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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라

 

912일 안식일

일몰오후 645

 

 연구 범위 : 2:1~10, 요일 4:7~11, 5:1~20, 10:19~22, 2:20, 고전 1:30

 

 기억절 :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이전 과에서 언급했듯이 변화된 삶보다 복음의 능력을 매력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그대의 신학을 가지고 토론할 수 있다. 아니면 교리에 대해 논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또는 그대의 성경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대의 삶에 무슨 일을 행하셨고 그대의 삶에 그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하는 간증에 대해서는 거의 물음표를 달지 않을 것이다.

전도란 예수님에 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옳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은 그르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전도라면 우리는 심각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증언이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그분의 사랑에 매료되며 그분의 진리에 탄복한 심령에서 우러나온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진리로부터 감화를 받은 우리의 삶에 감동을 받을 것이다. 변화된 삶을 바탕으로 제시된 진리는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온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교리의 중심이 되시고 모든 가르침에 그분의 성품이 반영된다면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훨씬 잘 받아들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예수님이 내 삶 속에 이루신 것들을 확신을 가지고 전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예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며 구원의 확신을 마음에 되새긴다.

행하기 :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내게 주신 구원과 나의 삶을 통해 이루신 것들을 증언하고 그 은혜와 복을 나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경험하는 즉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5:13~20 참고)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만나면 가능하다.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는 증언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생명과 구원의 기별이다. 전도자가 실제로 만난 예수님과 그분을 만난 결과이다.

사도 요한의 경우에는 자신의 삶에 일어난 경험과 변화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증언했습니까?(요일 1:1~2 참고)

눈으로 보고 듣고 만졌으며 계속적인 친교로 기쁨이 넘친다고 증거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도할 때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직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결론 : 예수님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하셨습니다. 게다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증언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보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예수님을 주목할 것입니다.

 

 

9 6() 간증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님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셨고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해 오셨는지에 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1. 2:1~10을 읽어보라.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A. 그리스도를 알기 전(2:1~3).

[2:1~3]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허물과 죄로 죽었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세상 풍조를 따라 사는 존재로서 불순종의 자식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B.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2:4~10).

[2:4~1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예수님 안에서 산 자가 되었고 하늘에 있는 자로 여김을 받으며 구원을 받고 선한 일, 곧 생명의 일을 수행하는 존재가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으며 이 세상 풍조를 따르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요컨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우리는 타락한 상태에서 목적 없이 방황하는 인생을 살았다.

행복처럼 보이는 것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에는 이루지 못한 목적과 고뇌가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의 사랑을 경험한 뒤에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분의 풍성한 은혜와 큰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그분은 우리를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2:6~7). 그리스도 안에서 삶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요한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4)고 선언했다.

 

<부가설명> 아담의 씨로 출생한 사람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다. 그것이 바로 육체대로 사는 것이다. 이것을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계시했다. 원문에는 살리셨도다라는 말이 없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라고 되어 있다. ‘살리셨도다라는 말을 첨가한 것은 번역하는 사람이 5절을 인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5절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라는 말씀이다. 3절은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아담 안에서 허물롸 죄로 죽은 자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었고, 그 죽은 상태가 육체가 되었다는 것을 계시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대로 육체로 있는 자들이다. 육체로 있으면서도 도덕적 수양과 종교적 노력으로 도덕적 선과 의를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육체를 영으로 바꾸지 못한다. 육체가 도덕적인 선인과 의인이 되게 하고 그것이 마치 구원받은 영의 사람이 된 것처럼 보여서 자기를 속이고 이웃을 속이면서 성령의 역사로 스스로 노력해서 이런 성화를 이루었다.’라고 선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복음의 실상으로 가는 길을 막고 노력해서 성화 되려고 이를 악물로 애쓰게 하며 고민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성화된 것 같아보여도 육체가 영이 된 것은 아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육신이라는 말은 육체라는 말과 같은 사르크스이다. 속지 말자.

 

교훈 :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간증은 단순히 예수님을 알기 전의 나의 삶과 알고 난 뒤의 변화된 삶으로 구성된다.

 

 

9 7() 개인 간증의 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는 우레의 아들”(3:17)로 알려졌다. 사실 그들에게 이런 별명을 붙이신 분은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를 통과해 지나가실 때에 불 같은 요한의 기질이 드러났다. 그곳에서 밤을 지낼 숙소를 찾으려 했지만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편견과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그들은 가장 허름한 여관에서조차 거부를 당했다.

야고보와 요한의 생각에 떠오르는 문제의 해결책은 이것이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9:54). 예수님은 두 형제를 책망하셨고 그들은 모두 조용히 그 마을을 벗어났다. 예수님은 싸우려고 덤비는 대신 사랑의 방법을 택하셨다.

성급하게 분노하는 요한의 기질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자상함과 부드러운 긍휼의 정신으로 변화되었다. 요한일서를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약 40, 파생된 형태까지 더하면 50번 등장한다.

 

1. 요일 1:1~4, 3:1, 4:7~11, 5:1~5을 읽어보라. 이 말씀들에 따르면 요한은 예수님과 교제하면서 그의 삶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간증하고 있는가?

[요일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일4:7~1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5:1~5]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을 체험하고 사랑의 사람이 되었다. 계명을 잘 준행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았다.

 

우주에는 하나의 영원한 법칙이 있다. 엘렌 G. 화잇은 이 법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는 배치된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을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진다”(시대의 소망, 22).

우리가 그리스도께 충성할 때 그분의 사랑의 빛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비추인다. 이는 우리가 절대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뜻도, 우리가 가끔은 사랑과 은혜의 통로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 흘러넘치고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복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가설명>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말할 때에 반론이 불가하다. 경험 자체를 우습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분명히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반응과 상관없이 확실하다. 비록 그것이 꿈이었어도 확신을 하고 말하지 않는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그 언어와 삶이 전과 확연히 좋게 변한 것을 보이면서 증거한다면 더욱 믿음직하다. 증언과 증거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개역에 증거(證據)를 개정판에는 증언(證言)이라고 번역했다. 증거는 말뿐만 아니라 보이는 실상까지 포함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증언은 말로만 해도 되는 것이다. 전도는 증거여야 한다. 증거하는 사람이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전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이다. 그들은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증인이다. 존재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체가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요한처럼 확실히 만나서 그분과 사귐의 경험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증인이 되어 예수님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도록 기도하고 굴복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여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자.

 

교훈 :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남을 경험한 요한이 우레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가 된 것처럼 내 삶에 일어난 변화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다.

 

 

9 8()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함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5:18~19).

 

예수님이 파송한 첫 번째 선교사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열두 제자도, 그분을 오랫동안 추종한 자들도 아니었다. 그분의 첫 번째 선교사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지방을 공포에 떨게 하고 이웃 주민들의 마음에 불안감을 안겼던 귀신들린 자들이었다. 그 둘 중 하나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을 끊고 괴성을 지르며 날카로운 돌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그의 음성 속에는 영혼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고뇌가 배어 있었다(8:28~29, 5:1~5).

그러나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삶은 변했다. 그들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들을 괴롭게 하는 악귀들을 내쫓으셨다. 그것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자 돼지 떼는 절벽 아래 호수에 빠졌다(8:32~34, 5:13~14).

 

1. 8:28~34을 읽어보라.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러 나온 마을 사람들은 무엇을 발견했는가?

[8:28~34]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 군대 귀신이 들렸던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귀신들린 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경청하고 있는 그들을 보았다. 마태복음은 구원을 받은 자가 두 명이었다고 말하는 반면 마가복음은 그 둘 중에 한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핵심은 예수님이 그의 육체와 정신과 정서와 영적인 건강을 회복시키셨다는 것이다

 

2. 5:18~20을 읽어보라. 새롭게 회심한 그는 분명히 예수님 곁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보내시며 무엇을 하라고 하셨는가?

[5:18~20]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 동네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자신에게 행한 큰 일을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그는 데가볼리로 가서 전파했고 사람들은 놀랍게 여겼다.

 

겨우 잠깐 동안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을 특권을 누렸다. 그들은 예수의 설교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던 제자들처럼 사람들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를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었다”(시대의 소망, 340). 그들의 증언은 갈릴리 호숫가에 위치한 열 개의 도시 데가볼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시켰다. 이것이 곧 개인 간증의 힘이다.

 

<부가설명> 성경에 기록된 대로 어떤 사람도 제압할 수 없었더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이 한꺼번에 쫓겨나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온 사실은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결단코 부인할 수 없었다. 그가 마을에 나타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자체가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정신이 온전하게 된 두 사람은 관심이 없고 물속에 빠져죽은 2천마리 돼지에 관심이 많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고칠 수 있는데, 당시 돼지 2천 마리는 엄청난 재산인데 그것을 물에 다 빠져 죽게하여 그 주인의 재산을 망하게 했으니 예수님이 왜 그렇게 하셔야 했는지 매우 궁금하게 여긴다. 나도 궁금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 실지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믿는다. 그런데 생각해볼 만한 것은 있다. 예수께서 귀신들린 많은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러나 귀신의 실체가 증명된 사건은 없다. 사두개인들은 귀신이나 영이나 천사는 없다고 믿고 가르친다. 그런데 2천마리의 돼지가 귀신이 들어가서 물로 뛰어드는 것은 귀신의 실체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서건이었다. 그래서 귀신이 실지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 귀신은 사람을 해치고 재산을 없애는 악한 존재라는 것도 증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그 주인들도 예수님을 만났고 아마도 4,000명을 먹이실 때 거기 있었을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을 만나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난 사람은 비록 부족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험과 증거를 가지고 데가볼리 지역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9 9() 확신을 가지고 증언함

 

1. 요일 5:11~13, 10:19~22, 고전 15:1~2을 읽어보라. 성경은 영생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확신을 주는가? 그것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구원을 증언하게 하는가?

[요일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고전15: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빈 무덤과 승천하신 사건들은 확신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것을 확신으로 증거할 수 있다.

 

만약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 자신이 구원을 받을 만큼 선한지에 대해 의심하며 끝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소심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래서 오래 전 한 설교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신을 볼 때는 구원의 가망성이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을 볼 때는 멸망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시대를 걸쳐 울려퍼진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45:22).

우리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그분이 거저 주시는 구원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며 죄책감이 가져온 저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경험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8:1)”다고 덧붙인다. 사도 요한도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요일 5:12)다고 확증하였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면 영생이라는 선물은 현재 우리의 것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한번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경험하면 절대 그것을 상실하지 않으리라는 말이 아니다(벧후 2:18~22, 3:6, 3:5).

우리는 언제든지 그분에게서 멀어질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희생의 깊이를 이해한다면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분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날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눌 기회를 찾을 것이다.

 

<부가설명> 자기가 경험한 사건을 스스로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면 무시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생시에 온 몸으로 경험한 사건이면 부인할 수 없다. 요한과 바울은 그들이 온 정신과 몸과 생활로 경험한 사건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들의 삶은 180도로 변화했다. 그것이 일상생활이 되었다. 그것을 글로 전도로 증거하였다. 그들의 증거는 너무 확실하여서 읽는 사람도 신뢰할 수밖에 없도록 확고하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렇게 만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개인적인 체험도 성경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사탄도 사람에게 광명한 천사로 나타나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으로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만나야 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5:12,13).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믿음으로 충성하는 증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구원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생을 선물로 받았다면 확신을 가지고 구원의 은혜를 나눠야 한다.

 

 

9 10() 증언할 가치가 있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물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는 희생이 따른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내려놓으라고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 짊어져야 할 헌신을 이렇게 설명하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십자가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매우 고통스럽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요구에 따라 우리의 삶을 굴복시킬 때, 죄의 옛 사람”(6:6)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 그리고 바로 그때 고통이 따른다. 우리가 끌어안고 있던 욕망과 일생의 습관을 포기할 때마다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보상은 고통보다 훨씬 크다.

생명력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감화를 끼치는 강력한 증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증언은 우리의 희생이 아닌 그분의 희생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최고의 유익이 되는 것은 절대 포기하라고 요구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역사는 그리스도를 위해 큰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이타적이고 희생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획득하거나 하나님 앞에 공로를 세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깨닫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기꺼이 희생의 제단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1. 1:12, 10:10, 14:27과 고전 1:30을 읽어보라. 우리의 증언은 항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기초해야 한다. 이 성경절들을 보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들을 열거해보라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셨고, 생명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하셨고, 영원한 평안을 주셨다. 그분이 우리의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위의 성경절들에 비춰서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관해 생각해보라. 그대는 평생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았거나 매우 극적인 회심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예수님이 그대에게 얼마나 좋으신 분이었는지 그리고 그분이 그대에게 주신 삶의 목적과 평화와 행복에 대해 묵상해보라. 그리고 그대가 시련의 시기를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주께서 힘을 주셨던 때를 생각해보라.

 

<부가설명> 우리는 늘 자기가 존재하고 사유(思惟)하고 활동하는 현재를 중심으로 자기를 의식한다. 자기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근본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의 근본을 직시하기를 바라신다. 자기의 의로운 삶에 관하여 장광설을 늘어놓은 욥에게 나타나셔서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38:2~4)라고 물으셨다. 욥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존재하고 생명을 지속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한다면 도덕적으로도 나쁜 사람이 많이 생기기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 근본을 기억하지 않는다. 생명이 있으니까 그냥 살면서 자기 중심으로 무엇이든지 하려고 한다. 성경은 우리의 근본을 보여준다. 창조주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창조주를 믿고 창조주 안에서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을 진정으로 고백하고 창조주와 구원위 주님께 굴복하고 누리는 풍성한 생명과 평안을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증인으로 생활하자.

 

교훈 :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포기한 것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집중할 때에 그분에 대해 증언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갖게 된다.

 

 

9 11()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 가까이에서 경탄하던 군중은 생명의 능력에 접근해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통당하는 그 여인은 고침을 받으리라고 믿고 손을 내밀어 예수를 만졌을 때 치유의 능력을 체험하였다. 영적 사물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신앙에 관하여 경박하게 말하거나 주린 심령과 산 믿음 없이 기도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리스도를 단순히 세상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믿음은 결코 심령의 치유(治癒)를 가져올 수 없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단순히 진리에 대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유일한 믿음은 곧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것, 곧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 삼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미쁘심을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는 데 있어서 하늘이 선택한 수단이다. 우리는 옛날의 성인들을 통하여 알려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효력이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대한 증언이다. 우리는 자신 속에 있는 하늘의 능력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증인들이다. 각 개인은 모든 다른 개인과는 구별되는 생애를 살며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과는 같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개성으로 특징지워진 찬송을 당신께 상달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가 밑받침이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귀중한 고백은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역사하는 강력한 능력이 된다”(시대의 소망, 34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설득력 있는 증언에는 어떤 요소가 있을까요? 26:1~23에서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했던 증언을 읽어보십시오. 그의 증언에 기초를 이루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메섹에 가다가 만난 예수님과 그분을 증거하는 일로 당하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신앙간증을 하였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는 당신 같은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당신의 경험만 듣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그런 경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방법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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