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3과 마지막 때에 마음을 돌이킴

 

629일 안식일

일몰오후 757

 

연구 범위 : 4:5~6, 11:14~15, 17:10, 왕상 16:29~17:24, 18:20~45, 3:2

기억절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4:5~6).

 

우리의 삶에는 단계들이 있다. 그 단계들이 무사히 지나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가족들은 온전하고 강할 때도 있지만 부서지고 산산조각이 날 때도 있다.

우리 각자 또는 우리 가족이 어떤 국면, 어떤 단계, 어떤 상황에 있든지 우리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빛 가운데서 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그러한 약속들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의 인생이 어떤 단계에 있든지 우리가 우리 자신, 사랑하는 자들, 우리 가족, 우리 교회를 위해 주장할 수 있는 약속들이 흘러넘친다.

이번 기 마지막 주에 우리는 성경의 다양한 문맥에서 나오는 기사와 약속과 경험들 속에서 지금 우리를 위한 교훈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에 직면하고 있는지 아실 뿐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아신다. 이런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에 우리는 어떤 난관 앞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깨닫기 : 엘리야의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시대에 적용되는지 이해한다.

느끼기 : 가족 제단의 회복으로 우리 가정이 그분께 돌아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행하기 : 우리 가정을 통해서 다른 가정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실천한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와의 만남을 통해 가정의 회복과 신앙의 회복을 어떻게 연결시켰습니까?

죽은 아들을 살려서 가정의 평안을 회복하여 시돈의 바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게 하였다.

그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했습니까?(왕상 18:20~45)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돌보심을 드러내는 일을 통하여 그렇게 하였다.

침례 요한은 어떻게 예수님 시대의 엘리야로서 활동했습니까?(1:35~37, 3:27~30)

회개의 기별을 전하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므로 그렇게 했다.

우리 가정은 어떻게 가족 제단을 다시 쌓아야 할까요?

기도하고 결단하여 당장 오늘부터 실행하면 된다.

우리 가정을 통해서 다른 가정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면 가족끼리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요?

사랑으로 연합하여 거룩한 삶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결론 : 엘리야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그분께로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침례 요한도 그와 동일한 사명감을 가지고 유대 백성의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시대의 우리도 깨진 가정을 회복하고 복음이 실제로 작용하는 모습을 통해 다른 가정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623() 마음을 돌이키게 되리라는 예언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4:5).

 

1. 엘리야가 오리라는 예언과 그 사건에 대한 신약성경의 언급을 비교해보라(4:5~6, 11:14~15, 17:10, 6:15, 1:17)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11:14,15]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7:10]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6:15] 어떤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 침례요한이 말라기에 예언한 그 엘리야라고 예수께서 확인하여 말씀하셨다.

 

말라기 시대에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유다 민족에게 호소하셨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는 오만한 대답을 들어야 하셨다(3:7). 낙담한 선지자는 다시 한 번 부흥의 기회가 주어지리라고 선언했다. 엘리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던 마음을 돌이키는 부흥을 회상하면서(왕상 18:37), 말라기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4:6)기 위해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엘리야가 직접 메시아의 전령이 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전설이 있었다(비교 마 17:10, 6:15). 그러나 신약성경은 침례 요한을 그 예언의 성취로 제시한다(11:14~15, 1:17).

마음을 돌이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문구에 대해 몇 가지 해석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화목을 가리킨다.’ 아버지이신 하나님(63:16)은 그분의 자녀에 대한 분노를 돌이키시고(7:18~19), 그들에게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신다(44:22, 3:7). ‘그것은 언약의 갱신을 통해서 이후의 세대들을 신실한 선조들에게 다시 연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구약성경을 보면 선조의 믿음을 따르라는 예언적인 호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속적으로 제시된다. 그 땅이 계속 축복의 거주지가 될지의 여부는 언약에 대한 성실성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었다(4:29~31).

그것은 가족 관계의 회복과 갱신을 의미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성실성을 가리키는 실제적인 표현 방식이다. 여기서도 부모와 자녀에 대한 의무 이행이 그 땅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상속권의 유지와 긴밀하게 엮여있다(2:21).

 

<부가설명> ‘엘리야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구약의 엘리야가 활동한 시대는 북방 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대이다. 아합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았는데, 이세벨은 결혼지참금으로 바알 선지자 450,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데리고 왔다. ‘엣바알이라는 뜻은 바알의 종이다. 그런 왕의 딸이니까 이세벨이 얼마나 바알 종교 전파에 열심이었겠는가? 그가 왕의 권력을 업고 이스라엘 나라를 바알 종교 나라로 개혁하기로 만을 먹고 그 선지자들을 각 지방마다 배치하고 조직적으로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를 파괴하였다. 이때 디셉 사람으로 엘리야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원래 이름이 엘리야였는지, 바알 종교에 대항하는 이름으로 엘리야라는 이름을 썼는지 모르지만 바알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바알이 하나님(엘로힘)이라고 열심히 주장하였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바알이 엘로힘이 결코 아니고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엘로힘이라는 것을 역설하였다. 그는 갈멜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인지 바알이 하나님인지 내기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시키고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멸하고 이스라엘의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였다. 그러나 워낙 바알종교가 드세어서 개혁이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제 역사의 종말에도 안식일을 지키라하신 분이 참 하나님인지 일요일 지키라하는 자가 참 하나님인지 내기하는 것이 중요한 신앙적 사건이 된다. 그래서 역사의 종말에 이 일을 담당할 무리를 말세의 엘리야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관계 회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교훈 :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출현할 엘리야의 사명은 근본적으로 부모와 자녀 관계로 표현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 관계의 회복을 강조한다.

 

 

624() 가족의 재결합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왕상 17:23).

 

아합의 아내였던 시돈의 공주 이세벨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한 바알 신앙은 그 나라의 도덕적인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결혼, 가족, 성의 가치를 고양시켰던 하나님의 가르침들은 근친상간, 매춘과 그 밖의 변태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빛을 잃었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엘리야는 예배가 쟁점이 된 대결의 장에 발을 들이며 바알을 꾸짖었다.

 

1. 엘리야의 어떤 경험이 이방 신앙을 물리치고 가정에 새로운 삶을 가져가는 사역과 그를 연결시켰는가?(왕상 16:29~17:24를 눅 4:25~26과 비교하라)

[왕상16:29~17:24] 본문을 찾아 읽기 바란다. 너무 길어서 여기 적지 않는다. 이야기는 아합이 바알 종교를 끌어들인 것과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려 어머니에게 돌려준 내용이다. 24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4:25,26]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서 바알종교가 거짓 종교이며 엘리야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고백하였다.

 

엘리야는 그 땅에 가뭄의 저주를 선언한 이후로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하나님은 이세벨의 고향과 가까운 시돈 땅 사르밧의 가난한 어느 과부의 집이라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 그를 숨기셨다. 엘리야는 그 과부를 만나자마자 염치없이 그녀에게 있는 마지막 연료와 식용유 그리고 밀가루로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의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요구를 했다. 그녀의 믿음은 전설이 되었다. 예수님도 나중에 그녀를 칭찬하셨다(4:26). 여러 날이 되어도 식용유와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자 그녀는 여호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외아들이 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녀는 엘리야에게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면서 부모의 죄로 인해 자녀의 희생을 요구하는 이방 종교의 비뚤어진 신앙을 떠올렸다(왕상 17:18; 비교 렘 19:5, 6:7). 그런데 그 종교들이 지금 이스라엘을 에워싸고 있었다.

 

2. 아들과의 재연합은 시돈 여인의 영적인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왕상 17:24) 그녀의 진술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왕상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확립하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 어머니의 반응은 엘리야가 전한 기별의 효과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이 회복되고 가정이 재결합할 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마음속에 일어난다.

 

<부가설명> 사르밧 또는 사렙다는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고 시돈의 변방 영토였다. 그 여자는 시돈의 종교와 이스라엘의 종교를 다 바라볼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살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듣고 마음으로 바알종교가 아니라 여호와 종교가 참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여자에게 자기 종 엘리야를 보내어 여호와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 되심을 깨닫게 하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가뭄은 이스라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바알종교의 나라 시돈에도 있었다. 바알 선지자들은 우로를 주장하는 엘로힘(, 하나님)은 바알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사람들을 속였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신 것이다. 바알 선지자들은 가뭄이 계속되자 아마도 바알에게 열렬히 기도하고 제사 드리고 했을 것이다. 시돈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사르밧 과부는 그런 것들을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엘리야에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한 것을 보면 엘리야의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엘리야는 과부의 가루통과 기름병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으로 될 일을 말했다. 과연 그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고 죽은 아들까지 살려주자 그 여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 것을 고백하였다. 그것은 바알 선지자들과 투쟁해서 승리할 것을 보여주는 전조(前兆)였다. 바알종교는 사람을 굶어 죽게 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살게 하시고 가정을 복되게 하셨다. 지금도 엘리야 사명은 가정을 참된 생명의 장소가 되도록 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사르밧 모자의 회복을 돕고 여호와 신앙을 일깨운 엘리야의 경험은 이방 신앙으로 파탄 난 이스라엘 민족과 가정을 참신앙으로 회복시킬 사명을 암시했다.

 

 

625() 제단에서 마음을 돌이킴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왕상 18:30).

 

1. 왕상 18:20~45을 읽어보라. 이 일화는 근본적으로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아래 요약해보라. 시대가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이 기사에 드러난 원칙들을 어떻게 우리 가정생활에 적용해야 하는가?

[왕상18:20~45]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23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26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깐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 하여 세 번 그리하니 35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 바알과 여호와 중에 누가 참 하나님인지 증명하고 참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여호와가 참 경배 받으실 하나님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오늘날도 누가 경배 받으실 참 하나님인지 증거 되어야 한다.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서 민족의 언약을 갱신하고, 조상들의 신앙으로 돌아서서 그들의 삶과 가정과 땅에 치유가 임하기를 고대했다.

저녁 제사를 드리는 시간. 이교 제사장들이 제물을 바치는 데 실패하자 엘리야의 차례가 됐다. 그는 느긋했다. 성소 봉사에서 계시되었던 구원의 역사에 주목할 시간이었다(비교 출 29:41). “내게로 가까이 오라”(왕상 18:30)는 초대는 죄인들을 영접하시는 구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비교 마 11:28). 자녀의 비행으로 괴로워하는 부모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참으로 우리의 자녀들도 사랑하신다고 믿어도 된다. 하나님은 고집스러운 자들을 그분께로 이끄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

엘리야가 여호와를 위한 제단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이 시대의 가정에서도 예수님과 그분의 은혜가 높임을 받아야 한다. 가정예배는 기도로 그분께 말하고, 그분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구원의 선물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그분의 가르침을 묵상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기회이다.

엘리야가 간구한 반응은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받아주셨다는 신호였다.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 단지 그분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반응할 수 있을 뿐이다.

완전하게 소멸하는 불이 죄뿐 아니라 번제물 위에 떨어졌는데 그것은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시고 대신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고후 5:21) 하신 예수님을 가리켰다. 백성들의 입에서 고백과 찬양이 터져 나왔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형되었다. 그다음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져 그 땅에 임했던 저주가 풀렸다.

 

<부가설명> 아합과 이세벨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만연한 바알 숭배는 오늘날 태양의 날을 성일로 삼아 예배하게 한 것에 대한 옛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여준 역사적 상징이다. 엘리야는 바알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세력과 맞서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선지자였다. 똑 같이 오늘도 일요일을 주일인 성일로 지키며 예배해야 한다는 세력에 맞서서 제7일안식일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게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별을 전파하고 실천해야 한다. 갈멜산은 므깃도 지역 이스르엘 평원 끝에 지중해에 솟아 있는 산이다. 이 대결은 계시록에 기록된 여섯째 대접을 쏟을 때 일어나는 아마겟돈 전쟁의 역사적 표상이다. 아마겟돈은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인데 므깃도의 산은 갈멜산 밖에 없다. 거기서 엘리야, 즉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선지자와 바알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누가 참 하나님인지 증명하는 대결이 있었듯이 여섯째 재앙 때에 그런 대결이 있게 될 것이다. 그전에 바알 정신의 세력들은 역사와 교회를 장악하고 참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들을 가능한 한 핍박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날이 가까우니 재림성도의 가정은 마음을 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려서 올바른 신앙으로 경배하며 영원을 위하여 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단에 모이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셨다. 우리도 가정예배를 통하여 자녀를 위해 끝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626() 요단강에서 마음을 돌이킴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11:10).

 

예수님은 침례 요한이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엘리야라고 확증하셨고(11:14, 17:12~13), 복음서 기자들도 가브리엘의 예언(1:17)에 따라 그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전령임을 인정했다(11:10, 1:2, 7:27; 비교 말 3:1).

 

1. 침례 요한이 전한 기별의 핵심적인 측면들을 주목하라. 그의 기별은 어떻게 마음을 돌이키는 기별이 되었는가?(3:2, 8, 14:4, 1:4, 3:3, 8~9, 11, 13~14)

[3:2,8]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4] 침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3:3,8,9,11,13,14]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1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3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기별이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기별이다.

 

씨를 뿌리기 전에 단단한 땅을 일구는 농부처럼 요한은 죄를 지적하며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반성과 현실에 대한 자각 없이는 더 나은 것에 대한 필요를 못 느낀다. 그의 기별은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요구와 완전하신 그분의 의로움에 대한 필요성을 바라보도록 백성들을 돌이켰다. 진정한 회개의 특징은 언제나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행위를 변화시켜달라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침례 요한은 아브라함을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얄팍하고 자기중심적인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조상들의 깊은 신앙의 의미를 펼치려고 노력했다.

 

2. 침례 요한의 기별은 어떻게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했는가?(1:35~37, 3:27~30)

[1:35~37]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27~30]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 구주 메시아가 누구신지를 분명히 지적하여 증언했다. 결과로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을 찾았고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그의 형제에게 증언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이 침례 요한에게 제시되었다. 그는 예수님을 이러한 의미로 소개함으로써(1:29, 36), 실질적으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켰다. 그날의 일화를 복음서에 기록했던 제자 요한은 안드레와 함께 침례 요한의 곁을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엘리야의 기별은 회개의 필요성을 지적할 뿐 아니라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 누구인지 확인해 주고, 그분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켜서 사람들을 그분께 인도한다.

 

<부가설명>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분께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 요한도 동일하게 회개하라고 호소했다. 엘리야는 경배해야 할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지적했고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지적했다. 회개라는 헬라어는 메타노이아인데 생각을 바꾼다는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슈브인데 돌이킨다는 뜻이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지구의 아담의 후손들을 향하여 마음을 돌이키셨다. 그 증거가 십자가와 부활이다. 오늘날 엘리야의 사명을 받은 무리들도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향하여 마음을 돌이키셨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슈브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곳에 있다. 즉 돌이키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도 돌이킬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회개하라고 한다(20:21). 또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고 한다.(6:1) 이런 회개는 생명을 얻게 하는 회개이다.(11:18) 회개의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부활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 생명을 얻기 위하여 성경이 가르친 그 회개를 경험해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다 같이 이 회개를 경험하고 참된 생명을 얻으면 그 생명의 역사로 그리스도인들은 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가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천국이 될 것이다. 마지막 때의 엘리야 사명이다.

 

교훈 : 침례 요한은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거룩함에 이르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도록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엘리야의 사명을 성취했다.

 

 

627() 종말의 때에 마음을 돌이킴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17).

 

우리는 침례 요한의 역할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개혁과 회개의 그 전령이 초림하시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듯이 우리도 일종의 운동이 되어서 재림을 위해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

 

1. 1:17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라. 이 말씀은 우리의 기별을 어떻게 포착하고 있는가?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 우리도 참 하나님 창조주를 경배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도록 기별을 전하여 주의 재림을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마음을 그분께로 돌이키셨고 다시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서로에게로 돌이키셨다. 엘리야의 기별은 각 가정들이 이 놀라운 복음을 믿고(고후 5:18~21; 비교 엡 2:11~18) 그분의 영께서 그들 안에 사랑의 열매를 맺는 동안 그들이 은혜로 충만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세상은 이타적이고, 동정적이며, 지속적인 열심과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헌신의 증거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같은 증거를 게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전할 기별은 또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복음, 연합, 사랑, 자기희생의 정신이 우리 중에서 특히 우리 가정 안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이 기별을 전할 힘이 우리에게 부족할 것이다. 어떤 유창한 설교와 논리적이고 성경적인 강연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세상은 우리의 삶 속에 특히 우리의 가정 안에서 우리가 설교하는 그 회개와 돌이킨 마음, 사랑, 헌신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 침례 요한의 기별에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동일한 일을 할 수 있다. 단 우리가 기꺼이 협력하는 만큼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된다(3:15). 따라서 우리가 일인 가구이든지 그 이상이든지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증인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한 가족이 그 규모와 상관없이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는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보다 우리의 증언을 더 효과적이게 하는 것은 없다.

 

<부가설명> 재림교회는 역사의 종말에 마지막 자비의 기별인 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도록 예언된 대로 조직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다. 이 무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사탄과 싸우는 하나님의 군사들이다. 엘리야가 조롱당하듯이, 침례요한이 핍박 받듯이, 예수님이 배척당하듯이 그렇게 이 무리가 세상에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 무리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기 때문에 감당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가정이 진리로 정결해지고 굳게 서야 한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보내어 아버지와 자녀가 각각 서로를 향해 마음을 돌이키도록 하는 사명에 대하여 증거한 말라기서는 가정을 올바르게 세우라는 기별이다. 구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마지막 역사가 느헤미야서이다. 마지막 장인 13장에 가정 정결 기별로 끝을 맺었다. 말라기는 가정 정결의 기별이 핵심이다. 가정의 거룩함과 경건과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라는 기별이다. 그 사명은 역사의 종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세상에 두신 엘리야의 사명을 받은 남은 자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시하신 말씀이다. 재림성도들이여, 가정의 경건을 회복하고 가족들이 거룩한 경험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을 회개하고 참 생명을 얻어서 그 생명의 역사로 예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엘리야의 사명을 다하지 않겠는가?

 

교훈 : 세상은 우리가 전하는 기별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가정 안에서 어떻게 실제로 이뤄졌는지를 보고 싶어 하며 그것보다 더 효과적인 전도도 없다.

 

 

628()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선지자와 왕>, 143~154 ‘갈멜’, <시대의 소망>, 97~108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읽어보라.

우리의 기별은 침례 요한의 기별처럼 직접적이어야 한다. 그는 왕들의 죄를 책망하였다. 생명이 위태로웠지만 그는 진리가 그의 입술에서 약해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이 시대에 우리의 사업도 그와 같이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화잇주석, 4: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엘리야의 기별과 그대의 교회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토의해 보십시오. 교회가 그 기별과 그것을 전해야 할 교회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교인 각 사람이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경험하여 가정에서부터 경건을 회복하고 생활로 영원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기꺼이 회심의 경험을 나눌 분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십시오.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러한 경험이 그대의 삶과 가정생활에 어떤 감화를 끼쳤습니까?

각 사람이 이야기해보자.

 

침례 요한의 역할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기기를 기대해야 합니까? 그 대답에 어떤 확실한 기별이 있습니까?

영원한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기별대로 살면서 증언하는 인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안교소그룹에서 가족에 대한 성경의 개념을 잘 압축한 가족 원칙 선언문같은 문장을 작성해 보십시오. 그대는 어떤 기준들을 사용해서 그러한 원칙들을 작성하기를 원합니까? 이러한 원칙들이 가리키는 것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어떤 교훈들을 배웠습니까?

예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시는 말씀을 온전히 준행하면서 가족 모두가 개인적으로 진리를 생화에서 경험하고 가정이 천국이 되어 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나타내는 가정이 되도록 성령께서 말씀이 생활이 되도록 이끌어주소서.

 

자녀가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면 그대는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어떤 약속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자녀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도록 하시겠다는 말라기의 기별을 주장하며 호소할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11 제4과 반대에 직면하여(질문, 대답, 설명) 10/26/19 김명호 2019.10.17 45
910 제3과 하나님의 부르심(질문, 대답, 설명) 10/19/19 김명호 2019.10.10 386
909 제2과 느헤미야(뜻:여호와가 위로함)(질문, 대답, 설명) 10/12.19 김명호 2019.10.05 450
908 제1과 역사 이해하기 : 스룹바벨과 에스라(질문, 대답, 설명) 10/05/19 김명호 2019.09.27 487
907 제13과 섬기는 자들의 공동체(질문, 대답, 설명) 09/28/19 김명호 2019.09.20 450
906 제12과 긍휼을 사랑하고(질문, 대답, 설명) 09/21/19 김명호 2019.09.12 471
905 제11과 재림의 소망을 따라 사는 삶(질문, 대답, 설명) 09/14/19 김명호 2019.09.06 569
904 제10과 복음을 따라 사는 삶(질문, 대답, 설명) 09/07/19 김명호 2019.08.30 572
903 제9과 신약 교회의 사역 (질문, 대답, 설명) 08/31/19 김명호 2019.08.23 559
902 제8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질문, 대답, 설명) 08/24/19 김명호 2019.08.16 585
901 제7과 예수님과 도움이 필요한 자들(질문, 대답, 설명) 08/17/19 김명호 2019.08.09 621
900 제6과 예배와 창조주(질문, 대답, 설명) 08/10/19 김명호 2019.08.02 781
899 제5과 선지자들의 외침(질문, 대답, 설명) 08/03/19 김명호 2019.07.26 755
898 제4과 시편과 잠언에 나타난 자비와 공의 (질문, 대답, 설명) 07/27/19 관리자 2019.07.19 886
897 제3과 안식일 : 해방의 날(질문, 대답, 설명) 07/20/19 김명호 2019.07.10 899
896 제2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청사진(질문, 대답, 설명) 07/13/19 김명호 2019.07.05 1007
895 제1과 하나님이 지으신(질문, 대답, 설명) 07/06/19 김명호 2019.06.28 865
» 제13과 마지막 때에 마음을 돌이킴(질문, 대답, 설명) 06/29/19 김명호 2019.06.22 877
893 제12과 그대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질문, 대답, 설명) 06/22/19 김명호 2019.06.14 1030
892 제11과 믿음의 가정(질문, 대답, 설명) 06/15/19 김명호 2019.06.07 92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6 Next
/ 46
Copyright© 2011 www.3amsda.org All Rights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