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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일곱 대통령(닉슨,포드,카터,레이건,아버지 부시,크린턴,아들 부시 ) 법률 고문이었던 
 왜 “나는 이단에서 나와” 참교회로 들어왔다고 말하였는가


 일본과 미국 최년소 사법시험 수석 합격, 미 육군 대령, 일곱 대통령 법률 고문 역임,
高漢實박사의 간단한 자서전


-----------------------------


나는 제주도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에서 출생했다.
한학자이신 아버지(山音 高珪南)는 향교 반수를 지내셨으나 빈곤한 농부였고


 어머니(金雲河)는 열렬한 불교 신자였다

 내가 4살 때 어머니 읽으시던 불경을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4살~5살 때 아버지에게 종아리에 피가 날 정도로 많은 매를 맞았다.
이유는 부모님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구는 개구쟁이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버지의 쌈지 담배를 피우려다 들켰는데,
“아버지는 피우시는데 나는 왜 못 피우느냐” 고 따지다가 매를 맞았다


 나는 나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 6살 때인 1932년 4월 경 제주도 한라산 록에 있는
 관음사라는 절로 보내졌다. 청정도량을 청소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아침 식사는 6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였다


 하루는 아침 청소를 끝 내고 졸다가 3분 정도 늦게 식사하러 갔는데
 내 자리에 있어야 할 밥과 반찬이 아무렇게나 장판 바닥에 놓여 있었다


화가 난 나는  부엌으로 가서 양동이에 물을 담아다가 내 밥이 있는 장판 바닥에 부어버렸다.
물이 방 전체에 번졌다.  주지 스님을 비롯하여 모두가 놀라서 일어섰다.


주지 스님의 호출을 받고 주지 스님 방으로 갔다. “ 왜 그렇게 했느냐?” 고 믈으셨다.

나는 “ 방바닥에 내 밥이 놓여 있었으니 이 장판 방은 내 밥그릇이 아닙니까?
시간이 늦어서 물 말아 먹으려고 그랬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지 스님은 한참 생각하신 후 그럴듯도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리고 어머니를 불러 엄중히 경고하셨다


 그로부터 약 6개월 후 1933년 6월 경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대불당을 청소하다가 부처님 좌석
 아래에 있는 골방에서 부처님께 드릴 떡과 과일들을 발견하고 배 고픈 때라 그것을 먹고 그 자리
 에서 잠 들고 말았다


 나는 현장에서 잡혔고 주지 스님은 죄 없는 어머니를 불러
 이 애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드니 데려가라고 했고 나는 결국 관음사에 쫓겨나고 말았다
( 옮긴자 주 : 안 쫓겨 났으면 결국 하나님을 모르는 중이 되었을 것이니,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


일본에서 법률학을 공부하게 되다

나는 부모님께 간청하고 또 간청한 끝에 1935년 4월부터 화북 소학교( 小學校 )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배운 것을 다 익히고 더 고학년 과목을 익혀 월반 또 월반 한 끝에

3월 25일 졸업식을 44일 앞두고 12살 때인 1938년 2월 10일에 일본 일류 명문인
 동경부립( 東京 府立 ) 제일 중학교( 5년제 )를 지원하고


고향을 떠나 관부 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끼에 도착했고 다시 동경 행 완행 열차를 타게 되었다

 화장실에 갔다 와보니 일본 남자가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 이 자리는 제가 앉았던 자리입니다.” 그랬더니

“ 뭐 이 새끼 죠센징”( 조선인 개새끼 라는 뜻 ) 하며 폭행을 가해 왔다.
나는 무서워서 화장실로 피해 가서 울며 생각했다


“ 고향을 떠날 때 부모님은 의사가 되라고 하셨지만
 나는 법관이 되어 저런 못돈 놈 버릇을 고쳐야겠다 고 결심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폭행한 그 사람에게 감사한다.
그가 나를 폭행하지 않았더라면 법관이 되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경에 도착해서 오짜로미스 역에서 내려 방을 찾았다

첫번째 집, 두번째 집, 세번째 집, 다 거절 당하였다. 그 때 나는 기도를 드렸다.

나에게 방을 빌려줄 사람이 있을까 하여 길 가에 앉아서 방을 얻게 해다라고 또 한번 기도했다


 네번째 집 주인 할머니에게

“ 나는 동경 부립 일중 지원생입니다.” 라고 하고 수험표를 보여드리며
“ 할머니와 한 방에서 같이 자게 해주세요,” 라고 요청했다


 할머니( 이름 오가와 하나 )는 나의 수험표를 보고 또 보신 후에
“ 왜 부립 일중을 지원했느냐?” 고 물으셨다

 나는 “등록금이 싸서 지원했다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나의 요청을 받아 주셨다.


드디어 입학 시험 날이 왔다.

내가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자 할머니는 “ 오늘 시험 잘 봤냐?”
고 물으셨다 나는 “ 최선을 다 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합격자 발표하는 날, 학교에 가 발표를 보고 와서 방 구석에 우울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 그것 봐” 라고 하시며

“그 학교는 아무나 들어가는 학교가 아니라 수재 중에 수재만 들어가는 학교”라고 말씀하셨다.
( 250명 모집에 11,560 여명 지원 )
“동경에는 좋은 학교가 많이 있으니 다른 학교를 지원해보라 “ 고 말씀하셨다.


그 때 나는

“ 할머니 합격은 했는데, 오늘 오후 3시까지 ,등록금 2원50전( 지금 25,000원))을 납부하라는데
 그 돈이 당장 없어서 고민 중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는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학교에 가서 합격자 발표 게시판과 내 수험 번호 7725번과 내 이름을
 대조해 본 후에야 “ 너 정말 합격했구나!” 하시며 나보다도 더 기뻐하셨다.


접수계에 가서 일주일 연기 요청을 했더니 단 1분도 연기 안된다,

납부가 늦으면 합격은 자동 취소된다고 하였다


 안에 들어가서 큰 책상에 앉으신 분( 교감 선생님 )께 요청했으나 접수계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할머니는 교감 선생님께서 등록금을 빌려 주시면 3일 내에 갚아 드리겠다고 요청을 하였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그 돈을 꿔서 등록금을 납부했다


 그날 저녁에 할머니는 팥밥( 축하하는 밥 )을 지어 옆집 사람들을 불러
“부립 일중에 합격한 우리 집 학생” 이라고 나를 자랑삼아 소개하셨다


 일본 최고의 명문 중학생이 되어 의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뜻과는 달리 법관이 되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하였다. 동경 가는 기차 안에서 조센징이라며 수치를 당하고 법관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또 다시 정의와 진리에 대한 도전 정신이 나를 사로 잡은 것이다


 입학하는 날부터 도서관에 가서 참고서와 육법전서( 六法全書 )를 빌려 읽기 시작하였다

 그 일중( 제일 중)에서도 2학년 때 고등학교 입학 자격 전형 시험에 합격하여


 일중 1학년 동기생들이 3학년 올라갈 때 나는 13세에 최고 명문인 제일 고등학교( 현 동경 대학 교양학부 )
1학년생이 되었고,

고2때 대학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중 동기생들이 중 5학년으로 진학할 때
 나는 15세 때, 동경 제국 대학( 東京 帝國 大學 ) 법학부 1학년생이 되었다


 중1때부터 읽기 시작한 육법전서는 거의 다 암기한 상태였다. 고향을 떠난지 5년 째, 내 나이 17세 때인
1943년 일본 고등 문관 시험 사법과에 응시해 최연소(17세) 수석 합격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1945년 1월 20일, 일본 육군에 소집되어 갑종 간부 입대하여 육군 소위로 임관, 병참 부대인
 마쓰모도 부대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60여명 부대원 중 나이가 제일 어린( 19세 ), 부대장이었다


 나는 쉬는 날 친구 A군을 방문해서 거기서 미국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1945년 7월 27일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이 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5년 8월 16일 일본 육군 법무관으로 뉴기니아로 가게 되어 있었으나, 1845년 8월 16일 해방이 되자
 나는 병참 부대원들의 요구에 따라 8월 16일 오전 9시에 재고품들을 다 나눠주고 말았다


 그러자 8월 17일 일본 헌병대에서 와서 재고품을 신고하라고 했을 때 “ 없음” , “없음 “ 으로
신고했더니 일본 헌병대에서 미군 헌병대로 이첩되었고 거기서 조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1945년 8월 27일 오전 8시 30분경 미군 헌병이 체포 영장을 가지고 하숙 집으로 들이닥쳤다.
나는 유엔군 총사령부 법무관실로 인계 되었다


 그 때 일본은 전국 어디서도 쌀밥, 고기, 과일 등은 구경하기 힘든 때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체포해 간 날 그날부터 UN군 총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공짜로 배불리
 먹게 하셨고,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게다가 대우도 매우 좋았다.
그 뿐 아니라 미국 Law school 처럼 미국 연방 헌법에서부터 California 주법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정하여 미국에서 온 미육군 법무관들이( 미국 법대 교수, 판사, 검사등 ) 경험에 따라
 나를 지도해 주었다


1946년 초 키-난 UN 고등 검찰 총장이 나에게 미국 사법 시험을 볼 의향이 없으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미국까지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키-난 총장은 시험관들이 Mc Arthur UN군 총사령부 까지 와서 시험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그 곳에 가보니 동경의 UN군 총사령부는 일본 땅이 아니라 미국 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일 후 시험관들이 와서 Mc Arthur UN군 총사령부에서 시험을 치뤘다

 미국 사법 시험 전날 M소장은 나에게 너는 오늘부터 무죄라고 하였다. 내가
 오늘부터 무죄라면 어제까지는 죄가 있었다는 말인데 내가 여기 오던 날 부터 나는 무죄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발표일이 다가왔다. 상쾌한 마음으로 UN 법무관실로 향했다.
약 60여명의 UN 법무관들이 모여 있었다


 키-난 총장은 고중위는 일본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수석 합격을 했는데,
미국 사법 시험에서도 최연소( 20세 )수석 합격을 했다며 축하해 주었다


 그 다음 날 M 소장은 나더러 일본 육군 중위였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M소장은 2계급을 특진시켜 미 육군 소령으로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No! 미 육군 대령으로 해주시오.” 라고 당당하게 요청하였다
 서로 옥신 각신하다가 5성 장군인 Mc Arthur UN군 총사령관의 심판을 받으러
Mc Arthur원수에게 가게 되었다


경례를 한 후 Mc Arthur 총사령관은 “ 말썽 꾸러기가 너냐?” 고 물었다. 나는
“ No!, 말썽 꾸러기가 아니고, 준법자( 遵法者 )입니다.” 라고 대답하니


 맥아더 총사령관은
“ 대령을 주장하는 법적 근거가 있느냐?” 고 물었다.

나는 “ 여기 있습니다” 라며 UN 법규를 보여주었다. 한 참 법규를 보면 맥아더 원수는
“ 법규에 따라 대령으로 모셔야지,” 하고는 “ 고대령 고맙소” 라는 말을 했다


 법규에는 두 나라 사법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자는 대령으로 임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 나이 20세였다. 그 때 맥아더 원수 앞에서 “NO!”라는 말을 할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나도 모른다
 다만 나의 인생 길을 굽이 굽이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당시에도 나와같이 계셨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 같이 견고한 UN군 총사령부의 5성 장군 앞에서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근거는 바로
5성 장군도 지키는 UN군 법규였다


 나는 1946년 3월 1일 부로 “미 육군 법무관, UN군 고등 검찰관, 미 육군 대령 고한실” 이라는
임명장을 받았다

UN군 고등 검찰관은 일본 천황을 비롯하여 국무 총리, 각 부처 장관, 육해공군 대장, 국회의장 등에게
 체포 영장 발부 및 조사할 권한이 있었다


 나는 일본 전 후생장관 기시노부스게 장관 담당 검사로서 Un 고등검찰관의 직무를 수행했다,
나는 기시 장관에게 6개월을 구형했고 재판장으로부터 6개월을 선고 받았다


 기시 장관이 형 만기 석방되던 날 집으로 가기 전에 범무관실에 들렸을 때 나는 기시 장관에게
 판결 날로부터 1년 후에는 공직에 취업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써주었다


 그는 나의 동경 제대 선배로 우수한 인재였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그 선배는 일본 국무 총리가 되어
 우리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내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가 나는 당신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하자 박대통령은 그가 누구냐 고 물었고 기시 총리는
 그는 UN군 고등 검찰관이며 고한실 대령 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중정부장을 통하여 고한실 박사를 찾아냈고 박대통령은 나를 초청해 주었다

 나는 1974년 8월15일 경츅 행사에 박정희 내외 분의 초청을 받고 행사장 귀빈석에 앉았다가
 문세광의 총 쏘아 죄를 저지르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미국 일곱 대통령의 자문 위원

1956년 일본을 방문한 닉슨 부통령은 UN 고등검찰관 고한실 대령을 찾았다.
닉슨 부통령과 점심을 같이 하던 자리에서 그는 나를 미국으로 초대하였다


 그 후 1968년 미조리 대학 교수로 근무할 때 닉슨은 미국 제 37대 대통령이 되었다
 축전을 보냈더니 초청장이 날아왔다. 대학 총장이 나보다 더 기뻐하였다


12년 6개월 만에 만난 닉슨 대통령은 나에게
 외국인으로서 미국 헌법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으니 고박사가 해보면 어떠냐
 고 제안을 했다. 나는 대통령께서 협조해 주시면 해보겠다 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약 3년후인 1972년 5월에
< 미국 법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How American Laws are Made ? )>
라는 책을 써서 출판하였다. 서문은 현직 닉슨 대통령이 써 주었고, 미 국회도서관 우량 도서
# 72- 817200 호로 등록되었다


 그로부터 닉슨 대통령 요청을 받아들여 대통령 법률 자문위원이 되었고 그후
 일곱 대통령 법률자문 위원 또는 법률 고문이 되었다


 닉슨, 1972~ 74
포드 1974~77
카터 1977~81
레이건 1981~89
아버지 부시 1989~93
클린턴 1993~2001
아들 부시 2001~09


진리를 찾아서

 여기 까지 회고해 보니, 내 인생 길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길목이 없는 것 같다
 나의 인생 여정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동행한 것을 확신한다


 나는 12살 때 고국을 떠났으니 올해로 이국 생활이 73년 차가 된다
 나는 그동안 우라 나라 말을 다 잊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 나라 말을 배우기 위해 한인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1970년 1월 나는 워싱턴 있는 한인 침례 교회( 김현철 목사)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내가 침례 교회를 다닌지 1년쯤 되었을 때에 담임 목사와 원로목사 A씨와의 불화로 교회가 갈라졌다
 나는 나에게 침례를 준 김현철 목사를 따라 나갔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미 남침례교 재단( 미국에서 제일 큰 기독교 재단 ) 한국 부장으로 영전해 감으로서
 나는 장로 교회로 적을 옮기게 되었다. 집사, 장로, 수석 장로가 되었다.


1978년 개신 교회들이 모여 “ 워싱턴 한인 교회 협의회를 ”를 창설하였다

 그 때 나는 법대 교수였기에 교육위원장 직을 맡고 있었다.


당시 워싱턴에는 사이비 기독교가 성행하고 있어서 사이비 종교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l
“ 워싱턴 한인 교회 협의회( 회장 정현철 목사)에서 한번, 워싱턴 YMCA( 이사장 고한실 )에서 한번,
제미 한국문화협회( 회장 고한실 )에서 한번씩 개최하였다


 그 대산은 통일교 , 여호와 증인, 몰몬교였다,

세미나가 끝날 즈음 Y목사가 “ 안식교도 이단” 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세미나에 참석하였던 안식교 권경모 장로님이 일어나서 질문하기를
( 권경모 장로님은 현재 교회 지남에 가끔씩 글을 내신다.)


“ 안식교가 무엇이 이단인지 성서적으로 답변해 달라.” 고 요구하자
 정작 Y목사님은 답변을 못하고 난처해 하였다.


사회를 보던 나는 권경모 장로님께
“ 내가 책임을 지고 답을 드릴 테니 연구할 시간을 주십시오. 10년 내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요청하였다


 그 때부터 다니던 장로교회도 나가지 않고 안식일 교회의 모든 서적을 구입해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이런 의협심은 진리에 대한 탐구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알고 보니 재림 교회는 이단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층실히 지키는 정통 교회이다
 나는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법에 내 목숨까지 던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성경의 안식일 법규를 발견한 이상 내가 일요일을 지키는 교회에 몸을 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미련 없이 이단이 아니라 오히려 정통 교회인 안식일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런 확신을 가지고 1996년 9월 아내와 함께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MD 중앙교회를
 찾아가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인이 되었다


 그 해12월 중순경 워싱턴 한인 교회 협의회 회장단 목사님들의 초청을 받고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 때 중진 목사님 한 분이


“ 고박사 왜 이단으로 갔어!” 하기에 나는 여러 목사님들께
“ 내가 이단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단에서 나왔습니다.” 했더니

“우리가 이단이란 말이요?” 하길래


“ 예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출애굽기, 레위기, 등 그리고 정통교회로 바꾸십시오
 원하시면 내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일요일에서 토요일 안식일을 준수하게 되면서 내 나름대로 미국의 유명 목사님들께 믈어보았다
 그런데 안식일 교회가 이단이라고 하는 목사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거기 포함된다

 

어느 날 죠지 부시 대통령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안식일 교회에 대하여 10년 연구한 끝에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인이 되었다고 했더니, 훌륭하다며 칭찬해 주었다


 미국 연방 상원 원목은 목사님이라면 한번 해보고 싶은 자리이다
 그런데 안식일 교인 베리 C. 블랙 목사님이 상원 원목이다.


블랙 목사님은 빌 크린턴 대통령과 리차드 덴치그 미 해군 장관의 추천으로 미 연방 상원 제62대
원목으로 취임했다. 해군에서 27년 군목으로 근무한 해군 소장 출신이다

 미 해군 군목만도 1,000명 정도 되는데 이들의 총 감독을 역임한 분이 바로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목사님인 것이다


 한국에 계시는 안식일 교회 성도님들도 정통 교회 교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미국에서 제일 가는
 목사님이 안식일 교회 목사님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도 하고 활기 차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 고한실 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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