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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5 14:32

빛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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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 장

빛이 있으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3,4-

빛의 창조

단군의 건국 신화를 적어놓은 『규원사화』에 보면 ‘아주 오랜 옛날 음양이 갈라지지 않고 홍몽한채 오래 닫혀 있었다. 하늘과 땅은 혼돈하여 아직 나누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조상들이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창 1:2) 있었던 것을 알았던 것일까? 성경에 의하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수면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있던 빛을 활성화시키신 게 아니라 빛의 존재를 명령하셨다면 그 전에는 빛이 없었다는 말이다. 성경은 빛없는 상태를 흑암이라고만 하지 않고 혼돈과 공허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첫째날의 빛은 어두움의 반대인 밝음 이상이라는 것이다. 즉 첫째날의 빛은 혼돈을 질서로 공허를 채움으로 바꾼 빛이었던 것이다.

혼돈과 공허가 무엇일까? 우리가 보는 여러 종류의 물질은 그 본질이 다른 것이 아니다. 원자 핵 주위에 전자가 하나가 돌면 수소요, 둘이 돌면 헬륨이다. 전자가 6개가 돌면 탄소요, 8개가 돌면 산소이다. 26개가 돌면 철이요, 79개가 돌면 금이다. 물질의 본질이 다른 것이 아니라, 전자의 수에 따라 물질의 모양과 성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원자의 핵과 전자의 궤도와의 비교에서 원자의 핵이 소금 알만하다면 전자의 궤도는 베드로 성당의 돔만 하다고 한다. 전자는 그 궤도를 초속 600 마일 속도로 돈다. 시속 60마일로 달리던 차가 충돌하면 앉아 있던 사람이 창문으로 튀어나간다. 시속 60마일이면 엄청난 속도이다. 초속 600 마일이면 시속 600마일 속도의 비행기보다 3,600배나 빠른 속도요 음속의 2,900배나 빠른 속도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는 전자가 초록 600마일의 속도로 도는 공간이 극미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극미의 세계에서 전자가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돌면 전자가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원심력에 의해서 그 궤도가 상승하는데 이 상태를 흥분상태(excited state)라고 한다. 전자가 핵에서 멀리 떨어져 돌면 전자의 속도가 떨어지면서 핵의 끄는 힘에 의해 다시 제 궤도인 기저상태(ground state)로 돌아온다. 전자가 흥분상태에서 기저상태로 돌아오면서 발생되는 잉여 에너지가 광자(photon)라 하는 가상 입자이다.

만일 전자가 돌기를 그친다면 원자가 쭈그러진 고무풍선처럼 될까? 빛의 특성 중 하나는 움직인다는 것이다. 빛을 비추었는데 직진하기를 마다하면 그것은 빛이 아니요 빛이 없는 것이다. 빛은 움직이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전자가 돌기 시작하면 질서요 돌기를 그치면 공허다. 우주의 모든 별들은 돌면서 팽창한다. 만일 우주의 모든 별들이 일시에 운행을 중단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바로 혼돈이다.

전자가 엄청난 속도로 도는 힘, 양자와 중성자가 서로 붙어 있는 힘, 핵이 전자를 붙들고 있는 힘, 그리고 만유에 질서를 일으키는 힘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땅이 공허하고 혼돈한 중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실 때 이 모든 에너지가 총체적으로 우주에 개입된 게 아닐까?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태양의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주었다는 신화는 있어도 인간에게 빛을 주었다는 신화는 없다. 어떤 신화 작가도 빛에 눈을 돌린 작가는 없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하시며 빛의 존재를 명령하셨다. 빛이 먼저 창조되지 않고 물질의 존재가 시작된 신화는 모두 거짓이다. 에너지의 존재 없이 어떤 물질도 그 존재가 불가능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셨다는 이 말씀만으로도 성경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첫째 날의 사역은 ‘빛이 있으라’ 명하신 것뿐이다. 아무 것도 하신 것이 없으시다. 그러나 그 하루의 사역은 나머지 날들의 창조를 가능케 한 풍부한 사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창 1:5) 칭하셨다. 밤과 낮을 지구의 자전 활동에 의한 현상으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기 전에 밤낮이 있었다는 말은 대단히 낯선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일이 가능할까?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수 10:13) 갚기까지 하시고도 우주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신 하나님에게(수 10:13)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을까? 성경에서 ‘창조’로 번역된 ‘바라’는 ‘무에서의 창조’요, ‘만들다’로 번역된 ‘아사’는 ‘있던 것에서 만듦’이라고 흔히 말한다.

창세기 1장에는 창조가 네 번 나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이것은 초유의 사건이니 당연히 ‘아사’가 아니라 ‘바라’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셨다.(창 1:27) 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품성이니 그것은 질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창조다. 또 다른 창조는 남자와 여자에게 적용되었다. 창세기 2장에 의하면 흙으로 지으신 아담에게서 갈빗대를 꺼내 하와를 지으셨다.(창 2:7,22) 하지만 창세기 1장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했다.(창 1:27) 남자와 여자는 두 다른 존재이지만 생육과 번성을 전제한 남녀는 어떤 재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당연히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날개 있는 모든 새를 창조’(창 1:21) 했다고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흙으로 각종 들짐승들과 각종 새들을 지으셨다.’(창 2:19) 땅에서 기는 것과 나는 것들은 흙을 재료로 하여 만드셨지만 물에서 번성하는 생물들은 흙을 재료로 하여 만드신 것이 아니므로 창세기 저자는 그것을 창조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왜 흙으로 지은 새는 창조했다고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후사를 약속하시고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으로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람이 재빨리 이 땅이 그의 업이 될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창 15:9,10)

짐승들을 쪼개서 마주대하여 놓듯이, 예배란 중간을 쪼개 속을 하나님께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아브람은 새를 쪼개지 않았다. 새는 이미 노래로 그의 속을 다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의 속을 모두 드러내고 찬양하는 마음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하여 새는 흙으로 지었을지라도 창조된 것으로 말씀하신 게 아닐까?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셨다.”(창 2:3) 창조 행위와 만드신 행위는 분명히 다른 두 행위이다.

“He rested from all His work on it, which God had created to make.”(Gen 2:3)

Hebrew English Bible에 의하면 창조는 만듦의 원천이다.

“하나님이 두 큰 빛을 만드시고, 둘 가운데서 큰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별들도 만드셨다.”(창 1:16)

어떤 사람은 넷째 날에 해와 달은 만드셨지만 별은 만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성경 원본에는 넷째 날에 별들을 만드신 기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주장은 해와 달과 지구가 모두 별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당시 사람들이 해와 달을 별로 보지 않았을지라도, 해와 달을 만드셨다면 그것은 별을 만드신 것이요 별을 만드셨다면 지구도 넷째날에 만드신 것이다. 넷째 날에 별을 만드시지 않았다면 해와 달과 지구도 만드시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지식과 관계없는 별도의 사실이다.

넷째 날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그 만드신 내용은 큰 광명으로는 낮을 주관케 하시고 작은 광명과 별들은 밤을 주관케 하신 임무였다.(‘God made.... the small luminary and the stars to rule the night’ HEB) 하나님께서 행하신 넷째 날의 주요 업적은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신 게 아니라 해와 달과 별에게 임무를 부여하시므로 그의 존재를 드러내신 것이다.

밤과 낮이 첫째 날부터 분정되었다는 말은 ‘빛이 있으라’ 하시며 에너지의 총체적인 개입을 명하실 때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아닐까? 물론 별에는 지구도 포함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주의 별들이 운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혼돈일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왜 첫째 날부터 그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일월성신에게 하루를 떼어 밤과 낮을 주관하도록 명하셨을까? 하나님께서 태초로부터 노심초사 염려하신 것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신 4:19) 하는 것이었다. 해와 달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어야 하며, 일월성신은 그것이 아무리 능력 있게 보일지라도 오직 낮과 밤을 주관하는 일에만 충실해야할 것을 천명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상 숭배의 주범은 해와 달이다. 인간이 해와 달을 향해 소원을 빌기 시작하면서 경배의 대상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해와 달은 인간에게 복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밤과 낮을 주관하는 피조물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의 주범인 일월성신에게 그 임무를 부여하시므로 해와 달은 인간의 경배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공표하셨다. 그러므로 넷째 날에 만드신 것은 일월성신이 아니라 일월성신의 임무였으며, 일월성신에게 밤과 낮을 주관하라고 명하신 명령은 인간에게 일월성신을 섬기지 말라는 금령이었다. 하님께서는 이 준엄한 금령을 내리시고 좋더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 금령이 잘 지켜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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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않는세계 2009.08.15 20:4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는 무엇에 관심이 있으셨을까? 천지 이외에 또 어떤 것을 창조하셨는지?창조사역의 종류, 시작, 그리고 끝은 어디까지 인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날에  장노님과 함께 물어 보았으면 합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지구창조의 과정을  지구창조를 위한  원료 즉 소재(땅과 혼돈한상태, 수면 등)를 창조한 전반부와  이를 이용하여 목적물을 창조한 후반부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빛의 창조 전에 땅이 혼돈상태로 존재한것으로 보아 빛 보다 먼져 지구창조를 위한원료를 먼져 창조하신것알 알수 있지 않을까요? 
    후반부 창조의 첫날에 빛을 처음 창조하신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빛은 태양에서 오는 다양한 파동을 가진 전자기파를 의미하는데 첫날의 빛은 아직 태양이 만들어 지기 전임으로  단순히 전자기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닌  창조의 에너지로 이해한 장노님의 지혜에 참으로 동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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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라 2009.08.16 07:45
    <빛이 있으라>는 글은 엊그제 교회에서
    어떤 분으로부터
    첫째 날과 넷째 날의 빛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 날 안식일 아침에
    '이단이예요' 하면서 이 글을 건네주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그날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한 것들이
    예수님의 대답에 의해 뒤집어질 때
    틀린 답을 가지고도 만족하며
    예수님을 굳게 붙든 것이
    바로 예수께서 주신 믿음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까요?

    답이 맞고 틀리고와 관계없이
    믿음의 행진에 함께하고 있는 님을 인해 행복합니다.
  • ?
    보이지않는세계 2009.08.17 02:19
    과학의 영역은 인간이 답을 찾을 수 있지만 난해한 신학 영역의 답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창조론의 모든 난해문제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에게 있음으로 다만 인간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족을 얻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되면 행복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빛이있으라" 글은 창조론에 고민하며 현대과학 세계에 사는 인간에 충분한 답변이 되는 영감적인 글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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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라 2009.08.17 07:21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족을 얻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되면 행복해집니다>

    이 말이 제가 용기를 줍니다.
    맞아요
    '답을 발견했다'가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이것이 중요한 거 같아요

    님의 조언에 용기를 가지고
    답을 찾아 과는 과정을 더욱 즐기겠습니다.
    아차피 정답은 후일 알게 될테니까요
  • ?
    보이지않는세계 2009.08.19 02:09
    최근 글들을 보면 물구나무 시절보다 엄청나게 발전하시어   지혜와 성령이 충만함이 풍성히 느껴집니다. 읽으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정신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 ?
    소라 2009.08.19 10:44
    두고두고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데 저는 쓰고나면 잘못이 보여서
    왜 쓰기 전에 잘못이 보이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게 제 한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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