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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14:12

기도의 핵심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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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기도를 떠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생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명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호흡을 하지 않고 사는 생물은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생명 있는 것은 호흡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호흡은 기도이다. “그에게는 기도가 영혼의 호흡 같았으며 그는 바로 하늘 분위기 가운데서 살았다”(부조 85). 비록 에녹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기도로 생활하는 것은 곧 하늘 분위기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기도를 호흡으로 비유했는데, 우리가 살아있으면 호흡을 멈출 수 없다. 호흡을 멈추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지라도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가 의식하고 호흡하지는 않는다. 살아있으면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호흡은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 현상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만일 기도가 영적 생명의 호흡이라면 기도도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영적으로 살아있으면 기도호흡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영적 생명 현상이 기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이와 같은 것이다.

사람이 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안 된다. 참 귀찮은 일이 아닌가? 사람의 수고는 다 입을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전6:7).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일의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왜 먹고 마시며 호흡을 해야 하는가? 아마도 살아 있으니까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또는 살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며, 이런 질문은 우문이다. 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사실을 질문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대답이 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지만 아주 중요한 것을 빼먹은 대답이다. 호흡하고 먹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생존이 자기 자신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순간마다 지적하는 행위이다. 스스로 이런 행위를 하면서도 그 행위의 의미를 우리는 모르고 있다. 호흡하지 않고, 먹고 마시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 생존생활을 위하여 한 순간이라도 외부의 공급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 외부의 도움의 근원이 어디인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창조주의 공급이 없으면 인간은 결코 생존생활을 할 수 없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17:28). 아무런 의식이 없이 호흡을 하고 있다. 그것은 무의식으로도 외부의 공급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지적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데,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거절하고 있으니 이 무슨 모순된 존재인가. 그래서 기도한다.

기도하기를 결심할 필요가 없다. 생명 있는 자는 호흡하기를 결심하지 않는다. 그냥 호흡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호흡을 하지 않으려면 결심해야 한다. 아주 단단히 결심해야 한다. 아마도 어릴 때 누가 숨 쉬지 않고 오래 버티는지 내기를 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고 견디었는가? 1분도 못 견딘다. 생명이 그렇게 견딜 수 없게 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호흡을 중단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중단할 수 없다.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기도를 하지 않으려면 결심해야 한다. 아주 단단히 결심해야 한다. 결심하고 기도하지 않아보라. 답답해서 견디겠는가. 결코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도 만일 견딘다면 그에게는 영적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호흡도 결심하고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심호흡과 단전호흡 복식호흡 등이다.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은 같은 호흡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호흡을 하려면 결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건강을 증진시킨다. 그처럼 기도도 결심해고 해야 하는 기도들이 있다. 철야기도, 금식기도, 연합기도 등등이 바로 그런 기도들이다.

지금 연합기도운동은 바로 결심하고 해야 하는 기도 운동에 속한다. 결심하고 기억하고 의지를 활용해야 하는 기도 운동이다. 이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은 결심과 그것을 실천하는 노력이 여간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에 이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심호흡이나 단전호흡을 하듯이 마음을 다잡고 참석해야 할 일임을 느끼게 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이 세상에 계실 때 쉬지 않고 기도하셨다. 그는 생명이시기 때문에 기도 호흡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엘도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삼상12:23). 기도를 쉬게 될 때 생명이 정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쉬는 것이 죄가 된다. 우리가 기도를 쉬는 생명력을 소모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는 사실을 사무엘의 말을 통하여 깨닫도록 하신 것이리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을 더 풍성히 하지 않고 소모하는 것은 죄이다. 기도는 생명력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전호흡, 심호흡을 한다. 그것이 건강을 증진시키고 생명력을 신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혼의 호흡인 기도도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도는 나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의 벗이 된 특권을 기쁨으로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친구 되시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필요도 아뢰게 되고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가장 합당하게 필요를 채우실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뢰지 않아도 필요를 다 아신다. 정말 계시록에 일곱 교회에 하신 편지에는 “내가 ···· 아노니”라는 말씀이 매 교회마다 있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예수님은 다 아신다.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다 아시는 그것이라도 대화를 나누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닌가.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탄원할 때 정말 친구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듯이 대화하였다. 그것이 기도가 아니고 무엇이었는가. 우리의 기도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기도의 가장 핵심 사상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나는 생존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한다. 마치 공기를 호흡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기도의 핵심 사상이다.

에스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접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 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36:33-38).

이 말씀을 보라.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는가.

기도의 핵심 의미를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기도는 바로 자기의 생명과 생활이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해 주십시오 라고 간구할 것이 없어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그 자체가 창조주를 의지하지 않고는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꾸 구한다. 그렇게 구하는 중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때가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는 것을 욕심으로 구할 때가 많은 것이며, 우리가 구하는 것의 실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구할 때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구하는 중에 성령께서 정말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고 계시하신 것이다.

자 기도하자. 기도는 영적 생명의 생리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영적 생명이 죽었다는 표시이다. 산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숨 쉬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다. 우리의 어떤 필요가 있든지 없든지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그 사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간구한 것을 응답 받았든지 응답을 하지 않는 응답을 받았든지 우리의 사정을 아뢸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도는 그 효능을 타나낸 것이다. 자기의 털어놓아야할 마음을 이야기 할 데가 없는 답답함을 알 것이다. 기도는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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