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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주위의 여자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 십자가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사복음서에 다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사람들의 이름을 쓰지 않았고, 마태와 마가는 세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였으며 요한은 네 사람의 신분을 밝혀 놓았다.

마태복음;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마가복음;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위의 대조에서 살로메가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모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다. 그러므로 작은 야고보에게는 요세, 또는 요셉이라는 형제가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19:25)고 기록하였다.

이상 복음서들을 대조하여보면 작은 야고보와 요세가 글로바의 아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또 작은 야고보를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글로바의 다른 이름이 알패오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의 이모가 된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는 인간관계로는 예수님과 이종(姨從)간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자들의 이름은 기록된 것이 없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요한이 거기 있었던 것은 확실하고, 그 외에는 다 예수를 핍박한 사람들과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주동자들이 웅성거린 것을 보게 된다.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례할 때 나타난 것은 기록되었다.

여자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빠지지 않고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이다.

아무튼 예수를 핍박한 사람들은 내어놓고,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생각해봐도 남자들은 요한 외에는 없는 것 같고, 예수께서 그렇게 사랑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준 나사로도 없다. 그래도 이해가 되는 것은 당국자들이 나사로도 죽이려했기 때문에(요12:10) 위험을 느끼고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니의 일의 도움의 손길도 주지 않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던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와 나사로가 죽었을 때 나흘이나 늦게 나타난 예수님을 찾아서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며 마지막 부활의 날에 오라비가 살아날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던 부지런한 마르다도 거기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도 나사로 때문에 위험을 느꼈을까? 두 사람이 다 나타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을까?

상식적으로는 참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나는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마르다와 마리아 중에 적어도 한 사람은 거기 꼭 나타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그처럼 열렬히 따르고 사랑했던 여자, 나드 향유를 붓던 마리아를 생각해본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이 여자에 대하여 마태와 마가는 그냥 “한 여자”라고 하였다. 요한만 그가 바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는 것을 밝혔다. 요한은 이 사실을 두 번이나 언급하였다. 첫 번째 언급이 요한복음 11장 1,2절이다.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다음이 바로 12:1~3이다. 향유를 붓던 그 자리에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다 있었다.

누가는 예수께 기름 붓는 장면을 고난의 유월절 주간 사건 중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자들이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복음서 전체를 살피면 같은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고 느껴진다. 마태, 마가, 요한의 기록에서 그 잔치에 시몬이 있었는데,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 자리에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이 시몬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 밝혀져 있다.

마태, 마가복음에는 여자가 기름 붓는 사실과 제자들의 반응과 예수님의 대답이 기록되었고 누가복음에는 죄 많은 여자라는 설명이 있다. 마태, 마가에는 문둥이 시몬이라고 주인을 소개하였고, 누가는 한 바리새인이라고 하였는데, 예수께서 비유를 베푸시면 그의 이름을 부를 때 시몬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가 시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시몬이 향유를 붓는 여자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누가는 기록하였다. 그래서 그 여자가 죄인이라고 알게 되었다. 요한은 향유 부은 여자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놓았다. 요한은 그 잔치하는 곳이 시몬의 집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오래전에 시몬도 죽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그 이름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이 사건이 별개의 것이라면 누가복음의 죄 많은 여자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아닐 것이다. 만일 같은 사건이라면 이 여자는 분명히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이다.

같은 사건인지, 별개의 사건인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모른다. 같은 사건이라고 해도 성경의 기록들을 살펴서 추리하는 것이며, 별개의 사건이라고 해도 추측하는 것은 동일하다. 한 추측은 옳고 다른 추측은 틀렸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향유를 부었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인데,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을, 예수 사건을 근원부터 미루어 자세히 살핀(눅1:1~3) 누가가 빠뜨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타당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누가나 다른 세 복음서에 기록된 것을 보면, 장소는 시몬의 집이고, 사건은 여자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것이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제자들의 불평 대신 집 주인인 시몬이 예수를 속으로 의심하는 것을 예수께서 빚진 자의 비유로 사랑의 실상을 가르치는 것을 기록하였고,(눅7:36~59) 다른 세 복음서는 향유를 허비한다는 제자들의 불평과 예수께서 그 여자가 한 일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그 사건으로 야기된 내용을 기록한 것은 달라도 장소와 향유를 부은 것과 장소의 주인이 시몬이라는 것, 향유를 부은 것이 여자라는 것은 동일하다. 그리고 그 여자가 바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이다.

이런 사실에 의하여 동일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요한의 기록에서 나사로의 식구들이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십자가 주위에는 그 식구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또 부활 후에도 그들이 예수님과 만난 기록이 없다. 이때쯤이면 나사로도 나타날 만한데 말이다.

평소의 예수님과 그들의 관계를 보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은 참 이상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추리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살아 있는 동안 마태와 마가와 누가복음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세 복음은 다 60년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록에 그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초기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여성 지도자로 일했을 것이다. 그런데 교인들에게 그의 과거의 죄인이었던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요한은 기원 90년이 넘은 시기에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나사로도 마르다도 마리아도 다 잠들었을 것이다. 이제 교회와 후대를 위하여 그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 이름을 밝힌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나사로의 누이라는 것보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초대교회에 잘 알려졌기 때문에 그 이름을 막달라 마리아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막달라 마리아라고 말해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그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였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여자도 막달라 마리아이다. 다른 사람이 빈 무덤만 보고 다 떠난 후에도 혼자 남아 울고 있었다. 그럴 때 예수님이 그를 찾은 것이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향유를 부은 그 여자에게 예수님은 부활한 생명의 향기를 제일 먼저 맡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인 줄 모르고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의 시체를 주면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할 정도로 예수를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향유를 붓는 심정과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부활한 예수님인 줄 알았을 때에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려고 한 것은, 아마도 향유를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은 그 발을 그때 그 심정으로 붙들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복음서에 기록된 특별히 요한복음에 기록된 나사로 식구들의 정서를 생각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그 식구들 중에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고, 부활한 후에도 그들 중 누군가가 예수님을 반갑게 만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기록이 없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가장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뿐이다. 그래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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