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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 선지자들의 외침

 

83일 안식일

일몰오후 739

 

연구 범위 : 삼상 8:10~18, 5:10~15, 6:8, 19:1~13, 16:49, 1:15~23

 

기억절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경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들이다. 비록 항상 내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거친 음성과 대범한 기별, 슬픔, 분노, 격분의 감정, 기별을 극화시키는 행동 때문에 그들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주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파송된 그들은 선택받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돌아오도록 손짓하였다. 백성과 지도자들은 주변 민족의 생활방식과 우상숭배에 너무도 쉽게 휩쓸려갔다.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행적을 상기시켰고, 때로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 이르러올 결과들을 경고하였다.

그들이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경고했던 죄와 행악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그들 중 가난하고 궁핍하며 가련한 자들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우상을 섬기고, 잘못된 종교 행습을 따르는 일도 모두 잘못이었지만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게서 이득을 취하는 것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의 관점에서 경제적인 불공정이 성적인 죄만큼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한다.

느끼기 : 이 사회의 불의와 불공정의 문제에 대해서 선지자들처럼 민감한 영성을 가지고 고민한다.

행하기 : 이 세상의 잘못을 교정하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하기로 결심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보통 어떤 문제로 격앙되어 있는 것 같습니까?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는 사회현상 문제로 그랬다.

왜 하나님은 사회적인 또는 경제적인 불공정의 문제를 심각하게 취급하실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다 동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개인적인 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방임하거나 동조하는 죄까지 회개해야 할까요?

개인은 다 사회의 일원이다. 사회현상의 모든 일에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회 문제 중 고민과 해결의 노력이 필요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불평등과 힘없는 자와 소외된 계층에 무관심한 것이 아닐까?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떤 사회 활동을 포함시켜야 할까요?

주님이 관심을 가진 사실에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협력하는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기별을 통해서 사회적인 불의와 불공정의 문제를 그분이 얼마나 심각하게 취급하고 계신지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우리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부르시며 함께 이 세상을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회복시켜서 불의와 불공정이 사라진 사회를 만들자고 손을 내미십니다.

 

 

728() 반복되는 공의로의 부르심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수립하신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은 대체로 부르심에 따라 살지 않았다. 그 땅에 정착하고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선지자 겸 사사였던 사무엘에게 모든 나라와 같이”(삼상 8:5) 그들을 이끌 왕을 임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삼상 8:10~18을 읽어보라. 왕을 세워달라는 그들의 요구에 답하면서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무엇을 경고했는가?

[삼상8:10~18]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11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 양 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

 

: 왕의 권력이 백성들을 고달프게 할 것을 경고했다. 즉 세상 나라의 주관자들과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을 밝힌 것이다.

 

사무엘은 이것이 다른 민족들처럼 되려는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무엘은 먼저 사울에게 권면을 주고자 노력했지만 머지않아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를 보냈던 다윗과 솔로몬도 유혹, 타락, 과도한 권력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역사 내내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밝히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망각된 사회의 일원들에 대한 신성한 책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구약 선지자들의 기록에서 우리는 의롭게 살며 정의를 실천하라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부르심을 볼 수 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 지도자들의 불충실함에 맞설 수 있는 발언권이 없고 특히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로 상처를 입은 자들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였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열정을 숙고하며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우리의 안일함과 그들의 다급한 호소를 대조한다. “선지자들을 몸서리치게 만들었던 일들이 지금은 온 세상에 매일 일어나고 있다.불의를 보면 호흡마저 불안해지는 그들의 조바심은 우리에게 과민반응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는 불의, 위선, 거짓, 잔악, 불행을 보면서도 분개하거나 과도하게 흥분하지 않지만, 선지자들은 작은 불의도 우주적인 차원으로 여겼다.”The Prophets (New York: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 1962), pp. 3, 4.

이러한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변하면서 우리가 눈물이 맺힌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 세상의 불의와 고통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은 우리 이웃의 억압과 슬픔을 경감시키고 해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과 협력하라는 행동으로의 촉구이기도 하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원칙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20:25~27) 사무엘이 그때 그 백성들에게 설명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신 것이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어떻게 한다고 말씀하신 내용이다. 거기 대조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지도자가 섬기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시고 그 유명한 말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는 말씀이다. 섬기는 삶, 부자, 권력자, 갖춘 자들은 섬김을 받는 위치에 있다. 없고, 무식하고, 권력이 없는 자들은 그런 것을 가진 자들의 부림을 받는 것이 세상의 질서로 보인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섬기는 자가 지도자이다. ‘섬기는 지도력을 나타내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속적으로 섬기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러 나라들처럼 세상의 왕을 구했다. 결과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런 것이 오늘 우리교회 안에도 있다. 남은 자손이 바벨론과 그 딸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노래도, 설교도, 삶의 상태도 그렇게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 차려야 할 때이다.

 

교훈 :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분의 뜻을 알리셨고 세상의 불의를 교정하는 일에 자신과 협력하자고 부르셨다.

 

 

729() 아모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7:14~15).

 

아모스는 선지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인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별을 전할 때에는 청중들을 흡입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블레셋, 베니게, 에돔, 암몬, 모압 등 주변 민족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일반적인 정보로 시작해서 그들의 죄악, 잔악함, 잔인성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하나님이 그 죄로 말미암아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1:3~2:3 참고). 특히 이 민족들의 온갖 범죄가 북방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해를 끼쳤기 때문에 원수가 고발당한다는 소식에 박수를 치는 그들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아모스는 고국과 좀 더 가까운 지점으로 옮겨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의 형제인 남방 유다에도 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나님을 대변하면서 아모스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의 계명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징벌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2:4~5 참고). 아모스가 주변 민족들의 악행을 지적할 때 우리는 북방 이스라엘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바로 그때 아모스는 그의 청중들에게로 향한다. 책의 남은 부분은 북방 이스라엘의 악행, 우상숭배, 불의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계속되는 그들의 실패에 초점을 맞춘다.

 

1. 3:9~11, 4:1~2, 5:10~15, 8:4~6을 읽어보라. 그는 어떤 죄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가?

[3:9~11]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10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4:1,2]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5:10~15]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11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8:4~6]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을 압제하고 학대하는 권력자들의 죄를 경고한다.

 

아모스가 사교적인 화술을 구사하지도 않았고 그의 경고는 불길한 것들뿐이었지만 그의 기별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간청들이 가미되어 있다. 그분께로 돌아오는 것에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공의를 추구하는 감각의 회복도 포함될 것이었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5:24). 아모스서의 마지막 몇 절은 미래에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는 모습을 제시한다(9:11~15 참고). “가장 깊은 배도와 가장 큰 필요의 시간에 그들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기별은 용서와 희망의 기별이었다”(선지자와 왕, 283).

 

<부가설명> 성경의 종교는 도덕과 윤리가 기반이 된 종교가 아니다. 도덕과 윤리는 복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많은 경우 성경의 복음을 도덕과 윤리로 변질시키고 있다. 성경은 세상의 도덕과 윤리규범으로 보면 비윤리적인 사건들이 많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에 준하여 살피면 참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면들을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마르시온 같은 사람은 바로 이런 기준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구약의 여호와는 악신이라고 단정했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을 얻으라고 가르치는 종교이다.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라는 것을 창세기에서부터 분명히 계시한 다음 그 죽은 상태에서 생명으로 회복되라고 외친다. 생명으로 회복될 기회를 무시하면 회복될 기회가 지난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회를 완전히 무시한 사람들을 장례식 한다. 그들이 호흡하고 생활하고 있을수록 썩어져가는 냄새만 풍기고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독소로 망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장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생명의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모스가 외친 이런 지적과 책망들은 아직도 생명을 얻을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자비의 호소이다. 이 소리가 없어지게 되면 오직 죽은 자들을 장사하는 것만 남는다. 도덕과 윤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그 생명의 열매들이다. 성도들은 성경 복음의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이 열매가 없는 신자는 아직 교회는 다니지만 복음으로 생명으로 얻지 못한 자들이다.

 

교훈 : 아모스는 주변 민족의 죄와 심판에 대해 경고했고 특별히 북방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공의를 바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호소했다.

 

 

730() 미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1. 지금 그대가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진정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생명의 성령의 역사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순간마다 해방되어서(8:2) 거듭난 생명으로 생활할 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6:8은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구호로 삼고 포스터를 만드는 여러 성경절처럼 이 성경절의 문맥이 생각만큼 익숙지 않을지도 모른다.

 

2. 2:8~11, 3:8~12을 읽어보라. 미가는 어떤 행위 때문에 백성들을 규탄하는가?

[2:8~11] 근래에 내 백성이 대적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 중 겉옷을 벗기며 9 내 백성의 부녀들을 너희가 그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는도다 10 이것이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11 사람이 만일 허망히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3:8~12]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9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약탈하고 제사장과 선지자와 통치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고 백성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있는 상태를 규탄한다.

 

아하스가 유다의 왕으로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적으로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우상숭배와 각종 악행이 증가했다. 동시대의 다른 선지자들도 언급했듯이 가난한 자들은 지속적으로 착취와 약탈을 당했다.

미가는 동시대의 선지자들 못지않게 재앙을 예언하는 선지자였다. 미가서의 첫 세 장은 자기 백성들이 행하는 죄악과 그들의 길에 임할 파멸을 보시는 하나님의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포기하신 적이 없다. 선지자들의 거친 음성과 엄한 기별조차도 그분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관심의 표현이었다. 그분은 그들을 사랑하고 염려하시기 때문에 경고의 기별을 보내셨다. 그분은 그들이 용서받고 회복되기를 바라셨다. 그분은 영원히 노를 발하지 않으신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7:18; 19~20절 참고).

그런 맥락에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행하라는 유명한 공식이 등장했다. 쉽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같은 믿음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특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면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들이 불의로 이득을 취하고 자비를 비웃고 떵떵거리며 살 때,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행하려면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이런 길로 행할 때 우리는 우리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부가설명> 오늘 교과의 기별은 심각하다. 지도자들의 총체적 타락을 통탄한다. 통치자는 정의를 따라 통치하지 않고 제사장들은 삯을 위하여 봉사하고 선지자들은 돈을 받고 예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아주 먼 거리에 있다.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지만 삶은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종교나 교훈보다 뒤떨어진 상태에서 떵떵거리고 있다. 오늘날 세상의 사회현상이 이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재림교회 현상은 어떤가? 목회자들은 사명을 수행하는가? 아니면 봉급만 중하게 생각하는가? 만일 후자라면 미가 당시 제사장과 선지자와 다를 것이 없다. 헌신과 자아굴복이 없이 지도자노릇만 하려든다면 미가 때의 정치가들과 다를 것이 없다. 정말 회개하고 말씀을 따라 굴복하며 참으로 거듭난 사람으로서 사명을 수행하는 종들이 되어야 한다. 신자들도 다를 것이 없다.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인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인지 스스로 시험하고 하나님께 정직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선지자들의 경고는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교훈 :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영적으로 최악의 상태일 때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자신과 동행하자고 권유하신다.

 

 

731() 에스겔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34:16).

 

우리가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 단체에 소돔의 죄에 대하여 질문한다면 그들의 대답은 대부분 여러 성적인 죄악과 타락상을 언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창 19:1~13은 완숙한 파멸의 지경 이상으로 병들고 뒤틀린 한 사회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의 대답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에스겔의 설명을 보라.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16:49). 물론 하나님이 그 도시의 다른 형태의 타락을 간과하시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에스겔은 여기서 경제적인 불공정과 궁핍한 자들에 대한 관심의 부족에 주목한다.

 

1.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경제적인 죄가 성적인 죄만큼 심각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자기만족과 경제적인 쾌락을 즐기는 것은 성적인 죄와 다를 것이 없고, 경제적이 쾌락에는 성적인 죄가 포함되기 때문에 더 포괄적이다. 소돔의 행태는 도덕성이 없는 부자들의 행태이다.

 

아모스, 미가, 이사야 시대를 뒤이은 에스겔의 초기 예언들은 임박한 멸망에 대한 경고의 기별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그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뒤에는 에스겔의 초점이 회복을 기약하는 하나님의 약속 쪽으로 대폭 옮겨진다.

 

2. 34:2~4, 7~16을 읽어보라. 타락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그분 자신의 목양 방식을 비교해보라. 연약한 양떼를 다루는 그들의 태도와 하나님의 방법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34:2~4]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34:7~16]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8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9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0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1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 이스라엘 목자들은 양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고 살진 양은 잡아먹기도 하고 약하고 병든 양은 돌보지도 않았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다 풍족히 먹이고 치료해 주시며 편히 지내도록 하시고 정의로 돌보신다.

 

그들이 소돔과 비교될 만큼 악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이 죄악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들에게 여전히 다가가셨다.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에 따르면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고 예루살렘은 회복되며 성전은 중건될 것이었다.

하나님의 의도는 처음에 모세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되었던 것처럼 그들에 대한 그분의 계획이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는 백성들과 함께 재개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뿐 아니라 주변인으로 취급받는 자들에 대한 관심도 포함되어 있었다.

 

<부가설명> 부유하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성적인 쾌락도 돈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경제적으로 부를 쌓고 그것을 선한청지기의 사명을 망각하면 세상의 선악간의 모든 요소들을 육신의 쾌락의 대상으로 즐길 수 있다. 그것이 경제적 부의 능력이다. 소돔이 바로 그랬다. 성적 타락상이 소돔의 부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에스겔은 소돔의 부를 죄로 지적한 것은 그 부가 죄악적인 작용의 근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다하는 정신으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고 주위에 돌볼 대상이 있으면 주님의 이름과 사랑으로 돌본다면 예수님 안에서 받은 새 생명의 작용을 생활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쓰는 것만 자기의 필요다. 모아두고 있는 것은 전혀 나의 것이 안 될 수도 있다. 쓸 수 있을 때 주님을 위하여 기쁘게 사용하는 것은 특권이 아니겠는가? 에스겔을 통하여 소돔의 죄를 경제적인 면에서 지적하고 백성의 지도자들이 자기만 먹이는 소돔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사고방식으로 변화되어 충성하라고 호소한다.

 

교훈 : 하나님은 경제적인 불공정을 성적인 죄악만큼 심각하게 취급하시며 회복될 예루살렘 사회에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도 회복되기를 기대하셨다.

 

 

81() 이사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58:12).

 

1. 1:15~23, 3:13~15, 5:7~8을 읽어보라. 주변 사회를 관찰한 선지자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의 반응을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1:15~23]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3:13~15]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

[5:7,8]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8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 백성들이 이기심의 극치로 치닫는다고 반응했다. 이런 지적들은 인강 이기심의 극도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다.

 

이사야의 첫 설교를 담은 사 1~5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놓은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악행을 일삼은 결과로 심판이 임박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그들의 삶과 사회를 개혁할 경우에는 희망이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언어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는 강렬한 비통함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의 백성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알기 때문에 선지자는 상실된 것들, 상처 받고 외면당하는 수많은 백성 그리고 그 나라에 불어닥칠 심판을 애도한다.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자적인 사역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이어간다. 그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셨던 것들을 기억하라고 촉구한다. 그는 또한 하나님이 장래에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행하려고 하시는지에 관한 소망을 백성들에게 제공한다. 즉 그들은 지금 당장 하나님을 찾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분과의 새로운 관계 속에는 현재 저지르고 있는 악행에 대한 회개와 다른 이들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가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58~59장에서 선지자는 특별히 공의의 주제로 관심사를 돌린다. 그는 재차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59:14) 사회를 묘사한다. 그는 하나님이 그런 사실을 인지하시고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59:20)여 그분의 백성을 구원해 내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사야서에서 선지자의 주목을 끄는 중요한 부분은 메시야의 오심을 전하는 것이다. 그분은 궁극적으로 지구에 하나님의 통치를 다시 확립하고 공의와 자비,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주실 것이다.

 

<부가설명> 엘렌 화잇은 증언보감 518심판이라는 장에 하늘의 원부에 대한 계시를 기록했다. “다른 책이 펼쳐졌는데, 거기에는 진리를 공언하는 자들의 죄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기심이라는 총괄적 제목 아래 여러 가지 다른 죄들이 적혀 있었다. 매줄마다 역시 제목이 붙어 있었고, 그 제목들 밑 곧 각 이름의 맞은편에는 그 각각의 줄 안에 보다 경한 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1TT 518.3) 이 책에는 총관적인 제목이 이기심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모든 도덕적 신앙적 죄들은 이기심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들이다. 선지자들이 책망하고 탄식한 죄들은 다 이기심의 발로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주님의 권고를 받은 것이다. 역사의 종말에 사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4:5)고 권고했다. 관용은 너그러움이다. 재림성도들은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너그러운 사람들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5:42)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이런 정신을 실천하면서 생활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삶이다. 이번 기 교과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한 사역이 아닌가. 우리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예수님 정신이 우리 정신이 되도록 살 수 있게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며 전적으로 굴복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교훈 : 이사야는 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통렬하게 책망하면서도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공의가 회복된 사회로의 소망을 제시한다.

 

 

82()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선지자와 왕>, 279~292 ‘앗수르의 포로’, 303~310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음을 읽어보라.

선지자들은 그 시대의 현저한 압정과 극악한 부정, 정도를 넘은 사치와 방종, 수치를 모르는 연락과 술취함, 심한 방탕과 주색에 대하여 경고의 음성을 높였으나 그들의 항의는 헛되었고 죄에 대한 그들의 규탄은 허사였다”(선지자와 왕, 282).

사람들은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가옥에 가옥을, 전토에 전토를 더하고 있었다. 공의는 왜곡되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아무런 동정심도 보이지 아니하였다.무력한 사람들을 옹호할 의무가 있는 재판관들까지도 불쌍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과부와 고아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태에 놓여 있던 웃시야의 통치 마지막 해에 이사야가 유다에게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의 기별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그가 그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완고한 저항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같은 책, 306~307).

선지자들과 주님께서 친히 하신 이 분명한 말씀을 우리는 각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괴로움과 압박을 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은혜를 베풀고 친절히 앞날을 생각해주고 그리스도인적인 호의를 보일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한다”(같은 책, 32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당대의 사회에 대한 선지자들의 관심을 볼 때 그들의 역할에 대한 그대의 인식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선지자들은 비난과 압박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실천하였다. 오늘날 성도들도 자기 범위 안에서 이런 사명을 수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 대해 진노하기도 하시며 깊은 염려를 보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을 그대는 어떻게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진노는 염려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사랑이다.

 

요약 :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방법과 뜻의 수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뚜렷한 관심사를 반영하여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한 공의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호소는 불의를 끝내고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시려는 그분의 약속을 포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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