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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일 안식일

일몰오후 620

 

연구 범위 : 16:15, 벧전 3:8~9, 고전 9:14, 3:19~24

 

기억절 :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3~14).

 

지난주에 보았듯이 십일조는 믿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중요한 표현 방식이다. 그것은 우리의 고백이 진실한지를 나타내거나 시험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성경에 기록된 십일조에 대한 첫 언급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장면에서 나온다(14:18~20; 7:4 참고). 레위인들도 성전 봉사를 위해 십일조를 거뒀다(대하 31:4~10). 오늘날에도 복음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십일조가 드려진다. 바르게 이해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늠하는 영적인 잣대의 기능을 한다.

십일조의 파급력, 용도, 중요성, 분배 방식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지원하고 복음 전파의 재정적인 토대를 제공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고안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신실한 청지기가 밟아야 할 첫 단계로 일컬어져 왔다. 이번 주에 우리는 십일조를 분배하는 방법과 십일조가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십일조가 하나님의 곳간을 채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세상을 위해 사용됨을 인식한다.

2. 느끼기 : 복음 사업을 증진시키는 방편으로 십일조 생활에 참여할 책임감을 느낀다.

3. 행하기 : 각자의 영향력과 노력을 동원하여 다른 이들도 십일조 생활에 참여하도록 격려한다.

 

성경의 교훈에 따르면 우리 각자가 드리는 십일조는 어떤 큰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까?

복음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이 확산되는 도구가 된다.

하나님이 십일조를 지정된 통로를 통해서 드리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몸의 조직인 교회의 기능을 알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충실하게 십일조를 드릴 때에 복음 사업에 어떤 큰 효과가 나타날까요?

신속하게 확장될 것이다.

우리의 신실한 십일조와 헌금 생활이 우리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복음의 실상을 생활에서 기쁨으로 체험하게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십일조와 헌금 생활을 더욱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로 그때에 구분하여 드리는 것이다.

 

결론 : 십일조가 가지고 있는 파급력은 하나님이 우리의 통제 하에 두신 자원들에 대하여 우리가 신실한 청지기가 되기를 바라는 결심을 강화시켜 줍니다.

 

218() 함께 선교 사업 자금을 마련함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10).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삼으며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16:15, 28:19~20). 하나님은 우리가 지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 곧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원으로 이러한 선교 사업에 지원하는 일은 청지기의 의무이다.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적인 헌신을 심화시킨다. 모든 제자, 청지기, 교역자들은 이 같은 거룩한 사업을 위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 우리는 성공적인 선교 사업이 우리의 신앙적인 연합을 강화시키는 것처럼 선교 사업 자금 마련에도 신실히 연합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1. 이러한 선교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정 계획은 무엇인가? “온전한 십일조란 어떤 의미인가?(3:10)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라는 구절의 의미는 무엇인가?(3:10)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창고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양식은 일차적으로 성전봉사자들이 사용할 것이고,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사업에 쓸 자원을 뜻한다.

 

앞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시대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십일조를 드려왔다(14:20, 28:22). 십일조는 하나님의 교회에 자원을 모으는 제도의 일부이다. 그것은 가장 커다란 자금의 원천이자 선교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공평한 방법이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대다수의 신자들이 선교를 위해 상대적으로 적은 자금을 드리고 있다. 만약 모든 신자들이 정직한 십일조를 드린다면 그 결과는 아마 상상을 초월하고, 놀라우며,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Christian Smith and Michael O. Emerson, Passing the Plat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p. 27.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업을 위해 기꺼이 자금을 드리는 백성을 두셨다. 우리 모두는 세계적인 사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협력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선교 자금을 마련하는 일에 무질서를 야기하거나, 부주의하며 무성의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도전은 백성과 레위인들이 느헤미야에게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10:39)고 말했을 때보다 훨씬 크며, 19세기의 신자들이 당면했던 과제보다 더욱 벅차다. 오늘의 신자와 목회자들은 세계적인 목표를 이루며 선교 자금을 마련하는 일에 영적으로 단결하며 재정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부가설명>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두신 복음 센터이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자금이 필요하고 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꾼들도 필요하다. 하나님의 창고에 양식을 두라는 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자금을 충당하라는 부르심이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자를 만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을, 점심거리를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다 오는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기면 점심 잡수실 것을 권할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곧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양식은 전도하는 것이었다. 생명의 복음을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양식이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기도하는 시간에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면서 각종 이상한 생물들을 잡아먹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었다. 곧 고넬료의 집에서 심부름 온 사람들을 만났다. 성경은 전도하는 것을 음식 먹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전도가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사건들이다. 그래서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십일조와 헌금은 이 양식을 충분히 공급하는 자금줄이다. 성도들이 직접 전도 일선에 못 나가도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로 그 일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된다.

 

교훈 :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은 십일조와 헌금을 드림으로써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219() 하나님이 주시는 복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20:35).

 

3:10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은 신실하게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에게 큰 복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단편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 오직 물질적인 재산의 축적을 복으로 강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한 매우 편협한 관점이다.

말라기는 일시적인 복과 더불어 영적인 복까지 말한다. 구원, 행복, 마음의 평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최상의 것을 행하신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복을 더 불운한 자들에게 나눌 의무가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복을 받은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분의 복을 다른 곳으로 확장시키실 수 있다.

 

1. 벧전 3:8~9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복을 받는 것과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되는 것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는가?

[벧전3:8,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다른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면 영원한 복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

 

십일조 생활을 통해 우리에게 이중의 복이 임한다. 우리는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된다. 우리는 받은 것으로부터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복은 우리 안으로도 미치고 다른 이들을 향해 밖으로도 미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6:38).

 

2. 20:3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어떻게 십일조 생활에도 적용되는가?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 그것이 양편 모두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십일조를 통해 우리가 얻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17:7). “십일조를 드리는 특별한 제도는 하나님의 율법 못지않은 견고한 원칙 위에 세워졌다. 이 십일조 제도는 유대인들에게 복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 제도를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교회증언 3, 404~405).

 

교훈 :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는 큰 복이 임한다. 거기에는 물질적인 복, 영적인 복, 나눔으로 얻는 복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복이 포함된다.

 

 

220() 십일조의 목적

 

바울은 디모데에게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딤전 5:18)고 말했다. 그는 소에 관해서는 신 25:4을 인용하였고, 노동자에 관해서는 눅 10:7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소에 관한 구절은 하나의 경구로 보이는데 그것은 소가 일하는 동안에 곡식을 먹는 것은 정당하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경구는 복음을 전하는 헌신적인 일꾼에게 마땅히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제도를 만드시고 운영하신다. 그분은 태양계, 생태계, 소화계, 신경계 등을 설계하셨다. 십일조 제도는 성소를 돌보는 레위인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18:26).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삶을 바치는 자들은 현대의 레위인들이다. 하나님은 십일조 제도를 제정하시고 복음 사역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셨으며 그것은 구원의 역사 내내 활용되어 왔다. 십일조로 그 같은 일꾼들을 지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업에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치이다.

 

1. 바울은 어떤 의미로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고 했는가? 이 말씀의 도덕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고후 11:7~10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고전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후11:7~10]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 보답하는 정신은 고결한 도덕성이다. 교회는 복음전하는 일에 전념하는 종들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바울은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고후 11:8)고 말함으로 그가 부요한 고린도 교회를 돌보는 동안 가난한 마케도니아 교회로부터 임금을 받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고린도 교회에 말하려는 요지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십일조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고 그 원칙은 유지되어야 한다.

십일조는 특별한 용도를 위하여 구별된 것이다. 이것을 구제기금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별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특별히 쓰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목적에서 이탈될 수 없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기별, 103).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아담의 후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분의 영생의 부요를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희생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은혜를 누린다. 예수님은 이렇게 삶을 얻은 사람들에게 다른 죽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협력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십일조와 헌금 제도이다. 우리가 친히 선교지에 갈 수 없어도 헌금으로 선교지에 간 선교사들과 함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된다. 할 만한 축복이 아닌가. 교인들은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종들을 부양할 책임이 있는데 이것은 의무이기보다는 생활의 조건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 생명은 다른 사람들을 살려주려는 것이 그 생명의 생활리듬이 되는 것이다. 가장 손쉽고 간단한 것이 십일조와 헌금이다. 그렇잖으면 선교현장에 나가서 선교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교인들에게 이렇게 쉬인 선교의 길을 제정하신 것은 이 세상에 일상생활의 임무가 쉽지 않은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배려하신 은혜의 선물이다. 그렇지 않은가?

 

교훈 : 십일조는 복음 전파 또는 그것에 삶을 헌신하는 자들을 부양하기 위해 하나님이 설계하신 제도로서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221() 창고

 

하나님은 바람, , 눈과 우박을 위한 창고를 두시고 그 모든 것을 전적으로 통제하신다(10:13, 33:7, 38:22). 그러나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창고는 십일조를 모으는 창고이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18:21). 이 말씀은 십일조가 어디에 보관되는지를 처음으로 언급하는 말씀이자 오늘날 곳간의 원칙으로 알려진 성경절이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그분이 지정하신 장소에 십일조를 가져오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셨다(12:5~6). 솔로몬 시대에 십일조는 예루살렘 성전에 바쳐졌다. 그래서 선지자 말라기가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3:10)이라고 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창고가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했다. 창고는 예배가 드려지고 레위인들이 지원을 받는 장소를 상징한다.

 

1. 성경에서 창고 말고 어떤 다른 이름이 사용되었는가?(대상 26:20, 대하 31:11~13, 10:38)

[대상26:20] 레위 사람 중에 아히야는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을 맡았으며,

[대하31:11~13] 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방들을 준비하라 하므로 그렇게 준비하고 12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들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가 그 일의 책임자가 되고 그의 아우 시므이는 부책임자가 되며 13 여히엘과 아사시야와 나핫과 아사헬과 여리못과 요사밧과 엘리엘와 이스마갸와 마핫과 브나야는 고나냐와 그의 아우 시므이의 수하에서 보살피는 자가 되니 이는 히스기야 왕과 하나님의 전을 관리하는 아사랴가 명령한 바이며

[10:38]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 방이라고도 하였다.

 

성결한 십일조를 창고에 가져가는 행위는 성경에서 제시된 모본이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관리할 중앙 창고를 두셨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구성한 세계 교회는 곳간의 원칙을 수용하며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신자들에게 그들의 십일조를 교적이 있는 지역 교회를 통해서 합회에 내도록 장려하고 있다. 합회 재무실은 목회자들이 임금을 받는 곳이다.

하나님의 사업이 확대되면 도움의 요구는 더욱 더 빈번해질 것이다. 이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3:10)라는 명령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그들의 십일조와 헌금들을 충실히 가져온다면 그분의 창고는 넘칠 것이다”(사도행적, 338).

 

<부가설명> 십일조와 헌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 교회가 그 창조역할을 한다. 교회는 조직을 가지고 있고 조직은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다. 교인들은 이 조직의 한 부분들이다. 이것을 지체라고 표현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의 조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음식을 저장하는 곳이 있고 이곳에서 뇌의 지시를 따라 필요한 모든 곳에 영양이 공급된다.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지체들이 음식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관하고 공급하는 책임을 맡긴 기관에 양식을 보내야 한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 제도와 통로를 무시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직접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공급이 되지도 않고 공급한다고 해도 그 세포가 바르게 소화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교회를 조직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십일조와 헌금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조직제도에 합당하도록 운영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교훈 : 우리는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으라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기관에 십일조를 모아야 한다.

 

 

222() 십일조와 믿음으로 얻는 구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1. 3:19~24을 읽어 보라.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 진리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이 교훈을 항상 신념의 토대로 삼아야 하는가?

[3:19~24]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받을 의에 이를 수 없는 존재인데 예수께서 대신 죽으시는 희생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말로할 수 없는 은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 기별의 요지는 우리 모두가 속량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3:23). 우리에게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로와 행위에 의한 것이 되는데 그런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된다.

 

2. 4:1~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공로와 반대되는 은혜에 대해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4:1~5]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 일하는 자에게 보수는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것을 받아가는 것이지만 은혜는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거저 주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합당하지 않은 자에게 베풀어지는 선물과 같은 것이다(2:8~9). 구원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의 공로가 우리의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주어진다. 십일조의 문제에 관하여 말하자면 우리가 그것을 돌려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 어떤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십일조가 원래 하나님의 것이라면 그것을 그분께 돌려 드린다고 해서 어떤 공로가 있겠는가?

십일조 생활은 우리가 창조 받은 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실천해야 할 다른 선행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구원하는 행위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그럼에도 십일조의 문제는 순종적이든지 아니면 독선적이고 반항적이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라고 요구하신 명령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드러낸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께 순종할 것이다. 십일조는 우리가 이 땅에서는 단지 청지기에 불과하며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는 자각에 대한 외적인 고백이다.

안식일이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자 구속주임을 매주 상기시키는 것처럼 십일조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며 우리의 생명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가 그러한 믿음을 보여주는 매우 가시적인 표현임을 인정하며 믿음의 생애를 살 수 있다.

 

<부가설명> 앞 어느 과에서 이미 말했는데, 십일조는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와 은혜로 속량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십일조와 헌금은 이런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제도를 제정하셨다. 십일조만큼 공평한 제도가 없다. 수입에 따라 10분의 1만 드리면 된다. 부자라고 10분의 2나 그 이상을 드리라 하지 않은 것 같이 가난하기 때문에 10분의 1 이하로 드리라고 하지 않았다. 그의 수입의 10분의 1이면 된다. 그것을 드리는 것으로 자기가 예수님의 은혜로 값없이 속량된 것을 믿는 믿음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헌금도 같은 의미이다.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속량을 의식하지 않는 것과 같다. 믿음은 무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분명한 의식으로 신앙고백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십일조와 헌금은 예수님의 속량을 믿는 가장 분명한 의식으로 행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지금까지 이런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면 이 기회에 깨닫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자.

 

교훈 : 십일조는 구원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공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나타내는 가시적인 표현일 뿐이다.

 

 

223()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는 매 호흡과 심장박동, 존재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은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유지자이신 참하나님에 대하여 아테네인들에게 말했다. 그분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17:24)이시며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17:28)한다. 아테네인들은 참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분을 알며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삶의 방식에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요구에 일치하도록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분께서는 보화를 사람들의 손에 놓으셨다. 그리고 요구하시기를 십분의 일을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충성스럽게 떼어 놓으라고 하신다. 그분께서는 이 부분이 그분의 창고에 충실히 드려지기를 바라신다. 그것은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그분께 바쳐져야 한다. 그것은 신성하며, 신성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구원의 기별을 땅 끝까지 전하는 자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이 부분을 확보해 두어 창고에 자금이 넘쳐서 진리의 빛이 원근 각처에 퍼지도록 하셨다. 이 요구를 신실하게 이행함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인정한다”(교회증언 6, 38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그것이 아무리 우리 힘으로 얻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리기를 거절하지 말자. 드리지 않으면 없어진다”(사도행적, 566).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 우리는 무엇을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일까요?

우리의 신앙을 빼앗는 것이 된다. 결국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게 될 것이다.

 

신자들이 원하는 곳에 십일조를 보내는 것은 왜 좋지 않은 발상입니까? 그렇게 하면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왜 그 같은 행동이 우리 중에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지체노릇하기를 거절하는 것과 같다.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은 성전에서 온갖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음을 아시면서도 그곳에 헌금을 드린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쓰이는지 의문이 든다고 해서 십일조를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도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책임을 질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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