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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일 안식일

일몰오후 542

 

연구 범위 : 33:6~9, 19:16~22, 벧전 1:18, 2:14~15, 9:14, 50:10

 

기억절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9~11).

 

하나님은 돈과 물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간단한 말로 설명하신다. 하나님께 복을 받았지만 소유를 축적하기만 했던 탐욕적인 부자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모두를 두렵게 한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20~21). (*맘몬은 신격화된 재물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돈을 섬기는 것은 상호 배타적인 행위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며 하나님 아니면 돈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얻겠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왜냐하면 그 같은 이중생활은 조만간 곤란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우리는 언젠가 그분 앞에서 삶을 정산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을 미루고 핑계를 대며 지연시킬수록 우리의 마음을 움켜잡는 돈과 그것에 대한 사랑은 더 강력해진다. 믿음은 결심을 요구한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그러한 결심이 훨씬 쉬워진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위에 유일하게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 창조주임을 깨닫는다.

2. 느끼기 : 창조자와 유지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감사하게 여긴다.

3. 행하기 : 매일의 필요를 공급하심으로 끝없는 사랑을 나타내시는 창조주와 구속주를 경배한다.

 

그대는 왜 하나님이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하셨다고 생각합니까?(34:14)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려고 하는 사랑을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데 해한 것을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분이 우리의 생명과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제공하신 물질들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을 그분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됩니까?

우상숭배가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세상의 사물들을 잘 관리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의 실제 소유주요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결론 : 인류는 경배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경배의 방향은 자아나 사물에게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통해서 지속적인 만족과 우주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그리고 깊은 목적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114() 창조주이신 그리스도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3).

 

1. 1:1, 33:6~9, 45:11~12, 51:15, 1:3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성경절들을 통해서 물질세계의 선함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33:6~9]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7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9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45:11,12]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51:15]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절대 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창조될 때 창조된 물질 자체는 선하다.

 

하늘을 펴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모든 세계를 공간에 매달고 들의 꽃들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그분의 손이었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656, 955). 이 땅을 아름다움으로 채우시고 공중을 노래로 채우신 분은 그분이셨다. 그분은 땅과 공중과 하늘에 있는 모든 만물에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기별을 기록하셨다”(시대의 소망, 20).

사물들 그 자체는 악이 아니다. 어떤 종교들은 물질세계는 악하고 오직 영적인 사물만이 선하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물질세계를 가치 있게 여긴다.

예수님이 직접 물질세계를 창조하셨으니 어떻게 그것이 악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하나님의 온갖 선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왜곡되어 악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원래의 선물까지 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창조하신 것들을 남용하거나 왜곡하지 말라고 경고하실 뿐 그것들 자체를 배격하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당신의 백성이 이 세계의 열매와 혜택을 누리기 원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26:11; 14:26 참고).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1:1~3) 지구는 그분이 만드신 세계의 표본이다. 그분의 창조적인 능력에는 생명 자체와 이 땅에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특별한 관점이 있었다.

그분은 물질적인 것들의 가치를 아시고 그것들을 우리의 유익과 기쁨을 위해 주셨다. 또한 인류가 그 선물들을 왜곡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해야 할 것들을 목적으로 삼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도 아신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심으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이시다.(1:13) 그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심히 좋다고 하셨다.(1:31) 그러므로 창조한 모든 물질은 지극히 선한 것이었다. 창조의 엿새 동안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31절까지 포함하여 일곱 번이나 있다. ‘좋았더라.’는 말은 토브인데 선하다.’는 뜻이 함께 있다. 영어의 good과 같다. 구역(舊譯)에는 선한지라.’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은 그 자체로서 선한 것이었다. 그 모든 것보다 더 아름다고 선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었다.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선하다고 하신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사망의 존재가 되었을 때에 그들을 일시적으로라도 존속하도록 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는 기회를 허락하시고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베푸실 구원을 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이 지구에 생존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사망의 존재가 된 그들이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시켜주신 것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물질은 그 자체로서 저주 중에 있게 되었고 사람은 저주로 거칠어진 세상에서 안락을 위하여 물질을 이기심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지라도 아직 이 물질 세계는 창조주의 선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도 창조주께서 그것을 돌보시고 섭리하시며 가꾸는데 손길을 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선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마침내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 심히 좋은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물질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남용하거나 숭배하지 않는 한 그것은 인간에게 유익과 기쁨이 된다.

 

 

115()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19:22).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이 온전하신 하나님이시자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분은 신성과 인성의 이러한 결합을 통해서 지상과 영원한 세상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특별한 관점으로 보신다. 그분이 어떻게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지실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가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이러한 진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공기 역학(aerodynamics)’을 모른다고 비행기를 날지 못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여기에 하나의 희생을 위한 두 가지 신비가 존재한다. 곧 하나님의 연합 안에 복수의 위격이 있는 것과 예수의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그 어떤 허구도 성육신이라는 이 진리만큼 환상적이지는 못하다.”J. I. Packer, Knowing God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73), p. 53.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며 돌보고 계시는지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냉정하고 우리에게서 거리를 두는 신이라고 믿지만 그와 달리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진실한 성품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사탄은 인류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분을 비인격화시키고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분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은혜의 실상을 알거나 경험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모든 일을 한다. 물질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려는 사탄의 계략 중 하나로 훌륭하게 작용한다.

 

1. 19:16~22을 읽어 보라. 사탄은 어떻게 물질에 대한 우리의 애정을 이용하여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하는가?

[19:16~22]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려는 마음을 주어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이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이 젊은이에게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상황을 묵상해 보라.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는 엄청난 재산과 물질에 대한 그의 애정으로 하여금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도록 허용했다. 세상과 물질에 대한 애정은 그의 눈을 어둡게 했다. 비록 그는 슬펐으나 슬퍼함만으로는 옳은 일을 행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잃을까봐 슬펐던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소유로 인하여 자신의 영혼을 잃을까봐 슬펐다.

 

<부가설명> 이 청년의 태도는 오늘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상태를 보여준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영생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여겨지는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하고 편하고 편리하게 하고 안락을 누리게 하는 물질은 바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현재가 편한 것을 선호한다. 장래 어떻게 되는 것은 그때 가서 볼 것이라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생은 장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현재 이야기이다. 그리고 지금 살았다고 믿는 것은 불확실하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는지 모른다. 비유에 나타난 부자는 자기의 수확으로 부하게 된 것을 생각하고 먹고 마시자고 했지만 그날 밤에 그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현실이다. 이것은 아주 긴급한 현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긴급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느끼지도 않는다. 어두움의 세상을 주관하는 자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오직 성경만이 이 사실을 지적하고 알게 한다. 사람이 성경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깨달으면 영생을 위하여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자가 되어 이 땅에 오셨지만 사탄은 물질에 대한 애정을 통해 우리를 그분에게서 떼어 놓으려 한다.

 

 

116() 구속주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19:30).

 

빚은 하늘의 원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고 그들의 범법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인류는 하나님의 공의에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부도를 맞고 갚을 수 없는 빚으로 인해 영적으로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계획을 가동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일종의 보증이 되셨다(7:22). 구속자라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통해 유사 이래로 가장 중요한 거래가 성사되었다. 오직 그분의 생명이 희생되어야 하나님의 공의가 요구하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었다. 공의와 긍휼이 십자가에서 만났을 때에 예수님은 우리가 지고 있던 죄의 빚을 갚으셨다. 우주는 인류의 속량의 대가로 지불된 그 같은 부의 과시를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5:2).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보물을 이 세상에 부어 주심으로써,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하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각 사람의 의지와 애정과 지능과 심령을 다 사셨다”(실물교훈, 326).

 

1.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셨는지 열거해 보라. 1:13, 살전 1:10, 벧전 1:18, 2:14~15, 3:13, 1:5.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살전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2:14,15]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5]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흑암의 권세, 장래 노하심, 망령된 행실, 사망, 율법의 저주, 죄에서 구원하셨다.

 

19:30에 등장하는 그리스어 테텔레스타이가장 위대한 선포라고 불린다. 그 뜻은 다 이루었다이다. 그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다. 그분의 마지막 선언은 자신의 사명이 완수되었고 인간의 채무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분은 아무 소망이 없는 자가 아닌 잃어버린 세계의 속량에 성공한 자로서 그렇게 반포하셨다. 그래서 십자가의 속량을 바라보면 과거의 한 사건을 통해 현재에 미친 영향과 미래에 약속된 소망이 나타난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 그리고 마귀가 벌여 놓은 일들을 단숨에 영원토록 없애기 위해서 그분의 생명을 바치셨다.

이는 우리가 자격이 없는데도 속량함을 받았다는 뜻이다(1:7). 구원의 경이로움을 맛본다는 것은 거룩한 땅을 밟는 것이다. 구속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가장 숭고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분의 최고의 관심사는 우리를 속량하는 것이다. 이는 인류를 향한 그분의 관점과 특별히 그분이 우리와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준다. 공의가 충족되었으므로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희생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부가설명> 구속은 값을 주고 사오는 것을 뜻한다. 살 물건의 값을 지불해야 그 물건이 산 사람의 것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자신의 무한하신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셨다. 생명을 값으로 지불한 것은 살 물건이 그 생명을 지불할 만하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생명을 지불하고 산 물건이 죽은 상태로 있게 되면 값을 잘못 지불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또 지불한 사람이 죽고 없으면 그 지불한 보람을 느낄 수 없다. 자신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다. 생명을 지불하신 분이 생명을 다시 취할 수 있어야 그가 산 생명을 지불하고 산 상품과 자기가 함께 기뻐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속주가 되시는 것은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가 되신다. 그분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가 될 수 없다. 그분 자신은 지불한 생명의 그 결과를 볼 수 없고 아무것도 누릴 수 없다. 예수님은 구속하신 것만이 아니고 구속하신 곧 구속주가 되셨다. 그분은 우리를 구속한 것을 만족히 여기신다.(53:11)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로 아담 안에서 다 죽었는데 예수님 안에서 다 살 수 있게 하셨으니 우리는 구속이 되었고 예수님은 구속주가 되신 것이다.

 

교훈 : 영원한 멸망을 받을 운명에 처한 인류는 하나님의 공의에 빚을 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의 모든 보화를 내주고 우리의 빚을 갚으셨다.

 

 

117() 질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바로와 맞서시며 이렇게 선포하셨다.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9:14).

하나님이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유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무한하신 분의 품성이나 업적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가장 탁월한 지성에도, 가장 유력하고 높은 교육을 받은 마음에도 거룩하신 분은 언제나 신비에 싸여 있을 것이다”(교회증언 5, 698~699).

하나님과 같은 존재는 없다(왕상 8:60). 그분은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각하며 기억하고 행동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우리 자신의 모습처럼 표현하려고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눈송이와 두뇌와 얼굴과 각인의 독특한 개성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 외에는 없”(왕상 8:60). 요컨대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창조주로서 피조물과 명백하게 구별되신다.

 

1. 다음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삼상 2:2, 86:8, 55:8~9, 10:10, 1:2)

[삼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86: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사와 같음도 없나이다.

[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 거룩하시고, 다른 신들은 신이라 할 수 없고, 참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한 왕,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인간을 결코 이 중에 하나도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에게 있는 엄청난 소유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분에게 경쟁자들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그분이 인간의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경쟁하셔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현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34:14)이라고 일컫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였다. 그 말은 우리가 그분을 섬길지 아니면 다른 것을 섬길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여러 면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온 우주를 창조하고 소유하시는 분, 즉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신을 섬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정말 그분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이유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 것들을 신으로 섬기는 것을 볼 때 질투하신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사망에 영원히 머물게 되는 것이 너무 답답해서 질투하신다.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 한 것은 사람을 위하여 하신 말씀이다. 사람이 아니면 이 세상에서 신이라고 으스대는 것들을 단번에 없애버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며 사람이 영생의 길을 찾도록 기다리시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 질투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사람을 생명으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역으로 표현한 말이다. 야고보는 이것을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표현했다.(4:5) 이것은 모두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어떻게 하든지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우리는 전적으로 우리의 구주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질투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모습인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여기 질투를 사람이 애정을 두고 질투하는 것과 비교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교훈 :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 무엇을 섬길지 결정할 때마다 인간의 애정과 선택을 바라시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118() 진정한 소유권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10:14).

 

우리는 창조로 말미암아 그리고 속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우리만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소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세속주의에서는 우리가 우리 소유의 주인이라는 개념이 핵심 신조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자기 소유의 궁극적인 주인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과 정반대이다.

만물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38:4~11).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 외인이자 소작인들이다(25:23). 심지어 매순간 우리의 숨마저 그분에게 의존하고 있다(17:25).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 그분의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소유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유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잘 관리해야 한다.

 

1.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고 하나님이 소유하신 것들을 열거해 보라. 10:14, 50:10, 104:16, 18:4, 2:8. 고전 6:19~20. 이 성경절들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로 두고 있는 물질들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가?

[10: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50: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04:16]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일일이 열거하면, 하늘과 하늘의 하늘, 곧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산야의 짐승들, 모든 나무들, 모든 영혼들 곧 사람들, 은과 금, 우리의 몸.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주인의 뜻에 합당하도록 올바르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충성하는 청직이가 되어야 한다.

 

만물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사람들이 그분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있다. 그분께서 그분의 축복을 그들에게 풍성하게 내려주고 있는 동안, 그들은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서 그분의 선물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청지기 직분에 대해 회계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9, 246).

하나님의 소유권과 우리의 청지기 직분은 하나의 관계를 요구한다. 하나님은 그 관계를 통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예비한 방식 곧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복되게 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충성스럽지 않은 청지기들은 주인께서 당신의 소유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어제 보았듯이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당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재림하실 때까지 이 땅의 소유물을 그분을 위해 관리하도록 우리에게 위탁하셨다. 우리가 그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곧 우리가 그분과 어떤 종류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부가설명>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기 소유가 없다. 몸과 생명, 곧 존재 자체도 받은 것이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7) 우리가 가진 것은 다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분과 위치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못한다. 사람들 사이에도 주제파악을 해야지라는 말들을 사용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창조주와 관계에서 정말 자기주제를 모른다. 엉뚱한 소리만 하고 산다. 진화론이니, 창조적 진화론이니 하는 것들은 다 사람이 자기 주제파악을 못하는데서 나오는 소리들이다. 자기의 주제를 올바르게 깨달았으면 이제는 창조주를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창조주께서 주신 물질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정신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것을 깨달은 사람으로 충실한 청지기가 되자. 십일조와 헌금을 충실하게 드려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와 우리 소유는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다. 하나님은 주인으로서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위탁된 것들을 잘 관리하기를 바라신다.

 

 

119()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청지기 직분은 아담과 하와를 아름다운 동산 가정에 두시고 그들로 그것을 돌보고 관리하게 하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2:15). 그러한 완전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그 동산을 거할 만한 공간으로 가꾸어야 했고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임무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맡기시고 그들에게 그 책임에 대해 가르치셨다. 에덴을 가꾸는 것은 새 가정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었다.

다스림’(1:26, 28)을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통제와 규칙 아래 두다라는 의미이다. 문맥에 따르면 이것은 혹독한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은혜로운 통치를 말한다. 이러한 책임은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그들은 그분의 관리자 또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책임을 위탁 받은 지위를 갖도록 계획하셨다. 그들은 그들의 임무에 충실함을 하나님께 보여야 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을 돌보도록 위탁 받았다. 그들은 동산을 경작하며 지켜야 했다. 그 일을 통해 그들은 행복을 느꼈다. 생각과 마음과 의지가 완전히 조화롭게 작동했다. 그들은 지루함이나 피곤함을 모르며 일했다. 그들의 일과는 유용한 일과 서로와의 교제로 채워졌다. 그들의 직업은 즐거웠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방문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그들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다.하나님은 에덴 가정의 주인이셨고 그들은 그들의 가정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두었다”(Manuscript Releases, vol. 10, p. 32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환경에 관한 우리의 책임에 대하여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환경을 잘 가꾸고 보존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물질적인 사물들에 대한 선용과 남용을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을 유익하게 사용하면 선용이 된다. 과욕을 부리든지 안 해도 될 일에 비용을 많이 들이든지 하면 남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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