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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일 안식일

일몰오후 655

 

연구 범위 : 5:1~11, 16:13~17, 14:22~33, 22:31~34, 54~62, 2:9, 11~14

기 억 절 :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14:30~31).

 

베드로는 그의 이름을 딴 두 서신의 저자이다. 그는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예수님의 지상 봉사 기간에 그분 곁에 있었고 그분의 빈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한 제자 중 하나이다. 성령께서는 경험이 풍부한 베드로에게 그 경험을 바탕으로 훌륭한 서신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주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베드로는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예수님과 대화할 때에 보통 그는 제자들을 대표하였다.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에도 그는 초기 교회의 주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사도행전뿐 아니라 갈라디아에서도 언급되었다.

무엇보다 베드로는 실수를 저지르고 용서를 받으며 믿음과 겸손 가운데서 전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동일한 은혜를 경험할 필요가 있는 우리를 위해 중요한 교훈의 음성을 남겼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우리의 부적합성을 깨닫는 대신 사명을 완수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한다.

느끼기 : 우리는 예수님을 가까이할 존재가 아니지만 우리를 불러 그분의 일을 하도록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여긴다.

행하기 :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분을 따르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얼마나 적합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인간의 눈으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반면 그에게 어떤 부족한 면들이 있었습니까?

사람의 시선과 주위의 위협에 잘 무너지는 면들이 있었다.

그가 경험한 실패는 그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그의 자신만만한 정신과 태도를 주님께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우리는 자신의 실패 또는 동료 신자의 실패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까?

자신도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의 시선으로 보도록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함께 진척시켜야 할 주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복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결론 : 베드로의 생애는 주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 극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그분의 능력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나 기술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날() 326일 나를 떠나소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의 어부였다(4:18, 1:16, 5:1~11). 한번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은 호수로 돌아가 다시 그물을 던지라고 명령하셨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고기가 엄청나게 많이 잡혔다. 이런 기적을 접한 뒤에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1. 5:1~9을 읽어 보라. 5:8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말씀을 미뤄볼 때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의 고백은 그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어떤 암시를 주는가?

[5:1~9]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은 영적인 사람이다. 예수께서 부르시자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미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기 전이었지만 예수님이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5)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에 대해 무엇인가 알고 있었고 그런 인식이 그로 하여금 그분께 순종하도록 종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베드로는 이 사건 이전에 잠시 동안 예수님과 함께한 적이 있었다.

이 기적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눅 5:3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5:3). 아마도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자마자 베드로는 자신의 죄성과 대조되는 거룩한 무엇인가가 예수님께 있음을 느꼈다. 자신의 죄성에 대한 자각과 공개적인 시인은 그가 주님께 얼마나 마음을 열었는지 보여준다.

마땅히 그는 부름을 받았다. 그의 실수가 무엇이든지 그것이 얼마나 많든지 상관없이 베드로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주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영적인 인물이었다.

 

<부가설명> 베드로는 요한복음 1장에서 그의 형제 안드레로부터 예수님을 소개받고 예수께 나아가서 장차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을 것을 듣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때 네 사람이 제자가 되었다. 안드레 요한 베드로 야고보이다. 다시 빌립과 나다나엘도 제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40일 금식을 하시고 요한이 침례 주는 곳에 왔을 때에,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선포한 뒤에 있었던 사건들이다. 그들은 가나 혼인 잔치에 함께 참여하였다. 또 처음 성전 청소할 때 함께 있었다. 그들이 갈릴리 사람들이지만 유대 지방에서 봉사하시는 예수님께 드나들면서 교훈을 듣고 배우는 제자들이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그때는 예수께서 침례요한이 잡힌 사실을 듣고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 지방으로 공중 봉사의 지역을 옮긴 때의 사건이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가버나움 베드로의 집에 와서 그 장모의 열병을 고쳤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잘 알고 이미 제자노릇을 하던 때의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로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생업을 접고 예수님만 따라다니면서 동고동락하는 교육을 받는 제자가 되었다.

 

교훈 : 베드로는 그물을 다시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였고 기적이 일어났을 때에 자신의 죄와 주님의 거룩함을 자각할 만큼 영적인 사람이었다.

 

 

둘째 날() 327일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예수님의 일화 가운데 한 위대한 순간이 베드로와의 대화 중에 찾아온다. 앞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그분의 정체를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요구하였다(16:1~4). 그들을 상대하시고 난 뒤에 제자들만 있을 때에 예수님은 두 번이나 소량의 떡과 생선으로 수천 명을 먹이셨던 이적을 언급하셨다. 이는 제자들로 하여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16:11)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 16:13~17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있었는가?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말씀에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16:13~17]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고 제자들은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담대하게 표명했다. 16:20을 보면 다른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한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것이 분명하다. 아직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훨씬 많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임금으로서 통치하실 것을 여전히 기대하였다. 예수께서 매우 오랫동안 당신의 계획을 숨기셨을지라도 그들은 그가 항상 빈곤하고 미천한 상태에 머물러 계시지 않으실 것으로 믿었으니 곧 예수께서 그의 나라를 세우실 시기가 가깝다고 믿었던 것이다. 제사장들과 랍비들의 증오심이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것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민족에게 거절을 당하시고 기만자로 정죄를 받아 악인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 등을 제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시대의 소망, 415).

제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자마자 그분은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할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16:21~23 참고). 베드로는 그러한 개념을 수용할 수 없어 예수님을 책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16:23)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이 지상 봉사 기간에 그 누구에게도 하신 적이 없는 강한 발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베드로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베드로의 말은 그저 자신의 욕망과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그의 이기적인 태도를 반영했을 뿐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행로를 그 즉시 그 자리에 멈춰 세우셔야 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섬기는 것에 고난도 포함되어야 함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베드로가 깨달은 이러한 교훈은 이후의 기록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벧전 4:12).

 

<부가설명> 이 사건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6개월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이제 자기의 사명을 다 할 기한이 가까이 왔을 때에 그동안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하여 사람들의 인식과 제자들의 인식을 물어본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식한 것은 좋은 것이었지만 바른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오늘날 세상이 예수님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을 성인으로 본다. 그러나 바르게 인식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기독교 안에서도 예수님을 성경이 계시한 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아본 것은 전혀 인간적 사고방식의 결과가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계시로 알았다.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것은 예언과 계시의 영이신 성령의 감동과 지도로 되는 것이다. 자아를 비우고 전적으로 말씀에 굴복할 때 예수님을 성경이 계시한 그대로 만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해석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신학이 만들어놓은 다른 예수를 만나게 된다. 두려운 일이다. 마지막 때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 것을 예수께서 경고해 주셨다. 사람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하셨고 택하신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고 경고하셨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굴복해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성령께서 성경을 바르게 깨닫게 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가 바르게 인식했지만 전부를 인식한 것은 아니다. 고난당하실 메시야는 전혀 몰랐다. 우리도 어떤 부분을 전혀 모를 수 있으나 재림의 날에 주님을 맞이하는 자리에 설 수 있을 만큼은 알아야 할 것이다.

 

교훈 :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고백하였지만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한다는 진리를 더 배울 필요가 있었다.

 

 

셋째 날() 328일 물 위를 걸음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14:29).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며 목격한 놀라운 일들이 많지만 마 14:13~33, 6:30~52, 6:1~21에 기록된 사건에 비할만한 것들은 많지 않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5천 명 이상을 먹이셨다. 이 같은 것을 본 뒤에 그들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1. 14:22~33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의 신앙에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기별은 무엇인가?

[14:22~3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 베드로를 물 위로 걸어오게 하신 사건이 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에게 눈의 초점을 맞추고 파도치는 세상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군중을 먹이시는 모습에서 그들은 놀라운 방식으로 일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했다. 그분은 진실로 천연계를 통치하고 계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더욱 대범하게, 심지어 주제넘게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14:28)라고 요청했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믿음의 표현이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그에게 오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말씀대로 하였다. 그것 역시 믿음의 표현이었다. 물이 잔잔할 때 그렇게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을 텐데 베드로는 폭풍이 일 때 그렇게 했다.

이 일화에서 배우는 일반적인 교훈은 예수님에게서 시선을 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교훈이 있다. 베드로에게는 진정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에게 그러한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물 위를 걷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물 위를 걸으면서 겁을 먹기 시작했고 두려움으로 인해 가라앉기 시작했다.

? 예수님은 베드로의 두려움과 상관없이 그가 계속 떠 있게 하실 수 없으셨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절망 중에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14:30)라고 부르짖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를 지켜보셨다가 손을 내밀어 그를 건지셨다.

예수님은 신체 접촉 없이 그가 계속 물 위에 떠있게 하실 수 있었지만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주심으로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을 더욱 의지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우리는 구주의 능력을 신뢰하며 큰 믿음으로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두렵게 변해 갈 때에 우리는 베드로에게 건네셨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14:31).

 

<부가설명> 이 사건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생활하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없다. 배를 타든지 물 보드를 타든지 무엇인가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베드로는 파도치는 물 위를 걸었다. 예수께서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걸었기 때문에 그것이 베드로의 행위라고 할 것인가? 아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그렇게 행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자기가 물 위를 걸으려고 한다. 성품을 자기가 변화시키려고 하고 예수님 재림 맞을 준비를 자기가 하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이 도구 없이 물 위를 걷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예수께서 오라고 하시는 대로 걸으면 물 위를 걷게 된다. 잠시라도 눈을 다른 데로 돌리면 빠진다. 빠지는 것은 의도적이 아니라도 의심하는 것이 된다. 의심한 이유는 예수님을 보지 않고 주위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생활의 눈은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가? 빠지면서도 빠지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베드로는 구원해 주기를 소리쳐 간구했다. 우리는 빠지는 줄도 모르면 이런 소리를 외칠 수도 없다. 깜짝 놀랐을 때 이미 우리는 물속 깊이 가라앉은 다음이 아니기를 바란다.

 

교훈 : 베드로는 믿음으로 물 위를 걷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철저하게 의지할 필요성을 배워야 했다.

 

 

넷째 날() 329일 주를 부인함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2:61~62).

 

1. 22:31~34, 54~62을 읽어 보라.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22:31~34, 54~6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3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비자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로되 너도 그 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자아를 신뢰하지 말고 어떤 경우라도 타협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전적으로 주님께 굴복하는 정신으로 믿음을 지켜야 하고 잘못 되었을 때에는 지체하지 않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베드로의 의도는 좋았다. 사실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큰 용기를 나타냈다. 그는 주님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살피고자 그분을 따라갔다.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출발했지만 정로에서 벗어난 이러한 타협 때문에 그는 예수님이 경고한 대로 정확히 주를 세 번이나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베드로의 이러한 경험은 타협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비극적인 방식으로 교훈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는 신자들이 중대한 진리를 양보할 때에 벌어진 참혹한 결과들로 얼룩져 있다. 물론 삶 자체가 타협을 내포하기 때문에 종종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하지만 중대한 진리에 관해서만큼은 확고한 입장에 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엘렌 G. 화잇에 따르면 베드로의 타협과 실패는 겟세마네에서부터 시작했다. 거기서 그는 기도하는 대신 잠에 빠져 다가올 상황에 영적으로 대비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충실하게 기도했다면 그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714).

베드로는 그렇게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다. 그러나 실패가 큰 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컸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5:20). 베드로가 초기 기독교의 주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용서 때문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하는 소중한 교훈이다. 즉 우리는 아무리 실패할지라도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

베드로는 그렇게 용서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복음이 정말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악한 본성 뿐 아니라 죄인을 향하는 하나님의 깊고 위대한 사랑과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베드로는 자기의 진상을 몰랐다. 우리도 똑 같다.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확실히 속속들이 아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베드로는 자신을 모르면서 예수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런 장담은 진심이다. 거짓으로 장담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기에 다다랐을 때에 진심이 실천되지 않은 것이다.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아무리 진심으로 고백해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면 좌절하게 된다. 우리의 신앙이 진정으로 생명과 부활의 확신으로 굳게 서지 않으면 무너지게 된다. 아니 부활과 생명의 확신이 있어도 무너지기가 쉽다 우리는 현실의 위험과 위협을 견디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주께서 붙들어주실 때만 넘어지지 않는다. 말이 쉽지만 엄청난 위협을 받으면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그 마음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그랬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았다. 베드로의 진심을 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마음을 주님께 바치면 베드로를 영서하시고 세우신 사랑으로 우리도 용서하시고 세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교훈 : 베드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고자 했지만 타협의 과정에서 그분을 부인하는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은 더욱 컸다.

 

 

다섯째 날() 330일 교회의 지도자 베드로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2:11).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베드로는 열두 제자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그는 그들의 대변인이었다. 제자들의 이름을 열거할 때 마태는 베드로부터 시작했다(10:2). 베드로는 초기 교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가룟 유다를 대체하기 위한 사도 선출을 주도했던 인물도 베드로였다(1:15~25). 오순절에 모인 군중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현상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이라고 설명한 사람도 베드로였다(2:14~36).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을 때에 대제사장과 유대 지도자들에게 항변했던 사람도 베드로였다(4:1~12).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첫 번째 이방인 고넬료를 찾아가라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도 베드로였다(10:1~48). 바울이 회심한 이후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와서 15일 동안 접촉했던 사도 역시 베드로였다(1:18). 당시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 무리를 묘사하면서 교회의 세 기둥이 베드로, 주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라고 밝혔다(2:9).

 

1. 1:18~19, 2:9, 11~14을 읽어 보라. 베드로가 비록 초기 교회에서 중요한 지도자였지만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는가?

[1:18,19]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9,11~14]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 교회의 권위 있는 기둥같이 여기는 지도자였지만 주위의 눈을 의식해서 타협하는 정신이 아직도 있었다.

 

그는 교회의 지도자요 주께 부름을 받은 제자로서 주님으로부터 내 양을 먹이라”(21:17)는 사명을 부여 받고 심지어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10:28)는 이상을 본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성장의 필요성이 많았다.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었고 그들 중 대다수는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21:20)들이었다. 그들의 율법 해석에 따르면 이방인들은 부정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보낸 유대인 신자들이 안디옥을 방문했을 때에 베드로는 이방인들과의 식사를 중단하였다.

바울 입장에서 그의 태도는 복음의 정신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바울은 베드로의 행위를 노골적인 위선으로 여기고 거침없이 그에게 문제를 제기하였다. 바울은 그 상황을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훈인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할 기회로 삼았다(2:14~16 참고).

 

<부가설명> 베드로는 분명히 탁월한 지도자였다. 자기의 소임을 잘 감당하는 지도자였다. 그래도 역시 연약한 사람이었다. 성경적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눈은 항상 예수님을 주목해야 한다. 인간 지도자는 아무리 탁월해도 실수할 수 있다. 베드로를 통해서 그 사실을 잘 가르쳐준다. 그가 자기의 명성에 위기라고 생각할 때에 타협했다. 그것이 그의 약점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다 약점이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의 약점을 보고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지도자나 지도를 받는 사람이나 다 사람이다. 같이 실수할 수 있고 약점이 언제나 노출될 수 있다. 그럴 때 그를 위하여 기도하며 같은 허물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자신을 예수님께 굴복시키는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신자를 이렇게 이끄신다.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께 굴복하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6:1)

 

교훈 : 베드로는 초기 교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핵심적인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복음의 정신과 조화되도록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여섯째 날() 33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244~251377~382에서 해변에서의 부르심호수의 밤을 읽어 보라.

자신의 죄성을 시인하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담대하게 고백했던 어부이자 자기의 스승을 부인하는 제자로서 심지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였던 교회의 지도자로서 베드로는 분명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성령의 무오한 영감을 받아 자신이 알고 있는 이론적 지식뿐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서신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자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큰 실수가 있기 전에 그는 언제나 건방지고, 독선적이었고, 순간적인 충동에 의하여 무분별하게 말하였다.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나무라고, 자기 자신이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기 전에 마음을 표현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했다. 회개한 베드로는 경솔하고 성급한 베드로와는 매우 달랐다. 그는 이전의 열성을 간직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의 열성을 조절했다. 그는 성급하고, 자신 있고, 자고한 태도 대신 조용하고 침착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나타냈다. 그는 그리스도의 양떼에 속한 양들은 물론이요 어린 양들도 먹일 수 있게 되었다”(교회증언 5, 334~33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예수님을 부인했던 수치스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초기 교회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이런 교훈을 통해서 우리는 주를 떠난 이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사랑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여전히 주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신다. 우리도 용서하는 정신으로 그들을 주님의 사랑 안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타협의 위험성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우리는 절충해야 할 것과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말아야 문제를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교회 역사에서 타협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를 예로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그러한 사건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타협의 백미는 태양신교와 기독교의 합작이다. 성경을 도외시하고 인간의 해석과 철학으로 교리를 바벨론이 되게 했다. 우리는 성경이 계시한 진리의 원칙은 결코 타협의 재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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