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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복음을 따라 사는 삶

 

97일 안식일

일몰오후 653

 

연구 범위 : 8:20~23, 3:16~17, 9:36, 2:8~10, 요일 3:16~17, 14:6~7

 

기억절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8~10).

 

하나님의 명령, 요구, 지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어느 정도 우리의 구원에 기여한다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호감을 줄지 모른다고 생각할 위험에 직면한다. 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어야 할 죄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덧붙일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만일 그대가 사람에게 있는 선하고 거룩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런 모든 것을 함께 모아서 그것들이 인간의 영혼의 구원이나 공로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제시한다면 그 제안은 반역으로 간주되어 배척을 당할 것이다”(믿음과 행함, 24).

곤궁한 자들을 위한 자비와 동정의 사역도 율법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그분의 관심을 우리의 관심으로 삼고 사랑을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부르심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복음이 세상 전체를 그분의 통치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연민, 차별이 없는 은혜의 포용성에 수긍한다.

행하기 :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받은 수혜자로서 회복을 위한 사역에 동참한다.

 

우리가 선행을 전도의 수단으로 삼을 때 교회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일까요?

선행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정신을 하고 전도는 성령께서 하셔서 스스로 끌리도록 하는 것이 좋다.

구원을 받기 위한 선행과 구원의 결과로 실천하는 선행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나타나는 상태는 같아보일지라도 동기가 전혀 다르다.

우리가 구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조건 없이 봉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5:45)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교인 수를 증가시키기 전에 먼저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요?

구제와 봉사 사업이 아닐까?

 

결론 :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생과 행복을 잃은 인류와 세계를 그분의 사랑과 공의의 통치로 회복시키려고 계획을 진행해 오셨습니다. 그 계획은 우리에게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고 먼저 구원받은 우리로 하여금 편견 없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일에 동참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9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그리스어로 코스모스로서 창조되고 조직된 실체로서의 세상”(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10, 529)을 말한다. 이 성경절은 인류의 구원에 관한 것이지만 그 구원의 계획은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한 계획을 암시하기도 한다.

 

1. 8:20~23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구원의 계획 속에 담긴 더 포괄적인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

[8:20~23]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탄식하며 고통한다고 계시한다. 우주가 죄 문제로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구원은 우주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실로 칭의는 단지 죄를 용서받는 것만이 아니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분의 가족을 형성하시는지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자들은 용서와 구원의 확신을 노래하며 무엇보다 그들의 선행을 통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된다.

 

2. 3:16~17을 읽어보라. 17절은 16절을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외의 사람들도 사랑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며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기뻐한다. 그분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만나는 자들도 사랑하신다.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는 동기가 된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불편해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자들도 사랑하신다. 그분은 온 세상 모든 사람, 심지어 우리가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자들까지 사랑하신다.

우리는 창조 세계를 통해서 이러한 사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볼 수 있다. 성경은 한결같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거로 지목한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5:45).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분께 대한 개인의 반응이나 태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그 선물의 수혜자이다.

 

<부가설명> 창조주께서는 그분이 창조한 모든 것을 사랑하시고 창조의 목적대로 존재하고 존속하기를 원하신다. 물로 루시퍼와 그의 추종자들도 그 범위 안에 있다. 그러나 루시퍼 일당들은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자기의 지위를 위하여 악용하여 대항하는 자리로 나갔다. 그는 제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자리를 떠났다.’(6) 그는 창조주가 창조한 모든 곳을 두루 다니며 창조주에 대하여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 우주는 루시퍼의 허위 사실을 듣고 혼란하게 되었다. 마침내 루시퍼는 마지막 피조물인 지구로 와서 사람을 속이고 자기의 반역에 가담하게 하여 지구가 사망의 세계가 되게 했다. 우주가 이것을 보았고 또 주님의 십자가를 보았다. 우주는 루시퍼가 완전히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제는 평화를 찾았다. 성경은 이렇게 계시한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20) 십자가 사건은 지구와 지구거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계시한 구절이다. 우주 거민들은 지구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지구와 함께 탄식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이것을 깨닫고 정말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말씀과 세상을 구속하시려는 그분의 계획 속에는 모든 사람, 온 세상이 포함되어 있다.

 

 

92() 동정과 회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9:36).

 

우리는 구원과 대쟁투가 뒤섞여 있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세계관과 인간론의 토대가 되는 진리를 인정하게 된다. 즉 인간과 이 세계는 타락했고, 망가졌으며, 죄로 물들었다. 이 세상은 창조되었을 당시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은 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여전히 그 흔적을 가지고 있지만 망가진 세상의 일부이다. 온 세상에 고통과 억압과 착취를 야기하는 불행과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죄는 본질적으로 같다.

따라서 우리가 주변의 세계와 인생들의 상처, 불편, 슬픔, 비극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곳에서 삶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면 로봇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편의 애가들, 예레미야와 선지자들의 슬픔, 예수님의 눈물과 연민은 세상의 불행과 특히 그것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상처를 받는 자들에게 이러한 종류의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마땅함을 증명한다.

 

1. 9:36, 14:14, 19:41~42, 11:35을 읽어보라. 이 말씀들에 따르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연민을 느끼게 되셨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위의 고통에 반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9:41,4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사람들이 방황하고 사망과 질병과 가난과 압제로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우리는 죄와 불행이 꼭 그들의 문제 또는 누군가의 잘못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선지자들의 이해에 따르면 죄란 일종의 비극이다. 그것은 단지 누군가 규칙을 지키기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또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하기 때문이다. 죄는 크든지 작든지 똑같이 악하다.

이기심, 탐욕, 비열함, 편견, 무지와 무심함은 이 세상이 겪는 모든 불행, 부당함, 빈곤, 압제의 원인이다. 이런 불행을 다루는 첫째 단계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 충만하도록 그분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부가설명> 교과저자는 이제 이 세상의 고통과 비극의 실체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기심, 탐욕, 비열함, 편견, 무지와 무심함은 이 세상이 겪는 모든 불행, 부당함, 빈곤, 압제등등은 다 사망의 부하들이다. 사망은 이런 것들을 시켜서 세상을 지배한다. 사망은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20:6) 그러나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 그 이외의 이 세상의 존재들을 다 사망이 다스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사망을 이기신 것을 증명하셨다.(2:14, 딤후1:10) 예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 것은 그들이 사망이 주는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치유하신 것은 사망을 정복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이다. 이 중생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할 때 현실이 된다. 지금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도 탄식하며 지낸다. 이미 앞에 나온 로마8:23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한 말씀이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가 중생한 생명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탄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몸의 구속이 있을 때까지 그렇게 탄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도록 일하신 것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큰 불행을 겪고 있는 세계와 인간에 대해 큰 동정과 연민을 느끼신다. 그분은 회개하는 마음을 받으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다.

 

 

93() 은혜와 선행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1. 2:8~10을 그대의 말로 요약해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은혜와 선행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2:8~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믿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은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이 일에 열심히 동참해야 한다.

 

성경은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며 다른 이들을 섬기도록 지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지 죄가 없는 환경에서 이러한 행위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볼 따름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망가진 세상만을 알 뿐이다. 다행히도 예수님의 희생으로 표현되고 구현된 하나님의 은혜가 용서와 치유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파탄난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더 온전하게 하나님의 작품이 되어가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협력자로 삼으셔서 다른 사람의 피해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삶을 추구하게 하신다(2:10 참고). “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각 방면에서 도와달라는 호소가 들려온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의 동료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라고 요구하신다”(치료봉사, 103).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구원을 얻거나 하나님의 호의를 사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억눌린 자들을 일으키며, 굶주린 자를 먹이는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호의를 받았다. 우리는 죄인인 동시에 죄의 희생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속량함을 받았다. 우리는 여전히 이기심과 탐욕의 유혹과 씨름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자기희생과 겸허한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새로운 생명과 사랑을 부여해 주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해 치러진 크고 완전한 희생을 보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 외에 더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것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사랑에 반응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에 반응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부가설명> 대단히 추상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의 성령의 역사로 거듭난 사람들이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받았다는 표현이 추상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거듭났으면 이것은 실제이다. 그런 사람은 바울의 고백대로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은 이 생명의 작용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제로 느껴지고 체험될 때 거듭난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6) 성경의 권고대로 우리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추상적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교훈 :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럴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구원과 은혜의 반응이다.

 

 

94() 인류애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과 가르침을 통해서 전적인 포용성을 강조하셨다. 정직한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의 관심을 받기 원했던 사람은 평판이 나쁜 여자이든, 세리든, 나병 환자든, 사마리아인이든, 로마 백부장이든, 지역 지도자이든, 어린이든 상관없이 모두 진정으로 따뜻하고 세심한 예수님의 환영을 받았다. 초기 교회도 변화의 길에서 이런 사실을 깨달아야 했고, 거기에는 구원의 선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복음의 포용성을 서서히 인식함에 따라 초기 신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선행을 좋은 일을 하는 수준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과 죽음을 통해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선행이란 복음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었다. 그들이 바울과 베드로같이 지도자 개인의 자격으로(10:9~20 참고) 그리고 예루살렘 총회에서처럼 온 교회의 입장에서(15장 참고) 제기한 문제와 사안들로 씨름하자 이 복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포용성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미친 극적인 변화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삶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1. 아래의 성경절은 인류애에 대해 뭐라고 가르치는가? 각각의 교훈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2:10 “우리는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한 가족이라고 가르친다.

 

3:28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요약한 것과 같다. 누구에게 봉사할 책임이 있는지 논쟁하기보다 그냥 가서 섬긴다면 우리를 섬기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존재들로부터 섬김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인류애는 복음으로 하나가 된 자들의 가족애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높은 수준으로 실현된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고전 12:13).

 

<부가설명> 원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 이렇게 하신 것은 아담에게서 여자가 태어났다는 것을 가르친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고전11:8) 여자는 남자 아담에서 난 것이다. 그 여자의 존재와 생명은 남자인 아담에게서 받은 것이다. 물론 그 생명은 원천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둘이 부부가 되게 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야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셨다. 아담 부부에게서 태어난 모든 아담의 자손들은 한 부모를 모신 한 가족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망이 세상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한 가족이라는 것을 잊어버렸고, 죄가 사람들을 이기심으로 가득 차게 했기 때문에 이기심을 만족하게 하려고 전쟁과 약탈과 모든 나쁜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사람들이 한 가족이라는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또 바벨탑을 쌓으면서 언어가 달라지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그것이 민족이 되었다. 혈통은 다 아담의 혈통이지만 언어가 갈라지면서 민족이 달라지고 각각 다른 조상에게서 출생한 줄로 착각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첫 아담의 죄와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다시금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안 가족이 되도록 하셨다. 그래서 다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이다. 이것을 깨달은 초대교회는 그들에게 선행이란 복음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었다.” 지금도 이 사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교훈 :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의 섬김과 봉사를 통해서 온 인류가 그분의 자녀와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포용성을 내포한다.

 

 

95() 영원한 복음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14:6~7).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14:6) 변화를 가져오는 복음의 초대와 호소는 기독교 역사를 통해 계속되었다. 그러나 계시록은 예수님에 대한 복된 소식과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것, 곧 복음의 기별을 마지막 시대에 새로운 선포 방식으로 묘사한다.

 

1. 14:6~7을 읽어보라. 우리가 보통 요 3:16에 요약되어 있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는 복음이 이 성경절에는 어떻게 들어가 있는가?

[14:6,7]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 영원한 복음인데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했다.

 

14:7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 죄악, 빈곤, 억압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공부하면서 이미 주목한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총동원하고 있다.

심판. 심판 또는 정의 실현을 위한 호소는 역사적으로 억압을 받아온 자들이 반복해온 요청이었다. 다행히도 성경은 하나님을 곤경 중에 있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예를 들어 시편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자들은 심판을 복음으로 간주한다.

경배. 구약의 선지자들은 계속 악행을 저지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예배와 비교하면서 진정한 예배와 선행을 자주 연관시킨다. 예를 들어 이사야 58장에서 하나님은 그분이 가장 바라는 예배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위한 친절과 돌봄의 행위라고 명백하게 밝히신다(58:6~7 참고).

창조. 이미 보았듯이 공의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인류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분의 관점에 우리는 모두 존귀하며 아무도 부당한 이득이나 탐욕을 위해 다른 사람을 착취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확실하게 마지막 시대에 선포해야 할 복음은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구제와 구원, 회복을 받아들이라는 광범위하고 원대한 부르심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하나님은 참 예배와 거짓 예배, 박해와 관련된 문제(14:8~12 참고)뿐 아니라 이 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며 옳은 일을 옹호할 백성을 두실 것이다.

 

<부가설명> 교과저자는 선행을 예배의 핵심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설명은 복음을 인간의 선행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수요일에 선행을 복음 이해의 핵심이라고 말했지만 이 말을 자세히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 천사의 기별에 지금까지 강조해온 사상을 연결시키는 것은 좋은 착안인데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선행은 단순한 도덕적 동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은 사탄의 반역과 지구에서 아담부부를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지게 한 것을 다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사탄이 세상을 사망에 빠지게 한 결과가 모든 부조리와 모순과 질병과 고난과 불공평과 불평등, 모든 도덕적 죄, 질병, 전쟁, 살인, 강도, 모든 범죄들과 사망이다. 이런 것을 책망하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은 사탄이 저질러놓은 일을 멸하는 복음 사업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심판행위이다.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는 것은 심판의 모습이다. 종국에 사탄과 그의 모든 부하들은 지구에서 쫓겨나서 영원한 불에 들어가고 그 존재를 영원히 상실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선행을 하는 것은 주님의 복음을 생활로 증거하는 것이다. 이 분명한 뜻을 알아서 선행을 할 때 복음을 이해하고 하는 생명의 봉사가 된다. 그것이 곧 창조주를 바르게 경배하는 방법도 된다.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원래 목적을 이루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훈 :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전해야 할 영원한 복음은 창조주께 대한 경배를 촉구하며 심판에 앞서 공의의 실현과 구원과 회복을 받아들이라는 부르심이다.

 

 

96()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19~26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치료봉사>, 95~107 ‘봉사를 위해 구원해 줌을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당신의 포도원이라고 주장하신다. 비록 지금은 찬탈자의 수중에 있지만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창조에 의해서뿐 아니라 구속을 통해서도 이 땅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이 세상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이 한 선물(독생자)을 통해서 그 밖의 다른 모든 선물이 인류에게 주어졌다. 온 세상은 날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빗방울 하나하나와 빛줄기 하나하나가 감사할 줄 모르는 인류에게 내려지고 있으며 모든 나무, 잎들과 꽃들과 과일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그분의 크신 사랑을 증언한다”(실물교훈, 301~302).

종파의 신조에 어떠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고통 중에 부르짖는 인류의 호소는 들어주어야 하고 또 그 부르짖음에 응답해야 한다.우리 주위에는 동정의 말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련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이 있다.그들은 주님께서 값으로 산 자들이며 하나님 보시기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귀중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가족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분의 청지기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같은 책, 386~38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도 이런 행위로 하나님의 호감을 살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복음의 내용을 바르게 깨닫고 복음을 체험하면 그렇게 된다.

 

우리 교회는 차별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입니까? 우리 교회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포용적입니까?

재림교회는 꽤나 배타적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데 바르게 복음을 실천하도록 기도하고 성령의 음성에 굴복해야 한다.

 

요약 :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용서와 생명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은혜의 수혜자로서 우리는 이 행복을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자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고 재창조하신 이유는 이런 삶을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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