성경을 기초로 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세워져야 하는 토대이며, 예수님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다.

 

2. 17:17~21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은 연합을 기독교 제자들의 뚜렷한 표식으로 제시하신다. 17:17에 따르면 이러한 연합의 기초는 무엇인가?

[17:17~21]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진리의 말씀인 성경 진리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성려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17:17, 119:160). 교회의 연합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이루시는 일이다. 성령은 절대로 우리가 의심하거나 비난하거나 분수를 넘거나 성경의 가르침에 미치지 못하도록 이끄시지 않는다. 대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신령한 권위를 깨닫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가 살아있는 말씀이신 예수님에게 그러하듯이 기록된 말씀으로부터도 멀어지게 하실 분이 아니다.

대신 그분은 우리가 지속적이고 의식적이며 자발적으로 예수님과 성경에 순종하도록 하신다. 어떤 신학적인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경이 근본적인 원천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지만 만약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약화시킨다면 교회의 연합은 파괴될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하나님께서 깨닫기를 원하시는 대로 깨달을 수 없다. 사람의 추측과 사람의 학문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면 그것은 사람의 종교가 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교단이 사람의 종교가 되어 있는가? 사람의 종교가 된다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성경이 계시한 바로 그 하나님과 그 예수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성령을 따르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루시퍼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주장하는 교회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예수님을 부른다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적을 행한다고 하는 것이 다 가짜가 된다는 뜻이다. 성령을 부인하는 사람, 성령을 하나님의 감화력이나 능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다른 영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령을 훼방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성경을 바르게 깨닫도록 이끄신다. 고전 2:9~14은 이것을 자세히 가르쳐주고,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16:13~15에서 이것을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성령은 성경말씀으로 우리를 연합시키고 교회를 진리 안에서 하나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어떤 길로도 신자들을 이끌지 않으신다. 오직 말씀 안에서 생명으로 이끄신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신다.’(16:15)고 하신 것이다. 아멘.

 

교훈 : 예수님은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기초해서 하나로 연합하기를 바라신다. 성령은 교회가 말씀으로 연합하여 부흥과 개혁이 일어나도록 일하신다.

 

 

넷째 날() 믿음과 교리 안에서 교회를 연합시킴

31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5~6).

 

1. 바울은 여기서 연합과 그것의 기원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 만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안에서 만유가 통일된다.

 

믿음과 교리 안에서의 연합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할 때만 이루어진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은 모든 신자를 하나의 영적인 유대로 묶으신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동일한 거듭남과 말씀에 대한 동일한 순종이 모든 개인과 문화적 차이점을 초월한 동일한 믿음과 행위의 연합을 가져온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모든 사람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지만(12:18), 한 교회로서 우리는 스스로 신학적인 연합 또는 목적의 연합을 이루지 못한다. 왜냐하면 연합은 우리가 성취해야 할 어떤 사업이라기보다는 신자 개인에게 그리고 교회 전체에 임하여 일하신 성령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합의 신학적 토대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록된 말씀을 배제한 성령의 호소는 교리와 행위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동시에 성령을 배제한 기록된 말씀의 호소는 말씀을 메마르게 하고 결실이 없게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하나의 침례로 이끄는 단 한 분의 주와 단 하나의 믿음만 있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할 때에만 우리는 교회 안에서 연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믿음과 교리의 연합이 없는 곳에는 사명의 연합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계층, 모든 민족, 모든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복음의 감화란 하나의 거대한 형제애로 연합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본은 단 한 분이시다”(우리의 높은 부르심, 171).

 

<부가설명> 형제가 되는 것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된다. 그것은 저희들끼리 만드는 것이 아니고 같은 부모로부터 핏줄로 연결되는 것이다. 혈연(血緣)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세상에 오셔서 아담의 후손들의 죽음을 대신하시고 부활하셔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 공로로 하나님과 혈연관계를 이루게 하셨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침례를 받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면 하나님과 혈연이 되고 그렇게 된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형제가 된다. 생명과 피로 연결이 된 사실을 사상과 생활에서 드러내면 그들이 한 핏줄인 형제들인 것이 세상에 증명된다. 이것이 한 아버지, 한 주님, 한 침례, 한 몸이라는 성경의 사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생명관계로 연결되지 않고 도덕적 행위관계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는 신앙은 자녀의 신앙이 아니다. 당연히 형제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소위 형제라는 사람들의 허물이 눈에 들어온다. 지적하고 비난하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진정한 형제애가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감싸주고 변명하고 충고하고 사랑한다. 사랑은 생명으로 이어진 혈연들에게 당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같은 교리 같은 사상으로 가족된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교훈 : 교회가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신학적으로 동일한 믿음과 행위, 사명의 연합이 이루어진다.

 

 

다섯째 날() 사명과 봉사 안에서 연합시킴

3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2, 46~47).

 

1. 2:4~11, 16~21을 읽어 보라. 신약 교회의 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2:4~11, 16~21]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잘 수행하는 것이었다.

 

역사가 이제껏 증언해 온 가장 강력한 선교적인 확장은 성령의 책임 하에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충성심이 분열된 큰 그룹보다 그분에게 헌신하여 연합한 작은 그룹을 통해서 더 많은 일을 이루실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모두 우리의 삶과 정력과 재능과 자원을 그분께 바친다면 하나님은 훨씬 더 큰일을 행하실 수 있다.

신자들의 삶과 사명의 연합으로부터 신약 교회는 성장하였다. 신자들의 작고 친밀한 그룹은 하나의 강력한 군대로 변모해 갔고 여러 다른 문화와 언어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일을”(2:11) 선포하는 데 하나가 되었다. 신약 교회의 시대에 활약하셨던 하나님이 재림 전, 사업이 성취될 필요가 있는 종말의 때에도 동일하게 활약하실 것이다.

 

2. 2:42~47을 읽어 보라. 신약 교회의 신자들은 어떤 일에도 연합하였는가?

[2: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성경 연구에 함께했다(2:42). 성도의 교제와 떡을 떼는 일에 연합했다(2:42). 그들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도 연합하였다(2:42, 47).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 사용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데 연합했다(2:44~45). 결국 일상생활에 연합한 것이다. 형제이기 때문이다.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이다.

 

오순절 선교 계획에는 초기 교회에 연합했던 여러 다른 요인들이 따랐다. 그들은 성경 연구에 함께했으며, 꾸준하게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념했다(2:42). 그들은 성도의 교제와 떡을 떼는 일에 연합했는데 이는 아마도 공동체 예배의 표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2:42). 그들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도 연합하였다(2:42, 47). 그들은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 사용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데 연합했다(2:44~45).

성경 연구와 친교로 연합하면 그 결과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매우 실질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날 것이다. 성령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밝혀 주실 것이다.

 

<부가설명> 교회의 사명은 이 사망의 세상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전하는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아담 안에서 함께 사망이 되어 흑암의 권세 아래 신음한 동료들을 예수 안으로 이끌 마음이 생긴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 있는 분을 확실히 안다면 그분에게 죽은 자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당연하고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전도는 이런 보람이다. 문제는 대상들이 스스로 죽은 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게 해 주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영생을 얻었다는 그리스도인도 그들과 같은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하고 올바르게 증거해야 한다. 스스로 부활의 생명과 부활의 신앙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바울은 부활을 전했고 사도행전의 사도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다. 복음 전도는 예수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도록 이끄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목격자들이다. 그래서 더 담대히 증거하였을 것이다. 우리도 이 믿음을 확고히 하고 예수님의 부활과 그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을 증거해야 한다. 한 핏줄이 된 결과가 성경공부, 함께 먹고, 함께 소유하고, 함께 찬양하는 삶을 만드는 것이다. 전도는 예수 믿고 착한 사람 되자는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혈연이 되는 피의 종교인 것이다.

 

교훈 : 초기 기독교는 말씀과 기도로 연합할 뿐 아니라 예배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사역에도 연합하여 큰 부흥을 경험했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33

 

이 사업은 우리들도 참여해야 할 사업이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자극적인 계기를 기대하면서 사는 대신에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수행하면서 현재 당면한 기회들을 지혜롭게 선용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자신의 권한에만 두시고 인간에게 밝히시지 않으신 때와 시기에 관하여 공론을 펴는 일에 우리들의 정신력을 소모하는 대신에 성령의 지배에 우리들 자신을 복종시키고 현재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인간적인 견해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생명의 떡을 진리를 모르고 멸망해 가는 영혼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가려 뽑은 기별 1, 186).

 

모든 사람이 영향력의 중심이 되고자 투쟁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기까지 하나님께 복속하는 것이 어떤 영혼에게라도 유일한 안전책임을 그들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는 그분의 변화시키는 은혜는 이제까지 실현된 적이 없는 연합을 이루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동화된 모든 사람은 서로 조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연합을 이루실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 20~2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모든 사람이 영향력의 중심이 되고자 투쟁하고 있다.”는 엘렌 G. 화잇의 말은 무슨 뜻입니까? 왜 그것이 우리 모두의 선천적인 성향입니까? 우리는 우리 삶 속에 나타나는 이러한 성향과 싸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2:3~4 참고)

자아를 드러내고자 하는 정신이 가득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의 본질적인 경향이다. 예수 안에서 거듭날 때 이길 것이다. 그때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성질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정말 연합시키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섬김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교리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교리를 내세우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교리가 분열된 곳에 사명과 섬김의 연합이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믿음하나로 연합된 효과적인 선교의 강력한 요인이 될까요?

교리가 성경적으로 바르지 못하면 오류를 믿는 것이 되고 전도하는 것은 오류를 전하는 것이 된다. 바른 교리가 아닌 것은 성경적인 진리가 아니다. 바른 진리로 통일 되었을 때 바른 복음을 전하는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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