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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이 말씀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인간적 사고방식, 그것도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자주 측량하려고 하고 측량하고 있다. 그런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창조에 대한 논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현세의 사람들의 이성과 지식으로 진화론이 입맛에 더 맞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것이 입맛에 맞는 사람들의 이성과 지식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창조주 하나님과 비교해서 인간의 생각은 땅의 생각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늘같이 높은 하나님의 생각과 그 행사를 땅의 생각과 사상으로 전단(專斷)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론은 자명하다. 하나님의 행사와 전혀 상관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도달한 결론이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 이상을 또 모른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29:29)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타내 주시지 않은 오묘한 일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나타내 주신 것들만 우리가 궁구할 대상이다. 천연계에 대한 것도 그렇다.

과학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는 천연계의 여러 현상을 관찰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미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그 있는 것의 상태를 관찰하고 연구하여 공통점을 찾아 법칙이라고 말하고 생태라고 말하고 성질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응용하며 이미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발명하고 만든다. 그러면서 그것을 스스로 창작이라고 한다. 물론 창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창작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있는 것들의 상태는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것이다. 이미 있는 그것들의 그 상태를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실험실에서 이미 있는 그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살피고 변형하고 여러 가지 형태와 환경을 만들어서- 그것도 이미 천연계에 있는 것 중에 어떤 것을 모방하여- 실험하여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적응하는 지를 살핀다. 그렇게 하여 나타난 공통점을 찾아서 실험한 대상에 대한 어떤 한정된 정의를 내린다. 그러면서 그것도 선배들이 연구한 것들을 많이 참고하여 각주나 미주를 많이 달아놓는다. 그래야 학계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 이미 “있는 것”이 어떤 상태로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이 저주받은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7,18)

저주를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 상태에서 변질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뱀에 대하여서도 저주를 받아 배로 기어 다닌다(창3:14)고 하였다. 이 말은 뱀이 원래 배로 기어 다니게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엘렌 화잇의 표현대로는 뱀이 날개가 있어 날아다녔다고 하였다. 한문(漢文) 뱀 치(豸)자에도 깃우(羽) 자가 들어있다. 날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옛 중국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뱀에 대하여 알았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뱀이 변질된 것이다. 그처럼 땅이 변질되었다.

사람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녕 존재를 잃어버리는 사망이 집행되었으면 굳이 땅이 저주받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아니면 아주 지구 자체가 그 존재를 상실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범죄한 사람을 일정 기간 호흡을 유지하며 그 선고된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지낼 수 있도록 하셨다. 이것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9:27)라고 하셨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땅에서 생존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은 이 글의 본의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알기를 원하는 분들은 필자의 다른 책들을 살펴보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도 변질 되지 않았는가. 변질의 중심은 사람이다. 그래서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다”고 하셨다. 땅을 변질되게 한 장본인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변질된 상태로 땅에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데, 변질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지 않고 원래 창조된 그 상태대로 이 땅이 유지되면 변질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셔야 죽을 때까지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고, 그래야 구주가 와서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구원의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을 변질시키시고 변질된 생물들이 허락된 기간 동안 살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변질시켜서라도 사람을 일정기간 생존하게 하시며 자녀를 생산하게 하는 것은 창조주의 창조에 대한 애착과 피조물에 대한 엄청난 사랑이다.

이런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 사람이 범죄하자마자 범죄함으로 생명이 사망으로 변질된 사람이 살기에 합당하도록 생활환경을 변질시키신 것이다. “지으셨나니”라고 번역된 말은 “파알”인데 “행했다”는 뜻이다. 즉 온갖 것을 쓰임에 적당하도록 행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이 범죄하였을 때 그들에게 적당하도록 이 지구의 천연계와 환경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상태를 그대로 두지 않고 변질되도록 하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신약성경은 썩어짐의 종노릇 한다고 해석하였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21) 변질된 상태는 바로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상태이다. 이 지구상에 있는 것들 중에 썩어짐의 종노릇하지 않는 것이 과연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바위와 쇠와 물과 흙도 썩는다. 공기까지 썩는다. 오염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그래서 지구상의 피조물들과 지구와 특별히 관계가 있는 피조물들이 다 함께 고통 한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변질된 상태로 인한 고통이지만, 변질이 되지 않았다면 존속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화론에서 적자생존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있지 않는가. 그 환경에 적당해야 생존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생존하기에 적당한 환경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인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범죄하자 그들이 살아갈 지구 환경을 변질시킨 것이다. 변질된 지구에 변질되지 않을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에덴동산을 지구에서 옮겨간 것이다. 에덴동산을 둘 장소에 두셨다. 그것은 아마 하늘 어디일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에덴동산의 생명나무가 하나님의 낙원으로 간 것이 확실하다. 여기 생명나무라는 말 앞에 정관사가 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 있던 그 생명나무인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땅위에 있는 것들은 다 변질된 상태에 적응하도록 된 변질된 것들뿐인 것이다.

이 말이 중요한 것은 오늘날 천연계의 법칙은 창조 당시의 법칙 그대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변질된 법칙이다. 오늘날 자연과학이 연구하는 천연계의 현상은 변질된 현상이다. 변질된 현상을 연구하여 발견하는 것들은 변질된 상태의 모습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연구하는 과학적 대상은 다 변질된 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 변질된 것을 연구하여 변질되기 전의 상태를 올바르게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자연과학이 발견한 법칙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행하신 이적이다.(롬1:19,20) 이적을 과학으로 설명하고 과학적 법칙에 맞추려는 것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여자를 창조하신 당일에 결혼시키셨다. 그것은 결혼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늘날 과학으로 말하면 아담이 결혼하기 위하여서는 성장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 사람을 바로 장성한 상태로 창조한 것이다. 이 지구와 천연계의 모든 피조물도 같은 이치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이 지구도 성숙한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것을 과학자들이 지층이다, 탄소14 반감기다, 이런 방법으로 조사하여 수십억 년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일에 결혼한 아담을 적어도 수십 년은 자랐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있는가. 게다가 또 지구의 모든 것이 변질된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원래 그랬다고 가정하고 연구하고 주장한다. 지금 사는 사람들은 지구의 처음 상태를 모른다. 어떻게 알겠는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 추측이고 추리한 것들이다. 화석이나 유물들이 그것의 원래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몇 조각들을 가지고 추측하고 추리하는 것이 아닌가. 또 그것들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을 바탕으로 연구하며, 변질된 법칙으로 연구하여 변질되기 전에도 그랬다고 단정한다. 옳은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물의 존재나 지구의 연대나 별들에 대하여 발표하는 과학자들의 글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이 창조주의 창조한 그 상태를 바르게 알아낸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자기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부모에게나, 자기보다 먼저 있어서 자기의 존재하게 된 것을 아는 사람에게 들어야 비로소 안다. 그것을 들을 때에 믿으면 자기가 그렇게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믿지 않으면 자기가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추측하고 추리하여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한 어린이가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는 자기 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자기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고아원에 자기보다 먼저 온 아이들이나 고아원 직원들이 하는 말에 의하여 자기의 정체를 가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아이가 제법 나이가 들어서 글을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게 되었을 때 원장이 어떤 책을 가져다 줬다. 육아일기라고 인쇄된 표지였다. 그 고아가 그것을 읽어보니 자기 부모가 자기를 낳을 때부터 성장하는 과정을 아주 알뜰하게 기록하였다. 거기에는 갓난아기 때의 사진도 있고, 자라는 과정에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때 비로소 그 아이는 자기의 성도 확인하였고, 부모님의 이름과 모습도 알게 되었다. 부모님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장은 설명했다. 그가 고아원에 오게 된 것은 부모가 교통사고로 한께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아이는 겨우 걸음마를 할 정도였었다.

그 육아일기는 그 아이에게 계시의 기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것을 믿지 않으면 그 아이는 자기의 정체에 대하여,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육아일기는 부모라야 기록할 수 있다. 만일 부모가 아니라도 적어도 그 아이를 기르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라야 기록할 수 있다.

이 지구의 육아일기는 성경이다. 우리는 이 지구의 어린이들이다. 고아들이다. 사단으로 인하여 고아가된 사람들이 아닌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주셨다. 육아일기로 주셨다. 성경을 믿지 않으면 그는 영원한 고아이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감사한다.(신32:6) 그분이 성경을 주셨음을 감사한다. 그리고 성경의 기록을 전폭적으로 믿게 해 주셔서 감사한다. 성경에 기록된 지구 창조와 그것이 어떻게 변질하게 되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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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2010.06.12 17:59
     참 좋으신 목사님, 모든 피조물들을 변질시켜서라도 반성하며 살 수 있는 유예기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걸 깨닫게 해 주신 목사님은 더욱 그러하구요.
    아울러 변질된 피조물들의 모습도 이렇게 황홀한데 옮겨놓으신 최초의 에덴은 어떠할지......눈물나도록 감사하는 하루를 보낼겁니다.
     목사님, 항상 건강하셔서 말씀의 정수박을 들어부어 주소서. 아둔한 저희들에게 말입니다.
    P.S.  올 봄, 우리학교 뒤뜰에 앙증맞게 핀 봄맞이꽃을 보며 느낀 글 보내 드립니다. 혹 한국에 계실 때 보신적이 있으신지.... 
            변질된 피조물이라도 들여다 보면 행복 만땅입니다. ㅋㅋㅋ
            우리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늘 꽃처럼 살라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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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lavier 2011.10.08 09:03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 하신 데는 그런 성경적 이해가 있어야 했군요.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축복하신 땅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좀 더 힘들겠군요.

    그렇게 저주 받은 체로 스스로 살아가라 하셨다면, 그런 저주 받은 땅에 살도록 허락도 안하셨겠지요.

    그런이유로 저주 받은 땅에서 스스로 뭔가를 해내려는 생각의 결말이 좋지안은 것이겠군요.

    축복받은 땅이 무엇인지, 본적도 없고 경험도 없어서, 축복받은 땅과 저주 받은 땅을 비교도 할수 없는

    불쌍한 우리의 존재를 측은히 여기지 안으실까요.

    축복 받은 땅이 아무리 좋은들 머리속의 상상일 뿐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 판단할 수도 없는, 단 한번의 저주받은 땅에 태어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힘든 이세상의 삶에 하나님이 다 해주시고 우리는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 하고 말씀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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