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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갓난아이는 죄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갓난아이도 죄인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신 신학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죄를 도덕론으로 말하면 이런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갓난아이는 아직 자의식이 없다. 선악에 대한 개념도 없다. 그보다 그가 태어난 사실도 의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도덕적으로 죄가 없다.

그러나 그 아이는 부모가 돌보지 않는다면 도덕적인 죄가 없어도 죽는다. 왜 죄 없는 갓난아이가 부모가 돌보지 않는 것 때문에 죽어야 하는가? 성경은 죄의 삯이 죽음이라고 하였다.(롬6:23) 그 아이가 죽는다는 사실은 죄의 삯 때문이 아닌가? 죄가 없다면 육신이 죽는 죽음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영원한 죽음이나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이나(히9:27) 다 죄 때문이다. 그래서 갓난아이도 장성한 사람도 다 구주가 필요하다.

만일 갓난아이는 죄가 없다면 갓난아이 때는 구주가 필요 없다가 그가 장성하면서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을 때에 비로소 구주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든지 한 때는 구주가 필요 없는 시기가 있다는 말이 된다. 과연 그런가?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에게 의원이 쓸데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고 하셨다.(눅5:31,32) 예수라는 이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마1:21) 그러므로 죄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구주 예수가 필요 없다. 갓난아이는 아직도 자의식이 없기 때문에 구주의 필요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구주 없이도 영생에 들어가는가? 결코 아니다. 그 아이도 죽는다. 그리고 심판 때에 그에게 합당한 처리를 하실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이 처리한다고 한다. 그것은 역시 죽는 다는 말이고 존재를 영원히 상실한다는 말이다. 죄가 없다면 그는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왜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이 처리한다는 말인가.

갓난아이가 죄가 없다면 그는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한다. 사망은 어떤 것이든지 죄의 삯이기 때문이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1-5)

이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다. 빌라도가 그 피를 제물에 섞기 위하여 갈릴리 사람을 죽인 일이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사람이 죽은 것이나 다 죄가 가져다준 결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한 번 죽는 것도 죄가 가져다 준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다 죽는다. 그리스도인도 다 죽는다.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벧전4:6) 그리스도인도 육체는 죽는다. 그것은 죄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생명 부활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영광의 부활의 날에 하나님처럼 사는 자리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갓난아이가 죽는 것은 그가 여전히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난 사람은 다 죄인이다.

죄를 도덕론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 말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기필코 갓난아이는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죄는 선택과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갓난아이는 죄가 없고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고 주장한다.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이 침례요한은 죄가 없다고 나에게 말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죄가 있겠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침례요한은 구주가 필요 없는 사람이다. 과연 그럴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 침례요한도 아담의 씨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도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다. 그래서 그도 죄인이다. 침례요한도 구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그도 그 자체로는 사망이라는 말이다.

아담의 씨로 태어나지 않은 분만 유일하게 죄인이 아니다. 죄가 없다. 물론 그가 죄를 지으면 죄인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닌 그 자신의 생명으로 성령의 역사로 탄생하셨고, 그 생명으로 생활하시면서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탄생하신 분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라고 친히 하신 말씀대로 그분은 영이시다. 그가 육신이 되셨으나 그는 성령으로 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영이다. 바울은 사람이 성령으로 나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말하였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다. 이 말은 육신의 몸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죄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

아담 안에서 아담의 씨로 태어난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죄이다. 죄의 존재이다. 갓난아기도 죄의 존재이다. 에녹이나 엘리야나 육신의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사람들이 자기가 행한 도덕적 선행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 장차 오실 구주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에녹이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고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것이다. 이 사실을 성경은 밝히 기록하였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5,6) 그런데 마치 에녹이 행한 선행,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도덕적으로 죄를 짓지 않은 그 공로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성경의 복음을 엄청나게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도덕적 선행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담의 씨로 태어난 사람은 그 자체가 사망이다. 사망이 죄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다루는 근본적인 죄는 생명과 존재 문제이다. 즉 아담 안에서 함께 잃어버린 생명과 존재 그것이 죄이다. 그런데 사단은 사람들에게 죄를 도덕적 행위 문제라고 집요하게 주장한다. 사람들을 그렇게 오해하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요한 서신들은 계속 예수가 생명이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자는 이 생명문제보다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그렇게 하다 보니 당연히 도덕론적 삶에 초점이 옮겨가게 해놓았다. 성경에 도덕이라는 말이 한 번도 없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 아닌가. 도덕성이라는 말도 없다. 이런 것들은 다 예수님 생명의 열매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씨와 열매에 대하여 말씀한다. 예수 생명이 심겨진 사람은 그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은 바로 영원한 생명의 씨인 것이다. “땅에 묻힌 씨앗은 열매를 가져오고 그리고 또다시 그 열매는 씨앗으로 뿌려진다. 이렇게 하여 수확은 증대된다. 그와 같이 갈바리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맺힐 것이다. 이 희생을 숙고하는 것이 그 희생의 열매로써 영생할 자들의 영광이 될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그대로 보존하는 밀알은 열매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것은 홀로 살 뿐이다. 만일 원하기만 하셨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죽지 않으실 수 있었다. 만일 그분께서 이렇게 하셨더면 분명히 그분은 홀로 사셨을 것이다. 그분은 인간 자녀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의 생명을 드림으로써 그분은 인류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실 수 있었다. 오직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써 그분은 거대한 수확, 즉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방언과 백성 중에서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은 큰 무리의 씨앗이 되실 수 있었다.”(소망623) 이 씨에서 난 생명이 맺는 열매 그것이 도덕성이요 도덕적 선들이다. 그래서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 열매로 그를 안다는 말씀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명을 말하지 않고 열매를 열거하면서 그것을 행위로 인한 도덕성이라고 주장한다. 사단이 바로 그렇게 하도록 온 인류를 이끌었다. 그래서 생명은 보지 않고 도덕성을 보게 하였고, 세상에 큰 종교들이 다 이 도덕성을 강조하며 그렇게 살면 다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독교도 이 일에 동의하고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존재가 사망인 사람이 스스로 행하는 도덕적 선행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였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분명히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은혜대로 했다고 계시한다. 이것은 영원한 때 전부터 있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에녹도 바로 이 은혜로 구원받고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는 영광까지 입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부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도 예수 안에 있으면 그날에 그처럼 예수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으로 승천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시간으로 앞서고 뒤선 것뿐이다.

아담의 후손 존재 자체가 죄라는 것은 성경이 증거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셨다. “ 죄를 짊어지신 그분은 거룩한 공의의 진노를 견디시고 그대를 위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다.”(소망 755)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도덕적 죄들을 대신 짊어지신 것만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 자체가 되신 것이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죄가 되셨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그가 대신하여 죽어 주어야 하는 사람이 그 존재 자체가 죄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죄가 아니라면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의 존재 자체가 죄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죄는 사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으신 것이다. 사망, 진짜 사망이 되신 것이다. 둘째 사망을 당하신 것이다. 이제 사망은 영원히 처리 되었다. 아무도 아담 안에서 죽은 그 죽음 때문에 죽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게 되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드러내셨다.(딤후1:10)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이 믿는 사람들의 생명이 되신다.(요일5:11-13) 이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 안에서 의가 된다. 그분을 믿지 않고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있을 때에는 그 존재 자체가 죄였지만 예수께서 죄 자체가 되셔서 우리를 대신하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다.(고후5:21)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결코 한 번도 구주가 필요 없는 시기가 없다. 갓난아이도 구주가 필요하다. 구주가 필요하다는 말은 죄인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경의 복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벨을 위시하여 아니, 아담을 위시하여 그 후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히브리 11장은 이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에녹도 물론 그렇다.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바르게 깨닫도록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엡1: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나기 전에는 비록 갓난아이라도 아담 안에서 죽은 자 곧 사망이다. 그래서 죽는다. 그것이 그가 죄의 인격자라는 증거이다.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구주가 없이는 사망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신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다.(요15:5,6) 사망인데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생명이 되기 전에는 결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전부이며 인류의 전부인 것이다. 영원히 그렇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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