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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밧모 섬에서 전하는 복음

 

15일 안식일

일몰오후 527

 

연구 범위 : 1:1~8, 14:1~3, 29:29, 14:29, 1:7, 3:20, 7:13~14

기억절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지금으로부터 약 1,900년 이전에 사도 요한이 에게 해의 밧모라고 알려진 작은 바위섬에 유배되었을 때(1:9) 환상의 형태로 그에게 계시되었다. 1:3에 따르면 이 책을 읽고 그 교훈을 지키는 자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6:47~48 비교). 이 말씀은 기별을 듣기 위해 교회에 회중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그 책의 말씀을 읽거나 들어서가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해서 복을 받을 것이다(22:7 참고).

계시록의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보신다는 하나의 표현 방식이다. 우리는 이 예언들을 통해 우리 생애의 부족과 연약함에 주목하는 동시에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과 그분이 우리의 대제사장과 왕으로 이루시는 사역을 보고, 복음을 전파하라는 부르심에 귀를 기울인다.

성경의 예언들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과 같다(벧후 1:19). 그것들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도하여 미래의 소망을 제공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수립될 때까지 우리에게는 이러한 예언 안내서가 필요하다.

 

학습목표

 

깨닫기 : 예수님이 계시록의 중심인물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이 예언을 통해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계심을 알고 감사하며 기뻐한다.

행하기 : 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연구할 뿐 아니라 그 교훈들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그대는 계시록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주목해야 할 내용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과 그분의 재림.

계시록의 원래 제목은 무엇이며 전체적인 기록 목적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성도들이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며 재림을 고대하는 소망 중에 역사적 상황에서도 승리하게 하려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언급하는 서두에서 우리는 구속 사업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헌신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과 끝 날까지 성도들을 돌보시는 사랑을 알 수 있다.

그대는 계시록이 어떤 사건에 초점을 맞춰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과 그분의 재림.

 

결론 :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통해서 하늘로 승천하신 이후에도 당신의 교회를 잊지 아니하시고 사도 시대의 교회뿐 아니라 마지막 시대까지 교회가 겪을 일들 속에서 그분께서 어떻게 개입하실지 미리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에 확신을 더해 주십니다.

 

 

첫째 날 1230()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1:1).

 

1. 1:1~2을 읽어보라. 이 책의 제목이 담고 있는 중요성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제목은 그것이 누구에 관한 책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주는가?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 제목은 이 책의 근거를 밝히고 있다. 곧 예수님이 주신 것을 확인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라고 가르쳐준다.

 

1:1은 이 책의 제목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밝힌다. ‘계시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뚜껑을 엶’, ‘비밀을 공개함이라는 뜻의 아포칼립시스이다.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개 문서로서 예수님에게서 비롯된 그분에 관한 내용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22:16) 이 책은 예수님이 그 모든 내용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계시록은 예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시는 자기계시임과 동시에 그분께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관심의 표현이다.

예수님은 계시록의 중심인물이다. 그 책은 그분으로 시작해서(1:5~8) 그분으로 마친다(22:12~16). “다니엘서가 말하게 하라. 요한계시록이 말하게 하라. 그리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그러나 주제의 어떤 면을 제시할지라도 예수님을 모든 소망의 중심,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22:16)로 높이도록 하라”(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118).

계시록의 예수는 사복음서의 예수이기도 하다. 계시록은 복음서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시는 모습을 계속 묘사하고 있다. 계시록은 예수님의 정체와 사역의 다양한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복음서가 끝나는 지점 곧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에서부터 시작한다.

히브리서와 함께 계시록은 예수님의 하늘 사역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뒤에 보좌에 즉위하시고 하늘성소에서 제사장의 봉사를 시작하셨다.

계시록과 히브리서가 없었다면 자기 백성을 위해 하늘 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크게 제한될 뻔하였다. 심지어 계시록은 우리로 하여금 히브리서 이상의 특별한 관점으로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바라보게 한다.

 

<부가설명> 우리가 요한계시록이라고 말하는 이 책은 우리가 부르는 책 이름이 바른 것이 아니라고 1절에서 가르쳐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책 자체가 가르쳐주는 대로 책 이름을 예수 계시록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교회 전통이 요한계시록이라고 내려오니까 그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성경 전체가 예수님의 계시니까 구별삼아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런 사실에 근거해서 신학고 교회 전통이 순수하게 성경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신학과 전통이 필요하고 중요하기도 하지만 성경자체의 기록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우리는 신앙과 진리에 대하여 대답을 찾을 때에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4:3)고 묻고 대답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이 일에 엄청 실패했다. 교회가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묻고 대답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지 않는가? 재림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성경,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듣고 깨닫고 그 지도를 받아 계시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교훈 : 계시록의 원래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며, 그 중심인물도 그분이시다. 이 책은 하늘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일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준다.

 

 

둘째 날 1231() 기록 목적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1:1).

 

1:1은 이 책이 기록될 당시의 시대로부터 출발하여 미래의 사건들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계시록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미 성취된, 혹은 미래에 성취될 여러 사건들에 대한 예언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성경 예언의 주된 목적은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기든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다. 계시록도 바로 그런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역사의 모든 시대와 엄숙한 종말의 사건 속에서도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신다고 확언한다.

다시 말해서 계시록의 예언들은 두 가지의 실제적인 목적 즉 우리가 어떻게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기록되었다.

 

1. 29:29을 읽어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왜 어떤 일들은 우리에게 계시되지 않는가? 또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계시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즉 그것은 왜 우리에게 알려지는가? (22:7 참고)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 오묘한 일들은 계시하지 않으셨다. 즉 하나님께만 속한 것들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셨으나 드러난 일들, 곧 우리가 알아야 할 일들은 계시해주셨고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종말에 대한 계시록의 예언들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미래의 특정 부분만을 드러낸다. 예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심각성을 부각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순종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공개된다.

오랜 세월 동안 종말 사건에 관한 가르침에는 추측성 해석과 선정주의(煽情主義)가 난무했다. 임박한 종말을 예언함으로써 끝이 가까우니 자기의 사역에 재정을 기부하라고 사람들을 협박했던 자들은 큰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종말은 오지 않았고 사람들에게는 환멸과 실망만이 남았다. 하나님이 선한 목적으로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예언은 이렇게 남용되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14:29).

 

<부가설명> 성경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두 가지 목적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예언을 주신 예수님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도 둘째는 기록된 말씀 성경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13:19은 첫째 목적을 나타내고 요14:29은 둘째 목적을 나타낸다. 13:19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셔서 예언한 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거든 내가 그인 줄 믿게 하려함이라고 하셨다. 예언과 그 성취는 예수님이 바로 그이, 곧 구약에서 예언한 그분 구주라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다. 14:29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예언한 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거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는데 기록된 대로 성취되었으니 그 기록을 믿게 하려는 목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다니엘서나 계시록의 예언을 연구하고 배우면서 나라들이 어떻게 되었고 역사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예수님과 기록된 말씀을 믿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의 성취만 보고 예수님과 성경의 확실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예언 연구를 올바르게 한 것이 아니다.

 

교훈 : 계시록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셋째 날 11() 계시록의 상징적인 언어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1:2).

 

1. 13:1, 7:1~3, 1:1~14을 읽어보라. 이 모든 환상의 한 가지 공통점은 무엇인가?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7:1~3]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1~14] 제 삼십 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2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오일이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6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8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12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3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14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 상징적 형상과 상징적 언어로 기록된 것이다.

 

1:1은 계시록이 하나님께서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 책의 매우 중요한 한 단어가 나왔다. ‘알게 하다라는 말의 그리스어 세마이노상징적인 표적을 보이다라는 뜻이다.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칠십인역)을 보면 이 단어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금, , , 철로 구성된 신상에 관하여 설명할 때 사용된다. 그 꿈은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2:45) 것이었다. 요한이 그런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계시록의 장면들과 사건들이 그에게 상징적인 형태의 환상으로 제시되었다는 뜻이다. 성령의 지도에 따라 요한은 환상을 통해 제시된 상징적인 표현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1:2).

따라서 계시록의 예언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언어들은 대부분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경이 문자적인 의미일 것이라고 전제하며 그것을 읽는다. 그러나 계시록을 읽을 때는 본문 자체가 문자적인 의미를 가리키지 않는 이상 그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예언된 장면과 사건들이 마치 현실처럼 보일지라도 그것들은 대개 상징적인 언어로 꾸며져 있다.

만약 우리가 계시록의 상징적인 특징을 명심하다면 예언의 기별을 곡해하지 않을 것이다. 계시록에 사용된 상징들의 의미를 확정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인간적인 상상의 산물 또는 현재 문화에서 통용되는 상징의 의미를 그 본문에 대입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신 계시록에 사용된 상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그것들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계시록의 그러한 상징들의 의미를 해석할 때, 우리는 그것들의 대부분이 구약성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언어로 미래를 그림으로써 하나님은 미래에 있을 그분의 구원 사역이 과거에 있었던 그분의 구원 사역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우리 마음에 각인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과거에 자기 백성을 위해 하신 일들을 미래에도 다시 하실 것이다. 따라서 계시록의 상징과 이미지들의 의미를 해독하는 일은 구약성경을 주목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부가설명> 성경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40:8)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과 문화적 사조와 인간의 학문으로 해석하고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요한계시록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인간의 생각의 모습이다. 요한이 기록했지만 예수님의 계시인데 요한계시록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해석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 직접 나타나셔서 해석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해석하시는 것인지 알 수 있는가? 합당한 질문이다. 그것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다니엘 7장 처음에는 네 마리 짐승이 나오고, 후반에는 짐승은 왕국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렇게 성경이 해석한 것을 찾아 해석하도록 마음을 열고 주님께 기도하고 성령이 가르치는 대로 말씀을 찾아 그 뜻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여 이해하라고 암시하였다.(28:13)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셨다.(16:13~15)

 

교훈 : 계시록은 상징적인 언어로 기록되었고 그 이미지들이 대부분 구약성경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할 때는 가장 먼저 구약성경을 주목해야 한다.

 

 

넷째 날 12() 삼위일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1:4~5).

 

계시록은 바울의 서신들처럼 인사로 시작한다. 그것은 서신의 형식으로 요한의 시대에 소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일곱 교회에 보내졌다(1:11 참고). 그러나 계시록은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1. 1:4~5, 1:7을 읽어보라. 그들은 어떤 동일한 인사말을 사용하는가? 그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문안하는가?

[1:4,5]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은이 있기를 문안했다.

 

계시록과 로마서 모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는 서신체(書信體) 인사말을 사용한다. 그 문구는 그리스식 문안 카리스와 히브리식 문안 샬롬(평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성경절들에서 보았듯이 은혜와 평강의 시여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1:8, 4:8 참고)이시다. 이러한 명칭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3:14)라는 뜻의 그분의 거룩한 성호 야훼곧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를 상기시킨다.

성령은 일곱 영으로 언급된다(4:5, 5:6 비교).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 숫자이다. “일곱 영은 성령께서 일곱 교회에서 모두 활동하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이미지는 성령의 무소부재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부르심을 완수할 수 있도록 그분께서 역사의 모든 시대마다 그들 가운데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심을 말한다.

예수님께는 세 가지 명칭이 주어졌다. 그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1:5) 분이시다. 그 명칭들은 그분의 십자가 죽음, 부활 그리고 하늘 통치를 가리킨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일들을 이루셨는지 언급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1:5~6)셨다.

그리스 원어를 보면 우리를 사랑하심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괄하는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은 그분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원어로 해방시키셨다라는 말은 과거에 완료된 행위를 말한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서 온전하고 완전한 속죄를 제공하셨다.

 

<부가설명>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없이는 결코 인간들에게 임할 수 없는 것이다. 은혜는 예수님 자체이다.(1:14) 평강도 예수님이신데(9:6) 성령으로 우리에게 부어진다. 계시록의 계시도 삼위일체, 삼위일명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세상에 두신 하나님의 교회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역사를 이어가는 동안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지대한 관심으로 지켜보시고 관계하시고 인도하신다.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도 역사적 모든 교회를 성령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교회에서 진리의 말씀을 강론할 때 목회자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설교하는 목회자도 회중과 함께 듣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설교자는 가르치는 자며 전파하는 자이고 회중들은 듣는 자라는 것은 성경 계시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할 때에는 설교자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회중에게 전하는 자로서 함께 듣는 자의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교회에는 은혜와 평강이 이르지 않겠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렇게 교회를 인도하신다.

 

교훈 : 계시록은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아버지와 교회 가운데서 일하시는 성령님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문안한다.

 

 

다섯째 날 13() 계시록의 주안점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7~8).

 

1. 1:7~8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의 언어는 단 7:13~14, 12:10, 24:30 같은 몇 가지 예언적인 본문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성경절들은 재림의 확실성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1:7,8]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7:13,14]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각 성경구절에서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의 확증을 인용하였다.

 

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역사의 종착점이다. 재림은 모든 불행, 고통, 아픔,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이 세상 역사의 종지부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신약성경의 다른 본문과 마찬가지로 계 1:7 역시 위엄과 영광 중에 임하실 그리스도의 문자적, 가시적, 인격적인 재림을 가리킨다. 그때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분의 오심을 목격할 것인데 그 중에는 그를 찌른 자들도 포함된다. 이는 재림 직전에 그분을 못 박은 자들을 포함하여 특별 부활이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반면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저버린 지상의 거주민들에게는 심판을 가지고 오실 것이다.

구주께서 오시리라는 약속을 주신 뒤로 천팔백 년 이상이 지났다. 오랜 세월 동안 그분의 말씀은 그분의 충실한 백성들의 심령을 용기로 채웠다. 그 약속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고, 생명의 시여자의 음성이 아직 무덤 속에서 자는 성도들을 부르지 않았지만 발하여진 그 말씀은 여전히 확실하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지친 사람이 있는가? 영원한 세계가 너무도 가까운 이때에 우리가 믿음을 놓쳐야겠는가?”(The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9131113).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은 그러하리라 아멘”(1:7)이라는 말로 확증되었다. ‘그러하리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나이이고, ‘아멘은 히브리어로 긍정을 의미한다. 두 단어가 결합하여 확실성을 표현한다. 이와 비슷하게 그 두 단어는 이중 확신의 형태로 계시록의 결론을 맺는다(22:20).

 

<부가설명> 계시록에는 많은 구약성경의 내용이 나타나 있다. 그렇다고 구약성경구절을 편지서나 복음서에서 인용한 것처럼 인용한 것은 또 없다. 이런 것이 계시록의 한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교과 저자는 계1:7,8을 구약 여러 곳에 있는 내용들을 따서 짜깁기한 것 같은 인상으로 설명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도 요한이 그렇게 짜깁기 했을까? 그는 계시를 보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기록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 기록한 계시록을 읽어보니 구약성경의 내용들이 그처럼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된 것은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이나 모두 성령께서 친히 감동하셔서 기록하게 했다는 사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확신하게 된다. 요한이 의도적으로 구약성경을 찾아서 그런 사상이나 사실을 인용하지 않았으나 구약의 내용들이 계시록의 문장과 내용 속에 용해되어서 어떤 경우에는 구약을 그대로 인용한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로 구약과 신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을 드러낸 것이다. 과연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되게 예수님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있고 또 그 예수님이 구원사업을 수행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친히 봉사하시며 마침내 그들을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함께 있게 하기 위하여 재림하신다는 것을 힘 있게 가르쳐준다.

 

교훈 : 계시록에서 가장 중심적인 사건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계시록은 처음부터 그것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그분이 이 땅에 가져올 구원과 심판을 예고한다.

 

 

여섯째 날 14()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112~119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연구를 읽어보라.

 

이 계시는 전 그리스도교 시대를 통하여 교회를 지도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주어졌다.계시란 나타내는 것이다. 주께서 친히 당신의 종에게 이 책에 포함된 비밀들을 나타내셨고, 그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연구되도록 공개되기를 주께서는 계획하셨다. 계시록의 진리는 요한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처럼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예언 중에 묘사된 광경 중 더러는 과거의 것이며 어떤 것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하늘의 왕과 어두움의 권세 잡은 자들 사이의 대쟁투의 종말을 보여 준 것이며 어떤 것들은 재창조된 세상에서 구원 얻은 사람들의 승리와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누구도 계시록에 있는 모든 상징의 뜻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내포된 진리의 뜻을 알고자 하여 이 책을 연구하는 일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요한에게 이 비밀들을 나타내신 분께서는 부지런히 진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하늘의 사물들을 미리 맛보게 하실 것이다.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약속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사도행적, 583~58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밝히는 책이라면, 묵시라는 말이 오늘날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될까요?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계시록에 대하여 어떤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까? 계시록의 예언들이 종종 공포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묵시 또는 계시를 상상의 환상으로 여기는 문화적 경향 때문이 아닐까? 계시록의 언어가 공포를 자아내는 인상이 있고 또 이것이 심판과 관련되어서 많은 공포영화의 소재가 된 것 등이 이유일 수 있지 않을까? 또 사람들은 심판으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종말의 사건이나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 일부 사람들이 주장한 잘못된 예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동기와 마음과 상관없이 그런 잘못된 예언이 가져온 부정적인 결과들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예언을 믿지 못할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사탄이 잘 이용하고 있는 수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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