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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감 

 

627일 안식일

일몰오후 757

 

 연구 범위 : 2:12~16, 4:4, 8, 10~12, 37:7, 46:10, 62:1~2, 5, 3:16

 기억절 :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아무리 최고의 성경 연구 방법을 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성경에서 배운 대로 살기로 결심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반적으로 교육에 해당하는 것은 성경 연구에도 해당한다. 우리는 읽고 들을 때가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할 때 가장 잘 배운다. 이러한 순종은 신령한 복이 가득한 하늘 창고를 열고 삶을 변화시키며 이해력과 지식을 증가시키는 즐거운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지 않고 배운 것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증언에도 결점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영감적인 모본들을 통해서 우리는 은혜와 지혜 가운데 성장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나은 모본은 없으며 그분보다 더 강력한 동기도 없다. 그분은 우리가 따라야 할 표본을 주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하게 일치하는 생애를 사셨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것의 신령한 권위 아래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공부하려고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성경 연구의 참목적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행하기 : 기도와 말씀 연구를 위해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고, 성경절을 암송하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명상하는 것이다.

지식을 얻기 위한 성경 연구에는 어떤 중요한 목적이 빠져 있습니까?

신앙을 생활하는 목적이 빠졌다.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시간을 만들어 고수하는 것이다.

 

결론 :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지 않는 성경 연구는 우리에게 무의미합니다. 오히려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성경을 펴는 사람에게 성령은 진리의 빛을 비춰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따라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과 기도로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며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6 21()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신중하고 적합한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그것만큼 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 성경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에 있지 않다. 물론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정복하고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목적이다. 기꺼이 배운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기꺼이 성경 진리에 굴복한다는 뜻이다. 이런 선택은 때로 치열한 갈등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가 우리의 생각과 삶에 대하여 최상권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양자택일이다.

 

1. 2:12~16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2:12~16]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 항상 말씀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원망과 시비가 없고, 흠 없고 순전하며, 빛이 되도록 살아라.

 

물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에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 곧 성령을 통해 일하신다. 더욱이 우리는 죄 많은 인간으로서 간혹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고 우리의 방편을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한다(1:25, 4:17~18).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기별을 위한 감동도 없다. 그리고 그에 따라 소망, 신뢰, 사랑도 사라진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실제로 우리 안에서 행하시며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2:13)신다.

성령은 우리를 성경의 더 심오한 이해와 즐거운 공감으로 이끌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말씀의 진리로 우리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그러한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신선한 통찰력을 주셔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따르며 순종하게 하신다. 이런 식으로 영적인 사물들은 영적으로 해석된다(고전 2:13~14). 그리고 우리는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따를 수 있게 된다(50:4~5).

 

<부가설명> 성경의 신앙은 종교가 아니다. 성경의 신앙은 일상생활이다. 생활이 되지 않는 신앙은 종교사상일 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출석하고 성경 읽고 찬미하고 기도하는 것만이 아니다. 말씀이 일상생활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확실하게 가르친 것이 야고보서이다. 성경의 신앙은 도덕적 교훈이 아니고 생명과 존재에 대한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활이 되지 않으면 성경의 신앙인이 아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은 신앙이 생활이기 때문이다. 생활을 주장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이 주장하는 생활이 거듭난 생활이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으로 살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성경 지식을 쌓는 것에도 열심이 없다. 그렇거든 어떻게 성경의 길을 따라 생활할 수 있겠는가? 아직은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때이다. 머지 않아 은혜의 문이 닫히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5:13) 바로 신앙이고 신앙생활이다. 성경 해석학을 올바르게 배웠으면 이제는 신앙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신앙이 되도록 성령께 전적으로 굴복하자.

 

교훈 : 성경을 연구하는 참 목적은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말씀에 굴복시키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기 위한 것이다

 

 

6 22() 예수님에게서 배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4:4).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리가 따라야 할 더 훌륭하고 뛰어난 모본은 없다. 그분은 성경에 익숙하셨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따르고 지키셨다.

 

1. 4:4, 8, 10~12을 읽어보라. 사탄의 유혹에 맞서기 위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성경을 사용하셨는가? 이로 보건대 성경은 특별히 유혹이 있을 때 우리의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가?

[4:4,8,10~1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 “기록하였으되, 기록하기를이라는 대답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게 사용하시며 그것을 확실하게 제시하며 사탄의 시험을 대항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을 잘 알고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워서 인용하실 정도로 성경과 매우 친숙하셨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보낸 결과 그분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할 수 있었다.

만약 정확한 성경 구절들과 그것들이 등장하는 문맥을 알지 못했다면, 그분은 마귀에게 쉽게 기만을 당하셨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마귀도 성경을 인용하며 기만의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귀처럼 그저 성경을 인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이 어떤 한 주제에 대해서 어떤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해지는 것만이 하나님의 대적에게 속지 않고 사탄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성경에 무엇이 기록되었는지 언급하심으로써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애쓰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자주 읽게 된다(24:45~46, 11:10, 6:45 등 참고).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10:26)고 물으셨던 것처럼 그분은 성경을 읽는 자들이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예수님에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란 우리가 살면서 따라야 하는 기준이다.

7:38을 보면 예수님은 육화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성경이 말한 것을 가르치셨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은 그분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5:39). 예수님은 성경 곧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따르셨다. 그분도 그렇게 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는가?

 

<부가설명>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라고 권고했다(12:2).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그분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SDABC 61098).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예수님께 직접 배우는 것과 같다.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게 해 주시도록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기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 연구하면 안 된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거기에 사람의 생각을 보태지 않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해석하고 설명하시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기도하며 신발을 완전하게 벗어버리고 말씀 앞에 서야 한다. 산 말씀이(4:12) 죽은 사람을(고전15:22) 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감히 죽은 사람이 산 말씀을 해석하면 바른 해석이 나오겠는가? 세상에서 학문을 많이 배울수록 말씀을 깨닫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자기가 배운 지식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잘 이해하기 바란다. 모세는 당시 최고 학문을 배운 사람이지만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타는데 나무가 타지 않는 현상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씀이 바로 그런 것이다. 말씀에 익숙한 성도들이 되도록 성령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교훈 : 예수님은 성경을 연구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셨고 말씀에 친숙하셨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대처하실 수 있으셨으며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제시하셨다.

 

 

6 23() 예수님 대 성경?

 

1. 5:45~47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여기서 성경과 그분의 관계에 대해 어떤 강렬한 기별을 제시하시는가?

[5:45~47]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 모세가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바로 예수님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자신의 말과 구약 성경의 말씀을 극명하게 대조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이 성경의 언어보다 고상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5:43~44; 5:21~22, 27~28, 33~34, 38~39 비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본다. 산상보훈에서 이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을 때 그분은 어떤 주석가들의 주장처럼 구약을 무시하거나 폐기하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은 네 원수를 미워하라’(5:43 참고)는 권고처럼 하나님이 용납하거나 명령하시지도 않은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당시의 주석자들이 사용했던 여러 해석과 유전에 반응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구약성경을 폐지하지 않으셨고, 어떤 수준으로든지 그 권위를 축소시키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구약성경이야말로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증명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알려주심으로 구약 성경의 진술을 강화시키셨다.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거나 그 일부가 마치 영감을 받지 않은 것처럼 폄하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권위를 사용하는 것은 아마도 가장 교활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비평 태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여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구약성경밖에 없었던 당시에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모본을 보이셨다. 구약 성경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더 이상 어떤 증거가 필요하단 말인가?

예수님은 성경의 권위를 약화하기는커녕 항상 성경을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지침으로 높이셨다

실제로 그분은 산상보훈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진술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5:17). 그리고 이어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5:19)라고 말씀하셨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말씀 하나님으로 하늘에 계실 때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시고 영감으로 주셔서 기록하게 하신 그 말씀을 이 세상에 오셔서 그대로 생활하셨다. 그리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시고 연구하셨다. 그분이 성경 말씀을 인용하신 것을 읽으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약을 폄하하실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폄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대조한 것은 구약을 폄하한 것이 아니다. 구약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경계하신 것이며, 그 교훈의 정신과 사상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에 아기로부터 성장하면서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을 걸었을 것이다. 성령께서 그분을 지도하시고 성장하면서 강건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여지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셨다(2:40,52). 예수께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대로 성정하셨다. 그 모든 과정에서 완전하셨다. 말씀이 삶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말씀이 생활이 되도록 말씀에 익숙하고 성령께서 말씀으로 자신을 주관하도록 항상 굴복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원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께 배우는 것이다. 필자도 이것이 소원이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지만 이 소원은 버릴 수 없다. 주님 도와주소서.

 

교훈 :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말을 구약의 말씀과 대조시켰다고 주장하지만 그분은 항상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이며 본래의 의미를 드러내셨다.

 

 

6 24() 성경을 가지고 보내는 교제의 시간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62:1).

 

우리의 삶은 숨가쁘게 바쁘며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그저 생존하며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런데 필요가 충족되었는데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버둥거린다. 우리를 만족시키며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말이다. 그러나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경고했듯이 항상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지나치게 바쁜 우리의 그 삶 속에는 하나님이 서실 자리가 없다.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우리의 호흡을 주장”(5:23)하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교제의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 그렇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기에는 우리가 너무 쉽게 다른 사물에 관심을 뺏긴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의도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춘 순간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듣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그분의 말씀을 읽고 기도로 소통하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특별한 경건의 시간은 영적인 삶의 샘이다.

 

1. 37:7, 46:10, 62:1~2, 5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이 중요한가?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62:1,2,5]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 하나님 앞에 조용히 하나님과 사귀며 그 은혜를 간구하는 시간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굳게 하는 시간이 된다.

 

그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좋아할 것이다.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묵상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라.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런 만남을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확보해야만 이 일은 성공할 수 있다. 고요하게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은 보통 하루를 시작할 때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보내는 그와 같은 시간은 그날의 남은 시간에 복이 된다. 왜냐하면 그대가 얻은 아름다운 생각이 온종일 그대와 동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방해 없이 하나님과 만날 적당한 시간을 찾기 위해서는 창의적일 필요도 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감화를 그대의 삶에 끼친다. 그로 인해 그대는 예수님을 더 닮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각 신자는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성경 읽고 성경을 연구하며 깨달은 것을 식구들과 나누는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은 개인 신앙뿐만 아니라 가족 신앙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말씀 안에서 우리를 만나신다. 말씀을 읽고 명상하고 연구하는 시간은 하나님과 친교하는 시간이다. 예수님과 성령 안에서 친교하는 시간이다. 성경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고 사귀는 삶이다. 말씀이 생활이 되면 모든 생활이 하나님 삼위일체와 사귀는 시간이 된다. 얼마나 큰 특권인가! 그리고 걸을 때나 운전할 때나 마음으로 말씀을 명상하며 깨달아야 할 구절들을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하려면 평소에 성경을 읽고 생명의 도리를 더 깊이 깨닫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 그냥 안식일에 교회당에 가고 설교 듣고 집으로 오는 그런 생활로는 진지한 명상이 안 된다. 하나님과 진리로 깊은 친교를 나누는 은혜도 누리기 어렵다. 아무쪼록 말씀으로 하나님과 깊은 친교를 나누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자.

 

교훈 : 우리의 영적인 삶은 조용히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에서 힘을 얻는다. 그렇게 하려면 의도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6 25() 암송과 노래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119:11).

 

성경 암송은 여러모로 복을 가져다준다. 소중한 성경절들을 생각 속에 저장해 두면 새롭게 변화하는 삶의 환경에서 꺼내어 적용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성경은 우리의 사고와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방식에 감화를 준다. 성경 암송은 우리의 일상에 말씀을 가져가는 것과 같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며 성경에 따라 신실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준다.

절절이 말씀을 암기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과 속임수를 방지하는 대단한 보호장치이다. 암기를 통한 성경 학습은 손에 성경이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인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유혹이 일어나거나 우리가 역경에 직면할 때에 큰 힘이 된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떠올리고 우리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천 가지의 길을 준비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생각을 집중하게 한다.

 

1. 5:19, 3:16을 읽어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로 부르면 우리 마음에서 그 말씀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견고해지는가?

[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 말씀을 시로 찬양한 것이 시편이다. 그것은 기억에 깊이 자리해서 가지고 다니는 성경이 된다. 성령께서 가장 합당한 때에 기억하게 하셔서 필요에 부응하게 하신다.

 

말씀을 노래로 지어 부르는 것은 성경절을 암송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성경 말씀은 노래를 통해서 훨씬 쉽게 암기된다. 아름다운 가락과 결합한 성경 말씀은 우리의 생각 속에 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효과적으로 불안감을 내쫓는다. 단순하고 듣기 좋은 가락과 결합된 성경절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쉽게 불리고 기억된다. 성경은 여러 유명한 성가극, 교향곡 그리고 수 세기 동안 기독교 문화에 영향을 준 다양한 음악 분야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고양시키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향하게 하는 곡들은 우리의 삶에 커다란 복과 긍정적인 감화가 된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내용 전체를 책, 장 절과 함께 외우고 있으면 가장 좋은 상태이지만, 내용과 책 장 절만 외우는 것도 유용하다. 어떤 내용이 어느 책, 몇 장 몇 절에 있다고 기억해도 성경을 들고 있을 때 당장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성경을 입력하고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과 장 절을 기억하면 당장 찾아 사용할 수 있는 시대다. 옛날 장 절이 나누어져 있기 전에는 어느 책에 이런 말씀이 있다는 정도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신약성경에 구약을 인용할 때 주로 그런 식으로 인용했다. 즉 이사야의 글에, 또는 모세의 책에 이렇게 인용했다. 그러나 우리의 선인들의 수고로 장이 구분 되고 절이 구분되어서 이제는 어는 책 몇 장 몇 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냥 암송하는 것보다 주제별로 성경절을 암송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다. 안식일에 대한 성구, 창조에 대한 성구, 재림에 대한 성구 등등. 그런데 인용하는 성구를 올바르게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 전체적으로 이 구절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알고 사용하는 것이 힘이 있다. 성경 해석은 퍼즐과 같아서 제자리에 정확하게 들어맞아야 바른 이해가 된 것이다. 성경을 연구할 때 이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초대교회 시대도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성경을 외웠다고 기록했다(13:27). 유대인들은 이렇게 성경을 외워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도 그런 상태에 빠지면 안 된다. 외우고 알고 사용하는 은혜를 주님께 간구하자. 그리고 그것이 삶이 되는 은혜도 받자.

 

교훈 : 성경 암송은 삶의 현장에 말씀을 즉각적으로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며 말씀을 가사로 삼아 부르는 노래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6 26()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정로의 계단>, 93~104 ‘기도의 특권을 읽어보라.

육체의 눈으로는 절대 그리스도의 어여쁨과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죄를 짊어지신 분의 자비와 용서 곧 그리스도의 충족 없이는 아무 소망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인식하도록 성령이 마음을 밝혀주셔야만 사람은 그분의 무한한 자비와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와 영광을 인식할 수 있다”(엘렌 G. 화잇, The Upward Look, 155).

우리는 사탄이 유혹하러 올 때에 암송할 수 있도록 성경의 일부 또는 장 전체를 암송할 필요가 있다.우리가 지상의 육욕적인 사물에 마음을 기울이도록 유혹을 받을 때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은 사탄을 매우 효과적으로 격퇴하는 방편이 된다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8844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는 우리의 믿음과 순종에 관한 모든 결정에 어떻게 작용합니까? 비록 우리의 삶의 많은 영역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지만, 구원과 관계가 있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대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대는 그것을 가지고 어떤 종류의 영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까?

스스로 말씀에 순종하도록 의지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각자 대답해 보자.

 

안식일은 어떻게 우리에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을 제공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과 활동에 얽매이지 않도록, 안식일은 어떻게 우리를 보호해 줍니까? 어떻게 하면 안식일이 영적으로 더 큰 복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안식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자유의 날이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말씀 안에서 크게 누리도록 하자.

 

그대는 기도와 말씀 연구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영적인 습관은 그대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괜찮다면 그대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개인적인 시간과 그것으로부터 얻는 유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그대의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도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서로 이야기해보자. 말씀을 읽고 깨달은 것을 서로 나누는 기회를 만들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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