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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 큰 교사이신 예수님

 

1031일 안식일

일몰오후 535

 

연구 범위 : 1:1~4, 고후 4:1~6, 1:14, 18, 14:1~14, 2:1~11, 고후 5:16~21.

기억절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빌리 그레이엄이 군 장성과 동행하여 야전병원에 있는 장병들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심한 부상 때문에 침대 구멍에 얼굴을 넣고 아래를 바라본 채 엎드려 있는 한 어린 장병이 보였다. 군의관이 그레이엄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다시 걷지 못할 듯합니다.” 그때 그 병사가 장군에게 말했다. “장군님, 저는 장군님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런데 장군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 얼굴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러자 그 장군은 바닥에 누워 야전 침내 아래로 들어가서 그 병사와 대화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병사의 눈에서 장군의 뺨으로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인류도 큰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치유가 필요했다. 인류가 마치 오 하나님,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옵소서!”라고 탄원하는 상황과 같았다. 아버지는 인류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라는 사명을 주시면서 자기 아들을 큰 교사로 보내셨다. 그 이후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고후 4:6) 보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이 바로 하늘 아버지의 성품에 관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그분이 모본으로 보여주신 겸손의 정신을 본받기를 갈망한다.

행하기 : 예수님처럼 일상생활에서 모본과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교사로서 우리에게 가장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1:3~4)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

그대는 예수님의 교육 방식에서 우리가 어떤 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생활로 모본을 보이신 것.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본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2:5)

겸손, 자아를 비우는 것.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전에 성육신만으로도 존경을 받고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신데 그렇게 낮추신 사실로 존경과 경배의 대산이 되신다.

우리가 다음 주에 각자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님을 반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각자 실천한 일들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기록된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이다.

 

결론 : 예수님이 이 땅에서 성취하신 핵심 임무 중 하나는 가르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분은 말뿐 아니라 삶과 인격으로 진리를 가르치셨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를 보여주시고자 애쓰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동행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으로 빛날 것입니다.

 

 

1025() 아버지를 계시하심 1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1:3~4).

 

1. 사도가 히 1:1~4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밝힌 가장 중요한 요점은 무엇인가?

[1:1~4]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 예수님은 창조주시며 만물의 유지자시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형상을 나타내신 하나님이신 것을 밝힌 것이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하나의 중대한 개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이 지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계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단편적인 방식으로 전달됐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최종적이고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가 이르렀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1:3)시다. 우리는 죄 많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까이서 하나님의 영광을 견딜 수 없다. 성육신하신 아들로서 예수님은 그 영광을 반사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 완화된다.

예수님은 또한 본체의 형상”(1:3)이시다. 여기서 사용된 그리스어 카라크테르는 종종 밀랍에 찍힌 도장의 인각 또는 주화에 찍힌 초상화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우리가 아버지를 알고 싶다면 큰 교사께서 그분에 대해 하신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큰 교사를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보이기 때문이다.

 

2. 1:1~4과 고후 4:1~6을 비교해보라. 고후 4:1~6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1:1~4]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고후4:1~6]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비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배운다.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칠 때,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교육 사역을 반영하고자 애썼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고후 4:4)으로서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다주셨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만과 왜곡을 피하는 대신 진리를 단순하게 제시했다(고후 4:2). 창조 때에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을 몰아내고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고후 4:6)에서 하나님에 대한 가장 분명한 지식을 얻는다.

 

<부가설명>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가 누군지 알기 원하신다. 그래서 천연계를 통하여 수시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창조로 그의 보이지 않는 영원한 능력고 신성이 창조하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서 알게 하신다(1:20). 하나님께서는 비와 이슬과 결실하게 하시는 것과 선한 일을 하셔서 음식과 기쁨을 주셔서 사람들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시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거 하셨다(14:16,17).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부분적인 것이다. 구약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한 것도 여러 모양과 여러 부분으로 하나님을 계시한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었을 때 말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확실히 알도록 증거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시다(1:18,14). 이 예수님을 우리는 성경에서 만난다. 예수님을 올바르게 만나려면 환상이나 이적을 기대하지 말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겸손하게 진리를 바르게 알려는 마음으로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정신으로 연구하면 만나게 된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2,13).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고 배워서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고 아버지 하나님도 만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학생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가장 온전한 진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그분의 인격과 삶으로 아버지를 보여주는 교사로 우리에게 오셨다.

 

 

1026() 아버지를 계시하심 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1:9).

 

감동적인 요한복음의 서론부(1:1~18)에서 요한은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해 논한다.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논증은 소심이나 절제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과감하며 그 범위가 우주적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생기기 전,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다. 사실 예수님은 창조의 주체이셨다(1:2~3). 그분은 사람들의 빛”(1:4)이시며 세상에 오신 말씀으로서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셨다(1:9).

 

1. 요한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결과는 무엇인가? 말씀으로서 그분은 어떤 빛을 가져오셨는가? 그분에게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어떤 자격이 있는가?(1:14, 18)

[1:14,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은혜와 진리를 가져다 주셨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나타내셨다.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암흑이 가장 깊었을 때에 나타나셨다. 이제 인류에게는 한 가지 희망밖에 없었다.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시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식을 다시 가지게 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아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릇된 교훈에 빠져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오셨다. , 당신의 율법의 성격을 밝힘과 동시에 당신의 품성을 통해 성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 보이려고 오셨다”(교육, 74~76).

예수님이 지상 생애에서 하신 모든 일의 목적은 단 하나, ‘인류를 향상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었다”(교육, 82).

 

2.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14:9)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진술하셨는가?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14:1~14)

[14:1~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예수께서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말씀과 관련하여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실체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진술을 한 빌립이 책망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14:8). 예수님과 몇 년을 동행했지만 아버지의 성품을 보여주려고 오신 성육신의 근본 취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교사들은 큰 교사의 학생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데에서 위안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빌립의 진술이 기록된 이유는 그를 비난하기 위해서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얼마나 오랫동안 예수님과 동행했던가? 그렇다고 우리가 빌립보다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부가설명>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사물을 이해하려고 한다. 인간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더구나 예수님의 모습이 사람과 똑같으니 그분을 육체대로 알았다(고후5:16).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사상이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교회 일각에서는 예수님을 육체대로 알고 판단한다.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있다. 이유는 우리가 육체에 속하여 신령한 것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안다는 말씀을 유의해야 한다(고전2:13,14).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으나 그분은 이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고 땅에서 나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위에서 나셨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분이다(8:23,24).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모본이 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예수님은 육에 속한 사람들의 모본이 아니다. 육에 속한 사람, 즉 육신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다(8:7). 그들이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영이 되어야 한다(3:5,6, 8:9). 그때 비로소 예수님을 모본하여 따라갈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을 보이기 전에 거듭나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자. 그래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바르게 따르자.

 

교훈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를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과 가까이 동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아버지를 볼 수 있다.

 

 

1027() 큰 교사의 마음을 읽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1. 바울이 빌립보서를 썼을 때에 빌립보 교회에 대한 그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2:1~4, 4:2~3)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한 뜻, 한 마음으로 다투지 말고 겸손하여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보고 같은 멍에를 하고 서로 도우라는 것이다. 화합과 협력이다.

 

2:1~11은 성경에서 가장 심오한 부분 중 하나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선재성, 그분의 신성과 인성, 성육신, 십자가 죽음의 수용 등을 논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갈보리에 이르시기까지 걸었던 길고 험하며 가팔랐던 길을 묘사한다(2:5~8). 또한 그것은 아버지께서 어떻게 우주의 경배를 받으시도록 예수님을 높이시는지도 묘사한다(2:9~11). 다수의 위대한 진리가 이 성경절들 속에 함축되어 있다.

 

2. 바울은 빌 2:5~11을 어떻게 시작하는가?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기린다. 그는 신자들이 그중 어떤 사건을 그들의 삶 속에 반영하기를 기대했을까?(2:6~11)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권고로 시작한다.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예수님의 생애를 반영하기를 기대했다.

 

바울은 논쟁적일지도 모르는 빌립보의 신자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성육신으로부터 교훈을 배웠으면 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 곧 종의 형체”(2:7)를 입고 사람들과 같이 되셔서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복종하셨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사랑의 동기로 서로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우리는 큰 교사이신 예수님께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우리는 그분의 지상 봉사 기간 동안에 전해주신 기별들로부터 배움을 얻는다. 우리는 그분이 행하신 기적들과 그분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부터도 배움을 얻는다. 우리는 하늘의 영광을 구유로 바꾸신 그분의 자발성을 묵상함으로 그분의 위대한 겸손을 우리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의 모본으로 삼기를 열망한다. 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교훈인가!

그러나 세상은 이와 반대로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높이고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라고 끝없이 부추긴다. 하지만 베들레헴의 구유와 큰 교사로부터 우리는 전혀 다른 교훈을 배운다. 즉 하나님이 펼치시는 교육과 구원 사업은 스스로를 높이는 정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람에게 종이 되는 정신에 의해 성취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우리의 지도자는 오직 그리스도뿐이라고 하셨다(23:10). ‘지도자라는 말 카데케테스는 선생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선생으로서 예수는 가장 탁월하게 가르치시기도 했지만 생활과 인격으로 본을 보여 가르치셨다. 그를 본받게 하신 것이다. 가장 확실한 교육은 올바른 본을 보이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바르게 배우는 첫째 교육은 부모아 형과 누나들이 바른 본을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저랗게 해야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보여줘야 경험 교육이 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신앙을 저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가정에서 신자 부모가 바른 신앙생활을 본으로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그대로 생활하셨다. 그분의 인격과 생활 자체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교육차체였다. 따르는 사람들에게 버거운 교육의 모본이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인격을 이루는 것이 그분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한다(고전2:16). 그래서 바울은 감히 자기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했다. 물로 이것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그것을 본받으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아무튼, 바울은 위대했다.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님의 큰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도록 성령께서 주장해주시기를 기도한다.

 

교훈 : 우리가 큰 교사이신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은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신 예수님의 겸손이다.

 

 

1028() 큰 교사와 화목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인간관계는 너무 자주 망가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멀어진다. 한때 가까운 친구였던 사람이 종종 믿지 못할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깨진 관계도 복원될 수 있다. 그런 복원이 이뤄지면 우리는 화목이라는 기적을 경험한다. 인간에게 화목만큼 감미로운 경험은 드물다.

 

1.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큰 교사이신 그분의 역할 속에 화목은 어떻게 자리를 잡고 있는가?(고후 5:16~21)

[고후5:16~21]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으로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도록 주장하셨다. 화목은 예수님 구속사업의 핵심에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복을 받는다고 느낀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는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겠는가? 고후 5:16~21에서 바울은 누가 회복을 주도하는지 밝힌다. 즉 우리와의 깨진 관계를 복원하는 일에 주도권을 쥐고 계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이런 회복의 사역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고후 5:18)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고후 5:19)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화목의 기쁨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크신 교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성육신을 통해서 화목의 사업에 참여하셨다. 그리고 우리도 그 사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자신과 화목시키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고후 5:18)을 맡기셨다.

1:15~20도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설명하는 신약의 위대한 구절들 중 하나이다. 종종 한 편의 찬미가 되기도 하지만 이 구절들의 절반은 창조에 미친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1:15~17), 남은 절반은 구속에 미친 그리스도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1:18~20).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을 통해서 하나님은 만물을 그분과 화목시키신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화목의 사역은 그 규모가 범우주적이어서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1:20)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크신 교사가 이루시는 사역의 우주적인 규모에 부응하지는 못했겠지만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고후 5:18)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바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7:18)라고 기도하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던 것이 바로 화목의 직분이지 않았을까?

 

<부가설명>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겨서 생명의 하나님과 결별하게 되자 그는 사망이 되었다. 사망과 생명은 화목이 될 수 없다. 아담은 죄와 사망이 되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었으니 그들은 죽은 존재가 된 것이다(2:16,17). 그래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나가야 했고 다신 생명으로 얻어서 생명의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게 되려면(12:27) 그들의 죄와 사망이 처리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아담을 대신하여, 나아가서 인류를 대신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죄가 되셨다(고후5:21).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의 자리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24). 예수님은 사망을 처리하시고 3일만에 부활하여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시고(딤후1:10)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게 하셨다(5:24). 이렇게 예수님 안에서 살아나서 산 자가 될 때 산 자의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을 예수 안에서 살게 하셔서 산 자의 하나님과 함께 산 자의 땅에 거하게 하신 것이다(27:13). 이것이 영원한 화목이다. 아멘. 우리는 바울처럼 이 복음을 전파허여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다.

 

교훈 : 세상을 창조할 뿐 아니라 속량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와 자신을 화목하게 하셨으며 우리도 그러한 역할을 예수님께 배우게 하셨다.

 

 

1029() 큰 교사의 첫 번째 학생들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2:15).

 

그들은 작은 마을 밖에서 양떼를 돌보던 평범한 목동들이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그들은 전 세계로 퍼질, 깜짝 놀랄 만한 기이한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의 등장을 목격하게 된다. 천사들의 등장에 고무된 그들은 천사들이 말한 아기를 찾아 나섰다.

 

1. 그대가 목자들 옆에 서서 구유 안을 응시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무엇을 보았겠는가?(2:8~20)

[2:8~20]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 무력한 아기를 보았으나 천사들의 기별을 믿었기에 구주를 만난 것이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우리는 크신 교사의 첫 번째 학생들이었던 요셉과 마리아와 목자들을 동경해야 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초라한 상황은 성육신이라는 기적을 전혀 암시하지 않았지만 이 젖먹이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은 인류와 하나가 되셨다. 그러나 그분의 첫 번째 학생들은 환상과 꿈과 천사들의 도움으로 아이로 등장하는 예수님의 외적인 모습 너머의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다. 목자들은 이 아기의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며 그가 구주이고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했다(2:11, 17 참고).

 

2. 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헤롯의 반응은 어땠는가?(2:1~12)

[2:1~12]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박사들을 먼길을 걸어 아기 예수께 예물을 드리고 경배했고, 헤롯은 아기를 죽이려고 했다.

 

크신 교사께서 아직 첫째 비유를 말씀하거나 첫 기적을 행하시기 이전이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그분은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셨다. 우리가 후에 예수님이 행하실 가르침의 사역에 대하여 온전한 경의를 표하려면 우리도 초기의 학생들 즉 박사들과 함께 크신 교사를 경배해야 한다. 우리에게 감탄할 만한 가르침을 주시는 분은 지혜로운 교육자 그 이상이시다. 그분은 인류와 함께 거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시다. 기독교 교육은 그리스도께 대한 경배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우리도 박사들, 목자들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갓 태어나신 왕 곧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고 신생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라는 부름을 받았다.

 

<부가설명> 마리아 부부와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사실 자체로 엄청난 교육을 경험하였다. 예수께서 아기로 탄생하지 않았으면 천사들이 목자를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고 천사들이 별무리가 되어 박사들에게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기이한 일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교육적 사건이 되었다는 것을 교과 저자는 상기시킨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 수태고지 한 것이나, 요셉에게 현몽한 것이나 목자들에게 베들레헴 구유를 찾게 한 갓이나 별이 동방의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한 것이나 모두가 평범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구주를 맞으라고 보낸 기별이며 복음의 전파였다. 그리스도인 교육은 바로 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 신자들 자신이 성경에서 이 복음의 사건을 체험하고 목자들처럼 박사들처럼 예수님께 경배하는 믿음의 행동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교육의 결과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목자들뿐 아니라 박사들의 동경과 경배의 대상이셨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은 그분에 대한 경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1030()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육>, 73~83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교사를 읽어보라.

모든 교육의 중심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이 계신다. 구주께서는 오늘날의 교육 사업에 대하여 당신이 천 팔백 년 전(엘렌 G. 화잇 당시를 기준으로)에 친히 이룩하신 사업에 대하여 하신 것과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1:17~18).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21:6).

이처럼 크신 교사에게서 하늘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교육을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떠나서 지혜로워지려 하고, 진리를 거절하면서도 진실하려고 하며, 빛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가르침을 구하려 하고,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생존하려 하며, 생수의 근원이신 분을 떠나서 물을 담을 수 없는 깨진 물통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더없이 우매한 짓이다.

보라, 그분은 아직도 우리를 부르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교육, 83).

사랑하는 교사들이여, 그대들의 사업을 위한 최고의 준비 사항으로, 나는 크신 교사 예수님의 말씀과 생활과 방법을 제시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 그대들의 참된 이상이 있다. 거룩하신 교사이신 예수님의 영이 그대들의 마음과 생애를 소유할 때까지 이 이상을 주목하고 마음에 두라. 이것이 학생들을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의 비결이다. 예수님을 반사하라”(교육, 28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크신 교사의 성육신으로부터 배우려는 교사와 학생에게는 어떤 가치와 행위가 중요할까요?

예수님을 찾아뵈려는 정신과 경배하는 마음과 행위가 중요하다. 오늘날 성경에서 이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부모와 교사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야 한다는 높은 표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높은 표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와 성경연구와 말씀 명상으로 성령의 역사를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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