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가족 연합의 비결(질문, 대답, 설명) 05/18/19

by 김명호 posted May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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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과 가족 연합의 비결

 

518일 안식일

일몰오후 736

 

연구 범위 : 33:12~14, 1:16~18, 17:21~26, 3:28, 2:11~22, 5:21~6:9

기억절 :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가정생활은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자녀의 탄생은 일생 동안 계속될 큰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그 자녀에게도 무존재에서 존재로의 이동은 정말 큰 전환이다. 자녀들은 여러 단계의 삶을 거쳐 성장한 다음 집을 떠나서 다시 그들의 자녀를 낳는다.

그러나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모두 동일한 것 때문에 씨름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며 그것으로 인해 우리 가정의 연합이 아주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인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님과 서로 화해했다(2:13~16, 1:21~23). 그러나 매일의 실질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만이 믿음 안에서 가족의 연합을 추구하는 모두에게 살아있는 연합을 경험하게 하는 길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일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가족이 연합하기 위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 깨닫는다.

느끼기 : 우리에게 아가페 사랑을 주시고 우리를 십자가 아래서 연합시키시는 주님께 감사한다.

행하기 : 매일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족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가족의 연합을 위해 왜 꼭 아가페 사랑이 필요할까요? 그리스도를 가정에 모시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입니까?(월요일 내용 참고)

아가페 사랑은 자아부정의 헌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기심은 어떻게 가정의 분열과 불화를 초래합니까? 예를 들어 설명해 보십시오.

각각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니까 분열과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요셉과 그 형제들을 보라.

부모가 자신의 성품의 부족을 매일 주님께 맡긴다면 가정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이 가족들에게 일어날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각 구성원들에게 기대되는 헌신이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자발적인 봉사와 피차 복종하는 사랑의 정신이다.

 

결론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본은 우리 가족의 연합과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아가페 사랑이 충만하고, 이기심을 버리며, 서로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려면 우리 가정에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합니다.

 

 

512() 중심이 되시는 그리스도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2:14).

 

1.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연합을 묘사하기 위해 바울은 어떤 예증을 사용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나를 만드셨는가?(2:11~22; 참고 갈 3:28)

[2:11~22]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예루살렘 성전에 구분되어 있는 뜰의 상태를 예증으로 사용하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셔서 그 몸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을 없앴다고 가르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하나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백성들을 분리하는 장벽들을 제거한다. 유대 성전에서 벽은 예배자들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분리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연합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민족, 종족, 계층, 성에 따른 분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언어를 사용한다.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2:15)셨다는 말씀은 결혼하여 한 몸으로의 연합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부부에게 도움이 되는 복음이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오랫동안 나눠졌던 가족들도 화목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 됨에 대한 성경절을 인용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약속하셨던 대로 우리가 하나 됨과 연합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시는가?(참고 롬 6:4~7, 고후 5:17, 4:24~32)

[6:4~7]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4:24~32]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셔서 하나 되게 하시낟.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가면 서로에게도 가까워진다”(재림신도의 가정, 179).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그들이 그분을 인식하든지 못하든지 중재자로 서신다. 우리는 오직 그분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리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따름을 통해서 우리 자신 밖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세울 수 있다.”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New York: The MacMillan Publishing Co., 1979), p. 108.

 

<부가설명>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제가 이해관계로 성립이 된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정한 사랑과 희생으로 새로운 친교와 연합의 원리를 나타내셨다. 진정한 연합에는 일치되는 사상과 마음이 중요하다. 죄가 세상을 지배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자기 이익이 중심이 되어 사람들을 대하지만 그런 중에도 그렇지 않은 연합이 있다면 가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가정을 구성하는 시초인 결혼도 이기적 손익을 따지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요즘은 선 듯 결혼하지 않고 동거해보는 경우가 많은 사회가 되어버린 참 비참한 세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이 연합을 주도하는 그런 가정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지러운 세상에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이며 그 가정이 낙원의 가정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구약성경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가정문제를 중요하게 나타낸 선지서이다. 마지막 때 엘리야도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4:5,6) 이것은 종말 시대의 재림성도들의 가정이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아무쪼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들이 되도록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재림성도의 가정마다 이루어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교훈 : 세상에는 사람들을 분리하는 여러 장벽이 존재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그것들을 허무시고 우리의 연합을 위해 우리 사이의 중재자로 서신다.

 

 

513() 그분의 사랑을 통해 하나가 됨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살전 3:12).

 

1.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17:22) 해 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셨다. 이러한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사랑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요약해 보라.

 

: 예수님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를 아는 것이 영생인데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표가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랑하신 그 같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타나는 모습은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상태이다. (요한 17장을 다 읽어보라.)

 

제자들의 연합이 이 기도에서 예수님이 염두에 두신 주제였다. 아가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이러한 연합의 본질이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는 성경적인 용어로서 이 기도에서뿐 아니라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도 사용된다. 그와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며(요일 4:8) 예수님의 제자임을 입증하는 증거이다(13:35). 하나님의 사랑은 죄 많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신자와 함께 거하실 때에 그의 삶 속에 이르러 온다(5:5, 8:9, 1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5:12). 이 말씀을 기록한 제자 요한도 한때는 사랑스럽기는커녕 교만하고, 권력을 탐하며, 비판적이고, 쉽게 분노하는 사람이었다(3:17, 9:54~55; 참고 시대의 소망, 295). 나중에 그는 자신의 이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예수님이 자신을 계속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를 서서히 변화시켰고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연합 속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요일 4:19)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라고 썼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라 한다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신약성경에서 그런 용어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망의 존재가 되었을 때 사망의 본질, 곧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되었기 때문에(2:3) 사망의 생명 곧 육체의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없다. 남에게 베푸는 자비의 행동과 사랑의 행동에도 무의식 속에 계산된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연애하고 사랑한다 해도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기보다는 자기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모성애가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정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확연히 드러났다. 그것은 자기를 희생하여 사람을 살려주는 사랑이다. 이것이 아가페이다. 이것은 진정으로 거듭날 때 거듭난 생명에서 나타나는 본질이다. 이런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성경은 말한다. 아가페 사랑의 핵심은 상대방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정신의 발로이다. 상대를 해롭게 하거나 불리하게 하려는 정신이 없으며 상대방을 통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정신도 전혀 없는 그런 정신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런 아가페 정신으로 서로 대한다면 서로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볼 것이고 연합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교훈 :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으로 변화되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아가페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며 연합하기를 바라신다.

 

 

514() 이기심은 가정 파괴범

 

만일 교만과 이기심만 버린다면 대부분의 문제가 5분 내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초기문집, 119). 인간의 본성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였다. 그런 타락의 대표적인 예가 아마도 이기심이라는 저주일 것이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이기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실상을 어린 아이에게서도 볼 수 있다. 자신을 위한 욕망이 그들의 기본적인 본성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이런 특성은 특별히 가정에서 상당히 끔찍한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은 이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오셨다(4:24). 예수님이 주신 약속에 따르면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이렇게 파괴적인 성격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분의 전 생애는 이기심 없이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모본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그분의 삶을 본받느냐에 따라(요일 2:6)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위해 살려는 성향을 극복할지가 결정된다.

 

1. 아래의 성경절들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이기적인 삶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2:3~5]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요일 3:16~18]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정신으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엘렌 G. 화잇의 충고처럼 만약 우리가 교만과 이기심을 버리면 상당히 많은 문제가 곪아 터져서 심각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신속히 해결될 것이다.

모든 가족 구성원, 특히 부모들은 십자가 밑에 이런 죄를 내려놓아야 한다(16:6). 심지어 그것이 끊임없이 십자가로 돌아가 기도와 믿음과 눈물과 굴복으로 무릎 꿇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기심의 세상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모본이다.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거듭난 그 생명의 본질이 사랑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가 생명을 얻은 사람이 아니고 아직도 사망에 거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증거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분명히 계시한 말씀이다. 이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 자는 교인이라고 성령으로 받은 생명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사망에 거하는 자이다. 교회에 이런 교인들이 없을까? 목회자들 중에는 없을까? 교인들 중에는 없을까?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이런 사실에서 예외일 수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난 생명으로 생활한다면 아가페가 나타날 것이고 그것은 가정과 교회를 연합시키는 진정한 능력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그 생명을 받으라고 강권하신다. 그것이 바로 거듭난 생명이다. 썩어질 씨의 생명을 떠나서 썩지 않을 씨로 다시 나야하는 것이다.(벧전1:23) 썩지 않을 씨로 난 그 생명이 바로 사랑이 본질이 되는 생명인 것이다.

 

교훈 : 인간의 이기심은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는 가장 심각한 요소로서 모든 가족 구성원, 특히 부모는 날마다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 이 죄를 내려놓아야 한다.

 

 

515() 복종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

 

1. 바울은 겸손과 봉사의 관계에 대해 어떤 권면을 했는가?(5:21) 그대의 생각에 이러한 태도는 교회의 연합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그것이 가정에서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5:22~6:9)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5:22~6:9]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 복종은 이기심을 버린 상태로 섬기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연합과 화평은 이런 정신이 없이 진정으로 달성할 수 없다.

 

복종’(5:21)이라는 말은 자발적인 선택을 기초로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겸손한 위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특별한 원칙은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으며(20:26~28; 13:4~5; 2:5~8), 그분의 정신으로 충만한 모든 자의 특징이 되었다(5:18).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사람들이 복종하게 되는 동기이다(5:21). 자기희생의 정신은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혁명적인 가르침이다. 그것은 어떤 예외도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 하나라는 영적인 사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가정의 원칙. 그리스도인의 복종이 무엇인지를 입증하는 곳이 가정이다. 이런 원칙은 가정에서도 효력을 나타내며, 교회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바울은 복종의 원칙을 소개하고 나서 즉시 그것을 가정에 적용하라는 주제로 논의의 방향을 옮긴다.

5:22~6:9에서는 사회에서 가장 일방적이면서도 가장 불평등한 세 종류의 상호 관계가 언급된다. 그것의 의도는 기존 사회 질서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서로에게 차원이 다른 자발적 복종을 나타낼 때 기독교 신앙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데에 있다.

 

2. 바울이 계속해서 아내, 자녀, 종 같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각각 이러한 복종에 딸린 조건을 적어보라.

5:22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6:1 -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6:5 - “종들아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 당시 사회문화에서 소위 갑의 위치에 쓴 사람들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대우하도록 권하는 어순으로 그렇게 한 것 같다. 그러나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진정으로 봉사하면 갑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반응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사를 은근히 드러내는 권면이다.

 

사회적으로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던 남편, 부모, 주인은 항상 두 번째로 언급되었다. 그들은 그 당시의 문화에 비추어볼 때 상당히 흔하지 않은 지침을 받았다. 이러한 지시는 1세기의 신자들에게도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 주위의 땅을 고르고 관계 속에서 경험해야 할 진정한 하나 됨의 길을 열었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들의 복종, 또는 순종은 교회론과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이 엡5:21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고 그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고(5:32) 하여 복종이 교회와 관계된 것을 잘 드러내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계시하였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다. 사지백체(四肢百體)들이다. 몸의 지체들은 머리의 지도를 받아 자기 임무를 수행한다. 지체가 건강하게 지체의 임무를 잘 감당하면 몸이 자기 역할을 다 하게 된다. 지체가 병들거나 고장이 나면 몸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 지체들이 제 역할을 건강하게 감당하는 것은 뇌의 지시에 복종할 때 가능하다. 뇌의 지시를 따라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뿐 어떤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제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공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자랑거리도 아니다. 지체가 역할을 하는 것은 뇌가 지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체의 움직임은 뇌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이며 뇌가 활동하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모든 지체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뇌, 머리이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결국 예수님의 지체노릇을 한 것뿐이다. 지체가 건강하면 몸이 건강하다. 성도들이 자기가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라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자각하고 있다면 자기 기능을 바르게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복종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교회에는 지체노릇 하지 않는 교인들이 너무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교훈 : 자발적인 복종을 통해서 관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예수님의 교훈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 안에 존재할 수 있는 불평등한 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516() 우리가 약속하는 사랑의 실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1:16).

 

궁극적으로 가정의 화합과 연합은 가족 구성원들의 헌신에 달려있으며 그것은 결혼한 배우자들이 서로를 돌보겠다는 헌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불행히도 성경의 역사는 지키지 못한 약속, 깨진 신뢰, 마땅히 있어야 할 헌신의 결여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헌신하며 자신의 약속을 지켰던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사례들도 있다.

 

1. 아래의 가족들이 보여준 헌신의 수준을 살펴보라. 일부 가정에서는 어떻게 헌신이 강화될 수 있었는가? 그러한 헌신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은 무엇인가?

부모와 자녀 사이의 헌신 (33:12~14, 2:1~10):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의 걸음걸이를 따라 천천히 진행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잘 기르도록 헌신했다.

형제자매 사이의 헌신 (37:17~28): 요셉이 그 형들에게 심부름을 갔다. 그러나 형들이 그를 팔았다.

가족 간의 헌신 (1:16~18, 2:11~12, 20, 3:9~13, 4:10, 13): 룻이 시어머니에게 헌신했고 보아스와 결혼하고 피처 헌신했다.

배우자 간의 헌신 (1:2~3, 6, 8, 3:1~3): 호세아의 헌신.

 

우리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기로 결심을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헌신하려고 할 때, 거기에는 미래의 특별한 선택을 위한 자발적인 자유의 포기, 즉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의 포기가 담겨있다. 율법은 부정적인 행위를 제한할 수 있겠지만, 결혼과 가족 관계는 그들을 번영하게 할 사랑을 그들 안에 필요로 한다.

 

<부가설명> 결혼 한다는 것은 서로 헌신적인 봉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봉사를 훈련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봉사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봉사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의 봉사 받기를 주장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봉사 받기를 바란다면 그런 결혼은 가정을 불행으로 몰아간다. 가정은 피차 사랑으로 봉사하는 장소이다. 예수께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시고 교회는 예수님께 헌신 봉사한다. 이렇게 봉사하는 것은 결혼 서약의 실천을 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이 성경의 교훈을 성령의 역사로 가정에서 실천하면 행복한 사랑의 연합을 이룰 것이며 교회도 모든 교인이 성도가 되어서 사랑을 실천하면 교회가 행복한 연합을 이루는 축복을 누릴 것이다.

 

교훈 : 가족의 연합은 가족 구성원들의 헌신에 달려있다. 그것은 가족을 복되게 하기 위한 자발적인 권리의 포기를 포함한다.

 

 

517()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재림신도의 가정>, 177~180 ‘신성한 사회’, <교회증언 6>, 236~238 ‘우리 사업에서의 연합을 읽어보라.

가족의 연합이 가져오는 결과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첫째 일은 가족들끼리 연합하는 일이다.가족들이 가정에서 하는 그들의 일로 더욱 가까이 연합하면 할수록 더욱 고상하고 유익한 감화가 생겨서 그 부모와 자녀들은 그것을 그 가정 밖에 발산할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37).

가족 간의 연합의 비결. “가족과 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열과 불화의 원인은 곧 그리스도께로부터 분리되는 데 있다.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가게 되면 피차에 가까워진다. 교회와 가족 내에서 참된 연합의 비결은 외교적 수완과 경영 수완 또는 난관을 극복하려는 초인간적인 노력비록 이것들이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도에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다”(같은 책, 17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그대가 속한 사회에서 가족의 연합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문화적인 요소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가정에 그대는 어떤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그대의 교회 안에서 파탄을 겪은 가정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런 위기의 시기에 안교반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그 가정을 도울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것은 그와 가정을 위하여 함께 간절이 기도하는 것이다.

 

복종의 주제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합니까? 그 원칙은 어떤 방식으로 남용되어 왔습니까?

수요일 부가설명을 읽어보라.

 

가정의 연합뿐 아니라 교회의 연합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기심 없는 겸손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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