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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과 그리스도인과 일

 

1212일 안식일

일몰오후 514

 

연구 범위 : 3:19, 16:15, 25:10~30:38, 5:22~26, 9:10, 고전 10:31

기억절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노동은 하나님의 착안이다. 죄 이전의 이상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돌보라는 임무를 주셨다(2:15). 창조주를 닮은 그들은 그분처럼 창의적인 노동과 애정어린 봉사에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즉 죄와 죽음과 고통이 없는 타락 이전의 세계에서도 인류는 일을 해야 했다.

타락 이전 시대와 재림 이후 시대의 사이에서 우리는 노동을 하나님의 은총 중 하나로 보도록 권면을 받고 있다. 모든 유대 어린이들은 장사를 배웠다. 장사를 가르치지 않은 부모는 범죄자를 키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여러 해 동안 숙련된 장인으로 정직하게 일하시면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다. 그분은 아마도 나사렛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구나 농기구 등을 만들어 주셨을 것이다(6:3). 이는 앞에 놓인 사역을 위해 그분을 준비시키기 위한 단련의 일환이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했다.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일 년 반 동안 천막제조업자로 일하면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복음을 강론했다(18:1~4, 살후 3:8~12). 이번 주에 우리는 노동이라는 주제와 기독교 교육에서 노동이 하는 역할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우리가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며 그분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무슨 일을 하든지 탁월함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행하기 : 직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선한 감화를 끼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방법을 찾고 실천한다.

 

노동은 저주입니까? 아니면 축복입니까?(3:12~13)

어떤 정신으로 일하느냐에 따라서 저주와 축복이 다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9:10)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25)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성질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일의 탁월성을 원하신다.

신앙과 직업을 분리하는 것이 청지기 정신과 맞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앙과 직업은 다 한 생명력이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업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감화를 끼치려면 날마다 어떻게 영적으로 준비해야 할까요?

우리가 영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살면된다(8:10).

 

결론 : 타락하기 전에도 인류의 조상은 일을 했습니다. 물론 이후에 그것은 고역이 되었지만 청지기 정신과 영성의 기초 위에 수행되는 그리스도인의 일은 성취감과 기쁨을 얻는 방편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분의 일을 진척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직업을 위한 기독교 교육에는 이런 개념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126() 노동의 여러 측면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3:12~13).

 

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러나 단음절의 이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부득이 우리는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고, 납부금을 지불하며, 곤란한 때를 대비해 소정의 금액을 저축하기 위해 일을 한다. 때로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열악한 근무 환경을 견디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일은 사람에게 자존감을 가져다준다. 일반적으로 일은 당신의 직업이 무엇인가?’ 또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가능한 한 유급 또는 자원봉사 또는 시간제라도 계속 일을 하려고 한다. 직장은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일하는 십대에게는 비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1. 3:19을 읽어보라. 이것은 어떤 문맥에서 나온 말씀인가? 이것은 일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아담에게 타락 후의 상태를 말씀하는 문맥에서 나왔고, 일이 수고롭다는 것을 지적한다.

 

타락 이전에도 있었던 노동은 타락 이후에 갑자기 변질되었다. 여기에 우리가 참고해야 할 일의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일은 죽어서야 끝날 매일의 고역에 불과하다. 그들은 아직 건강할 때도 은퇴를 희망하며 자신들이 경시하는 직장에서 일한다. 반면 어떤 이들에게는 일이 삶보다 더 중요하다. 그들에게 일은 생활의 중심이자 그 개인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정체성의 근원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일이 없으면 우울해지고 방향감각을 상실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들은 은퇴 후에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주저앉으면서 때로 조기에 사망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일은 경제적인 필요 그 이상이며, 사람은 피고용인 그 이상이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일생의 직업은 사역의 통로이자 주님과의 관계의 표현이다. 교사의 임무 중 하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의 재능과 하나님이 주신 관심사가 세상의 필요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직업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부가설명> 창조받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더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나 범죄한 후에는 일이 수고가 되었다. 수고라는 말은 잇차본인데 아픔, 고통, 노역(勞役), 수고 등의 뜻이다. 즐거움이 괴로움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영생하는 생명을 잃어버리고 사망의 존재, 즉 육체의 생명만 유지하게 되었을 때 이런 것은 사망의 시종들이다. 환난, 고통, 아픔 등등,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은 다 사망과 함께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사망의 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이것들은 육체뿐인 존재들에게 끊임없는 위협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생하는 하나님의 생명과 즐거움과 행복을 주셨다. 에덴동산은 즐거움의 동산이다. 그때 일하는 것은 즐거움의 샘이 되었다. 그러나 사망이 되자, 모든 것이 괴로움이 되었다. 하루종일 들뜬 즐거움으로 보냈어도 결국에는 파김피가 되어 피로가 가득 찬 몸으로 집에 돌아오고 지친 신체로 잠자리에 들다. 그렇게 자고 아야 피로감이 사라진다. 피로감이 전혀 없는 즐거움이란 사망의 세상에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힘들어도 주님을 위하여 각각 맡은 일을 열심히 부지런히 해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해야 할 것이다. “교사의 임무 중 하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의 재능과 하나님이 주신 관심사가 세상의 필요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직업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라는 말은 속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종류의 직업을 택하지 말하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술장사, 담배 장사, 마약 장사, 등 이런 종류의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 외에도 그 직업이 성경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면 택하지 않도록 교육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교훈 : 누군가에게 노동은 고역이고 피하고 싶은 의무이며 누군가에게는 삶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표현하는 통로이다.

 

 

127() 일과 양육

 

직업 또는 일은 삶의 활동성과 관련이 있다. 가장 지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일정 부분 육체적인 노동을 한다. 그것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라도 말이다.

 

다음의 성경절들은 하나의 상징으로서 손을 이용한 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16:15).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9:10).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21:25).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1:16).

 

: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일할 기능과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으로 하는 일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취감과 기쁨을 얻게 하셨다(10:4, 12:14 참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란 각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느낄 만한 무엇인가를 성취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다. 자기효능감은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를 반복한다고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실행함으로써만 자기효능감은 늘어난다.

손으로 행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이며(90:17 참고) 우리로 하여금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방편이지만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나눌 것이 있게 하려면 손으로 뭔가 유용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원칙대로 살았다.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6:9)라고 했던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부가설명> 몸의 모든 지체는 몸을 위하여 일하지만, 성경에서 손은 일하는 지체를 대표한다. 그래서 손이 깨끗한 자는 마음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표현한다(24:4). 그만큼 손은 일하는 기관의 대명사이다. 실제로 일할 때 손이 지체를 사용할 때 맨 먼저 움직이지 않는가? 그래서 손을 깨끗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 깨끗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사용해야 한다.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겠지만 그것은 대부분 습관적으로 사용해 온 것이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뿐이다. 모든 행동의 배후에는 생각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생각을 깨끗하게 하고 깨끗한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 이렇게 일하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바르게 일하도록 교훈하면서 본을 보이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대하신다. 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하든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일하는 것이 복이다.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딱하고 따분한 생활은 없다. 이왕 일해야 한다면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믿음으로 일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일하자.

 

교훈 : 하나님은 우리가 손으로 행하는 일을 통해서 성취감과 기쁨을 얻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신다.

 

 

128() 일과 탁월성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25:40).

 

1. 25:10~30:38을 훑어보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요구하시면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지시하셨는가?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5:10~30:38] 본문은 각 사람이 읽어보기 바란다.

 

: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맡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기를 기대하신다. 또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완벽하신 존재이심도 암시하신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냥 자신을 위한 장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셨다면 모세는 하나님, 걱정 마십시오! 40년 전 애굽에서 도망쳐 나온 이후로 매일 장막을 치고 있으니까요. 일 분만 기다려보십시오!”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미디안 광야의 반()유목민 사회에서 살았던 남자에게 장막을 치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었다. 그는 눈을 가리고 더 중요한 다른 일을 생각하면서도 손쉽게 그 일을 마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예상하지 못한 매우 구체적인 청사진이 주어졌고 그 안에는 성소 안에 배치할 기구들뿐 아니라 제사장들의 복장에 관한 약 150개의 지시사항이 담긴 세부 목록이 첨부되었다. 이 장막을 짓기 위해서 모세는 일곱 단계의 조립 과정을 따라야 했다(25:23~30).

장막을 건조하는 과정에서(이후에 희생제사 의식을 위한 지시에서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세부 사항에 주목하다 보면 우리는 우월성을 추구하는 정신과 걸작을 만들려는 열망을 볼 수 있다. 재료는 최고 품질로 이루어졌고, 디자인은 흠이 없었으며, 결과는 우수해야 했다. 즉 기별은 분명하다. “하나님께 미흡한 일처리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표준이 높아 보인다고 할지라도 추진력과 함께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자원을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31:1~635:30~36:1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주신다. 그들은 온갖 기술에 필요한 능력과 지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였다. 그리하여 성소와 그 안의 기구들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36:1) 지어져 갔다.

게다가 두 명의 최고 장인들에게는 가르치는 능력이 부여됐다(35:34). 그래서 그들의 지식과 기술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전수되었다. 이 두 인물은 기사 속에서 하나님께 택함을 입은 지도자로서 두드러져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은사를 받고 작업에 합류했다(36:2). 따라서 타락하고 죄 많은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의를 위해 우리의 재능과 기술과 시간과 지식을 선용하여 항상 최선의 상태에서 임무를 완수하기를 기대하신다.

 

<부가설명> 세상에 출생하는 모든 사람은 다 천부적 재능이 있다. 이 재능을 발견하여 다듬는 것은 각 사람의 특권이다. 이 재능이 사람마다 다르다. 물론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 서로 다른 재능을 가졌다.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그 재능을 사용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의 재능을 하나님을 위하여 극대화해주신다. 그 재능으로 복음 사업을 부흥하게 하고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데 헌신하면 하나님은 넘치는 축복으로 일하신다. 이것은 은사라고 한다. 은사를 탁월하게 하신다. 브사렐과 오홀리압이 이런 상태호 성막 제작하는 일을 감당하였고, 그와 함께 한 여러 사람들도 같은 은사로 탁월하고 완벽하게 그 일을 수행한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사업을 할 때 주님의 뜻을 받들어 바르게 일해야 할 것이다. 성소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지시하셨다. 성소는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관한 것을 건물로 구체화하여 시청각교재로 만들어 주신 비유이다(9:9).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설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구주의 하실 일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지시하셨고 성령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정성을 다하여 그 일을 수행하여 탁월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곧 성령님의 지혜로 이룬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일을 성령께서 이루도록 전적으로 맡기는 믿음이 필요하다.

 

교훈 : 타락으로 인해 우리의 능력은 저하되었지만, 맡겨진 일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지혜를 활용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29() 일과 영성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5:25).

 

일과 영성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삶의 여러 국면을 지날 때 입었다 벗었다 할 수 있는 복장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을 포함한 삶의 모든 차원에서 드러내는 새로운 존재를 창조한다.

 

1. 5:22~26을 읽어보라. 바울이 열거하는 은사 중에 그대와 그대의 직업을 설명하는 은사들은 무엇인가?

[5:22~26]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영생의 생명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은사이다. 그 생명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생명이다.

 

신약성경주석사전(The Expository Dictionary of New Testament Words)’영적인사람이란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로 보건대 우리는 삶의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으며 신자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플로리다 병원에 한 환자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침대 곁에서 그를 밤새 간호했다. 간호사들도 병실을 드나들며 환자의 필요를 돌보았다. 그 친구는 대화가 이어지도록 노력하면서 간호사들에게 어디서 교육을 받았는지 물었다. 많은 간호사들이 플로리다병원대학(Florida Hospital College)에서 교육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운영하는 플로리다병원대학이 어떤 곳인지 보기 위해서 그곳을 몇 차례 방문했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서 수련을 받은 간호사들이 다른 곳에서 수련을 받은 간호사들보다 죽어가는 친구들을 훨씬 친절하고 다정하게 돌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즉 죽어가는 친구에 대한 태도에 관한 한 그는 그들과 다른 이들 사이의 큰 차이점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 대학과 그 사명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 뒤에 자신이 본 간호사들 같은 인재 교육에 사용하라며 미화 십만 달러(12천만 원)를 기부하였다. 맞다. 영성은 일종의 삶의 방식이다.

 

<부가설명> 성도는 자기 안에 예수께서 사시는 사람들인다. 그것을 다시 성령께서 그의 삶을 전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성령께서 주장하지 않으면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성령님은 생명의 성령이시다(8:2). 성령께서 생명으로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다. 이 열매는 인간의 노력으로 맺히는 열매가 아니다. 성령께서 맺게 하는 열매이다. 그 열매는 하나뿐이다. 아홉 개가 아니다. 열매는 하나, 맛은 아홉 가지이다. 아홉 가지 중에서 어떤 하나가 나타났다고 그 열매는 맺았어도 다른 열매는 맺지 못했다는 식이로 이해하면 결단코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자기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헬라 원어도 열매가 단수이다. ‘하나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 기록이다. 만일 성령의 열매가 맺었다면 그는 아홉 가지 성질이 생활로 다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성령의 열매라고 하였다. 그것은 또한 빛의 열매이기도 하다(5:9). 빛은 생명이다(1:4). 곧 참된 생명의 열매다. 성령은 생명의 성령이시기 때문에 그 생명이 빛의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께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이라고 하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거듭나서 성령님이 생명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인가? 영성은 성령이 주장하는 생명으로 살 때만 생기는 본성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일과 영성은 뗄 수 없는 것이다.

 

교훈 : 사람의 일과 그의 영성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영성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일을 포함하여 모든 측면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다.

 

 

1210() 일과 청지기 직분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9:10). 지혜자는 이 말씀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청지기 직분과 관련하여 조언하는 데 사용한다.

그리스도인 청지기 직분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많은 사람이 재정상의 책임에 대한 그들의 견해에만 얽매인다. 물론 돈은 청지기 직분에서 분명히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돈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관점이다. 조직 이론상으로 청지기 직분이란 모든 가용 자원을 적절하게 성장시키고 활용할 경영책임을 일컫는다.

교회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자원들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각 사람은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은사가 있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이렇게 은사를 부여받은 신자들을 돈, 시간, 에너지, 재능 등 하나님이 주신 모든 선물에 대하여 그분께 책임을 져야 할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부른다(벧전 2:5).

 

1. 9:10과 고전 10:31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의 기별에 따르면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도록 교육해야 하는가?

[9: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힘을 다하여 일하고,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생활의 여러 측면들을 분리시키려는 경향이다. 직장생활, 가정생활, 신앙생활, 심지어 여가생활도 제각각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 사이의 교류가 없도록 각 영역을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직장 일을 가져와서 가정의 의무에 방해가 되는 것은 좋지 않다. 마찬가지로 여가를 위해 하나님과 보낼 시간을 단축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제한은 삶의 모든 영역에 미쳐야 할 신앙생활의 역할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일은 하나님과의 친교와 협력을 통해 증진된다.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가는 방법 중 하나이다. 신앙생활을 분리시키고 하나님을 하루 또는 한 시간 또는 삶의 한 영역에만 제한시키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그분의 임재를 거부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가 말하는 이런 현상은 신앙과 생명을 분리할 때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분야는 인간 스스로가 결정하고 분야별로 따로 따로 활동하는 것이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신앙은 삶의 분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거듭난 생며이 드러나는 생활현상이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일의 분야를 분별하고 거기 맞게 일을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생명력으로 그런 일을 수행한다. 신앙은 예수님이 신자의 생명이 된 것이다(요일5:11~13). 생명은 생활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생활은 생명이 나타나는 방식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생명, 곧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생명이 신자의 생명이 되었기 때문에(벧전1:3) 예수께서 시신 것처럼 살 수 있게 되고 성령께서 날마나 죄와 사망의 법에서 신자들을 해방하시는 것이다(8:2). 교육은 신자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올바르게 알도록 해야 한다. 신자의 가정과 교회와 교회 학교가 협력해서 이 교육을 성취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종교의 교육이다. 그것이 청지기직무를 올바르게 깨닫게 하는 교육이 아니겠는가! 아멘.

 

교훈 : 청지기 직분이란 신앙생활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분이 주신 것들을 바르게 사용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말한다.

 

 

1211()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창세기 3, 2:18~23, 6:5~8과 함께 <부조와 선지자>, 52~62 ‘유혹과 타락을 읽어보라.

일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그것은 죄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3:17).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저주를 받은 것은 땅이지 일이 아니었다. 엘렌 G. 화잇은 하나님께서 복의 일환으로서 일하라는 명령을 계획하셨다고 진술했다. “이제부터 사람의 운명이 될 수고와 염려의 생애도 사랑으로 지정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죄로 말미암아 필요하게 된 훈련으로써, 식욕과 정욕의 방종을 억제하고 극기의 습관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죄의 영락(零落)과 퇴화(退化)로부터 사람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큰 계획의 일부분이었다”(부조와 선지자, 60). 우리가 단순 노동과 과로를 통해 또는 우리의 생활에서 그것의 역할을 과대평가함으로 일이 저주가 되게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상황이 어떻든지 우리는 일을 올바른 관점에 두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교육은 일의 가치를 알고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어떤 우상도 만들지 않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2:18~24을 읽어보라. 어떻게 솔로몬은 일을 축복이자 저주로 인식할 수 있었을까요? 이 말씀에는 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어떤 내용이 있습니까?

[2:18~24]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일에만 매달리는 삶을 살 때는 저주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은 복이된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우리 가족을 부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일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우리 자녀들에게 전수할 수 있을까요?

성경의 원리에 따라 믿음으로 일할 때 긍정적인 태로를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탁월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일 중독자가 되는 것 사이에는 선을 그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선을 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2:23 참고)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절제함으로 선을 넘지 않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의 성질에는 절제가 있다.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원칙은 매우 상식적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철칙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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