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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330일 안식일

일몰오후 652

 

연구 범위 : 19:6~9, 14:1~3, 19:11~16, 20:1~3, 4:23~26, 20:4~6, 21:2~8

 

기억절 :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21:5).

 

종말 시대의 바벨론이 무너진다는 소식은 이 배도한 종교 체제에 협력했던 자들에겐 흉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19:1~7). 바벨론은 세속 정치 세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고 해롭게 했던 책임이 있다(18:24). 이 큰 원수의 쇠망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에게는 구조와 구원을 의미한다.

바벨론의 패망으로 말미암아 일곱째 인의 장면에서 간구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가 마침내 응답되었다.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6:10)라고 했던 그들의 절규는 아벨의 시대부터 하나님이 압제와 고통을 겪는 백성들을 궁극적으로 신원하실 때까지 그 모든 이들이 부르짖던 간구를 대표한다(79:5, 1:2, 12:6~7). 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불행과 억압과 고통이 끝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분의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때이다. 계시록의 남은 부분은 종말 시대의 바벨론뿐 아니라 사탄과 모든 죄악의 파멸을 묘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수립을 내다본다.

 

학습목표

 

깨닫기 :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 천년기 동안 벌어질 일들과 그다음에 이르러 올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파악한다.

느끼기 : 새 예루살렘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삶을 소망하며 현재의 고난을 이긴다.

행하기 :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그분의 의에 철저하게 의지하면서 구원의 소식을 적극적으로 전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의인과 악인들에게 각각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의인은 부활하고 변화하여 하늘로 올리워가고 악인은 재림하시는 영광에 다 죽는다.

천년기 동안 구원받은 성도들이 심판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세상 역사에서 모든 의문들을 다 해소하게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는 말씀은 어떤 뜻일까요(21:1)?

죄와 사망이 없어지고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는 뜻이다.

새 예루살렘에서의 삶에는 어떤 다양한 기쁨과 보람과 행복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그렇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준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분을 결코 떠나지 않고 예수께서 생명이 되어 그분이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결론 :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세상은 마침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사탄과 그의 세력은 천년기 동안 지구에 감금되며 새 예루살렘에 내려올 때 최후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은 새롭게 창조되고 죄로 인해 생긴 모든 상처는 치유되며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첫째 날 324() 어린 양의 혼인 잔치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19:7).

 

1. 19:6~9을 요 14:1~3과 함께 읽어보라. 혼인 잔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 사이에 그토록 고대하던 결합을 얼마나 적절히 예증하고 있는가?

[19:6~9]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결혼보다 더 신랑신부의 결합을 예증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가장 적절히 예증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인 신부는 일체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이 일을 이루신다.

 

이천 년 전에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집으로 떠나셨다. 그것은 그분의 신부와 결혼하신 후에 열릴 혼인 잔치에 당신의 추종자들을 초대하기 위해서였다(22:1~14).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나라를 받으시는 것을 의미한다.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라고 불린다.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손님들이라고 불리고 있다(19:9 참조). 손님이 된 자가 동시에 신부가 될 수는 없다.

마태복음 22장의 비유에도 결혼에 대한 동일한 상징이 소개되었는데, 거기서도 조사 심판이 혼인 예식보다 먼저 진행될 것을 분명히 나타낸다. 혼인 예식이 있기 전에 왕이 먼저 와서 모든 사람이 다 예복, 곧 어린양의 피로 씻어 깨끗하게 된 흠 없는 품성의 옷을 입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손님들을 살펴본다(22:11, 7:14 참조)”(각 시대의 대쟁투, 426~428).

신랑께서는 죽음과 부활 이후, 혼인 잔치의 손님인 당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셨다(참고 요 14:1~3). 그들은 지구에 남아 그분의 오심을 준비한다. 세상 끝날이 되면 그분은 돌아오셔서 그들을 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가실 것이다.

19:8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신부에게 깨끗한 세마포 옷을 주신다. 이 옷은 그 도성에 들어가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어떤 공로도 주장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 곧 그들이 그들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에서 비롯된 행위를 상징한다.

 

<부가설명> 증언은 혼인잔치를 예수께서 나라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라를 받는 사실은 단7:13,14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장면은 예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옛적부터 항상 계신자 앞으로 나오는 장면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는 것을 표상한다.(19:28, 25:31) 그동안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할 거처를 마련하신다. 거기 함께 있을 사람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사람들 만이다. 이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인데 이 행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는 것이다.(7:14) 어린양의 피에 씨는 것은 대제사장의 속죄봉사를 날마다 경험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는 것과 대제사장의 속죄봉사와 심판봉사를 받는 것은 같은 사실이다. 14:1~3의 거처를 예비하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말씀으로 있으라.’하시면 모든 것이 있게 되는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물리적 집을 짓기 위하여 이렇게 오래 작업하시겠는가? 성도들이 집이 아닌가?(고전3:5) 성도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얻었을 때 산 자들이 되며 산 자의 하나님은 산 자들과만 함께 거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진정한 성도는 산 자들이 되어서 그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는 일에 어린양의 피로 날마다 그 옷을 씻어 희게 하는 믿음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어린 양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하늘 혼인 잔치에 초대하셨다. 그 잔치에 참여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공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제공받아야 한다.

 

 

둘째 날 325() 아마겟돈의 최후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19:11).

 

1. 19:11~16을 읽어보라. 흰 말을 탄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로 보건대 우리는 마지막 때에 어떻게 승자 편에 설 수 있는가?

[19:11~16]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이 불 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의 말씀 등이다. 그의 편에 설 수 있는 것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모습은 모든 시대의 신자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약속의 성취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장면이다. 예수님처럼 그 백성들의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있었다. 19:11~16은 예수님의 수많은 승리의 장면 중 백미이다. 예수님은 하늘에서도 사탄을 무찌르셨다. 그분은 광야에서도 그를 격퇴했고, 십자가에서도 그에게 패배를 안겼다. 이제 그분은 이 땅에 돌아오셔서 다시 그를 쳐부수실 것이다.

곧 사람의 손바닥 반만 한 작은 검은 구름이 동쪽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두르고 있는 구름인데 멀리서는 어둠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이 인자의 징조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엄숙한 침묵 속에서 그 구름이 땅으로 점점 가까워짐을 주목한다. 그 구름은 점점 밝아지고 영광스럽게 되어 마침내 커다란 흰 구름이 되는데, 그 아래는 타는 불과 같이 광명한 빛이 있고 그 위에는 언약의 무지개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강한 정복자처럼 구름을 타고 오신다. 그분은 이제 수치와 저주의 쓴 잔을 마시기 위하여 간고를 많이 겪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하늘과 땅의 승리자로 오신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그를 따르더라’(19:11, 14). 거룩한 천사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늘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분의 길에 수행한다. 하늘은 찬란한 천천만만의 천사들로 충만해진 것 같다. 그 광경은 사람의 붓으로 묘사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 그 찬란한 모습을 가히 상상할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640~641).

그분을 모함했던 모든 세속, 종교 세력들이 멸망하고 그분의 백성들이 영원토록 구원을 받는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께서 거둘 최종적인 승리의 장면은 바울 역시 살후 1:8~10에서 그리고 있다.

 

<부가설명> 아마겟돈은 이미 8과에서 공부한 내용이다. 계시록 16장에서 나타난 아마겟돈의 전쟁은 계시록 19장에서 종결을 보게 된다. 전쟁의 종결은 무기를 듣고 세상 나라들이 전쟁하는 것과 같은 전쟁이 될 수 없다. 19장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싸우신다. 계시록 1장에서 요한이 계시 중에 만난 예수님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하시니 만물이 존재하게 된 그 능력의 말씀으로 루시퍼와 그 일당들에게 한 말씀하시면 그들은 다 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땅의 짐승)가 다 잡히고 불 못에 던져지게 된다. 그리고 그를 따른 모든 사람들은 재림하시는 주님의 영광에 빛에 다 죽게 된다. 그래서 루시퍼와 그의 부하 악한 천사들은 미혹할 대상이 없어진다. 그들의 전문직이 사람을 미혹하여 창조주를 올바르게 믿지 못하게 하고 섬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혹할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에 갇혀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천년이 차니까 악인이 부활해서 바다의 모래와 같이 일어나니까 그들을 미혹한다. 그것을 사탄이 옥에 놓여 그들을 미혹한다고 계시한 것이다. 그래서 곡과 마곡의 전쟁을 마지막으로 루시퍼와 지승과 거짓선지자와 모든 악한 천사들과 악인들이 다 불 못에서 재가 될 때까지 타서 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아마겟돈, 곡과 마곡 전쟁의 종결이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 지구가 재창조되는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하늘의 큰 무리를 이끌고 재림하셔서 그분의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사탄을 무찌르시며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

 

 

셋째 날 326() 천년기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20:6).

 

1. 20:1~3을 렘 4:23~26과 함께 읽어보라. 천년기 동안 지구는 어떤 상태로 있는가? 사탄은 어떻게 결박되는가?

[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23~26]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 무저갱의 상태인데 혼돈하고 공허하며 빛이 없고 사람도 없고, 새들도 없고 황무지가 되었다.

 

천년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시작된다. 그때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결박된다. 사탄의 결박은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영적인 존재는 물리적으로 결박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탄은 상황으로 말미암아 결박된다. 재앙들이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모든 악한 거주민들을 제거했기 때문에 지구는 창조 이전처럼 혼돈의 상태로 돌아갔다(1:2). 그 상태에서 지구는 천 년 동안 사탄의 감옥 역할을 한다. 미혹하거나 해롭게 할 인류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사탄과 그의 세력이 할 일이라곤 하나님을 반역한 결과들을 예상하는 것뿐이다.

 

2. 20:4~6을 읽어보라. 천년기 동안 구원받은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20:4~6]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 첫째 부활에 일어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며 심판하는 권세를 행사한다.

 

계시록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늘 처소에서 천년기를 보낸다(참고 요 14:1~3). 요한은 그들이 왕과 제사장으로 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는 모습을 본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19:28)고 약속하셨다. 바울도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고 진술했다(고전 6:2~3).

이 심판은 하나님의 행위가 공정한지를 판단한다. 역사적으로 사탄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피조물들을 다루시는 방법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해왔다. 천년기에 하나님은 구속받은 자들로 하여금 역사의 기록을 조회하도록 허락하셔서 그들의 삶에 임하신 그분의 인도하심뿐 아니라 멸망당한 자들에게 내리셨던 그분의 결정들이 공정한지에 관하여 모든 해답을 찾게 하신다. 천년기가 끝날 무렵이면 그분의 공의에 관한 모든 의문이 영원히 해결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의심의 구름을 거두고 사탄의 비난이 아무 근거가 없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이제 멸망당한 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집행을 목격한다.

 

<부가설명> 개신교에서는 이 기간을 천년왕국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의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천년동안 왕 노릇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천년기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이다. 전 천년설, 후 천년설, 무 천년설 등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본문이 말하는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천년기에 의인들이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아서 하늘에 올라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땅은 무저갱이 되고 사탄과 그 부하 악한 천사들이 무 활동의 옥에 갇힌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이다. 악인들은 다 죽어서 둘째 부활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있다. 사탄은 미혹하는 일을 할 수 없다가 천년이 차서 둘째 부활에 악인들이 일어나면 미혹할 대상이 생기기 때문에 옥에서 놓여나온다. 부활하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사탄을 그들을 미혹하여 마지막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이 불 못에 떨어지는 것이다. 천년기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의인들이 부활하여 하늘로 올려갈 때부터 악인들이 심판의 부활인 둘째 부활로 일어나는 때까지이다.

 

교훈 : 재림 이후 천 년 동안 사탄과 그의 세력은 폐허가 된 지구에 감금되고, 구원을 받은 무리는 의인을 구원하고 악인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확인한다.

 

 

327() 새 하늘과 새 땅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21:1).

죄의 박멸 후에 지구는 구원받은 자들의 거처로 변화될 것이다.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21:1에서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 성경은 대기, 별들이 있는 우주, 그리고 하나님의 거처로 이뤄진 3단계의 하늘에 대해 언급한다(고후 12:2). 우리는 계 21:1에서 지구의 환경을 조망할 수 있다. 오염된 지구와 대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다(20:11). ‘새로운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카이노스는 기원이나 시간이 아닌 질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을 가리킨다. 지구는 불로 정화되어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벧후 3:10~13).

매우 흥미롭게도 요한이 새 땅에서 처음 목격한 것은 거기에 바다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요한이 정관사(定冠詞)를 사용했던 것으로 봐서 그는 밧모 섬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분리와 고통의 상징으로서의 그 바다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입장에서 새 땅에 그 바다가 없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했던 자들을 분리했던 고통의 부재를 의미했다.

 

1. 21:2~87:15~17을 읽어보라. 새 땅에 대한 묘사와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21:2~8]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7:15~17]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 창세기 2장에 기록된 내용과 기록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죽음이 없었다. 행복한 낙원이었다. 신천지도 그렇다. 두 곳 다 새로운 만물이다.

 

회복된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 때문에 고통과 사망이 없는 삶이 보장된다. 그분의 임재는 새 예루살렘과 그 안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거하실 하나님의 장막”(21:3)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임재는 회복된 땅에서의 삶을 진정한 의미의 낙원으로 만든다.

하나님의 임재는 죄가 야기한 죽음, 슬픔, 눈물, 아픔 등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보증한다. 죄의 소멸로 인하여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21:4).

이 개념은 오빠인 나사로를 잃은 마리아와 마르다에 의해서 잘 표현되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11:21). 그 자매도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는 죽음이 존재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와 같이 새 땅에 임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면 이 생애에서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누릴 것이다. 이러한 해방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위대한 소망, 곧 그의 피로 승인된 소망이다.

 

<부가설명> 신천지는 낡은 지구 죄가 주관하는 동안 망가진 지구를 새롭게 창조하신 것이다. 수리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고 했다.(65:17) 그래서 죄가 들어와서 생긴 것들은 결코 하나도 없다. 바다가 없다고 한 것은 바다 앞에 정관사 가 있기 때문에 그 바다가 다시 있지 않다고 했다. ‘그 바다는 처음 바다이다. 처음 땅, 처음 하늘 처음 바다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4절에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확인한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것처럼 새 바다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 새 하늘 새 땅에는 처음 하늘 처음 땅에 있던 것은 다시 없다. 즉 죄와 관계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거기 사는 사람들도 죄와 관계된 사람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가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오직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산 자의 하나님과 산 자이신 예수님과 생명의 성령님 또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생명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생명은 사망이 관계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지금 사망에 관계된 생명은 진정한 생명이 아니다. 다만 생명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예수님 안에서 얻었고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계시는 그곳에서 사망의 두려움이 결코 없는 것이다. 행복과 사랑만이 충일할 것이다.

 

교훈 : 죄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임재로 복원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별과 죽음, 슬픔과 고통 등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것이다.

 

 

328() 새 예루살렘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22:1~2).

 

요한은 새 땅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을 묘사한다. 그곳이 사람이 사는 실제 공간일지라도 새 예루살렘과 그 안에서의 삶은 어떤 세상의 표현으로도 형용할 수 없다(참고 고전 2:9).

 

1. 21:9~21을 읽어보라. 새 예루살렘의 외형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21:9~21]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 순금으로 지은 성이고 열두 보석으로 된 기초석에 12사도의 이름이 있고 진주 한 개로 된 12대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있으며 각 면이 12000스타디온인 정육면체 성이다. 성벽 두께는 144규빗이다.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아내와 신부로 언급된다. 그곳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준비하신 곳이다(14:1~3).

그 도성은 어느 방향에서도 출입할 수 있도록 사면에 각각 3, 12개의 문을 가진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특징은 그 성의 우주적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새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이 계신 곳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다.

그 도시는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12,000스다디온인 정육면체이다. 정육면체는 12개의 변이 있기 때문에 변의 길이의 합은 144,000인데,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함을 입은 십사만 사천 인을 반영한다. 구약시대의 성전에서 지성소의 형태가 정육면체였다(왕상 6:20). 즉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2. 21:21~22:5을 읽어보라. 그 도시 내부의 어떤 특성들이 에덴동산을 상기시키는가? 그 도성 안에는 아무 저주도 없다는 약속의 의미는 무엇인가?(22:3)

[21:21~22:5]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 생명수 강, 생명나무이다. 저주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죄와 사망이 없다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이다(참고 창 2:10). 포로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을 가로지르는 강가에 앉아 예루살렘을 그리워했다(137). 그와 달리 새 예루살렘의 생명강가에서는 각 세대에 방황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집을 찾는다.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자라고, 그 잎사귀는 만국의 치료제가 된다(22:2). 이러한 치료는 그곳에 질병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새 땅에는 아무 질병도 없을 것이다. 대신 그것은 각 시대마다 백성들을 찢어놨던 장애물들 때문에 생긴 상처의 치유를 말한다. 각 시대와 각 민족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한 가족에 속하게 된다.

 

<부가설명> 새 예루살렘은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이다.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인데,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이 세상에서 분쟁의 중심이 된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예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죄를 처리하시고 생명가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시고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시고 그 수도가 된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이다. 이제는 영원한 평화의 도시가 된다. 거기 평강의 왕이신 예수께서 좌정하시고 다스리실 것이다. 그곳에는 재난이 없고 사망이 없다. 재난과 사망이 없다는 것은 그곳은 오직 생명의 존재들만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재난과 사망은 사망의 세력에게서 나온다. 그는 불 못에 타서 존재가 없어졌고 사망도 없어졌다.(2:14, 고전15:26)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는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새 예루살렘은 정육면제인데 그것은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보좌요 궁전인 것을 나타낸다. 지성소가 이 정육면체를 표상하는 장소이다.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는 12 사도의 이름이 있고, 12 성문에는 12지파의 이름이 있는데 이것은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거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복음으로 이스라엘이 된 사람들이 거하는 도시라는 뜻이다. 거기는 안식일과 월삭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경배한다. 월삭에 모이는 것은 어쩌면 생명과 잔치의 친교와 경배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144000인이 상주하는 것 같다.(7:15 참고) 그 외의 성도들은 새로워진 지구 여러 곳에서 상주할 것 같다. 그리고 안식일과 월삭에 각각 자기 영광을 가지고 성문을 통하여 이 성에 드나든다.(21:21~27) 거기는 오직 생명과 사랑과 평화와 행복만이 있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천지에 충만할 것이다.(11:9)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6:3) 아멘.

 

교훈 : 새 예루살렘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거주지가 되며 생명나무의 잎은 인류를 분열시킨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료제가 될 것이다.

 

 

329()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실물교훈>, 307~319 ‘예복을 입지 않음<각 시대의 대쟁투>, 662~678 ‘대쟁투의 종막을 읽어보라.

 

계시록은 처음에 소개되었던 내용 곧 능력과 영광 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수립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당신의 신부와 만나는 재림의 장면에서 이 책은 절정에 도달한다.

그러나 계시록은 이러한 사건들을 비현실적인 맥락에서 다루지 않는다.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사실은 첫 번째 실체이다. 두 번째 실체는 우리는 아직도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계시록의 기별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한 이해에 도달하려면 만물의 마지막 때까지 이 책을 계속 반복하여 읽어야 한다. 계시록의 기별은 우리가 그분을 기다리는 동안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과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함을 줄곧 상기시킨다. 계시록에 나오시는 그리스도는 인생의 수수께끼와 불명확성 가운데 사는 모든 인류의 소망과 염원에 대한 대답이시다.

이 책은 또한 세상 끝이 이르기 전에 우리가 그분의 임박한 재림의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할 임무를 위탁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그분의 오심을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능동적인 자세로 기다린다. 성령과 신부가 모두 오라”(22:17)고 부른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할 복음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천년기와 천년기가 끝난 뒤에 있을 악인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천년기 동안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은 멸망당한 자들에게 최종적인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런 사실로 미뤄볼 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공의롭고 참되시다. 또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 책을 연구하면서 그대가 발견한 것 중에 우리가 주의하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역사의 종말에 남은 자손으로서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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