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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과 교육과 구원

 

1121일 안식일

일몰오후 517

 

연구 범위 : 1:26~27, 11:1~9, 딤후 3:14~17, 왕상 4:29~34, 14:17, 고전 2:1~16

기억절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종종, 최소한 일시적으로 어긋난 러브스토리처럼 보인다. 또는 한 아버지와 반항적이었지만 마침내 돌아오는 자녀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주 교과의 목적을 위해 우리는 성경의 또 다른 주제 곧 한 교사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찾으려고 한다. 학생들은 계속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교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하여 교훈을 설명한다. 결국에 일부는 그 교훈을 배운다.

한 가지를 제외하면 성경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여느 인간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과 그 백성의 이야기는 좋은 결말 즉 목표 달성을 보장한다. 백성을 향한 그분의 거룩한 은혜가 그 같은 결실을 담보한다. 이 관계에서 인간의 책임은 자주 오해되었고 심지어 그것을 짐으로 여기는 자들에 의해서 기피되었다. 그러나 사실 성경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이해하라는 일종의 초대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알기 위한 배움은 그분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일차적인 반응이다. 우리는 그 같은 은혜를 획득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대해서 배울 수는 있다. 이런 은혜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찌 기독교 교육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의 교육 사업은 어느 면에서 곧 구속 사업이며, 구원의 과정 속에는 많은 교육이 포함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느끼기 :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깨닫기를 소망한다.

행하기 : 세상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게 하는 사업에 동참한다.

 

성경은 영적인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합니까?(딤후 3:16~17)

그것이 진리를 바르게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한다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의 교육 사업은 곧 구속 사업으로 볼 수 있습니까?(참고 사 11:9, 교육, 30)

교육은 구원에 관한 지식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교육사업은 구원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야 할 지식의 목표는 어디까지입니까?(고전 2:13)

영적인 충만이 이를 때까지이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되는 때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펼치시는 구원 사업과 교육 사업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명상하며 진리를 따라 충성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결론 :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셨던 사역은 곧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 사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경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깊은 것을 이해하기까지 그분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1115()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

 

1. 1:26~27과 창 5:1, 3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원래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그런데 죄를 짓고 나서 인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5:1~3]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아담은 130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구절은 수 세기 동안 성경 해석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초의 인간이 그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데 그 형상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거울을 보면서 자신처럼 보이는 새로운 피조물을 빚으셨다는 뜻인가? 아니면 인간은 다른 생명의 형체들보다 더 하나님과 비슷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것은 영적-지적 유사성 또는 창조주와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호환성을 가리키는가? 학자들이 그 의미에 대해서 성경으로부터 여러 가능한 해석을 도출했지만 성경은 그 표현에 대하여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범죄 이후에 이 형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엘렌 G. 화잇은 교육의 목적이 인간 안에 창조주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교육, 14~16 참고).

그렇다면 교육이 어떻게 그 같은 엄청난 목적을 성취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는 부모가 그 자녀와 맺는 관계처럼 하나님도 그분과 관계를 맺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분은 인간이 자신과 닮은 자녀를 낳는 것처럼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5:1). 그래서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삼고 그분의 자녀로 양육하실 수 있으며, 우리와 소통하고 우리와 변치 않는 관계를 맺으실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은 정신적인 형상에 더 가깝다. 그로 말미암아 두 존재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정신적인 만남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정확히 교육의 현상 곧 먼저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다음은 교사들이 교육의 책임을 이어받을 때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른 생명체들과 구별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때에 그분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이런 교육의 과정을 의도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분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가 그분의 형상(정신)을 반사하기까지 우리로 하여금 그분에게서 배우게 하셨다.

 

<부가설명> 아마도 교과 저자는 범죄한 후에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범죄한 후의 아담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주석가들이 그렇게 주석했고 그런 생각을 잘못된 것이라고 할만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태어나게 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지녔을 것이다. 아담도 죽지 않고 살고 있을 것이며 이 지구는 낙원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학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일까? 라고 많은 생각을 하고 여러 답을 내놓았지만 아직도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교과 저자는 말한다. 이것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상태를 역으로 추리하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상태는 사망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생명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다. 성경은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딤전6:16)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생하는 것이고 그 생명은 하나님의 사고방식으로 생활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열매를 맺힐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에(4:18) 사망이 되었고 세상은 사망의 존재들의 썩어져가는 구습으로 가득하다(4:22). 모두 썩어질 씨로 태어난다(벧전1: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생명의 교육으로 그분을 믿고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도덕성에서만 찾는다면 대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교훈 : 부모가 자기를 닮은 자녀를 낳고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분에 대해 배우면서 그분의 마음을 반사하게 하셨다.

 

 

1116() 교사이신 예수님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11:2).

 

성경은 예수님을 묘사하기 위해 여러 표현을 사용한다.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인자, 구원자, ,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런데 유다와 갈릴리에서 활동하셨던 3년 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그분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교사이셨다. 그들은 그분을 선생또는 랍비라고 불렀다. 두 말은 같은 의미로 곧 교사라는 뜻이다.

즉 교육직과 교육 사업은 예수님이 자신의 공적 사역을 수행하시는 데 특별히 적합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분의 구속 사업은 교육 사업과 흡사했다. 이것은 복음의 선지자도 예언했다.

 

1. 11:1~9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역할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11:1~9]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 여호와를 아늘 지식을 세상에 충만하게 할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이사야 11장은 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메시아 예언 중 하나이다. 1~3절은 교육적인 용어를 동원하여 메시아를 지식과 모략, 지혜와 명철을 가지고 올 자로 묘사한다.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약속으로 끝맺는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9). <교육>에서 교육 사업과 구속 사업은 하나라는 사실에 주목했던 엘렌 G. 화잇은 아마도 이 말씀의 교훈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교육, 30 참고).

3:1~3을 읽어보라.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호칭하며 그분이 행하신 표적 곧 그분의 기적과 삶의 의미를 관통하는 그분의 통찰로 인하여 그분의 가르침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로 인정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호칭이 아니더라도 가르침의 기원은 인정하셨다.

그리고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이는 예수님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분명히 가르치는 일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것으로 예수님에게 있었고, 오늘날 거룩한 권위를 가졌다고 알려진 자들에게 인정되는 사실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근본이 말씀 하나님으로서 여호와이시다. 그분이 여호와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사망이 존재가 된 사람들이 사는 사망의 세상에 오셔서 사람의 사망을 친히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시므로(딤후1:1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하셨다. 그가 죽고 부활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이 지식을 올바르게 알지 못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22). 물론 이 구절은 성전을 헐면 사흘동안 일으키겠다는 말씀에 관한 것이 중심이지만 예수님의 생애 전체에 적용시키지 못할 내용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믿지 못했다. 제자들도 그랬다. 그러나 부활하신 것을 확인한 후에 그분이 진질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확신했다. 이것을 예수님은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10:18)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여호와라는 선언이다. 그분은 자존(自存)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자존자(自存者)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 스스로 버리고 스스로 다신 얻는 생명이다. 그분의 생애 전체는 바로 이 사실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삶이었다. 그분은 지금도 산 자’(1:18)이시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 우리도 그분 안에서 산 자가 된다. 이것이 예수님의 교육이 목적이고 결과이다.

 

교훈 : 예수님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에게 교육 사업은 구속 사업과 같으며 이러한 사명은 교육자들에게 위임되었다.

 

 

1117() 모세와 선지자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1. 딤후 3:14~17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기독교 교육에서 성경이 하는 역할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딤후3:14~17]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성경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준다.

 

성경의 첫째 부분을 가리키는 단어인 토라는 때로 율법으로 번역된다. 왜냐하면 그 안에 많은 율법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라는 사실 가르침’, ‘지침을 의미한다. 이런 이해는 성경의 율법에 대한 다수의 생각과 크게 다르다. 그들은 율법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남아 있기 위해서 따라야 할 규칙이나 규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율법은 하나님이 인류를 처음 창조하셨을 때에 계획하셨던 언약적 관계 속에서 우리가 안전하고 형통하게 살아가는 법을 다루는 교재로 마련되었다.

구약 성경의 다음 두 부분 중 전반기 선지서(역사서)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 교재의 내용을 숙달하여 그것에 따라 어떻게 살았는지 보고하는 책이다. 그리고 후반기 선지서들은 그 교재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을 배워야 했었는지 기록했다. 구약의 남은 부분(시가서라 불림)은 교육의 과정에서 성공적이거나 덜 성공적이었던 교사와 학생들의 예로 가득하다. 교육적인 성공 사례는 에스더, , 다니엘, 욥 등이다. 욥의 친구들은 실패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시편은 찬양집이다. 그러나 그 안에 적어도 세 편의 교육적인 시가 있으니 곧 1편과 37편과 73편이다.

복음서들, 특히 예수님의 비유 속에는 교육적인 목적에 맞는 재료들이 풍부하다. 바울의 서신은 대부분 강력한 복음의 선포로 시작하지만 끝에는 신자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교훈과 교육적인 재료로 마친다. 계시록도 교육적인 자료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교회의 미래는 오직 하나님의 어린 양 곧 큰 교사이신 예수님만이 열 수 있는 에 계시되어 있다(5:1~5).

 

<부가설명>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세 부분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 첫째가 모세 오경이다. 이것을 토라라고 말한다. ‘토라는 일반적으로 율법이라고 이해하지만, 교훈’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실 때에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교육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깨달아서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고 섬기게 하려 하신 것이다. 진리에 관한 교훈 사망이 없는 생명에 관한 교훈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교훈이다. 그것이 선지자와 성문서(聖文書)로 확대되면서 토라의 정신을 여러 측면으로 확대하고 심화하였다. 그리고 구약 전체가 핵심으로 다룬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여호와 하나님을 확실히 보여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실상을 드러내어 누구든지 이 교훈을 따라 예수님을 믿고 충성할 때 이 생명을 얻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것을 확실히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그 생명력이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한다.

 

교훈 : 구약성경뿐 아니라 신약성경도 사람이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적인 자료와 지침과 교훈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예로 가득하다.

 

 

1118() 지혜로운 남녀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왕상 4:29).

 

학교, 연구, 교육이란 말이 오늘날에는 명확하게 이해되지만 성경 속에서는 흔하지 않다. 오히려 지혜또는 지혜로운이 훨씬 흔하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은 지혜로운 남녀들에 대해 언급한다(삼하 14:2, 16:23).

 

1. 왕상 4:29~34을 읽어보라. 이 말씀은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왕상4:29~34]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30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31 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와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32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33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 34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 지혜는 모든 사람이 사모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솔로몬 왕은 동물, 식물에 대해 논하며 잠언을 말했던 매우 지혜로운 인물로 손꼽힌다(왕상 4:29~34). 이는 그가 일종의 교육자였다는 뜻이다. 잠언과 전도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수많은 지혜와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이는 몇 명의 지혜로운 스승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솔로몬의 공적이다(1:1, 25:1, 30:1, 31:1 참고).

성경에 나오는 지혜는 오늘날 우리의 교육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것은 사람이 젊었을 때에 부모와 교사들로부터 배워야 할 어떤 것이다(12:1). 그러나 실제로 사람은 평생 지혜를 축적한다. 또한 지혜에는 일반적으로 실질적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서 여름에 저축하는 개미로부터 배워야 한다(6:6~8).

그러나 지혜에는 실질적인 측면뿐 아니라 이론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되며 어떤 근본적인 원칙을 따른다(1:7).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책임감을 가지고 살게 하며 남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불행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처럼 지혜는 우리가 제기하는 모든 질문에 답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동시에 미지의 것을 살필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이런 바람직한 태도로부터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의 은혜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18:18에 따르면 지혜로운 교사의 역할은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의 역할과 비슷한 것으로 간주된다. 세 직분 모두가 하나님의 기별을 그분의 백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단지 율법의 지침, 교육적인 권면, 하나님께 받은 특별한 기별 등 그 형태가 다를 뿐이다.

 

<부가설명> 지식은 무엇에 관하여 아는 것이다. 지혜는 그 지식을 올바르게 활용하게 하는 능력이다. 지식이 많아도 지혜가 없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지식을 얻어야 하지만, 보다 더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대단히 기뻐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를 올바르게 알고 올바르게 경배하며 올바르게 증거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 가르치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16:13~15). 우리는 성령이 가르쳐주신 대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배운 사람의 삶이다. 성경은 말한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9:24).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이요 지혜요 명철이다. 이것은 성경을 떠나서 배울 수 없다.

 

교훈 :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교육이라고 이해하는 많은 것들을 지혜로 설명한다. 참지혜는 실질적일 뿐 아니라 이론적이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1119() 초기 교회에서 이루어진 교육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성경에서 주목할 만한 교육 원리 중 하나는 큰 교사이신 예수님이 그분의 학생들 곧 제자들을 떠날 준비를 하실 때에 드러난다. 그들은 삼년 반 동안 그분과 함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니는 기간과 비슷하다. 그 기간을 마치면 학생들은 자립할 준비가 되었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현명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성령의 지도하에서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받게 하셨다. 성경은 그 교사 또는 인도자가 위로자 또는 보혜사(그리스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밝힌다. 그분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항구적으로 임하실 것이었다(14:16~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비록 성령이 교육자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분의 사역은 진리의 탐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분히 교육적이다.

 

1. 고전 2:1~16을 읽어보라. 바울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교육적으로 얼마나 중요한가?

[고전2:1~16]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영적으로 분별하는 교육은 성령께서 하신다는 것을 가르쳤다. 성경의 교육의 교사는 성령이시다.

 

바울은 서두에서 고린도교회로 하여금 그가 처음에 그들에게 왔을 때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고전 2:2), 지혜의 말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선포했음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고전 2:6). 이 새 신자들이 성숙해지자 사도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숨겨두셨던 것들과 지혜(고전 2:7),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가르치기 원했다(고전 2:10). 그리고 이 모든 배움은 학습자의 마음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지도하에서 이뤄질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에게 그 배움은 얼마나 심오하고 얼마나 많은 가르침이 공개되겠는가? 고린도전서 2장은 끝에 이사야 말씀을 인용한다.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40:13).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는 아무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는 말로 그러한 인식을 수정한다. 즉 성령으로 충만한 신자는 하나님의 생각뿐 아니라 의의 경로를 깨닫는 데 필수적인 무한한 지식과 명철(고전 2:10~13)에 이를 수 있다.

 

<부가설명> 신령한 지식, 곧 영적 지식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육의 사상이다. 이것은 세상의 지혜가 알 수 없고 가르칠 수도 없다. 성령께서 가르치신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16:13~15). 가르친다는 표현은 없어도 알게 하신다는 표현이 있다. 성령은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는 신령한 교사이시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오직 성령께 배우도록 마음을 열고 굴복해야 한다.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후에 사람을 찾아가지 않았다. 아라비아로 가서 성령께 교육을 받았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1:11,12,16,17). 성경의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광야로 가서 신발 벗고 성령께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보혜사이자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배우고 깨닫게 하신다.

 

 

1120()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대위임령(28:18~20)은 온 세상을 걸쳐 놀라운 신앙 운동을 일으켰다. 소수의 사도들선교사들’(이 두 말은 보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동일한 뜻을 가짐)이 온 세상을 다니며 학생들을 모으고 그들을 제자로 삼으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고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며 예수님이 가르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그것은 마치 각 문화와 언어권에서 온 개심자들이 침례를 받고 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는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항상 배우는 이유는 단지 지적인 호기심이나 지식을 숙달하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이 일상의 모든 면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워야 할 것이 그토록 많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신약의 서신서들은 예수님에 대한 교리적 선포(그리스어로 케리그마)와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다양한 분야의 교훈(그리스어로 디다케)을 모두 포함한다. 우리는 선포의 좋은 예를 고전 2:2에서 볼 수 있다. 반면 고린도전서 4장에서는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중간중간에 교훈이 계속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것이란 무엇일까?

, 휴식, 사회 문제, 이웃 관계, 교회와 예배, 경제, 자선활동, 정부와의 관계, 상담, 가족 관계, 결혼 생활, 자녀 양육, 식생활, 의복, 심지어 노후와 개인의 삶뿐 아니라 이 세상 삶의 끝을 준비하는 일까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모든 것과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이해되지 않는다. 다 배워야 알 수 있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교회의 선교 사명을 위해서 교육 사역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대답할 말이 준비되어 있어야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리 교육은 신앙만큼 중요하다.

 

하늘은 학교이다”(교육, 301)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그곳에서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더 확실히 깨닫는 교육이 계속된다는 뜻이 아닐까요?

 

고전 2:1~16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바울은 그 시대의 통치자들과 지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리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지혜는 어떨까요?

이 시대에도 세상의 지혜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령한 생명의 진리의 지혜만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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