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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출발

(나는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김 명호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교우가 관광비자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기한이 지났으나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머물기로 생각하면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임시로 일을 하면서 주인의 호의를 얻어서 노동허가서를 신청했던 모양입니다. 얼마 후에 노동청에서 어떤 서류가 왔습니다. 영어를 잘 모르는 그는 노동허가서가 온 것이라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나도 같이 기뻐하면 축하를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그 기뻐하는 표정은 간곳이 없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교회에 왔습니다. 이유는 알만하지요? 그 서류가 노동허가서가 아닌 것을 그때야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착각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근심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런 정서가 착각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실소를 자아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런 착각으로 이어진다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출발을 했는지 정직하게 신앙진단을 해 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를 믿는 신앙은 거듭날 때 비로소 진정한 신앙이 되고 신자가 됩니다. 그런데 거듭난 경험도 없이도 교회에 다니고 성경말씀 많이 기억하고 교회 사업에 부지런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두 번 있습니다. 마태복음 5:20에 처음 나타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소유한 자들이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께서 단언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떻습니까? 현재 우리의 의가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잘못된 출발을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를 믿는 신앙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누가복음 18장 11, 12절에는 바리새인의 삶이 어땠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여기 소개된 바리새인만큼 우리 삶이 의롭습니까? 그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잘 드리는 신앙적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모습으로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이 면에서는 바리새인의 의만 못한 것이 확실합니다. 천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정말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또 한번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입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두 말씀을 비교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장성한 우리가 어떻게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을 “돌이켜”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십니다. 돌이키는 것은 회개를 뜻합니다. 회개라고 번역된 원어는 “메타노이아”인데 생각을 바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나님 없이는 순간이라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이 그렇게 바뀌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사람됨도 그렇습니다(잠23:7).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하나님의 뜻대로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판 것은 마귀가 넣어준 생각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동안 마귀는 아주 자주 예수 팔 생각을 우리에게 넣어줍니다. 예수와 상관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에 있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롬8:5,6). 우리는 어떤 일을 생각하고 살아갑니까? 육신적인 일을 생각하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육신에 있는 자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나야 영입니다(요3:6). 우리가 거듭날 때 영으로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거듭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듭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어린아이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바로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도덕적 선행이나 종교적 생활을 하는 형식적이고 노력적인 의가 아니라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위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을 직역하면 위에서부터 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위에서 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을 거듭난다고 하는 것입니다(요1:12,13). 이것은 말씀을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됩니다(요16:13,14, 요6:63). 이것을 종합하여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고 계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으로 하지 않고는 역사하지 않습니다(요16:13). 자기의 어떤 영적 체험이 거듭난 증거가 아닙니다. 철저히 말씀이 그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처럼 기록된 말씀 성경이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사람은 말씀의 원칙이 그의 생명이 되고 그의 인격이 되기 때문에 영으로 사는 영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는 이미 육신에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롬8:9).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19:14)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는 곧 이어서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지 묻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마19:16,17). 그 사람은 행하여야 할 “선한 일”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한 이”에 대하여 대답하십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아무리 선한 일을 하여도 그것이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과 성령 곧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날 때만 선한 이 곧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말인데,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는 뜻입니다(요1:13).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늘이 고향이 됩니다. 고향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늘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하늘을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오직 하늘에서 태어난 거듭난 사람만 하늘 곧 시온의 시민으로 등록됩니다. 그들만이 하늘나라를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거듭나서 하늘나라 어린아이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하늘나라 곧 시온에 등록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이 시온에서 났다고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시온을 유업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3,4). 하나님은 선포하십니다. 이들이 시온에서 났기 때문에 시온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편 87편에 잘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 기지가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시87:1-7).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성경은 본향 찾는 사람이라고 합니다(히11:14). 이들이 찾은 본향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나라 곧 친히 세우신 시온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지 말고 어떤 이가 되어야 합니까 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생각이 바뀌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생활은 올바르게 출발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거듭났습니까? 생각의 경향이 완전히 영적입니까? 그래서 육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자로서 말씀에 의하여 영이라고 인정을 받았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을 각각 다르게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오직 한 생명, 한 사람, 한 인격, 한 생활이 있을 뿐입니다. 더 긴 말씀의 증거가 필요하겠으나 지면관계도 있고 이런 정도의 말씀으로도 넉넉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만 말씀을 주려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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