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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 율법의 정신을 위배함

 

112일 안식일

일몰오후 534

 

 연구 범위 : 5:1~5, 21:2~7, 6:8, 5:7~12, 23:21~23, 5:14~19

 기억절 :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5:11).

 

최근 인류는 부와 빈곤, 그 격차와 해소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예수님도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26:11)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결코 그들을 돕지 않아도 된다는 변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성경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우리의 역할에 대해 훈계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귀환한 포로들이 시련과 고난을 겪는 와중에서도 빈곤의 문제뿐 아니라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포로 기간 이전의 문제였는데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그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이런 해묵은 문제의 발생과 느헤미야가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압제가 의문의 율법 범위 안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율례와 규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우리는 율법의 의미 곧 예수님의 성품을 반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회복된 이스라엘 공동체에 요구되는 높은 율법의 정신을 이해한다.

느끼기 : 율법의 정신과 모순된 삶을 사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과 분노의 마음에 공감한다.

행하기 : 하나님이 설계하신 사회에 맞지 않는 행위와 관습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기로 결심한다.

 

5:1~5에 따르면 회복된 이스라엘 공동체에 어떤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가 있었습니까?

주위의 민족들이 그들이 하는 일을 심하게 방해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사회와 인간 자본주의 사회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사랑과 협력의 삶을 설계했지만 죄인 인간들은 차별과 지배와 권력을 휘드른다.

느헤미야가 요구한 조치들은 어떤 면에서 율법의 문자를 초월한 정신을 나타냈습니까?

느헤미야는 율법조문의 정신을 실천하게 했다. 그것은 산상보훈의 정신이다.

느헤미야의 개인적인 삶은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드러냈습니까?

느헤미야는 이기심을 버리고 희생하고 봉사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설계하신 사회와 일치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일단 교회 내부에서부터 이 설계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론 하나님은 회복된 유다 사회가 이전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율법의 정신과 모순된 모습으로 타락해 갔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점들을 시정하고자 백성들을 소집하고 강력한 조치를 단행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희생하는 모본을 통해 그리스도의 정신을 반사했습니다.

 

 

10 27() 백성들의 고충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5:5).

 

1. 5:1~5을 읽어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백성들은 무엇 때문에 울부짖었는가?

[5:1~5]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2 혹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곡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3 혹은 말하기를 우리의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전당 잡히고 이 흉년을 위하여 곡식을 얻자 하고 4 혹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세금을 바쳤도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저희 자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으나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도다.

 

: 페르시아 국가와 백성의 부자와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착취한 것과 같이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 공동체는 느헤미야의 영도하에서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며 단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박해에 맞서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민족의 내부는 평안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적에 대항하는 응집된 노력과 견고함이 있었지만 공동체 내부는 붕괴되어 있었다. 지도자들과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과 사회적인 약자들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고 있었으며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가정들이 구제를 호소할 지경이었다. 어떤 가정들은 자녀들을 먹일 양식이 없다고 말했고, 어떤 가정들은 가뭄 때문에 땅을 저당 잡혔는데 이제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울부짖었다. 또 어떤 가정들은 페르시아 세금을 내기 위해 빚을 내고 자녀들을 노예로 팔았다고 통곡했다.

궁핍한 가정들로 하여금 이웃에게 도움을 구하게 만든 주된 장본인은 기근과 세금이었다. 페르시아 정부는 유다 지방에 매해 은화 350달란트를 세금으로 요구했다. 만약 누군가 지정된 양의 세금을 납부하지 못한다면 먼저 그들은 부동산을 담보로 빚을 얻거나 돈을 빌려야 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도 돈을 벌지 못하면 빌린 돈에 대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다음 선택지는 부채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이미 땅을 잃었는데 이제 가족 중에 누군가를, 일반적으로는 자녀들을 보내서 부채 상환을 위해 채주를 섬기게 해야 했다.

물론 살다 보면 우리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로 곤경에 처할 때도 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 아프거나 경제적인 궁핍에 처할 때도 있다. 위의 경우는 정부의 정책이 백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빈곤의 심화를 야기한 사례이다. 그들은 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빈곤의 악순환에 빠졌다.

 

<부가설명> 외부의 적이 공격할 때 내부는 결속을 하여 대항하게 된다. 외적이 물러가면 내부의 문제가 터진다. 돌아온 유대인 사회현상이 이런 상태에 빠졌다. 사회는 외부의 침입보다 더 어려움에 빠지는 것이 내부의 분열과 부패이다. 지도자들의 이기심과 안일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귀환한 유대인들의 사회 유력자들이 서민들에게 돈을 변리로 빌려주고 갚지 못할 때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를 저당잡고 자녀를 종으로 데려가고 했다. 게다가 종주국인 페르시아의 세금은 과중하게 부과했다. 유대인은 협력해서 이런 것을 잘 감당해가도록 해야 할 것인데 부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앞서서 서민들을 착취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역사의 종말의 남은 자손들에게 경고하는 사건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언약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귀환한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언약을 기억하지 않았다. 오늘날 지도자들이 예언의 신의 증언으로 주신 말씀들을 무시한다면 느헤미야 당시의 지도자들의 전철을 밟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정말 하나님께 굴복하고 언약에 충실한 성도로서 주신 영원한 복음을 잘 전파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유대 백성은 겉으로는 원수의 공격에 맞서 단단하게 결속한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빈부의 격차로 말미암아 분열되어 있었다.

 

 

10 28() 율법의 정신에 어긋남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5:6).

 

1. 5:6~8을 읽어보라(21:2~7 참고). 느헤미야는 왜 분노를 표출했는가?

[5:6~8]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7 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8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 가난한 동족들을 상대로 이익을 취하고 그 자녀들을 종으로 끌어가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노예제도가 고대 세계에서 하나의 사회법이었다는 사실을 현대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부모는 자신이 노예가 되든지 아니면 자녀를 노예로 팔 수 있었다. 법적으로 부모는 자녀를 노예로 팔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를 주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채주로 하여금 7년마다 노예들을 풀어주도록 하는 규율을 제정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영구적인 노예가 되는 것을 막으심으로 백성들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그분의 소망을 나타내셨다.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법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이자를 물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22:25~27, 25:36~37, 23:19~20에서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성경의 규례를 보라). 물론 채주가 부과하는 이자율은 주변 민족들이 요구하는 것에 비하여 낮았다. 그들은 매달 1퍼센트의 이자를 요구했다. 7세기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서들에 따르면 빌려간 은화는 연 50퍼센트, 곡식은 연 100퍼센트의 이자를 갚아야 했다. 즉 연 12퍼센트의 이자율은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의 관습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성경에 비추어보았을 때 채주들의 유일한 잘못은 이자를 요구했던 것이었는데(5:10) 놀랍게도 백성들의 하소연 속에 그것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회 규범과 율법의 테두리 안에 적법하였다.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대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는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 문제를 심사숙고했다.

느헤미야가 그 문제를 매우 단호하게 처리했다니 대단히 존경스럽다. 그는 그들의 행위가 율법에 저촉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수용할만하며 그 지방의 관습에 비하면 오히려 양호하다고 해서 백성들의 불만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어겨진 것은 율법의 정신이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백성들이 서로를 돕는 것은 하나의 의무였다. 하나님은 억눌리고 가난한 자들의 편이시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을 상대로 자행되는 죄악과 폭거를 책망하도록 선지자들을 세우셔야 했다.

 

<부가설명> 워치만 니의 어떤 책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중국에서 신앙한지 오래되지 않은 어떤 농부가 양수기를 밟아서 자기 논에 물을 대고 논둑을 잘 다듬고 집에 갔다가 이튿날 논에 나오니 자기 논이 말라 있었다. 깜짝 놀라서 보니 아래 논 사람이 이 그리스도인 농부의 논둑을 헐고 그 물을 다 빼간 것이다. 상당히 분노했지만 자기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참고 다시 힘들게 양수기를 밟아 물을 대고 논둑을 잘 살핀 다음 집에 갔다. 그런데 다음에 나와 보니 또 논이 말랐다. 그래도 참았다. 그리스도인이니까. 그런 일이 서너 번 계속되자 끓는 분노를 삭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래 논 주인이 너무 고약했다. 그는 혼자 성을 삭이기 힘들어 자기를 신앙으로 인도한 선배 그리스도인을 찾아가서 의논했다. 그 선배는 아우님, 함께 기도해봅시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그리고 가도한 후에 이 선배 그리스도인이 말했다. ‘아우님, 그리스도인은 옳은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옳은 일 이상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리는군요.’ 이 말을 들은 농부 그리스도인은 알겠습니다.’하고 일어났다. 그는 논으로 돌아가서 그 미운 아래 논에 먼저 양수기로 물을 가득댄 후에 자기 논에 물을 대었다. 자지가 잘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이 고약한 아래 논 사람이 싸움이 두려워 숨어서 논을 살피는데 그날 또 몰래 물을 뺄 생각을 새벽 일찍 나왔다가 자기 논에 물이 가득하고 위의 논에도 가득한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그대로 논머리에 주저앉아 윗논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마침 그가 나오자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잘못의 용서를 빌면서 어떻게 싸움을 하지 않고 이렇게 내 논에 물을 댔소?”하고 물었다. 윗논 주인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이다. 그리스도인은 옳은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옳은 일 이상을 하는 사람입니다. 진작 그렇게 해야 하는데 미안하네요.” 아랫논 사람이 어땠을까?(12:20,21) 그리스도인은 옳은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옳은 이상을 하는 사람이다. 귀환한 지도자들은 옳은 일도 못했다. 워치만 니의 이 이야기는 경청할 만하지 않는가?

 

교훈 :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 공동체에는 세상보다 더 높은 율법의 정신이 요구된다. 그 사회에서는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제도를 지양해야 한다.

 

 

10 29() 느헤미야가 행동에 나섬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5:8).

 

귀족과 관원들에게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5:7)라고 했던 책망은 바라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느헤미야는 멈추지 않고 그들 중에 억눌린 자들을 위해 계속 투쟁했다. 그는 귀족들과 관원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해봤지만 소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가 상대해야 하는 자들은 그 지역에서 부하고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문제의 해결책이 시행될 때까지 만족하지 않았다. 설령 그 과정에서 적들을 만들지라도 말이다.

 

1. 5:7~12을 읽어보라. 당시의 상황을 비판하는 느헤미야의 주장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어떤 논리를 사용해서 잘못을 시정하도록 백성들을 설득했는가?

[5:7~12] 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8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 우리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 10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곡식을 백성에게 취하여 주나니 우리가 그 이식 받기를 그치자 11 그런즉 너희는 오늘이라도 그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취한 바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지 일을 돌려 보내라 하였더니 12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 보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저희에게 그 말대로 행하리라는 맹세를 시키게 하고,

 

: 이방인의 손에 팔린 형제를 속량했는데 어찌 형제를 팔려고 하느냐? 대적이 비앙하지 낳겠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신으로 행하자. 나도 백성에게 돈과 곡식을 주지만 이자를 받지 않는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자.

 

느헤미야는 대형 집회를 요구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모였다. 그는 아마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지도자들이 수치심과 심지어 두려움을 느끼고 압제를 지속하지 못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듯했다.

문제는 먼저 노예제도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느헤미야를 포함하여 많은 유대인이 노예 상태에 매여 있는 동료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돈을 지불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얻은 동족을 다시 사고 파는 것이 용납할 만한 일인지 귀족과 관원들에게 물었다. 그들을 사서 자유를 주더니 결국 그들을 노예로 삼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의 주장이 이치에 맞았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느헤미야가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5:9).

그다음 느헤미야는 자신도 백성들에게 돈과 곡식을 꾸어주었음을 시인하였다. “이자 받기를 그치자”(5:10)고 선언함으로써 그는 동족에게 이자를 물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율법의 내용을 확증하였고 자신의 통치하에서 백성들이 서로 배려해 주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을 나타냈다. 놀랍게도 반응은 만장일치의 찬성이었다.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기로 동의했다.

 

<부가설명> 느헤미야는 섬기는 지도력을 나타낸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었다. 하나님 백성의 지도자들은 마땅히 섬기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지방 교회에서나 상부 조직에서나 동일하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섬기는 지도력을 나타내는 지도자들이지 지배하는 지도자들이 아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분으로 오셨고 섬기는 본을 보이신 분이시다. 교회 조직이 관료화하면 섬기는 지도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지배하는 정신이 나타나게 된다. 느헤미야 때의 귀족들과 부자들의 모습이 비치게 될 것이다. 상부조직에 대하여는 이 정신으로 일하도록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각 교회들은 실제로 이렇게 섬기는 지도력을 나타내서 역사의 종말에 남은 자손으로서 재림교회가 조직과 운영에서도 세상의 본이 되어 세 천사의 영원한 복음 기별을 전파하는데 힘이 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포로 생활에서 겨우 자유를 얻은 동족을 다시 노예로 사고판다는 것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사회에 맞지 않은 관습이었으므로 철회되어야 했다.

 

 

 

10 30() 맹세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5:13).

 

1. 5:12~13을 읽어보라. 느헤미야는 그 합의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왜 저주를 선언했는가?

[5:12,13]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 맹세로 하나님 앞에서 세운 언약을 어기는 결과를 선언한 것이다.

 

비록 지도자들은 몰수한 재산을 돌려주고 자유를 회복시켜주겠다고 동의했지만 느헤미야는 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확실한 증거를 원했다. 그래서 제사장들 앞에서 맹세하게 했다. 이런 조치는 나중에 그 합의를 가지고 소송할 경우에 합법적이고 정당한 증거가 되었다.

그럴지라도 굳이 저주를 공포한 이유는 무엇인가? 느헤미야는 마치 그 안에 무엇인가를 담은 것처럼 옷자락을 모았다가 떨쳐버리는 상징적인 동작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이 서약을 이행하지 않는 자들은 모든 것을 잃으리라는 선언이었다. 어떤 법이나 규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저주를 공포하는 것은 고대의 관습이었다. 저주를 위반과 관련시킬 때 그 법을 어길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느헤미야는 이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극적인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있었다.

 

2. 우리는 다음의 구약 성경절들을 통해서 맹세의 신성성에 대해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30:2, 23:21~23, 5:4~5, 19:12, 26:31)

[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23:21~23]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22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23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5:4~5]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19: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26:3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 맹세에는 하나님의 뜻이 개입되어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한다.

 

말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그것은 동물들에게 있는 능력과는 현격하게 다른 차원의 능력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그것은 생명의 능력이 되기도 하고 사망의 능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한 말, 우리가 한 약속, 우리가 말로 다짐한 헌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우리의 행동은 말과 일치해야 한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말은 그리스도인 같지만 행동은 딴판인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에 등을 돌려왔는가?

 

<부가설명> 맹세는 맹세한 내용을 꼭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그냥 약속과 다른 아주 강한 약속이다. 성경은 맹세하는 자는 자기보다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한다고 했다.(6:16) 맹세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그가 가리켜 맹세하는 존재까지 영향아래 두는 약속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모든 맹세나 약속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 같다. 느헤미야는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맹세하게 할 때에 제사장을 불러서 맹세에 참여하게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의식했든지 못했든지 침례로 하나님과 서약관계에 들어간 것이다. 세상과 죄에 대하여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우리가 이 서약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는 느헤미야 당시 지도자들 이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실천하지 않고 살지 않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인하고 다시 주님께 충성하는 약속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교훈 : 저주를 수반한 맹세는 확실한 이행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서 하나님은 우리가 맹세한 것을 지키고 말한 것에 책임을 지기를 바라신다.

 

 

10 31() 느헤미야의 모본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5:18).

 

1. 5:14~19을 읽어보라.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5:18)

[5:14~19]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부터 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16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일백오십 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백성들의 부역이 중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유다 총독으로 봉사하고 난 뒤에 아닥사스다의 왕궁으로 돌아와 이 부분을 기록했을 것이다. 총독들은 백성들에게 녹봉을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이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자금을 조달했다. 그는 자신의 비용뿐 아니라 가족과 관사 전체의 비용도 지불했다. 그 외에 우리가 이름을 아는 유일한 유다 총독은 스룹바벨이다. 느헤미야가 언급한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아마도 스룹바벨부터 자신이 오기 전까지의 총독들을 말하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그의 임기 내에 그는 재산을 잃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는 높은 관직에 있는 자들이 기대할만한 부를 얻기는커녕 분명히 돈과 소유를 잃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많은 백성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많은 것을 후하게 공급할 수 있을 만큼 부자였다(5:17~18).

아브라함이 주변 민족에게 포로로 끌려간 이들을 구출한 뒤에 했던 일과(14장 참고) 여기서 느헤미야가 했던 일이 똑같지는 않지만 동일한 원칙을 제시한다.

 

2. 5:19을 읽어보라. 그는 뭐라고 말했으며 우리는 복음의 측면에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5: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이 분명히 있다는 믿음을 나타낸 말이다.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이나 혜택보다 하나님과 그분의 일을 우선시하는 모본을 본다. 그것은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교훈을 준다. 큰 희생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기가 쉽다.

 

<부가설명> 느헤미야의 하나님이나 우리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느헤미야가 귀환한 민족을 위하여 봉사한 것이나 오늘날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도록 사람들을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기별을 외치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느헤미야의 신앙과 정신으로 이 일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남은 자손들은 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들이 전해야 할 기별의 복음을 바르게 깨달아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위에는 이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가득하다. 내부에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일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자기에게 부여된 능력을 다하여 이 사명을 감당해서 성전을 짓고 성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

 

교훈 : 느헤미야는 자신의 지위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과 백성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모본을 남겼다.

 

 

11 1()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선지자와 왕>, 646~652 ‘착취에 대한 견책을 읽어보라.

 

이 잔인한 압박에 대해 들었을 때에 느헤미야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하였다. 그는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그가 이 억압적인 착취의 습관을 깨뜨리는 일에 성공하려면 공의를 위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을 알았다. 그는 남다른 정력과 결심을 가지고 그의 동포들을 구제하는 일에 착수하였다”(선지자와 왕, 648).

예수님은 맹세하는 것이 필요치 않다는 원칙을 세우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셨다. 그분은 정확한 진실이 말의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산상보훈, 67).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의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의미 없는 말과 어귀들을 정죄한다. 이것은 사교계와 사업계에서 유행하는 가식적인 인사, 진실을 떠난 속임, 아첨하는 말, 과장, 사업상의 속임수 등을 정죄한다. 이것은 또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것을 나타내고자 애쓰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진실하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친다”(같은 책, 6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돈과 인간관계의 문제 중심에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를 편하게 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탐욕을 멀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방법은 무엇입니까? 58:3~12, 6:6~8을 연구해 보십시오.

구제하고 자비를 베푸는 삶이다.

 

말할 수 있는 능력과 말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의미로 요 1:1~2에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부를까요?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말의 중요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타난 형상이다. 사람도 그 말로 자기의 형상을 드러낸다.

 

이천 년 전, 우리 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있으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놀랍습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가 빈곤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떻게 이 두 개념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불운한 자들을 위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불평등과 불공평을 평등과 공평이 되도록 하는 사명을 받은 자이다. 그것이 창조주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지럽히고 불공평 불평등을 만든 장본인은 사탄이다. 우리가 공평과 평등을 수행하는 것은 사탄의 일을 무너뜨리는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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