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과 도덕성

by 김명호 posted Aug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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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선행으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먼저 구원을 받지 않으면 선행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하면, 구원을 받지 않은 상태는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죽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행동 할 수 없다. 그래서 썩고 있는 것이다.(엡4:22)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 예수가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는 사람은 생활할 수 없고 썩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선행을 하겠는가.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으로 사망을 처리하시므로 사망 아래 있는 상태를 속죄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즉 하나님이 사망이 처리된 사람을 소멸하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생명을 드러내셔서 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셔서 빛과 생명이신 하나님과 함께 사귈 수 있게 하셨다. 그래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서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은 상태로 옮긴 것이다. 성경의 기록대로 말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요5:24)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비로소 선행을 할 수 있다.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구원에 대하여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우리는 도덕적 행실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도덕이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오는 것 같다. 선, 의, 덕, 사랑, 겸손,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신실함, 절제, 즐거움, 화평, 구제, 희생, 섬김 등등 이런 말들은 많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도덕적 행실이라고 설명한 곳은 없는 것 같다. 참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도덕적 삶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문화가 그렇게 정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덕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맞은 말이다. 그런데도 성경에 그런 표현이 없는 것은 무슨 암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말들이 생긴 것은 죄와 악 때문이 아닐까? 만일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런 표현들이 있을까? 왜냐하면 모든 도덕적 선뿐인 세상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가 표현하는 도덕적 선들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생태(生態)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은 그런 것들만 나타내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도덕적 선행을 하라고 강권하는 것이기보다는 예수 생명이 정말 우리의 생명이 된다면 그 생명이 나타내는 생태가 바로 도덕적 선들 뿐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요(갈5:22,23) 빛의 열매(엡5:8,9) 곧 예수 생명의 열매이다.(요1:4) 우리는 참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는가?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생명은 제쳐놓고 도덕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도덕 이야기에는 사단의 속임수도 기어들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 부활의 생명, 예수가 바로 나의 생명인 그 생명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 생명이 바로 나의 생명이 될 때 나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고 그 생명이 맺는 열매가 소위 말하는 도덕적 선행들이다. 이런 열매들이 열리지 않으면 아직 이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복음의 오해

 

하나님은

생명을 말씀하시는데

사람은 행위로 듣고 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것

그를 떠나서는 모두 주검이라서

부패 외엔 어떤 행위도 없다.

 

도덕과 율법은 행위를 요구해도

생명 잃은 사람들의 썩는 냄새 파다한데

방부, 방취제 살포하며

아름다운 성품이라고 우기는 폐허

 

주님은

십자가로 죽음을 처리하시고

부활로 생명을 드러내어

이것을 믿는 누구라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선언하신다.

 

도덕도 율법도

생명으로 옮긴 자의 것

오직 산 자에게만 행위가 있다.

 

자비의 천사들이

창조, 재창조의 생명을 다시 전해도

살아 있다는 착각으로

사람들은 아직도

도덕과 율법이라 듣고 있다.

 
   (
김명호 시집 “묵도의 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