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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일 안식일

일몰오후 526

 

연구 범위 : 벧전 2:9, 19:5~6, 2:19~22, 고전 3:16~17, 고전 12:12~26, 10:1~11, 23

 

기억절 :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비유와 상징은 그것들보다 더 큰 실체를 가리킨다. 성경을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듯이 성경은 그러한 비유와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성경에 나오는 제사 제도는 본질적으로 더 큰 실체인 예수님과 전체 구원의 계획을 상징한다.

성경에서는 많은 종류의 비유들이 사용된다. 그중에는 종종 물, , 바람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물질 요소들이 등장한다. 문맥에 따라 이것들은 영적이고 신학적인 진리들을 묘사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8)고 말씀하셨을 때에 바람성령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교회로 하여금 세상 앞에 연합을 나타내라고 요구하신다. 성경은 그러한 종류의 연합을 묘사하기 위해서도 여러 비유를 사용한다. 각각의 비유 그 자체로는 온전한 의미를 다 담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유들을 종합해 보면 교회의 연합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 교회와 하나님의 관계, 신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교회와 지역사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연합이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필수적임을 드러내는 성경의 비유들을 탐구한다.

느끼기 : 교회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통해 연합할 필요성을 느낀다.

행하기 : 각자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위해 기여한다.

 

그대는 성경이 교회를 무엇에 비유한다고 알고 있습니까?

살아있는 몸으로 유기체로 비유한다. 많은 비유들은 연합과 일치 밑 예수께 순복할 것을 가르친다.

교회를 하나님의 집 또는 가족으로 비유하는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2:19)

유대와 충성과 혈연의 사랑의 연합에 대한 의미가 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하는 방식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고전 12:12, 27)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순복하여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생각을 깊이 새기게 한다.

우리는 양떼로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합니까?(10:1~11)

그분의 말씀대로 전적으로 순복해야 한다.

 

결론 : 신약 시대의 교회들에 대한 은유들은 교회가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핵심적인 본질과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가져야 하는 조화로운 관계를 예증합니다.

 

 

114() 하나님의 백성

 

1. 벧전 2:9, 19:5~6, 4:20, 7:6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지위는 무엇인가?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4:20]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풀무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며,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께 속하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며,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이다.

 

교회는 곧 사람들이지만 아무 사람들이나 다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께 속한 백성,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와 구주라고 주장하는 백성,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량함을 받고 그분께 순종하는 백성이다. 교회에 대한 이런 개념은 구원의 계획이 제시된 이후부터 이 땅에는 줄곧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으며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신약시대의 교회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개념을 강조한다. 아담의 때로부터 홍수 전후의 조상들과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과 긍휼과 공의를 세상에 나타내는 대표자들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로 불린다. 이러한 용어들은 그들이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벧전 2:9)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는 또한 출 34:6~7에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에 대한 묘사를 반영한다. “하나님이 교회를 그의 특별한 소유로 취득하여 교인들이 품성의 고귀한 특성들을 그들의 삶에서 반영하고, 그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게 하셨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성경주석 14, 200).

 

2. 7:6~8을 읽어 보라.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그분의 백성으로 선택하게 했는가? 이것은 어떻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가?

[7:6~8]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며 그것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맹세를 지키시는 것이었다.

 

 

오늘날 어떤 나라가 과연 거룩한 나라일까? 물론 그런 나라는 없다.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비록 성경은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르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수립과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할 뿐 어떤 인간의 공로도 그것의 기초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세우시는 것은 세계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의 행위이다. 하나님은 국가적인 범위의 죄와 배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후손 곧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셨다. 하나님이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 그분의 은혜의 행위인 것처럼 그분의 구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주제는 우리 모두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부가설명>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창조주의 일방적인 일이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창조가 그렇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해보는 것이다. 사람이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지자 창조주께서는 그들을 다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놓겠다고 선언하셨다. 그 선언도 의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모든 것은 일방적이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고 사람은 그분이 창조하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가 태어나는 것도 부모의 일방적인 일이다. 태어날 자녀와 의논하고 자녀를 출생시킨 것이 아니다. 자녀의 양육도 일방적이다. 그런데 자녀가 의식이 작용하면서부터 일방적인 일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게 된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일이지만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에 동의하게 된다. 자기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었다. 아브라함과 협상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선민이 되었다. 조상들과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말이 이런 뜻이고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이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 선민의 일이다.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으면 스스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서 떠나는 것이고 결과는 사망으로 끝나는 것이다.

 

교훈 :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하고 선택하신 백성이며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에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도록 부름을 받은 백성이다.

 

 

115() 하나님의 권속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9).

 

신약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권속으로 비유한다. 교회는 돌들로 쌓아 올린 건물이다. 그것은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인 인간관계의 본질을 강조하는 하나의 은유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산 돌들이라고 불렀다(벧전 2:5). 이러한 은유는 또한 영속성과 견고성이라는 특성을 내포한다.

 

1. 2:19~22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핵심 개념들은 무엇인가? 이 비유는 교회 안의 연합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2:19~22]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 건물은 자재(資材)들이 연합하여 완성되는 것처럼 교회는 교인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지며 동시에 연한된 교인들은 또한 하나님의 권속, 곧 가족이 된다는 것을 말하면서 성도들의 연합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바울은 무생물적인 집 또는 건물 그리고 생물적인 사람들의 가족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결합한다.

돌 하나는 거의 가치가 없다. 그러나 다른 돌들과 결합되면 생애의 풍파를 견딜 수 있는 하나의 구조물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돌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교제를 통해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건물이 견고해지려면 단단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기초이시며 하나님의 집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이시다(고전 3:11 참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모든 활동의 기초로 삼지 않는다면 존재하기를 그치게 될 것이다. 교회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곧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연합한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예수님 곧 그분의 성품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우리를 통하여 하신 일들, 그분이 자신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 제공하시는 것들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집이라는 비유는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에 의존한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자매의 개념과 유사하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결속은 단단하기 때문에 종종 그 충성도는 다른 것들을 초월한다.

충성도는 연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충성이 없으면 어떠한 연합도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은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교회의 신자들은 커다란 한 가족의 일원이다. 우리는 아담이라는 동일한 조상을 통한 인간 가족의 일원일 뿐 아니라 동일한 중생의 경험을 통하여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과도 연결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함께 공유하는 교리적인 진리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은 회심한 영혼들이 되었다는 경험을 통해서도 서로 연합하게 된다.

 

<부가설명> 바울은 교회를 성전이 지어지는 것으로 설명한다. 교인 개개인은 어느 용도에든지 사용되는 건축 자재와 같다고 설명한다. 모든 교인들은 교회라는 하나님의 성전의 요긴한 돌들이다. 산돌들이다. 그것은 하나라도 빠지든지 깨어져나가면 교회가 이지러지는 것이다. 자기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하며 절대적인 연합으로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 또한 바울은 교인들을 하나님의 권속(眷屬)이라고 한다. 권속이라는 말은 한데 엮어져 있어서 서로 돌보는 관계를 뜻하는데 가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가족은 혈연으로 형성된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형성된 하나님의 가족들이다. 혈연들이다. 가족들은 상호간의 유대가 다른 조직과 다르다. 사상적으로 연합된 단체보다 혈연이 더 강하다. 세상에는 혈연보다 이념을 더 강하게 결속시키는 단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회도 예수 사상으로 결속된 이념단체이기도 하며 동시에 예수님의 피로 연결된 혈연가족이다. 이념이 일치하고 더구나 혈연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 일치와 연합은 어느 것보다 강력하다.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고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세워진 하나님의 집이자 가족으로 비유할 수 있는 공동체이다.

 

 

116() 성령의 전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바울이 사용한 또 다른 건물의 비유는 하나님 또는 성령의 전이라는 비유이다. 그것은 값진 건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고전 6:19에서 바울은 개인의 신체를 성령의 전이라고 일컬었지만 고전 3:16~17에서는 교회를 고대 근동에서 가장 거룩하고 값진 건축물이었던 하나님의 성전으로 비유했다.

 

1. 고전 3:16~17을 읽어 보라. 교회가 성령의 전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17절에서 바울은 무엇에 대해 경고하는가?

[고전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는 성령께서 거하시며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한다.

 

교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바울이 염두에 두는 것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외형적인 성전 또는 공간이 아니다. 성경의 그리스어는 너희를 구별한다. 이 성경절에서는 너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집합적인 인격을 가리킨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함께 성령의 전을 구성하며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은 그들 중에 거하신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의 친교 속에 내주하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러한 친교를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종종 이 성경절은 개인의 신체를 돌봐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물론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지만) 그것은 여기서 바울이 밝히려고 했던 정확한 요점이 아니다. 대신 그의 기별은 교회의 연합을 깨려는 자들에게 대한 경고였다.

고전 3:3에서 바울은 자신이 생각하는 연합의 위험 요소를 언급하였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이러한 태도와 행동들은 신자들의 연합을 위협할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성전에서 떠나시게 한다.

즉 교회 안에서의 갈등은 하나님의 전을 파괴한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의 연합을 위협하는 태도와 행위들을 신자들이 내려놓기를 원했다. 교회에 갈등이 생길 때 고린도 신자들에게 보낸 바울의 이 충고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부가설명> 바울이 여기서 너희(複數)를 사용한 것은 첫째는 성도 개개인에 대한 말이고 다음은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뜻하면서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들 전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교회는 성도들이라는 세포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님은 친히 교회의 머리시고 성령께서는 교회의 신경 줄이며 혈관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성령께서 교회에 활동하시지 못한다면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은 마비현상에 빠진다. 세포의 역할을 하는 교인 개개인은 건강한 세포 지체가 되어야 한다. 이 세포가 바르게 일하지 않으면 암세포가 될 수 있다. 암세포는 몸을 망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교인들이 건강한 성도가 되지 않으면 교회라는 몸은 마비된다. 그러므로 세포가 더러워지지 않아야 한다. 더러워지는 것은 영적 교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의 깨끗함도 포함된다. 그래서 건강기별을 주신 것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성도가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은 영적인 것만이 아니다. 육도 포함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교인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교인 한 사람이 건강기별을 무시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더러워지게 된다는 것을 교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으로도 비유된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친교와 연합 속에 임하시기 때문에 그런 연합을 깨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117() 그리스도의 몸

 

교회에 대해 가장 많이 알려진 비유는 아마도 여러 지체들의 연합에 대해 언급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비유일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12, 27).

몸이 다양한 기능과 책임을 맡은 여러 지체들로 이뤄진 단일 구성체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1. 고전 12:12~26을 읽어 보라. 여러 지체를 가진 한 몸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그대의 지역 교회에 적용되는가? 또한 그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처럼 세계적인 교회 조직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고전12:12~26]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하나님의 참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조직을 가진다. 그것이 세계적 조직이다. 그 조직 아래 지방에 작은 조직의 교회가 형성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고전 12장에서 강조하는 바울의 교훈은 진정한 기독교의 연합이란 단순히 다양함 속에서 뿐 아니라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함을 통해서 통일이? 완전함이? 이뤄진다는 심오한 진리를 전한다. 우리는 다양함이 표출되는 근원이 성령이시라는 사실에 놀라서는 안 된다. 인간의 신체가 놀랍게 연결되어 있음과 동시에 신기하게 나눠져 있는 것처럼 이상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리스도의 몸은 이러한 다양성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내포하는 완전함과 풍부함을 나타낸다.

이러한 개념은 곧장 우리에게 호소한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거의 모든 배경과 문화와 환경으로부터 나온 사람들로 구성된다. 우리는 민족, 종족, 문화, 교육, 연령의 차이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나눠지게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합의 힘이신 성령은 이러한 다양성을 매만지셔서 우리가 모두 다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진리가 드러나게 하신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서 왔든지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십자가 아래서 평등하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갈수록 분화되고 있지만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도 연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복음이 가지고 있는 치유와 화해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다. 놀랍게도 바울은 이러한 이상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지 말해준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5: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1:18). 교인들이 각자 예수님과 영적으로 연결되면, 전체 몸은 동일한 양식을 먹고 자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배운 진리에 순종하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예배와 기도로 연합하는 공동체적인 경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가설명> 몸은 유기체이다. 유기체란 각 부분이 일정한 목적아래 통일·조직되어 있으며,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조직체를 말한다. 유기체의 대표적인 것이 생물들의 몸이다. 교회는 이런 유기체라고 성경이 가르친다. 그 머리는 예수님이시다. 지시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모든 성도들은 몸의 지체들이며 지체의 각 부분이다. 더 세밀하게 말하면 세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은 뇌의 지시를 따라 움직인다. 한 몸은 한 생명에 의하여 한 목적으로 움직이고 모든 지체들이 이 목적에 합당하도록 활동한다. 이 목적에 맞지 않게 활동할 때 병이 생긴다. 병이 생기는 것은 생명력이 약해진다. 교회도 그렇다. 교인 하나가 병이 들면 교회가 아프다. 특히 중병이 들면 교회가 운신하지 못하게 된다. 보이는 신경 줄과 혈관이 성경진리와 거기에 기초하여 정리된 교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지체들 세포들은 이 진리와 교리에 의하여 목적에 합당하게 활동해야 한다. 여기에 반하게 되면 몸이 병들게 된다. 오늘날 재림교회는 질병이 많은 것 같다. 교인 개개인이 참으로 건강하면 교회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병이 들면 교회는 활동을 중지하게 되고 심지어 불구가 되면 지탄을 받게 된다. 나는 건강한 지체인가? 예수님의 생명이 성령으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가?

 

교훈 : 교회는 여러 지체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지지만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됨으로 한 몸이 된다.

 

 

118() 양과 목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1. 10:1~11을 읽어 보라. 교회를 양떼로 비유하는 이 말씀은 어떤 면에서 연합에 대해 말하는가?(23편 참고)

[10:1~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선한목자와 양은 하나로 움직인다. 양은 목자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른다. 목자는 양을 떼로 먹이고 인도한다. 양이 개별적으로 놀면 잃어버린 양이 된다.

 

현대의 대도시에서 떼 지어 다니는 동물을 보기란 매우 드물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떼와 목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 당시의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잘 이해했다. 그분이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즉시 그분께서 시 23:1을 언급하고 계심을 알아차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그러한 비유는 알아듣기 쉬울 뿐 아니라 그 의미를 생생하게 만드는 정서적인 가치로 가득하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뿐 아니라 오늘날 중동에서도 목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양떼를 돌보는 데 헌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자의 모습은 하나님의 성품뿐 아니라 그분과 백성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장 다정한 이미지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양떼로 묘사하는 비유는 흥미로운 개념이다. 양들은 본성적으로 온순하고 무방비적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선한 목자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양들은 어리석다. 때로 그것들은 갑자기 사라진다. 그러면 목자는 그것들을 찾아 양우리로 데리고 온다. 어린 양들은 종종 들어서 옮겨야 하고 더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양떼를 돌보는 데는 인내와 이해심이 필요하다. 여러 면에서 이것은 교회를 설명하는 완벽한 비유이다. 신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는 단지 목자와의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얻으면 된다.

예수님도 그 비유에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소수의 양떼는 한 울타리나 양우리에 넣어서 보호할 수 있다. 그러면 나중에 나눠지지 않는다. 목자는 단지 울타리의 문에 서서 양들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에게로 올 것이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10:4). 목자의 음성을 듣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의 연합과 안전성은 그분과의 거리에 달려 있으며 그분의 음성에 대한 순종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부가설명> 양떼와 목자의 관계는 양떼의 안전과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다. 교과 저자의 말대로 양들은 대체로 어리석다. 오래 전에 어떤 미국인이 한국 사람들을 양같이 어리석은 국민이라고 비꼰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시턴의 동물 기에는 미국 초기에 양 목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양떼는 목자가 없으면 어디로 가야할는지 몰라서 뿔뿔이 헤어진다고 했다. 목자가 양들이 뭉칠 수 있도록 염소를 소수의 양들의 리드로 세운다고 했다. 밤에 넓은 목장에서 양들은 리드인 염소를 중심으로 뭉쳐서 잔다고 했다. 이리 떼가 와서 양을 물어갈 때 염소를 공격하면 양들은 어쩔 줄 모르고 한 마리도 뭉치지 않고 각각 흩어지면 이리들은 흩어져 혼자 있는 양들을 물어 간다고 했다.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그렇기 때문에 목자의 돌봄과 인도는 양들의 생명이며 안전이다. 교인들도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절대적으로 그분의 말씀대로 따라야 한다. 한눈팔고 딴전을 피우면 이리에게 먹히게 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 재림교회에 그렇게 이리의 밥이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절대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인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바르게 깨닫고 이것이 정로니 이리로 가라는(30:21) 목자의 음성을 잘 듣고 그대로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일치하게 된다.

 

교훈 : 교회는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모시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르며 그분의 돌봄과 보호에 의지해야 하는 양떼와 같다.

 

119()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476~484 ‘거룩한 목자’, <교회에 보내는 권면>, 240~243 ‘지상의 교회를 읽어 보라.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뿐 아니라 흔한 그리스-로마식 가옥에 대해서도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의 신성함, 교회의 수립과 성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할, 그리스도와 성령이 이루시는 사역의 결정적인 본질 그리고 교회 내부에서 형성되는 신자들의 연대를 가시화할 수 있도록 성전 은유를 사용했다. 건축 분야는 정적인 이미지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은유는 생물학적인 이미지와 결부되어 사용되었고, 강조점은 건축의 과정에 있었다. 그것은 정적인 이미지 이상이다. ‘우리는 완성된 건축물보다는 건축의 과정을 담은 역사를 시각화해야 한다.’ 교회는 그것의 삶과 역사 속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성전’(고후 6:16)을 겸손히 확인할 수 있는 경이로운 특권을 부여받았다.”John McVay, “Biblical Metaphors for the Church: Building Blocks for Ecclesiology,” in Angel Manuel Rodriguez, ed., Message, Mission, and Unity of the Church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2013), p. 5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교회에 대한 성경의 여러 비유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딤전 3:15, 딤후 2:3~5, 벧전 2:9에도 교회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딤전3:15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고 딤후2:3~5은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했으며 경기하는 자라 했고 벧전2:9은 왕 같은 제사장이요 택하신 백성이며 거룩한 나라라고 했다. 이 모든 비유적 표현들은 연합과 예수님의 지도를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을 나타낸다. 모든 비유 중에 몸의 비유가 가장 좋은 비유가 아닐까?

 

우리 형제들 사이의 신뢰는 교회의 번영에 필수적이고 행동의 일치는 신앙의 위기에서 중요하다. 경솔한 발걸음 하나, 부주의한 한 가지 행동이 교회를 수년간 회복시킬 수 없는 어려움과 시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교회증언 3, 446). 이 권면에 따르면 우리는 무엇에 주의하면서 교회의 연합을 지켜야 할까요? 이러한 거룩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신자로서 우리의 언어와 판단과 태도에 주의해야 한다. 또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의 뜻을 묻고 깨닫고 순복해야 한다.

 

요약 : 신약성경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예증하기 위해 여러 은유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은유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세심하게 돌보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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