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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7 13:01

불평, 불만,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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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과 불만과 비난을 하지 않는 교회생활에 대하여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글세 내가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설령 그럴 능력이 있어 글을 쓴다 해도 불평, 불만 비난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글의 효용성에 대하여서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글을 씀으로 나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초하고 있다.

불평과 불만과 비난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대상에 대하여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다.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관계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자기 정서에 맞지 않거나, 자기 사상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즉 불평, 불만, 비난의 중심에는 상대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있다.

이렇게 불평, 불만, 비난함으로 어떤 면으로든지 자기에게 이로운 영향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가 조금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은 계속되고 도가 강해진다. 대체적으로 불평, 불만, 비난이 일어나는 것과 진행되는 길이 이렇다고 생각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방도가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그런 것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세상도 불만족의 죄의 세상이며 사람도 아담의 씨로 태어나서 아담 안에서 죽어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존재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전혀 없을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된 진정한 중생의 경험 안에 있는 사람도 때때로 사도 바울을 괴롭힌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이(롬7:23) 오관의 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어떤 실마리들 때문에 소위 거룩한 불평과 불만과 비난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런 상태를 좋은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으로부터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공자께서는 그 지위에 있지 않거든 그 직책을 논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떤 경제학자가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일일이 비판하고 비난하였다. 그렇게 경제정책을 펴면 경제가 제대로 운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경제학적 이론으로 아주 그럴듯하게 비판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였고,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는데 손을 들어주었다.

어떤 기자가 그 경제학자를 찾아갔다.

“박사님,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하여 일일이 비판과 비난의 화살을 쏘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소.”

“만일 박사님이 대통령이 되시면 지금 비판하시면서 제시하시는 그런 경제정책을 펼 것입니까?”

“그거야 알 수 없지요.”

“아니, 알 수 없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박사님이 제시하시는 경제정책이 최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알 수 없다는 말씀은 아주 이외군요.”

“허허, 기자 양반, 잘 생각해보시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그때는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고 대통령이 아니겠소. 그러면 대통령의 입장에서 경제정책을 펴게 될 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경제학자인 지금 주장이 그때 그대로 될 것이라고 내가 어떻게 말하겠소.”

그렇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직책을 논하지 말라는 뜻을 이해하는데 좋은 이야기가 아닌가.

한 번은 어떤 집사님이 나에게 요청하였다.

“목사님, 아무개 그 사람 목사님이 좀 교육시키셔야 하겠는데요. 어떻게 그런 사람을 그냥 두십니까? 목사님이 아니면 누가 그에게 충고하고 교육할 수 있겠어요?”

이런 주문은 참 어려운 것이다. 일종의 불평이요 불만이며 비난이다. 그가 보기에 도대체 못마땅한 것이다.

“집사님, 집사님이 교우들을 대하시는 것과 목사가 교우들을 대하는 것이 꼭 같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내게 찾아와서 집사님에 대하여, 집사님이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한다면 내가 집사님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가 원하는 대로, 지금 집사님이 그에게 하라고 말하는 대로 목사가 집사님을 대하면 어떻겠습니까?”

“.......”

“목사가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것과 평신도들이 피차 대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집사님이 저에게 아주 귀한 교우인 것처럼, 그 사람도 저에게는 똑 같이 귀한 교우입니다. 제가 집사님을 대한 것과 똑 같은 마음과 자세로 그 교우도 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점이 목회자가 교인들을 대하는 것과 교인들 서로가 서로 대하는 것에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까?”

“목사님,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말씀 들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직책을 논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은 참 좋은 말이다.

성경은 이렇게 권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3-11)

우리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권고를 따른다면 불평하거나 비난할 일이 자기 자신에게 있고 남에게 있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 모든 비난과 불만과 불평은 따지고 보면 사소한 것들이다. 어떤 사람이 쓴 책 제목이 기억난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참 맞는 말이다. 우리가 불평하고 비난하고 다투는 것들은 사소한 것들이다. 생명과 존재에 관계된 것이 아니다. 협력하며 도우며 함께 가면 어느 면으로든지 성취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못 참아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자기감정에 맞지 않아서 불평하고 비난하고 불만을 토한다. 우리가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실마리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보자. 그래서 불평, 불만, 비난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도우고 격려하고 함께 생각하는 것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바울은 마가에 대하여 대단한 불만을 가졌다. 그러나 바나바는 마가를 품었다. 그래서 마가는 성경에 기록된 마가가 된 것이다. 바나바까지 바울과 같은 생각으로 마가가 전도 여행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을 탓했다면 지금 성경에 기록된 마가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나바가 마가를 용납하고 그를 잘 거두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바울도 마가가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말하였다.(딤후4:11)

불만이나 불평이나 비난을 한 박자만 참으면 그 너머에 있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인데,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바나바의 관용을 포기한다. 먼저 섬기려는 마음으로, 대접을 하려는 사상으로, 교우들 피차가 먼저 섬기면 불평, 불만, 비난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는 권고를 전심으로 따르면 우리 입술에서 불평 대신 격려가, 불만 대신 감사가, 비난 대신 칭찬이 나오지 않을까.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이 나온다. 자기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불만이 나온다. 자기가 옳다고 하는 대로 가지 않으면 비난이 나온다.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의 신발을 신어보며 그의 처지에 들어가 보는 마음으로 서로 대하면 불평불만 비난은 사라지지 않을까. 불평불만 비난은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는 도구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이다. 불평불만 비난에 사로잡히면 교회를 세우는 자가 아니라 허는 자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가 연결하여 하나님의 교회성전이 되는 것을 기억하고 그런 정신에서 해방되는 기쁨과 참된 쉼을 누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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