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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과 안식일 : 해방의 날

 

720일 안식일

일몰오후 751

 

연구 범위 : 16:16~18, 20:8~11, 5:12~15, 12:9~13, 25:1~7

 

기억절 :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2:27).

 

하나님은 일주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하나님은 제7일에 쉬셨을 뿐 아니라 휴식이 세상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게 하셨다. 안식일은 우리가 하나님뿐 아니라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이스라엘 건립 초기부터 언급되며 그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십계명 중 하나로 나타났다. 그것은 히브리인들의 삶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안식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대화의 주제가 그것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곧장 옮겨진다. 물론 그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의 상징으로서 이 세상과 우리의 삶에 어떤 필수적인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7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제정되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안식일을 기억하면 그것은 매일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본처럼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안식일 제도에 나타난 평등과 공정의 개념을 이해한다.

느끼기 : 안식일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동일한 복을 누리도록 배려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행하기 : 안식일이 봉사하고 선을 행하는 날이 될 수 있게 노력한다.

 

백성들이 만나를 거둘 때 기억해야 했던 원칙들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인격의 평등성과 공평성, 공급의 공평성, 또한 구원의 보편성

그대는 하나님이 안식일 계명을 통해서 어떤 가치들을 가르치셨다고 생각합니까?

창조주를 신뢰하는 믿음, 모든 사람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가치관 등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보여주신 모본은 그날의 의미를 어떻게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합니까?

영육간의 필요를 위하여 봉사하는 날임을 보여주셨다.

그대는 안식년과 희년 제도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복지 행정의 기초가 아닐까 생각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본을 따라 우리는 안식일을 어떤 방식으로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요? 생명을 위한 봉사의 날로 의미 있게 지낼 수 있다.

 

결론 : 우리는 안식일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속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그날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누리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면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이 땅에 존재하는 사회적인 또는 경제적인 불공평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웁니다.

 

 

714() 넉넉한 만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16:18).

 

노예 생활과 하층민의 세대가 지난 뒤에도 그러한 환경이 압제받은 백성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좋은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최상의 사회 질서에 필요한 율법을 제공함으로써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향상시키기를 바라셨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실질적이면서도 교육적인 실물교훈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광야를 순례했던 40년 동안 이런 삶의 주기는 하나님의 돌보심의 가시적인 증거이자 이타심을 연습하는 기회였으며 이스라엘 사회와 문화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그것은 매일 아침 이스라엘의 진영 주변의 땅에 보이는 만나라는 형태의 음식으로 나타났다.

 

1. 16:16~18을 읽어보라. 여기서 각 사람이 거둘 수 있는 만나의 양이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16:16~18]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 하나님은 넉넉히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신다. 그러므로 공평해야하며 욕심을 버리도록 하는 교훈을 주신 것이다.

 

고후 8:10~15에서 바울은 만나의 일화를 모본으로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14).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넉넉하게 공급하신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과 우리 모두에게 주신 교훈이다. 만약 우리가 필요한 정도만 취하고 초과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눈다면 모두가 돌봄과 공급을 받을 것이다. 그날 필요한 정도만 취하라는 요구는 백성들로 하여금 다음날에 또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의미였다. 노예 생활과 억압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생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신뢰와 관용과 나눔의 삶을 제시하고 싶으셨다.

그런데 이러한 관습에는 주목할 만한 또 다른 국면이 있었다. 매주 금요일이면 땅에 두 배의 만나가 내렸다. 그날 백성들은 안식일에 대비하여 두 배 많은 만나를 모아야 했다. 안식일을 위한 특별한 공급은 그들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치는 방법이기도 했다. 두 배 많은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제7일에 주겠다고 약속하신 쉼을 더 온전하게 누릴 수 있게 했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시험의 광야에서 마귀에게 사람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만나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바로 예수께서 인용하신 그 말씀을 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8:3) 만나를 내려주신 것은 사람의 삶이 전적으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의탁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며 이스라엘이 이것을 배우기를 바라셨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넉넉히 베풀어주시는 분이심을 믿도록 실물교훈 하시며 또 모두 필요한 만큼 거두게 하셔서 욕심 부리지 않도록 교훈하셨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공급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들이 고기를 원할 때 메추라기를 한없이 보내주셨는데 그들이 서로 많이 거두려고 경쟁하고 탐식해서 그것을 먹는 동안 병이 나서 많이 죽었다. 이런 것이 그들의 노예근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깨뜨리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양보하고 서로 돕고 그래서 공평과 평등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건국하여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일하신 것이다. 교회는 이 뜻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생존에만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다른 사람을 돌보고 안식일의 쉼을 온전히 누리는 삶을 가르치셨다.

 

 

715() 안식일의 두 가지 근거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11).

 

20:8~11과 신 5:12~15을 읽어보라. 두 형태의 넷째 계명은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는가?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5:12~15]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 출애굽기는 창조의 기념일, 신명기는 구원의 기념일이라는 것을 계시하여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게 하셨다.

 

기억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과 재수립하기를 바라시는 관계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 관계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시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의 두 역할은 두 성경 본문에 각각 나타나며 안식일 및 그것의 준수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수많은 거짓 신들이 난무하는 땅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은 창조주라는 참 하나님의 역할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안식일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이었으며 매주 금요일에 공급되는 두 배 많은 만나로 말미암아 그 의미가 한층 분명해졌다. 그것은 그분의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출애굽기 20장이 소개하는 넷째 계명에서 하나님은 확실하게 우리의 창조주로 계시되었다.

반면 신명기 5장은 구출, 구속,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넷째 계명을 소개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정기적으로 반복하는 이야기였다. 특히 그들은 매 안식일에 그 사건과 다시 연결된다. 처음에 그것은 애굽 노예 생활에서의 육체적인 구출을 의미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발전하면서 안식일은 매주 그들의 영적인 구원을 기념하는 상징이 되었다.

안식일 준수의 이 두 가지 동기는 모두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20:12). 앞서 보았듯이 이것은 절대 이 백성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그들은 주변인들에게도 친절을 베풀며 더 넓은 세상을 복되게 할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건설해야 했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5:15). 안식일을 창조와 구속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으로 지키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계속 개선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우시니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로워야 한다.

 

<부가설명> 안식일은 그냥 일주일의 다른 날들과 같은 날이 아니다. 이 날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과 언약의 표징으로 주신 날이다. 언약에는 구두 언약도 있지만 그럴지라도 언약의 표를 두 사이에 소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말로만 하고 표가 없으면 기억하기 쉽지 않다. 범죄 전 에덴동산의 아담에게도 언약의 표를 주셨다. 그것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그런데 사망의 존재가 된 사람들은 잊어버리기를 얼마나 잘 하는가? 그러므로 기억할 표를 가지는 것이 언약을 기억하고 수행하기에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제7일을 언약의 표로 제정해 주신 것이다.(31:13~17) 7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면 그는 일단 언약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키지 않으면 그는 언약을 무시하거나 배반한 것이 된다. 이것은 오늘날도 동일하다. 7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아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6일 동안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또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셨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래서 사탄은 이 날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가짜 안식일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세상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분명히 깨닫고 결코 속지 않아야 하고 제7일 안식일을 진정으로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언약의 백성들로 굳게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심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개선시켜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받는다.

 

 

716() 평등의 날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20:10).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서 소개하는 십계명을 대충 읽어만 봐도 넷째 계명이 유난히 자세하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눈에 띈다. 어떤 계명은 단지 몇 개의 단어로 구성된 반면(히브리어로는 두 단어로 구성된 계명들도 있음, 6,7,8 계명), 넷째 계명은 지면을 할애해서 안식일을 기억해야 할 이유와 방법, 대상까지 밝히고 있다.

 

1. 20:8~11을 읽어보라. 이 계명은 종과 객과 가축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그들도 안식일에는 다 안식하게 하도록 명하였다. 평등과 공평이다.

 

안식일 계명의 세부 사항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 시그비 턴스태드(Sigve K. Tonstad)는 이런 종류의 명령은 세계의 모든 문화권 중에서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안식일 계명은 위에서부터 내려가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는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누구보다 휴식이 필요한 자들로서 종, 외국인 거주자, 노동에 동원되는 가축이 특별하게 언급되었다. 안식일의 휴식을 통해 특혜를 누리지 못하는 자들과 말 못 하는 동물도 자기편을 찾았다.”The Lost Meaning of the Seventh Day (Michigan: Andrews University Press, 2009), pp. 126, 127.

그 계명은 특히 안식일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호소에 초점을 맞춘다. 안식일에 우리는 모두 평등해진다. 그대가 고용인이라 할지라도 안식일에 피고용인에게 일을 시킬 권리는 없다. 하나님이 그들에게도 휴식의 날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대가 평일에는 피고용인 또는 노예라 할지라도 안식일은 그대가 똑같이 하나님의 지으심과 속량하심을 받은 자녀임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일상적인 의무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날을 기념하라고 그대를 초대하신다.

안식일 준수자가 아닐지라도 마을 안에 거하는 외국인들도 안식일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20:10 참고). 이러한 사상은 노예생활과 소외의 경험을 한 이스라엘 백성의 관점에 신선하고 현저한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새로운 땅에 정착할 때 하나님은 그들이 압제자들의 행습을 따르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분은 그들의 사회에 필요한 구체적인 율법을 제공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매주 상기할 수 있게 하셨다.

 

<부가설명> ‘시그비 턴스태드의 말처럼 세상의 어떤 법률에도 이런 문구가 없다는 것은 십계명이 언약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언약은 법률보다 더 강한 구속력을 가진다고 언젠가 말했다. 십계명이라고 말하는 하나님께서 모세가 있는 곳에서 친히 기록하여 주신 돌비는 언약문서이다.(31:13~17)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문서에 기록된 내용을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수행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약서에 기록된 내용에 따라 그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 언약서의 중심인 제4조에 제7일 안식일에 대한 내용이 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언약에 참가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식에 대한 약속이 있다. 그 안식에는 노예나 가축들도 포함되었다. 이 안식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께 존재를 받았다는 것을 시인하는 정신이 들어있다. 이 날을 지키지 않으면 언약을 어기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의 존재의 당위성도 잊어버린다.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자기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바른 이해도 하게 된다. 결국 창조주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시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존재와 생명 차원에서 모두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안식일에 심어두신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하게 되는 기초가 된다.

 

교훈 : 안식일 계명은 인류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그것은 특별히 이 사회에서 취약하고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717() 치유의 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3:4).

 

안식일 계명은 원래 포괄적이며 포용적이었으나 예수님이 지상에 오셨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안식일은 사뭇 다른 의미였다. 안식일은 해방과 평등의 날이기보다 인본적이며 전통적인 규율과 금지의 날이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던 당시의 그런 풍습에 저항하셨다.

흥미롭게도 그분은 안식일에 수많은 치유를 행하시는 의미심장한 방법으로 그 일을 행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어떤 날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다른 날이 아닌 안식일에 이런 이적들을 행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화들 속에서 예수님은 종종 안식일에 행하는 치료의 적절성에 대해 언급하셨고, 바리새인들은 그러한 진술들을 구실로 삼아 그분을 죽일 음모를 꾸몄다.

 

1. 12:9~13, 1:21~26, 3:1~6, 9:1~16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치유를 행하신 기사들을 읽어보라. 그대의 눈에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12:9~13]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21~26]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 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3:1~6]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9:1~16]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저희가 전에 소경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9: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 안식일은 생명을 온전하게 하는 날인 것을 선포하시는 봉사였다. 해방과 회복의 날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증하셨다. 우리는 안식일의 시간에 울타리를 치고 그날을 특별하게 준수하되 하나님, 가족, 교회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증진시킬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안식일 준수는 단지 우리를 위한 이기적인 관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2:12)고 말씀하셨다.

많은 신자들이 다른 사람을 돌보기 위해 다양한 선행을 행하지만 그들을 돌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행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는 하나님이 상처 입고, 억눌리며, 외면당한 자들에게 관심을 두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안식일에 일상적인 사무를 좇지 말고 한 주간의 압박에서 벗어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것이야말로 진실하고 적극적으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부가설명> 안식일은 일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주님이 하라고 하신 그 일을 하는 날이다. 그 일의 대표적인 것이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안식일에 행하라고 하신 선은 도덕적 선을 행하는 것도 포함되었겠지만 사실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3:4)고 물으셔서 선을 행하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은 죽이는 것임을 분명히 드러내셨다. 육신의 질병에서 회복되게 하는 것도 선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도 선을 행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더 큰 선행이다. 그래서 안식일에 전도지를 돌리고 구도자를 방문한다. 물론 환자도 방문하고 치료봉사도 한다. 그래서 의료인들이 안식일에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이 수가를 받는 것이 되면 자기 수입을 위한 일이다. 이것은 주님이 하라고 하신 선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증언에는 안식일에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날 수가를 선교자금으로 바쳐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은 자기 부정과 자기희생의 정신을 계발해야 한다. 거룩한 안식일 시간이라고 해도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구해 주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에서 번 돈은 주님의 금고에 드려서, 의료 기술이 필요하지만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도움 받을 자격을 지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MM(의료봉사) 216) 그래야 순수하게 주님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증언했다. 이런 정신은 우리가 잘 잊어버린다. 선을 행하는 것의 실상을 잘 이해하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영육간의 참된 치유를 경험하는 날이 되도록 복을 누리면 좋겠다.

 

교훈 : 예수님은 안식일이 무거운 규율과 금지의 날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치유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며 선을 행하는 날이 되기를 바라셨다.

 

 

718() 땅에 필요한 안식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25:4).

 

앞서 보았듯이 안식일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뿌리 깊은 생활의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안식일의 원리는 매주 찾아오는 하루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7년마다 찾아오는 안식년에도 적용되었고 일곱 번의 안식년이 지난 다음 해, 50년마다 찾아오는 희년이 되면 절정에 도달했다.

 

1. 25:1~7을 읽어보라. 이 명령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그대는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원리를 그대의 생활과 직업에 적용할 수 있는가?

[25:1~7]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4 제 칠 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5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6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7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

 

: 토지도 쉬게 하고 노동의 수고도 쉬게 하여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는 땅과 사람이 함께 안식하면서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감사하며 종들과 가축이 다 쉬게 하는 것이다.

 

안식년에는 경작지를 묵혀두어야 했다. 이것은 농경 사회에 널리 알려진 지혜이자 관습으로서 토지를 관리하는 놀라운 방법이다.

안식년은 또한 노예들에게 중요한 해였다(21:1~11 참고). 많은 빚을 지고 자신을 종으로 팔수밖에 없었던 백성은 누구든지 안식년에 해방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안식년의 끝에 남은 빚은 면제되었다(15:1~11).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공하셨던 만나처럼 그 기간에 작물을 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이전 해에 충분한 양식을 공급하실 것이며 안식년에는 저절로 난 것을 먹을 것이라는 믿음의 행위였다. 또한 노예를 풀어주고 빚을 면제해 주는 것은 자비의 행위이자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의 행위였다. 어떤 의미에서 백성들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타인을 압제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안식일의 원리와 모본은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사회의 구조에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안식일 준수도 우리의 매일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훈련이 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안식일은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2~33).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제7일 안식일에 창조주와 구속의 주님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예배하면서 영육 간에 안식을 누리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과도하게 사용해서 피폐한 토지도 안식하게 하셔서 지기(地氣)를 회복하게 하신 것이 안식년 제도라고 생각된다. 땅도 계속해서 사용하면 땅의 기운이 빠져서 농산물이 노력한 만큼 수확되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 사람도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힘이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창조주께서 이런 상태를 잘 아시기 때문에 안식년 제도를 주셔서 땅이 안식하게 하신 것이다. 얼마나 자비로운 조치인가! 그때는 지주도 일꾼도 일하는 가축들도 다 쉬면서 한해를 지낼 수 있다. 그 한해는 창조주께서 일하셔서 사람과 짐승을 먹이시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셨다. 창조주께서는 그가 창조한 세계를 쉬임없이 돌보시면서 그가 창조한 피조물들에게 안식을 허락하셨다. 그 안식의 계획을 믿음으로 따르는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의 생활이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 이런 제도들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음으로 순응하라는 사랑의 제도들이다. 지금은 안식년 희년 제도를 실행하지 않지만 그 정신은 신자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쉬게하고 천연계를 잘 돌보는 정신으로 창조주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교훈 : 안식일의 원리는 사람과 가축뿐 아니라 땅에도 적용되었다. 안식년과 희년에는 땅도 쉼을 얻고 종들은 해방되었으며 빚은 면제되었다.

 

 

719()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295~297 ‘홍해에서 시내산까지’, <시대의 소망>, 281~289 ‘안식일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제하는 사업이 안식일의 법과 조화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고통당하는 인류를 섬기기 위하여 하늘과 땅을 항상 오르내리는 천사들의 사업과도 조화되는 것이었다.

사람도 또한 이날에 행해야 할 일이 있다. 생활에 필수적인 일들을 행하고, 병자를 돌보며, 궁핍한 자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안식일에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제하기를 게을리하는 자는 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제정되었으므로 자비로운 행위는 안식일의 목적과 완전히 조화된다. 하나님은 안식일이든지 다른 날이든지 그분의 피조물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고통을 한 시간이라도 겪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시대의 소망, 206~20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그대는 안식일에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나타내었습니까? 그대는 하나님을 신뢰한 결과 만나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일단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최우선을 실천함으로 신뢰를 나타내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어주는 정신을 실천하는 것으로 믿음을 나타내어야 한다. 각자가 이야기해보자.

 

하나님은 출 20:8~11과 신 5:12~15에서 안식일 계명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대가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안식일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참으로 생활에서 경험하게 하시고 그분의 섭리 안에서 구원의 경험을 감사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안식일의 복과 은혜를 그대의 지역사회에서 나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교회가 계획하여 성경이 제시한 방법을 따라 실천해 볼 것이다. 각자가 의논해보자.

 

요약 : 하나님은 창조와 구속을 기억하는 수단으로 안식일을 주셨지만 거기에는 여러 실질적인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라고 가르치며, 평등을 실천하라고 가르치며, 우리의 모든 관계를 변화시킬 영적인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치유하심으로 안식일에 대한 그분의 이상을 증명해 보이셨고, 안식일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유익하게 하는 날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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