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청사진(질문, 대답, 설명) 07/13/19

by 김명호 posted Jul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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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청사진

 

713일 안식일

일몰오후 754

 

연구 범위 : 3:7, 22:37~40, 22:21~23, 14:22~29, 26:1~11, 25:8~23

 

기억절 :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9:18).

 

자비롭게도 하나님은 항상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백성을 두셨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인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열망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소수의 개인과 그들 가족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복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들에게 복을 나눠주기 위한 더 큰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2~3)고 하셨다. 복을 받았으므로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복은 이스라엘 민족과 궁극적으로 그 민족을 통해 오실 메시아로부터 흘러나올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세우실 때에 하나님은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일하셨다. 즉 그분은 그들에게 율법과 규율과 절기와 규례를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이 되도록 살게 하셨다. 이러한 원리는 지금도 계속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건설하시려고 했던 공의로운 사회의 모습을 이해한다.

느끼기 : 우리의 고통을 들으시고 취약 계층의 호소에 관심을 기울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행하기 :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들으시는 모습에서 그대는 하나님에 대해 어떤 것을 느낍니까?(3:7)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언제 살피시고 이끄시는 사랑의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은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사회를 건설하기를 희망하셨습니까?(22:21~23)

사랑과 평등과 공평한 사회를 이루기 원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일조 외에 불우한 이웃을 위해 어떤 자금을 모았습니까?(14:28~29)

3년마다 일상적인 십이로 외에 드리는 십일조로 구제에 사용하도록 하셨다.

땅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타인에게 영원히 양도되는 것을 방지한 제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공평과 평등을 위한 아주 탁월한 제도라고 생각된다.

 

결론 :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복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고통 받는 인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에 깊은 관심을 가지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만드시려는 사회에서 우리는 그분의 계획과 관심을 반영해야 합니다.

 

 

77() 들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3:7).

 

사백 년은 기다리기에 지칠 만한 시간이다. 극도로 고달픈 노예생활의 환경에서라면 특히 그러하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로 돌아와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교 압제자들의 부와 명성을 쌓는 일에 착취를 당하고 있었으며 그동안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하나님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외딴 광야에서 불붙은 떨기나무를 통해 모세라는 이름의 비천한 목동에게 나타나셨다. 사실 그는 도망한 왕자로서 지도자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꺼려했지만, 그분은 그에게 해야 할 일을 주셨다. 그가 해야 할 첫째 임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을 들으시고 그들의 억울함을 보시며 진실로 염려하고 계신다는 기별을 가지고 애굽에 있는 그들에게 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분은 그들의 상황을 극적으로 전환시킬 일을 곧 행하실 계획이었다.

 

1. 3:16~17을 읽어보라. 왜 하나님은 이와 같이 구체적인 기별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계획을 요약하실 필요가 있었는가? 하나님의 진술에 관해서 그대의 주의를 끄는 것은 무엇인가?

[3:16,17]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하신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인시키고 그 약속을 시행하시겠다는 분명한 뜻을 전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셨다. 물론 그분의 계획은 그들을 더 좋은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빈손으로 애굽의 궁핍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사 백년 동안 그들은 애굽 왕조의 부귀에 이바지했다. 하나님은 바로가 초반에 저항할 것을 내다보셨지만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고된 노동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셨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3:21).

압제의 세월 끝에 하나님은 이전에 노예였던 자들을 데리고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건설할 기회를 마련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살고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생존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를 바라셨다. 그분의 계획은 이 새로운 사회가 아브라함처럼 주변 민족에게 모본이 되어서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으로 온 세상을 복되게 하는 것이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400년 이상을 지나게 하신 것은 최소한 두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에 사는 민족들의 죄가 관영(차고 넘치는 것)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5:16) 이것을 읽으면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가 가득차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서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여 그들도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400년 이상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주위의 이방 민족들에게나 허락하신 은혜 기간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아담의 후손들의 상태를 예표 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아직도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시기가 이르지 않은 것이다.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살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들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은혜의 기간과 구원의 날들을 주신 것이다.(고후6:1,2)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은혜와 사랑이지만 반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이해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어버리고 그렇게 선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대로 깨닫는 성도들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교훈 : 하나님은 사백 년 동안 애굽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출하셔서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복되게 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계획이셨다.

 

 

78() 십계명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40).

 

1. 22:37~40과 출 20:1~17을 읽어보라. 예수님의 요약은 십계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0:1~17]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지니라 14 간음하지 말지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 규정된 조문의 근본 뜻을 이해하여 존재가 그와 같이 되도록 하신 것이다. 조문에 매인 것이 아니라 조문의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한 것이다.

 

십계명의 조항은 헌법처럼 보인다. 이 문서는 그것이 어떤 기초(이 경우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건지셨다는 사실) 위에 마련되었는지를 진술하는 간략한 서론 뒤에 그 나라의 토대가 될 핵심 원칙들을 열거한다. 십계명은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삶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명령들을 담았다. 기독교 유산을 가진 국가들의 법률 체계가 이 선도적인 원칙들로부터 기본 정신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물론 이 진술들은 간략하지만, 우리는 그 효력의 범위와 십계명이 생명의 법으로서 가진 포괄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20:13)는 여섯 째 계명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모든 부정한 행위와 더불어 가난한 사람들이나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이기심 때문에 돌보는 일을 게을리한 행위를 포함한다(부조와 선지자, 308 참고). 마찬가지로 절도 금지 조항(20:15)노예 매매를 정죄하고 정복을 위한 전쟁을 금하고 있다.” 그것은 남의 무지와 약점과 불운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 모든 행위를 금하면서 동시에 당연히 지불해야 할 부채와 임금의 지불을 요구한다”(부조와 선지자, 309 참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살인 또는 절도 행위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다면 마치 바르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계명은 단순히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 동기 심지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될 수 있다(5:21~30 참고).

십계명의 각 조항이 진지하게 취급되고 온전하게 실천되는 사회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곳은 모든 사람이 열렬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도우며 돌보는 능동적이고 활기찬 사회일 것이다.

 

<부가설명> 십계명은 명령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4:13) 언약서는 일반적인 명령보다 훨씬 더 강하게 언약 당사자들을 구속한다. 언약을 체결하면 그 당사자들은 그 언약의 내용에 완전히 매인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언약이 파기된다. 언약은 구두점 하나도 아무렇게나 취급할 수 없다. 다 의미와 구속력을 가진다. 예수께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룬다고 하신 것은 그것이 언약이기 때문이다. 그 언약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이다. 우리 성경이나 영어성경에 십계명이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 원어에는 십계명이라는 말이 아예 없다. 언약의 열 말씀들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언약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침례로 하나님과 성약했을 때는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만 살아가겠다는 것이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생활모습이 십계명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예수님의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이다.

 

교훈 :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자 하나님이 건설하시려는 사회의 원칙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그것에 대한 위반이 된다.

 

 

79() , 과부, 고아, 외국인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23:9).

 

1. 위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별은 무엇인가?

 

: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여 올바른 대우를 하라.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평등하게 창조하셨다.

 

이제 막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압제와 착취와 소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해방을 기념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들이 과거에 어떤 상태였는지, 배제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잊지 않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제정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고 하나님이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13:14)신 일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게 하셨다.

 

2. 22:21~23을 읽어보라. 이것은 새로운 사회에서 불우한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관한 지침이다. 노예 시절의 기억은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얼마나 중요했는가?

[22:21~23]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 그들이 노예로 있었던 때를 기억하여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도와주고 해롭게 하지 않도록 권고하였다. 그들이 애굽에서 겪은 것과 같이 대하는 것을 금하셨다.

 

십계명이 선포되고 그 메아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모세는 이 포괄적인 명령이 어떻게 이스라엘 사회에서 실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받기 위해서 하나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성소 건조를 지시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세 장(三章)에 걸쳐서 노예에 대한 적절한 처우를 포함한 여러 율법을 설명하셨다. 그 같은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에 경험했던 것과는 현격하게 대조적이었다. 그 안에는 폭행과 관련된 법, 부동산과 관련된 법, 일상생활에 관한 법, 이러한 법을 시행하고 공의롭게 집행하기 위한 법원 설치의 원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21~33장 참고).

새로운 사회의 율법 중에 눈에 띄는 부분은 동료 시민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주변인들과 취약 계층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들은 착취를 당해서는 안 되었고, 추수 밭에 남은 곡물들을 거둘 권리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음식을 얻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했다.

주변인과 외국인들에 대한 그 같은 대우는 고대 사회에서 일반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도덕적인 원칙들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가설명>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자아가 죽는 경험을 하지 않으면 날마다 지체가운데 있는 죄의 법이 사람을 죄 아래로 끌고 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사소한 것까지 자세히 제시해 주셨다. 그들은 애굽에서 보고 경험하여 배운 것이 몸에 밴 상태로 광야에 나왔다. 비록 홍해를 건너는 것이 침례를 표상하는 것이지만(고전10:1~4) 그 표상이 실제로 거듭나는 것이 되었다고 확언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자세히 삶의 길을 설명해 주신 것이다. 이것들은 언약의 열 말씀들을 지킬 때 당연히 나타나게 되는 삶의 모습들이다. 십계명의 조문들은 그것을 보고 그대로 살라고 제시한 것이기 보다는 언약의 체결로 언약문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사람들의 언약의 본질인 거듭나는 경험을 했을 때 그 조문이 없어도 그 조문 이상으로 사랑을 실현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최소한 그 열 조문이 실현되는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거듭난 생명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경지에도 이르게 된다는 것을 포괄하고 있다.

 

교훈 : 하나님은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사회에서 주변인과 소외 계층의 인권에 관심을 갖기 바라셨다.

 

 

710() 2의 십일조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14:28~29).

 

많은 신자가 십일조에 대한 명령을 배워서 실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말 3:10의 원칙은 단순하다.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서 수입 또는 증가된 재산의 10퍼센트를 돌려드리는 것이다. 십일조를 위탁받은 교회는 엄격한 지침을 따라 그 자금을 사용하되 주로 목회 사역과 직접적인 선교를 지원하는 데 사용한다.

 

1. 14:22~29을 읽어보라. 이 명령에 따르면 십일조의 주된 목적은 무엇인가?

[14:22~29]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2 십일조는 구제를 위한 것이고, 1 십일조는 레위인과 제사장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일에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우리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명령에 따르면 10퍼센트라는 수치는 시작에 불과하다. 레위기에 기록된 지침을 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들과 성소 관리를 후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한 해 수입의 사분의 일에서 삼분의 일을 하나님의 사업에 바쳤다.

어떤 학자들은 특별히 외국인, 고아, 과부를 돕기 위한 이 헌금을 제2의 십일조라고 설명한다. 물론 백성들도 자신이 거둔 결실을 즐기고 추수를 기념할 것이었다. 하나님은 새로운 땅에서 그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그 복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그만큼 복을 받지 못한 자들을 잊어서도 안 되었다.

평년에는 수확의 십분의 일을 성소에 가져가야 했고 거기서 분배가 이뤄졌다. 그러나 3년마다 그들에게 부어진 복을 지역사회에서 나누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이때 그들은 쉽게 간과되거나 잊힌 자들을 특별히 주목해야 했다.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26:12).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헌금 중 적어도 일부분은 가장 궁핍한 자들의 재정적, 실질적 원조를 위해 제공되어야 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이신 자비와 공의에 대한 백성들의 기억과 감사에 기초해 있었다.

 

<부가설명> 일상적인 십일조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한 수확으로 드려졌다. 그런데 3년마다 일상적인 십일조 외에 또 십일조를 드리는데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금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하셨다. 교회에 드려지는 헌금 중에 구제를 위한 예산이 있어야 하는 근거가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헌금 중에 도르가회를 위하여 배정되는 금액이 있어야 할 것 같이 느껴진다. 오늘날 교회제도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구제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교회와 성도들의 사업이다. 성도들과 교회는 이것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더 좋은 사회를 위한 하나님의 처방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인식과 마음가짐이다. 우리교회 조직에는 아드라가 있고 개별 교회에는 도르가회가 있다. 이 기구를 통하여 성경이 제시한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은 성경적이다. 도르가회가 교회에서 활성화되고 교인들마다 성경이 장려한 정신으로 이웃을 대하는 갸륵한 마음들이 충만했으면 좋겠다.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은 정규적인 십일조 외에 지역사회의 소외 계층을 돌보기 위한 헌금을 각 성에 비축해서 그들을 위해 사용해야 했다.

 

 

711() 희년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25:12).

 

집도 없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신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 그 땅의 특징이 되어야 할 중요한 가치를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부족과 씨족별로 땅의 분배가 질서정연하게 이뤄지도록 감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면 토지 소유와 연결된 부와 자원과 기회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가족의 곤경, 질병, 잘못된 선택, 그 밖의 불운으로 말미암아 일부 토지소유주들은 단기간의 수입 또는 생존을 위해서 땅을 팔게 되는데 그러면 그 가족은 후세대에 넘겨줄 땅을 잃게 된다.

하나님의 해결책은 부동산 소유권을 완전히 이양하지 못하도록 법령을 내리시는 것이었다. 토지는 다음 희년까지만 소유권이 양도되었다. 희년이 되면 땅은 그것을 유업으로 받은 가족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느 토지든지 매도자 또는 그 친족에 의해서 언제든지 무를 수 있었다.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분과의 관계를 기억하고 그 관계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반영되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신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5:23).

 

1. 25:8~23을 읽어보라. 그대는 이런 원칙들, 특히 너희는 서로 압제하지 말라’(25:17, 한글킹제임스 참고)는 말씀이 적용된다면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25:8~23]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13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 14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 15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16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 값을 많게 하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 값을 적게 할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17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18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19 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 20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 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21 내가 명하여 제 육 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 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22 너희가 제 팔 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 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 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 사회가 공평하고 평등하게 유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법규는 사회적 평등을 유지하도록 계획되었다. 안식년과 희년 제도는 평년에 발생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사회·정치 체계의 왜곡을 폭넓게 바로잡았다”(부조와 선지자, 534).

성경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사회·경제 주기가 어떤 시기에 제대로 이행되었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대하 36:21 참고). 그럴지라도 이러한 규범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온전하게 이행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할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더욱이 그것들은 빈민과 주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뿐 아니라 공평함이 실제적인 방식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는 그분의 바람을 강조한다.

 

<부가설명> 희년제도는 사회를 평등하게 유지하는 아주 좋은 제도이다. 그 기본은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사람은 다만 관리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각 지파에 땅을 분배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 소유의 관리권을 각 지파에 일정하게 맡기신 것이다. 그 지파 사람들은 가족 수를 따라 땅을 분배받았고 그것은 그들이 평생 관리하여 소산을 내고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정에 의하여 그 땅을 팔아야할 때는 관리권을 파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희년에 맞추어서 희년까지 기간이 많이 남았으면 값이 많고, 희년까지 기간이 짧으면 값이 적었다. 그리고 희년이 되면 무조건 먼저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희년이 오기 전에도 판 사람이 무르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물어주어야 했다. 땅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사람은 그 관리권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유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을 따라 그렇게 해야 했다. 이것은 사회가 토지소유 재산에 평등성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다. 복지사회를 두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인데 이스라엘이 이 제도를 잘 시행했으면 온 세계에 본이 되도록 하셨을 것이다. 또 이것은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제도이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에게 공평과 평등으로 대하도록 상징하는 제도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토지가 각 사람에게 고르게 분배될 뿐 아니라 그 소유권이 영원히 타인에게 양도되는 것을 방지하셔서 사회·경제적인 공평이 유지되게 하셨다.

 

 

712()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요구하신 바를 인정한 다음에 가난한 자들에게 나타내라고 분부하신 관대하고 친절하고 후대하는 정신보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더 특출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비록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크게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셨으나 그들 중에 빈곤이 전혀 존재하지 않도록 계획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이 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알려주셨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는 동정과 친절과 긍휼의 대상이 항상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그때에도 사람들은 불행과 질병과 재산의 손실을 당하였으나 하나님의 교훈을 따랐더라면 그들 중에 거지와 배가 고파서 고생하는 자들은 없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530~531).

이 규범들은 가난한 자들뿐 아니라 부자들에게도 축복이 되게 제정되었다. 이것들은 허욕과 자만의 기질을 제어하고 고상한 박애 정신을 함양하며 각 계급 사이에 호의와 신뢰심을 고양시킴으로써 사회적인 질서와 정치적인 안정을 증진시킬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인류라는 관계망으로 서로 엮여 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향상을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같은 책, 534~53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설해야 할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청사진 중에 가장 그대의 관심을 끄는 법이나 규범은 무엇이었습니까?

공평과 평등의 규범이 아닐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 중에서 그분이 매우 빈궁한 자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집중시키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3:12)

우리는 그 같은 율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런 구체적인 명령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중에 우리가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신 것이다.

 

요약 : 하나님은 애굽에서 고통 받고 있던 이스라엘의 절규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과 특별한 언약 관계를 맺으시고 모든 사람, 심지어 잊히고 궁핍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도 복이 될 만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과 협력하기를 바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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