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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일 안식일

일몰오후 549

 

연구 범위 : 17:1~26, 요일 5:19, 13:18~30, 5:20~23, 9:38~41, 18:4

 

기억절 :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0~21).

 

요한복음은 배신과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시점에 예수님이 당면하신 관심사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일종의 창을 제공한다. 요한복음 13~17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주셨다. 그 가운데 절정을 이루는 요한복음 17장은 종종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린다.

그것이 적합한 직함이다. 왜냐하면 이 기도에서 제사장이자 제물이신 우리 주께서 희생 제사를 위해 자신을 성결케 하시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이 제사의 수혜자 곧 다락방에 함께 있는 제자들과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믿음으로 오게 될 이들을 위한 성결의 기도이다. ”F. F. Bruce, The Gospel of John (Grand Rapids: Eerdmans, 1983), p. 328.

이 기도의 중심에는 제자들과 이후에 그분을 믿게 될 이들의 연합에 대한 예수님의 염려가 담겨 있다. 이 기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교회의 연합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에 관한 의미 있는 논의는 완성될 수 없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고, 누구를 위해 기도하셨으며, 그분의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 제자들의 연합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염려를 이해한다.

느끼기 : 교회와 그 사명을 위한 연합의 중요성을 느낀다.

행하기 : 주변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과 연합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17장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주로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다고 생각합니까?

제자들과 그들의 기별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왜 교회의 연합이 그 사역과 사명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낸 사랑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림교회는 어떤 방식으로 다른 교단의 교회들과 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도덕적 인도적 사업에 협력할 수 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연합된 모습으로 복음의 진실성을 세상에 증언할 수 있을까요?

참 사랑의 연합으로 세상에 봉사할 때에 그렇게 된다.

 

결론 :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제자들이 세상에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을 바르게 드러내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소망이 드러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목적에 있어서 하나가 되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연합이 이 목적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1014() 자신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7:1).

 

예수님이 드리신 대제사장의 기도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자신을 위한 기도(17:1~5), 제자들을 위한 기도(17: 6~19), 후에 그분을 믿게 될 이들을 위한 기도(17:20~26).

예수님은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다. 앞서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해 오셨다(2:4, 7:30, 8:20). 그러나 이제는 희생의 때가 되었음을 아셨다. 지상 생애의 극적인 결말의 순간이 당도했다. 그분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힘이 필요하셨다. 기도해야 할 때였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행하심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실 것이었다. 다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견디셔야 했다. 십자가에 대한 주님의 수용은 숙명론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그것은 그분이 아버지께 부여받은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 보여준다. 그분은 순교자로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육신하신 목적 곧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희생적인 죽음을 성취하심으로 자원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다.

 

1. 17:3에 따르면 영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영생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행위나 지식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경험이다. 이러한 지식은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서 깊어진다. 인간은 사실과 구체성을 깨닫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더 깊고 더 만족스러운 무엇인가를 추구하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이다. 예수님의 첫 번째 강림의 목적은 인류가 하나님에 대하여 더 의미 있는 구원의 지식에 도달하고, 그러한 지식으로 인하여 서로 연합하도록 이끄시는 것이었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참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세상에 신(하나님)이 많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그들이 참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다. 바울의 되기 전의 사울도 그랬다. 예수께서 보실 때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그들이 해석한 하나님이지 성경이 계시하는 그대로의 참 하나님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14:6)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다. 요한은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없다고 했다.(요일2:23) 우리가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른 그 하나님을 올바르게 만나서 경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참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 오늘날도 교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르지만, 성경대로 되지 않으면 참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해 주신 참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경배하는 신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하나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교훈 :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드린 대제사장의 기도에서 그분의 희생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인류가 아버지와 자신을 경험적으로 알기를 소원하셨다.

 

 

1015()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

 

1. 17:9~19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무엇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셨는가?

[17:9~1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제자들을 세상에서 보호해주시고, 그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시고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된 것 같이 하나 되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그다음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들은 조만간 그분이 더 이상 가시적으로 그들과 함께 계시지 못할 때 그분에 대한 믿음을 잃을 위기에 처할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아버지의 돌봄에 위탁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에 남게 될 그들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이 근본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있음을 아시기 때문이다(요일 5:19). 그럼에도 세상은 제자들이 섬김의 봉사를 실천하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세상의 악으로부터 보호받기를 기도하신다. 예수님은 세상을 돌보신다. 참으로 그분은 세상의 구주시다. 그러나 복음의 확산은 그 소식을 가지고 나아가 전파할 자들의 증언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악한 자가 그들을 이기지 못하도록 그들을 위해 중보하셔야 한다(6:13).

그러나 한 제자가 패배를 당했다. 그날 밤 전에 예수님은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13:18~30). 예수님은 성경에 유다의 배반이 예언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41:9 참고). 그럴지라도 유다는 운명의 희생양은 아니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은 사랑과 우정의 손길로 그에게 호소하셨다(13:26~30). “유월절 만찬 때에 예수께서는 반역자의 의도를 폭로하심으로써 당신의 신성을 밝히셨다. 그분은 친절하게도 제자들에 대한 봉사에 유다까지 포함시키셨다. 그러나 마지막 사랑의 호소는 무시되었다”(시대의 소망, 720).

이전에도 그랬듯이 시기와 질투심이 제자들을 분열시킬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은 연합을 위해 기도하신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그와 같은 연합은 인간의 능력 너머의 일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결과요 선물이다. 그들의 연합은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에 기초를 둔다. 이러한 연합은 미래의 사역이 성공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진리 안에서 성결하게 되는 것 역시 사역에 필수적이다. 물론 제자들의 마음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 그들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증언해야 한다면 그들 자신이 진리로 변화되어야 한다.

 

<부가설명> 연합은 사상이 일치할 때 가능하다. 그래도 방법이 다르면 분열될 위험이 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운영하는데 사상이 같아도 방법이 달라서 연합이 무너지는 경우가 아주 많다.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할 수 없다. 이때는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며 성경의 원리를 함께 찾고 기도하여 그 방법으로 일치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의도대로 되지 않았으면 다음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밟지 않고 지도자가 자기 의도대로 밀어붙이게 되면 그 방법을 수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같은 방법을 찬성하는 사람과 함께 분리하게 된다. 분리와 분열은 근본이 조금 다르다. 재림교회에서 사상이 다르기 때문에 분열할 무리들도 있다. 사상은 다른데 분리하는 것은 방법의 차이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도자들은 이런 경우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생각과 의도를 강요하고 억지로 실행하게 되면 외부로 분리가 되지는 않아도 내부적으로 분리되는 경우가 많고 나아가서 실제로 분리하게 된다.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뿐 아니라 그들의 연합을 위해서도 기도하신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사역과 사명에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1016()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후에 예수님은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그분을 믿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17:20).

1. 17:20~26을 읽어 보라. 나중에 복음의 소식을 믿을 자들을 위해 예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 기도가 꼭 성취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7:20~26]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 같이 모든 신자들도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다. 이렇게 될 때 세상이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을 바르게 깨닫고 그 사랑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예수님은 미래의 신자들도 하나가 되기를 기원하셨다. 요한복음의 몇 군데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연합에 대해 언급하셨다. 그분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시고 무엇을 하든지 항상 연합하신다(5:20~23). 아버지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아들을 주실 만큼 그리고 아들은 세상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주실 만큼 그분들은 타락한 인류를 위한 사랑을 공유하셨다(3:16, 10:15).

예수님께서 이 기도에서 언급하신 연합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목적의 연합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5). 사랑을 통한 이런 연합의 표출은 예수님 그리고 아버지와 나누는 그들의 관계에 대하여 대중에게 확신을 심어줄 것이다. “그들의 진정한 연합의 표현은 틀림없이 복음의 진리에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공할 것이었다.”Andreas J. Köstenberger, Joh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4), p. 498. 세상은 이렇게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염원하셨던 연합은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속에서 사랑과 연합을 볼 수 없다면 어떻게 세상이 복음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진리의 토대 위에 완전히 연합하여 서도록 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신다.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모두 믿음으로 연합하도록 계획하신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기도는 당신이 하늘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처럼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세상이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해주옵소서 하는 것이었다”(교회증언 4, 17).

 

<부가설명>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참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신 것은 의미심장하다. 당시에도 예수께서 계시하신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른 그 참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그 하나님 이름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셨다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겠는가.(17:26) 그 당시에 그랬다면 지금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성경에 계시해주신 그 참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 위하여 신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이 계시한 대로 성경의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탄은 사람들이 성경의 참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도록 혼신의 노력을 한다. 자신이 광명한 천사처럼 나타나서 속이고(고후11:14) 또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대리인을 세우기도 한다.(살후2:4)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를 옳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딤후2:15) 성경을 연구할 때 신학적 해석을 따를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 구절을 바르게 찾아서 해석이 되어야 한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40:8) 그래서 우리는 참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성경이 계시한 바르 그 예수님과 그 복음으로 신실한 믿음으로 충성해야 할 것이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교훈 : 예수님은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이신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고 미래의 제자들도 하나가 되어 세상이 복음의 진실성을 믿기를 바라셨다.

 

 

1017()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연합

 

1. 9:38~41과 요 10:16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사도 요한에게 주신 답은 예수님의 참제자를 가리려는 성급한 판단과 배타주의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9:38~41]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예수 이름을 반대하지 않고 그 이름으로 능한 일을 하는 자는 일단 예수를 위하는 자들로 보라고 하셨고, 언젠가 참 예수님의 진리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요한복음 17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기도가 그들의 교단의 연합에 곧바로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는 온 세상에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의 교회로 연합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다른 교단의 그리스도인들과의 연합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에 비춰 볼 때 어떻게 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물론 우리는 다른 교단에도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있다고 믿는다. 성경은 심지어 바벨론 안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고 분명히 밝힌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18:4).

한편 계시록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 큰 배도가 있을 것이며 마지막 때에 여러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계 13:1~17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박해를 일으키기 위해 서로 그리고 세속 정부와 연합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재림신자들은 에큐메니컬(종교통합) 운동처럼 다른 교회들과 연합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을 때 참여하기를 매우 주의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른 교단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관련하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다른 교회와 협력하는 문제를 다뤘다. “인간 매개체가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킬 때, 성령께서는 그가 봉사하는 자들의 마음을 감화시켜 주실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인 여성절제연맹(WCTU: Woman's Christian Temperance Union)에 속한 일꾼들을 배격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구호봉사, 163).

그녀는 비록 특정 시대의 특정 사안을 취급하고 있지만 우리가 다른 교인들과 관계를 맺는 문제에 대해, 그리고 특별히 그것이 대의를 위한 연합의 문제일 때 따라야 할 다음의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공통의 사회 관심사에 대해 협력할 수 있다. 둘째, 그들과 연합하되 우리의 교리와 행위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우리는 이러한 연합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진리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기회로 삼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부가설명> 수요일 문제의 연합과 협력은 다른 사안이다. 화잇이 제시한대로 협력할 사안들이 다른 교단뿐만 아니라 불신자의 세계에도 있다. 그러나 연합은 아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은 연합과 일치에 대한 것이지 협력에 대한 것이 아니다. 연합하면 협력이 더 쉽다. 그러나 인류를 위한 일반적인 봉사에 협력하는 것과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된 것 같이 연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신앙사상이 일치하지 않는 연합은 성경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협력과 연합에 대한 것을 바른 견해로 구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류를 위한 도덕적 구호적 입장에서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고 협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과 신앙적 연합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사상의 진리와 오류가 연합할 수 없고 연합해서도 안 된다.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이상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타협하지 않으면 연합은 되지 않는다.

 

교훈 : 예수님이 바라는 연합은 재림교회의 연합뿐 아니라 다른 교회와의 연합도 포함한다. 우리는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이상 다른 교회 신자와 협력할 수 있다.

 

 

1018() 사랑으로 하나 된 믿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1. 17:3에서 예수님은 영생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일 2:3~6을 읽어 보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드러내는가?

[요일2:3~6]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는 생활을 할 때에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 불리기를 바라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성경의 의무는 무시한다. 일부는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가 그분의 계명을 폐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계명의 준수는 하나님을 알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는 표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단지 이론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진다.”Ekkehardt Mueller, The Letters of John (Nampa, Idaho: Pacific Press, 2009), p. 39. 예수님도 이렇게 강조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14:15, 2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2~3).

 

2. 13:34~3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계명을 주셨는가? 이 계명은 신자들이 서로 연합해야 한다는 개념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새 계명을 주셨는데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 연합되는 것은 자연적인 결과가 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명령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지시에도 있었다(19:18). 반면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제자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예수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모본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새로운 윤리 규범이다.

우리 앞에 얼마나 놀라운 표준이 세워졌는가! 예수님의 생애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실질적인 증거였다. 모든 은혜의 사역은 사랑과 자기부인 곧 자기희생적인 노력의 정신으로 이뤄지는 지속적인 봉사이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끊임없는 사랑과 자기희생의 발현이었다. 예수님을 움직인 그 원칙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우리를 움직이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 같은 사랑은 세상에 얼마나 강력한 증거가 되겠는가. 또한 그 같은 사랑은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한 연합의 힘이 되겠는가?

 

<부가설명>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15:12에서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밝히셨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의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살려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죽어주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에게 영원한 생명의 활기를 주는 열망으로 사귀고 만나는 것이다. 생명의 활기를 더해주는 정신이 없는 교제는 예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을 뜻한다. 이 생명이 없는 사람은 교인일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다면 이 사랑이 생기게 되어 있다. 이 생명의 본질이 사랑하는 것이다.(요일3:14) 이 사랑은 혈연의 사랑이요 생명의 사랑이다. 당연히 하나로 연합하게 된다. 새 계명의 진정한 뜻을 알고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자.

 

교훈 :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알고 자신이 우리를 희생적으로 사랑한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에 강력한 증거가 되기를 바라신다.

 

 

1019()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 443~446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읽어 보라.

계시록 12장의 순결한 교회는 계시록 17장의 음녀와 대조를 이룬다. 음녀는 계시록 21~22장에 등장하는 어린 양의 신부 곧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큰 성 바벨론이다. 1세기에 보편적인 교회는 매우 가시적이었지만 중세와 같은 시대에 그것을 본다는 것은 더 어렵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재림교회는 하나님의 참교회라는 개념을 그들의 교단에 국한시키지도 그것을 다른 교단으로 확장시키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참교회는 그분을 진리로 믿는 자들로 구성된다. 하나님은 그들을 아신다. 한편 재림교회는 그들이 계시록 12:1712~14장에 나오는 마지막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고 가시적인 남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이 남은 무리는 지역적일 뿐 아니라 보편적인 특성도 있다.”Ekkehardt Mueller, “The Universality of the Church in the New Testament,” in Angel Manuel Rodriguez, ed., and Message, Mission, and Unity of the Church (Silver Spring, Md.: Biblical Research Institute, General Conference of Seventh-day Adventists, 2013), p. 3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를 성취하는 것이 교회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세기 교회뿐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의 연합을 위해 예수님이 소망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세상에 참 진리를 증거하는 능력이 된다. 예수님 안에서 진리로 하나 되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그대의 교회는 다른 교단의 교회와 협력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안이 적절하고 우리의 신앙을 타협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협력해야 합니까?

인류를 위한 도덕적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협력할 수 있다. 협력하면서 그들에게 진리의 진수를 나타내보일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 :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올리신 대제사장의 기도는 그분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연합에 대해 염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분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믿음을 다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신학적인 관점에 차이가 있는 다른 교단의 신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과 맺는 관계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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