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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작은 시련의 나날

 

68일 안식일

일몰오후 752

 

연구 범위 : 7:5, 1:7, 2:4~8, 4:26~27, 1:19~20, 3:19, 7:12

기억절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4:26).

 

최고의 가정들도 시련의 때와 갈등의 시기를 마주한다. 그것은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일면이다. 쓰레기를 내버리는 당번이 누군지, 딸이 숙제를 끝냈는지, 아들이 심부름을 다 했는지와 같은 단순한 일들은 조금은 귀찮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소소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학대와 조종으로 한 여인의 결혼생활과 건강에 해를 끼치는 시모, 자녀를 학대하며 정신질환을 앓는 아버지, 문란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모든 신앙 교육을 거부하는 아들, 약물 남용자가 되어가는 딸 등 가정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문제들도 있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13:34, 12:10), 서로 화평과 조화 속에 살며(15:5, 12:14), 서로에게 인내하고, 친절하며, 다정하게 대하고(고전 13:4),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2:3), 서로의 짐을 지라고(4:2) 가르친다. 물론 말보다 행동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가족에게조차 어렵다. 이번 주에 우리는 특별히 가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은 시련의 때를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려고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어떤 문제들과 태도가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좌우하는지를 깨닫는다.

느끼기 : 불완전한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용납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한다.

행하기 : 우리 가정에서 분노와 학대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기로 결심한다.

 

어떤 사소한 문제들이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깨는 원인이 될 수 있을까요?

과격한 언사와 사소한 욕심을 강하게 나타낼 때, 의견이 충돌할 때, 등등. 생각해 보라.

우리가 서로 성품의 결함을 용납해야 하는 신앙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15:7)

예수께서 우리를 그대로 받으신 사실에 근거해서 용납해야 한다.

우리는 화를 내는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까?(4:26~27)

분을 낼 때 마귀가 틈을 타게 된다. 마귀와 싸우는 우리는 그 틈을 없애야 한다.

가정에서 어떤 언행들이 폭력과 학대의 문제가 될 수 있을지 열거해 보십시오.

각자가 적어보자.

 

결론 : 가정의 행복을 해치는 것은 때로 사소한 갈등일 수도 있고, 때로 조절되지 않은 분노와 학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시고 평화의 나라로 부르신 예수님께 배우고 그분의 마음을 품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62() 갈등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7:5).

 

1. 7:5과 잠 19:11을 읽어보라.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19:11]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 첫째 자기를 먼저 살필 것, 둘째 화를 빨리 내지 않고 용서하는 정신을 나타낼 것.

 

잠언의 기자는 매우 재치 있는 소견을 내놨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17:14). 갈등은 한번 시작되면 중단하기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14:19에 따르면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즉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따름으로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 가정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 이러한 원칙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만일 그대가 어떤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상대가 누그러질 것이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싸울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보라.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19:11)고 진술한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3일간 그대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 생각해보라. 아니면 그것이 앞으로 5, 10년 동안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라. 돌이켜보면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대가 다른 사람, 배우자, 자녀, 동료에게 말할 때 그대는 갈등 상황을 길게 끌고 가기보다 논쟁 중에 있는 문제와 사안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해당 주제에 집중하고 싶을 것이다. 종종 갈등을 일으킨 문제가 분노의 언어 속에서 초점을 잃을 때 갈등은 더 악화되며 그러는 사이에 과거의 문제까지 불거진다. (이것은 특별히 부부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좀 더 부드럽게 논쟁을 시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대의 관계를 긍정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그에 대한 그대의 깊은 관심을 알게 하라. 긍정적인 감정으로 시작하면 그대는 해당 문제로 대화의 주제를 옮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러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대의 감정을 나눈 다음에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한 말을 되돌아본 다음에야 모두에게 최고의 유익을 염두에 둔 해결책을 제시하라(2:4, 5).

 

<부가설명> 싸움은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주장하도록 맡길 때 일어나게 된다. 상대가 내게 잘 했든지 잘못했든지, 상대가 내게 약을 올리든지 해롭게 하든지 자기 자신이 자기의 정서를 평상시대로 유지하면 싸움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을 화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법칙이다. ‘상대가 내 감정(정서)을 주장하도록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이것을 주님께 아뢰고 성령께서 나를 전적으로 주장하도록 맡기면 화나는 것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1:20) 사람이 이성으로 사리를 생각하면 화나는 것을 다스리는 지혜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감성이 상대에 의하여 자극을 받을 때 그 자극이 자기 감성을 주장하게 하면 화가 치민다. 그러면 안색이 변하고 언어가 거칠어지게 된다. 자신이 잘했거나 잘못했거나 올바른 이성으로 판단하고 상대가 자기의 감성(감정)을 주장하지 않게 하면 싸움은 미연에 방지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예수님은 자기 정서를 남이 주장하도록 하지 않으셨다.

 

교훈 :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원칙을 따라야 하고, 갈등의 해결은 관계를 긍정하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63() 결혼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원칙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1:7).

 

결혼도 안식일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그 기원은 에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영혼의 원수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안식일과 결혼제도에 무슨 짓을 자행했는지 알고 있다. 최고의 결혼 관계도 가끔은 갈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다음은 부부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원칙들이다.

 

1. 1:7을 읽어보라. 여기서 제시된 어떤 원칙이 모든 결혼 생활에 중요하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배우자에게 예수님 정신으로 용서하려는 마음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대는 배우자가 용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상황에서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용서받을 만한 자를 용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용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시는 방식처럼 합당하지 않은 자를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처럼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설령 우리의 결혼 생활이 유지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옥 같을 것이다.

 

2. 3:23을 읽어보라. 여기에서는 또 어떤 중요한 원칙이 제시되었는가?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자신도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이 한 명의 죄인 즉 정서와 육체와 영이 얼마간 손상을 입은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사실에 익숙해지라. 배우자의 결점들을 용납하라. 그것들을 보완할 방법을 찾으라. 어쩌면 그대는 그것들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들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만약 그대가 그것들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갖는다면 그것들이 그대를 산 채로 삼켜버릴 것이다.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신다. 따라서 거룩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그대는 당연히 그대의 배우자를 그렇게 용납해야 한다.

 

<부가설명> 사람은 자신이 결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자기와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해를 잘 못한다. 너무나 자기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중심이 바뀐 사람들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노력이 아니고 거듭남으로 된다. 그리스도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움직이는 생명은 육체의 생명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이어야 한다. 그 생명이 있을 때만 그리스도 중심의 생각. 언어, 감성, 태도, 의지가 생긴다. 거듭나는 경험이 없이 이런 것이 생길 수 없다. 처녀에게는 아내의 마음이 생길 수 없다. 자녀를 출산해서 양육해보지 않은 부부에게는 진정한 부모의 마음이 생길 수 없다. 총각에게 남편의 마음이 어찌 생기겠는가? 우리가 그런 마음이 생기려면 그런 사람이 될 때에만 진정으로 생긴다. 짐작하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어떤 일을 만났을 때에는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신은 그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무의식의 속삭임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똑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신으로 함께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이루지 않겠는가.

 

교훈 :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것처럼 우리도 결혼생활 중에서 서로의 결함을 기꺼이 용서하며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64() 갈등 상황에서 일어나는 분노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4:26~27).

 

분노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분노가 가족에게 표출될 때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분노는 가정과 일반적인 관계에 큰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독소가 될 수 있다.

 

1. 4:26~27과 전 7:9을 읽어보라. 우리는 감정적인 분노죄가 되는 분노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차이점은 무엇인가?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 감정적인 분노를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죄가 되는 분노로 발전하는 것이다. 마귀가 틈을 타서 죄가 되게 한다.

 

2. 야고보는 우리 가족의 행동과 태도와 언어가 우리를 분노하게 할 때에도 어떤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하는가?(1:19~20)

[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 듣기는 속히 하지만 반응을 더디게 하는 원칙을 제시한다.

 

그대가 어떤 것에 대해 화가 난다면 그것이 검은 구름처럼 그대의 삶을 덮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그것을 긍정적인 대상으로 전환시키라. 그대에게 상처를 주고 그대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복이 돼라. 아마도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결심하고 그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돌봐주실 것이다.

때로 우리가 자라온 가정이 우리가 표출하는 분노의 근원이 된다. 일반적으로 쉽게 분노하는 사람은 분노하는 가정에서 자라서 부모로부터 배운 행동을 그들의 삶에서 반복하고 다시 자녀들에게도 물려준다. 종종 분노는 충족되지 않은 필요의 결과 또는 시기심에 기인한다. 가인의 경우에는 시기심이 형제를 살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대에게 분노할 만한 정당한 사정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계속 분노하는 것이라고 핑계대지 말라. 그것을 거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오히려 그것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좋은 충고를 준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부가설명> 이미 앞에서 감성을 상대가 주장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상의 언사(言事)가 내 지성과 감성에 거슬릴지라도 반응을 더디 하는 지혜를 발휘하도록 춤을 한 번 꿀꺽 삼킬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기 감성을 스스로 다스리면서 평상시에 나타나는 그런 감성으로 상대를 바라보면서 평온하고 유순한 말로 반응한다면 분노가 사그라지게 될 것이다. 사람의 화를 돋우는 데는 언어가 대단한 역할을 한다. 잠언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고 했다.(15:1) 그리스도인은 언어생활에 대하여 특히 유의해야 한다. 말의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3:2) 부부 사이에 가족 사이에 부드럽고 인정 있는 말을 주고받도록 주님 앞에서 항상 연습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예수님의 말은 은혜로운 말이라고 했다.(4:22) 시대의 소망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언어는 음악 같았다고 했다. 우리의 언어는 어쩌면 과격한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지 않았는지 모른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그런 문화로 성장했기 때문에 이것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항상 의식적으로 언어를 유순하고 인정 있게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연습하면 성령께서 이루어주실 것이 아니겠는가.

 

교훈 : 분노는 인간관계에 큰 상처와 고통을 주며 종종 가정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학습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65() 갈등, 학대, 힘과 지배력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때로 해소되지 않은 갈등과 분노는 매우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동력, 심지어 학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학대에는 육체, 언어, 감정, 심리, 성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어떤 종류의 학대이든지 그것은 이타적인 사랑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중심 원칙에 위배된다.

 

1. 요일 4:7~8과 골 3:19에는 관계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교훈들이 있는가?

[요일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사랑을 생활한다. 사랑의 첫 대상이 아내다. 결고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3:19). ‘괴롭게 하다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상대에 대하여 지속적인 고통과 극도의 적대감, 증오의 표현을 야기하는 분노 또는 분통한 상태를 가리킨다. 바울의 입장은 분명하다. 배우자는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 감정적, 성적, 신체적인 학대는 그리스도인 남편 또는 부부가 용납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바울은 또한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쉽게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했다(고전 13:4~6). 어떤 방식과 모양과 형태로든 학대를 조금이라도 인정하거나 용납하는 속성의 사랑은 없다.

건강한 관계란 상대가 서로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관계이다. 그런 관계에서 분노는 건전한 방식으로 관리되며 서로를 섬기는 것은 규범이 된다. 학대의 피해자는 자신이 마치 학대자의 분노를 유발한 것처럼 죄책감을 느끼며 학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학대자들은 상당히 지배적이고, 피해자로 하여금 책임감을 느끼도록 조장하는 데 능숙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학대를 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러한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은 학대자에게 있다. 감사하게도 성경은 학대의 피해자들을 위해 죄책감이 아니라 위로를 제공한다. 문제가 수습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부가설명>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힘이 센 편이다. 성경은 아내를 연약한 그릇이라고 표현했다.(벧전3:7) 남편들이 아내를 힘으로 윽박질러서 자기 위신을 세우려고 하든지 권위를 세우려고 한다면 심히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듯이 필부의 뜻을 빼앗을 수 없다. 아내가 남편의 우격다짐 앞에 눈물을 흘리고 말하지 않는 것이 마음으로 순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갈등만 키우고 학대한다는 느낌만 깊게 하며 상처를 만들뿐이다. 사랑이 가장 큰 힘이다. 남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자로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것이 남편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했다.(벧전3:7) 아내를 학대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상달할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닌가? 힘은 보호하는데 쓰고 봉사하는데 써야 한다. 결혼생활은 봉사훈련 생활이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으로 봉사하고 아내도 남편을 사랑으로 봉사하면 화목할 것이며 사랑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남편들이 힘으로 아내를 학대하려는 생각은 아예 의식에서 없애버려야 한다.

 

교훈 : 학대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부부와 가족으로서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고 섬길 책임이 있고 서로에게 사랑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66() 용서와 화평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1. 가정 안팎에서 이 원칙을 적용해야 했던 경험을 생각해보라. 그대가 믿음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던 때가 언제인지 아래에 적어보라.

 

: 반생들 각각 답을 적어야 하는 곳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12:14)고 권면했다. 우리가 가능한 모든 것을 해도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아직도 우리의 말을 듣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사과하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지 그들이 특히 가족이라면 앞서 이야기했던 용서의 과정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특히 가족과의 갈등 해결에는 용서가 필수적이다. 한 사람이 우리에게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원수는 우리가 그 사람과 장벽을 쌓기를 원한다. 그러한 방어벽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우리는 내가 용서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용서하듯이 용서를 받는 것이다. 모든 용서는 공로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 우리가 과연 그 사랑을 내 것으로 삼았는지가 나타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7:2)고 말씀하신다”(실물교훈, 251).

한편 과실을 범한 쪽도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은 상대에게 찾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을 포함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5:23~24).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동일한 종류의 유감을 표시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부가설명> 용사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은 다 평화를 맛볼 것이다. 언젠가 말했지만 용서하지 않는 정신은 마귀의 정신이다.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2:10,11) 이 말씀은 용서하는 것은 사탄에게 속지 않는 삶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니까 용서하지 않게 하는 것이 사탄의 궤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라도 용서를 구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스스로 잘못을 느끼지 못할 때 어떻게 용서를 구하겠는가? 또 용서할 사람이 용서할 마음이 없을 때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를 구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서받을 사람이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럴지라도 용서할 사람이 용서할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다면 화해가 되지 않는다. 용서할 사람은 용서받을 사람이 용서를 구하기 전에 용서하고 사는 것이 성경적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용서가 바로 이런 것이다. 십자가는 아담의 모든 후손들을 용서하셨다는 표이다. 부부가 예수님 정신으로 생활한다면 갈등과 학대가 없고 용서와 평화가 가정을 채울 것이다. 이 은혜가 우리 모든 가정에 충만하기를 바란다.

 

교훈 : 우리는 깨진 관계의 회복과 평화를 위해 항상 힘써야 한다. 특히 용서는 갈등 해결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에 기초해야 한다.

 

 

67()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모가 그들의 가족을 돌보는 일에 서로 합심하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아버지는 그들의 성질과 기질의 특수성에 무지하며 가혹하고 엄하다. 그는 자기의 성질을 조절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자녀를 훈계한다. 아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체벌로 인해 굴복하기보다 분노만 쌓여간다. 어머니는 어떤 때에는 비행을 묵인하면서 어떤 때에는 가혹하게 벌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까지면 처벌 없이 범죄할 수 있는지 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이렇게 불행의 씨가 뿌려지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다”(재림신도의 가정, 314~315).

가정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고결한 애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화평, 조화, 애정 그리고 행복이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까지 가족을 이루는 이들은 그 값진 것들을 날마다 끈기 있게 품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식물은 조심스럽게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고 말 것이다. 그 식물이 우리의 영혼 속에서 잘 자라게 하려면 모든 선한 원칙을 품어야 한다. 사탄이 우리 마음에 심어 놓은 시기, 질투, 억측, 나쁜 말, 조급함, 선입관, 이기주의, 탐욕 그리고 허영심과 같은 것들은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한다. 만일 이런 나쁜 것들이 심령에 남아 있도록 용납된다면 그것이 많은 사람을 더럽히게 할 열매를 맺을 것이다. !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랑의 값진 열매들을 소멸시키고 심령을 더럽히는 해로운 식물들을 가꾸고 있는가!”(같은 책, 195~19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결혼에 관한 다음의 글을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최상의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의 상황 속으로 오신 것처럼, 우리도 배우자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주어진 환경과 위기를 자신의 관점이 아닌 배우자의 관점에서 보기 위해 노력하라. 그가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이 그에게 미칠 영향, 그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라. 이 원칙은 험한 상황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Clifford Goldstein, The Mules That Angels Ride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Publishing Association, 2005), p. 25. 우리는 이런 원칙을 다른 사람과의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성령의 지도에 굴복할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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