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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과 예수님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라

 

718일 안식일

일몰오후 751

 

 연구 범위 : 8:22~26, 4:3~34, 1:40~41, 12:28~34, 23:39~43, 8:26~38

 

 기억절 :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4:19).

 

예수님은 영혼 구원의 대가이시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시는 방식을 관찰하면 어떻게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지식으로 인도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 번잡한 예루살렘 거리와 유대의 흙길 그리고 갈릴리의 푸른 산기슭을 그분과 함께 거닐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하늘 왕국의 원리를 어떻게 계시하셨는지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하늘 왕국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는 자로 보셨다. 그분은 각 사람을 긍휼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분은 베드로를 거칠고 목소리가 큰 어부가 아닌 능력 있는 복음 설교자로 보셨다. 그분은 야고보와 요한을 쉽게 흥분하는 극렬주의자가 아니라 열정적인 은혜의 선포자로 보셨다. 그분은 막달라 마리아, 사마리아 여인 그리고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마음속에서 진정한 사랑과 용납을 원하는 깊은 갈망을 보셨다. 그분은 도마를 냉소적인 회의론자가 아닌 진지한 질문자로 보셨다. 그들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든지, 백부장이든지, 귀신 들린 광인이든지 예수님은 그들의 가능성을 보시고 구원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셨다.

 

 학습 목표

깨닫기 : 내가 누군가를 전도하기 전에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그를 바라보는 시선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나를 긍휼의 눈으로 보시고 나의 미래에 주목하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시선에 감사해 한다.

행하기 : 내 삶의 자리 가까이에 성령께서 준비하신 영혼에게 다가가 관계를 맺기로 결심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교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8:22~26 참고)

우리는 사람의 시선으로 사람을 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이 제외되어 있다.

사람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이 우리의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를 말해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를 보신 것과, 거라사의 귀신 들린 자를 보신 것이 좋은 예이다.

그대가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서 예수님은 어떤 가능성을 보실까요?

그 안에 진리를 찾으면 충성할 가능성을 보신다.

어떻게 하면 그를 위해서 성령께서 예비하신 전도의 기회를 잘 포착할 수 있을까요?

사랑과 친절로 인간적인 접근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어떠한 단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접근, 사귐, 만남의 시간을 만들고 그의 취미에 맞는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하루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결론 : 전도는 우리의 마음이 아닌 예수님의 마음으로 할 때 가능합니다. 그분은 아무리 까다로운 인격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긍휼과 용납의 눈으로 보시고 우리를 현재의 모습이 아닌 복음의 일꾼이자 미래의 완성된 모습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분의 시선을 가질 때 우리는 성령께서 예비하신 길과 기회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7 12() 두 번째 접촉

 

예수님이 두 단계에 걸쳐서 기적을 향하신 경우는 성경에 한 번밖에 없다. 그것은 벳새다의 시각장애인을 치유하신 사건이다. 이 일화는 오늘날의 교회에 시대를 초월한 교훈을 준다. 그것은 각 신자들을 사용하셔서 누군가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예증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이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8:22)했다. 여기서 두 개의 중심 단어는 데리고 왔다구했다이다. 그 시각장애인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친구들이 그의 필요를 보고 그를 데리고 왔다. 그에게는 믿음이 많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친구들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의 장애를 고쳐주시리라고 믿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치유의 기적 중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은 25개이다. 그중 절반 이상이 친족이나 친구들이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경우이다. 믿음을 가진 누군가가 그들을 데려오지 않는다면 예수님께로 결코 나아오지 못할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역할은 인도자가 되어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8:22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두 번째 단어는 구했다이다. 그것은 간청하다’, ‘애원하다’, ‘열심히 설득하다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당당하고 거친 요구라기보다 부드럽고 정중하며 신사적인 호소를 암시한다. 그의 친구들은 예수님이 그를 도울 마음과 능력이 있음을 믿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자신을 고치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친구들은 믿었다. 때로 우리는 사람들을 우리의 믿음의 날개에 태워서 예수님께 데리고 가야 한다

 

1. 8:22~26을 읽어보라. 예수님이 그 시각장애인을 두 단계에 걸쳐 치유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일화는 예수님의 증인인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8:22~26]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 맹인을 두 단계로 치유하셨다. 첫째는 보이는 것이 희미했다.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다시 안수할 때 모든 것을 밝히 보았다. 진리를 증거할 때 처음부터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다시 설명하면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이 기적은 복음을 전할 때 단번에 깨닫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가르쳐서 밝히 깨닫게 하라는 교훈이 있다. 그럴 때 주님이 그의 눈을 여신다.

 

우리도 사람들을 분명하게 보지 못할 때가 있지 않은가? 우리도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이라기보다 어렴풋한 형태로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볼 때가 있지는 않은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는가?

 

<부가설명> 한국속담에 첫술에 배부르랴는 것이 있다. 복음을 전할 때도 그렇다. 진리의 말씀은 여러 숫갈을 먹여도 배부르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 예수께서 맹인의 눈을 두 번에 걸쳐 밝히 보게 하신 이적으로 이런 교훈을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 자신이 지금도 성경의 모든 진리를 밝히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아직도 희미한 것투성이다. 사람을 나무처럼 본다. 움직이기는 하는데 사람이 아니라 나무가 움직이는 거처럼 보이는 것이다. 진리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7:5)라고 하셨다. 그래야 우리가 진리를 밝히 보고 깨닫고 분명히 가르칠 수 있다. 자신이 분명히 모르면서 진리를 섣불리 가르치면 다른 복음을 전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마땅히 자기가 가르칠 진리를 밝히 알도록 진리를 연구하고 명상하고 깨닫는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바른 증거를 해야 한다. 이것은 현대진리를 전하는 재림성도들의 책임이다.

 

교훈 : 예수님은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시선까지 고치기를 원하신다.

 

 

7 13() 용납 속에서 얻는 교훈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4:27).

 

예수님은 새로운 관점에서 각 사람을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심으로써 제자들에게 하늘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셨다.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관점은 과도하게 긍정적이었다. 그분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바라보셨다. 그분은 사람들과 교제하실 때면 항상 그들을 존중하시며 귀하게 대하셨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대하는 그분의 방식에 자주 놀라곤 하였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 단적인 예이다.

<고고학연구성경>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한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들 사이의 균열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왕기하 17장을 보면 사마리아인들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의해서 북방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그 땅에 강제로 이주해 온 메소포타미아 백성들의 후손이다. 그들은 야훼 신앙과 우상 숭배의 관습을 결합시켰다.”The Archaeological Study Bible (Zondervan Publishing, 2005), p. 1727. 그러한 우상숭배 관습에 더하여 유사 제사장 제도를 수립하고 그리심 산에 유사 성전을 건축했다. 사마리아인들의 신학적인 차이점을 고려했을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시려는 예수님의 선택에 제자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종교적인 논쟁에 빠지기를 거부하는 예수님의 모습에 그들은 놀랄 따름이었다. 그분은 용납과 사랑 그리고 용서를 바라는 사마리아 여인의 갈망에 직접적으로 호소하셨다.

 

4:3~34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어떻게 접근하셨는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그녀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이런 경험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으며, 예수님은 어떻게 그들의 시야를 넓히셨는가?

[4:3~34]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 수가 마을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자와 만나서 이야기하시는 내용이다. 직접 찾아서 읽어보라.

 

: 우물 가에서 물길러 온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는 요청으로 대화를 시작하셨다. 여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반응했다. 제자들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은근히 놀란 모습일 것 같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우리 각자에게 가르치고자 하셨던 영원한 교훈은 이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진 자들은 모든 사람을 긍휼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볼 것이다”(엘렌 G. 화잇, The Signs of the Times, 1892620).

 

<부가설명> 요한복음의 특징 중에 하나는 3장부터 5장까지는 개인 접촉을 중심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3장은 니고데모, 4장은 사마리아 여인, 5장은 38년된 환자. 이 사건들은 다 개인 접촉의 사건이다.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전도하신 것은 개인전도의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1) 접촉하라(4:1~7). 예수님은 접촉하셨다. 여러 사람과도, 개인과도 만나셨다. 접촉해야 증거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2) 공동 관심사를 조성하라(4:7~8). 예수님은 물길으러 온 여인에게 물을 요구하심으로 공동 관심사를 조성하셨다.

(3) 관심을 고조시켜라(4:9~15). 예수님은 배 속에서 솟는 샘물을 말씀하셔서 그 여인의 관심을 고조(高調)시켰다.

(4) 너무 확대하지 말라(4:13~15). 여인이 선지자와 예배 논쟁으로 이끌어 가려 했으나 예수님은 전할 진리의 핵심에서 멀리 가지 않으셨다.

(5) 정죄하지 말라(4:16~18). 예수님은 여인의 허물을 알았고 그 여인은 정직한 고백을 하지 않았으나 정죄하지 않으셨다. 정죄는 마음을 열지도 얻지도 못한다.

(6) 주된 논점에 적중하라(4:18~24). 예수님은 여인을 메시야를 만날 자리로 계속 이끄셨다. 예수의 주되심을 증거하는(고후 4:5) 논점에서 떠나지 말아야한다.

(7)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시키라(4:25~26). 예수님은 결국 그 여인이 메시야를 만나게 하셨다. 우리도 전도의 결과로 메시야를 만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누구를 만나시든지 그 사람의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보시고 용납과 진실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그들의 갈망을 긍휼의 눈으로 주목하신다.

 

 

7 14() 그대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

 

혹자는 무엇인가 시작할 만한 장소는 현재 그대가 있는 곳이다. 달리 그곳밖에 없잖은가?”라고 말했다. 예수님도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기별은 오해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 네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대를 데려다 놓으신 곳에서 증언하라. 더 나은 기회를 꿈꾸지 말고 그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하라. 그대와 가장 근접해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라!

그대가 세상에서 가장 학벌이 좋고, 말이 유창하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물론 그러한 은사들도 바르게 사용된다면 유용하겠지만,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다른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대가 기꺼이 전도하려 한다면 하나님은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1. 1:40~41, 6:5~11, 12:20~26을 읽어보라. 이 구절들은 안드레의 영적인 시선과 전도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40,41]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6:5~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20~26]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안드레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하는 일을 잘 수행했다.

 

안드레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자신의 가족 안에서 시작했다. 그는 먼저 형제 베드로에게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는 한 소년과 따뜻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예수님께 기적의 재료를 제공했다. 안드레는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알았다. 신학적인 논쟁을 벌이는 대신 그는 그들의 필요를 감지하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안내했다.

효과적인 영혼 구원의 기술이란 곧 긍정적이고 애정어린 관계를 형성하는 기술이다. 그대 주변에 있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들은 그대를 동정심과 애정이 많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가? 그들은 그대에게서 자신들이 갈망하는 평안과 목적을 찾을 수 있는가? 그대의 삶은 복음의 광고판과 같은가? 우리는 예수님을 전함으로써 주를 대신하여 친구를 사귄다. 그러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친구가 되고 우리가 마지막 때를 위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할 때 마침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된다.

 

<부가설명>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다. 이 표현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어서 성도를 만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모습과 생활에서 예수님을 보게 하고 만나게 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이름이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이런가? 이런 사람을 만날 때 만나는 사람이 성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제자들에게 전도하러 가자고 함께 길을 나섰다. 자기가 앞장서고 제자들이 뒤를 따르는데, 그냥 동네를 돌았다 만나는 사람과 인정스럽게 인사만했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동네를 다 돌고 거처로 돌아왔다. 제자들은 너무도 이상해서 물었다. ‘아버지여, 전도하거 나갔는데,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도 전하지 않고 그냥 왔습니다.’ ‘아들들아, 전도하였느니라.’ ‘말을 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전도를 했습니까?’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 곧 전도가 되는 것이니라.’ 프란치스코의 대답은 그들의 모습을 볼 때 예수님을 보게 했따는 뜻이다. 참 의미 있는 일화다. 재림성도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인지 스스로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교훈 : 전도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학문적인 지식이나 유창한 언변보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작된다.

 

 

7 15() 까다로운 사람을 대하는 법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4:19).

 

예수님은 까다로운 사람들을 다루는 데도 능숙하셨다. 그분은 말과 행동으로 용납을 표현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셨고, 질문을 던지시면서 차츰 거룩한 진리를 드러내셨다. 그분은 가장 강퍅한 심령 속에 내재한 갈망까지 인식하셨고 가장 비열한 죄인들 속에 잠재한 가능성까지 바라보셨다. 예수님께는 모든 사람이 복음의 대상이었다. 예수님은 아무리 깊이 타락한 죄인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발견할 수 있다”(시대의 소망, 258)고 믿으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시선과는 다른 렌즈를 통해서 사람들을 바라보셨다. 그분은 각 사람에게서 본래 창조 세계에서 빛났던 영광을 보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사고력을 향상시키셨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삶이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향상되었다.

 

1. 4:18~19, 12:28~34, 23:39~43을 읽어보라. 베드로와 요한, 이름 모를 서기관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하신 예수님의 호소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가? 이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시는 예수님의 방법을 연구해보라. 그대의 눈에 무엇이 두드려져 보이는가?

[4:18~22]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12:28~34]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베드로와 요한 형제들에게는 그들이 직업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셨고, 서기관에게는 그의 지식을, 강도에게는 그의 열망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공동적으로 그들의 친숙한 요구와 관련하여 전도하셨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영적인 가능성을 보셨다. 그분은 가장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잠재적인 백성들을 바라보셨다.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교회 성장의 시각이라고 부른다. 교회 성장의 시각은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들로 바라보는 훈련된 감각이다. 여기에는 교회 성장의 청각도 포함된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무언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그저 공개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 심령의 갈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성령께서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이루시는 사역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하나님이 두 번째로 접촉하셔서 우리의 믿음의 눈을 뜨게 하시고, 매일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나눌 수 있도록 주시는 영적인 기회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그대에게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민감한 심령과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자원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평생 행복한 여정에 오를 것이다. 삶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대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만족감과 기쁨을 느낄 것이다. 영혼을 위해 일하는 자들만이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람을 알 수 있다.

 

<부가설명>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성급하게 그들을 신자가 되게 하려는 대신에 그들의 자리에서 그들을 예수께로 이끌 것을 찾아보자. 우리는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진실하고 예의 바른 언동으로 사귀면 그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전도의 말은 사람이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여 예수께 나오게 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몫까지 하려고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다. 내게 맡기신 것으로 충성하면 나머지는 성령께서 행하실 것이다. 그러나 가능하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말씀으로 이끌 준비는 필요할 것이다. 말하는 이는 우리가 아니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시다(10:20). 상대가 아는 것을 내가 잘 아는 것이라도 상대가 그 말을 하도록 기다리는 것이 좋다. 미술에 대하여 내가 해박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화가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전하면 실례가 된다. 그가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하고 그가 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경청하고 예수님을 표현할 기회가 보이면 지혜롭게 사용하여 예수님을 소개해야 한다. 지혜를 구하자.

 

교훈 : 예수님은 다루기 까다로운 사람 속에서도 내재된 가능성을 보시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7 16() 섭리로 주어진 기회를 감지함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섭리로 주어진 기회들을 활용한 제자들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사도행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안팎에서 직면했던 난관에도 불구하고 초기 교회가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환상적인 일화들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후 2:12~13을 보면,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하나님은 바울이 유럽 대륙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적적으로 기회의 문을 여셨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하나님이 열어주신 문이 내일이면 닫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회를 포착하고 가능성을 내다보고서 그는 즉시 마케도니아를 향해 항해하였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기회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믿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섭리로 제공하신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속에서 내내 일하신다. 각 나라와 지방의 모든 사람과 그들의 마음속에 열린 문이 있다.

 

1. 8:26~38을 읽어보라. 빌립은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거룩한 기회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가

[8:26~38]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 빌립은 즉시 지시대로 움직였고 성령의 인도로 구스 내시에게 복음을 밝히 전하고 침례까지 베풀었다.

 

한 천사가 빛을 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빌립을 인도한 것처럼, 오늘날도 천사들은 성령께서 혀를 성화시키고 마음을 정련하고 고상하게 하도록 허락하는 일꾼들의 발걸음을 인도할 것이다. 빌립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천사 자신이 에디오피아 사람을 위해 일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인간들이 동료 인간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시다”(사도행적, 109).

우리에게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우리도 보이지 않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하늘나라의 진리를 구하는 자들에게 진리를 가지고 갈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셨다. 자기 달란트를 알아서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활용하면 된다. 씨를 심는 달란트, 물을 주는 달란트, 데려오는 달란트, 가르치는 달란트, 등등. 어느 것 하나 활용하지 못할 것은 없다.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가 중요하다. 자기의 지식을 드러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적당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스스로 대답을 찾도록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구스 내시는 이미 성경을 읽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 성경의 뜻을 확실히 풀어 깨닫게 했다. 오늘날 재림성도들은 성경을 읽고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성경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울 수 있다. 그러려면 그들보다 확실한 성경 진리를 알고 풀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를 구할 뿐만 아니라, 열심히 성경을 공부해서 성경을 잘 알고 바르게 설명하는 지혜와 지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도 예수님께 날마다 성경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하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려는 자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시며 기회의 문을 열어주시기 때문에 영적으로 민감한 자들은 하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7 17()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103~111 ‘복음이 사마리아에를 읽어보라.

영원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9:37)을 뿐이다. 따라서 문제는 추수에 있지 않다. 제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기름을 바른 눈으로 풍성한 추수를 내다보셨다. 예수님의 문제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9:38)는 것이다. 해결책은 그대를 추수장으로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어떤가? “하나님, 천국의 확장을 위해 저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제 눈을 여셔서 매일 제 앞에 펼쳐놓으시는 예비된 기회를 보게 해주시옵소서.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 민감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시옵소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소망과 격려의 말을 건네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나눌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대가 이렇게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그대의 삶에서 비상한 일들을 행하실 것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그대가 영혼 구원 활동을 해보았다면 그 일이 언제나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만이 사람을 회심시키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그 과정의 일부를 감당하게 하십니다. 단 한 영혼을 위해 일하더라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위로부터 오는 인내와 사랑이 요구됩니다. 그대가 그리스도를 위한 성공적인 증인이 되기 위하여 자아에 대해 죽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고 말씀 앞에서 겸손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자기를 성령께 맡기는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대가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전에는 무슨 일을 했고, 현재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접촉하고 있는 분들이 대답하도록 하자.

 

다소 사람 사울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정말 예상 밖의 회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로 보건대 우리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빨리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람의 내면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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