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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12:58

욥기를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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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 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욥 38:4,5-

욥기를 보는 눈

   물론 위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지만 38장에서 41장에 나오는 말씀들이 욥에게만 하시는 말씀일까? 욥기를 시작하면서 우주 총회 장면이 나온다. 우주 총회에서 하나님께서 욥을 순전하고 정직하다고 말씀하시자 사단이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신 때문”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그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조건으로 욥을 사단에게 맡기셨다. 드디어 사단은 욥의 모든 소유물과 종과 자식들까지 빼앗고, 아내의 믿음과 친구들의 신의마저 빼앗아버렸다. 그러나 사단의 횡포가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욥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사단의 이름이 고소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단을 철저한 고소자로 보아야 욥기의 난제가 풀린다.

   욥기의 어려운 점은 등장인물의 철학이나 신관이 아니다. 욥기의 어려운 점은 논증을 위한 논쟁자들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친구들은 욥의 고통을 보니 욥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요, 욥은 죄 지은 자들을 보니 잘 살더라는 것이다. 관찰자의 안목에 따라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 현상을 논거로 내 세우는 한, 논증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고소하는 친구들과 반증하는 욥이 모두 권선징악의 안개 속에 빠져든다. 드디어 방청인으로 따라왔던 엘리후가 등장하지만 그도 역시 눈에 보이는 현상을 논거로 삼아 판단하는 우를 면치 못한다. 이 과정에서 위로자들은 악의에 찬 말과 거짓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해석의 원칙은 일관성이다. 한 사람이 한 입으로 진리와 비진리를 섞어 말할 경우 그를 진리와 불의를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그의 정체를 의심해보아야 한다. 100% 거짓말을 해서는 아무도 속이지 못한다. 50% 정도 참말을 해도 잘 속지 않는다. 70:30을 거짓말의 황금 비율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진짜 사기꾼은 90%는 참말을 하고 10% 만 거짓말을 섞는다. 그래야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진리와 비진리를 섞어 말하므로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태초로부터 즐겨 쓰는 사단의 항용 수법이다. 이를 놓지지만 않는다면 진리와 비진리를 혼용하는 욥의 친구들이 누구의 대리인임을 아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욥기가 독자를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앞뒤가 다르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욥을 ‘순전하고 정직하다’고(욥 1:8) 선포하신 뒤에 “네가 네 심판을 폐하려하느냐?”(욥 40:8)하시며 책망하신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처음과 나중이 다르다면 욥은 처음에는 의로웠는데 나중에 불의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나중에 의롭게 될 것을 아시고 처음부터 의롭다고 선포하셨을까?

   무엇보다 욥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첫째, 왜 하나님께서는 이미 논쟁자들이 잘 알고 있는 그의 권능을 새삼스럽게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의 권능이라면 엘리바스가 말했고(5장) 빌닷이 말했고(8장), 소발이 말했고(11장) 욥이 말했고(14, 26, 28장), 엘리후가 말했다(35장).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는”(욥 23:15) 욥에게, 마치 그가 하나님의 창조에 도전이라도 한 듯이 “네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38:4)고 하시며 그의 권능을 말씀하살까? 둘째, 하나님께서 처음에 순전하고 정직하다고 하여 사단의 시험에 내 맡긴 욥을 왜 나중에 네가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40:8) 하시며 꾸짖으실까?

   말이 길어지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만일 욥기 1장에서 바로 38장으로 넘어갔다면 욥기를 하나님과 사단의 싸움으로 보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주제보다 훨씬 긴 부제로 인하여 욥기의 독자들은 욥과 그의 친구들의 논쟁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욥기의 논쟁은 하나님과 사단의 논쟁이다. 고통에 대한 위로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욥기가 떨어뜨린 이삭들이다. 이삭을 줍고도 배부를 수 있지만 부요할 수는 없다.

   욥기를 하나님과 사단의 싸움으로 볼 때,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이 고소했던 모든 말들은 사단이 하나님께 하는 불평들이었으며 욥기 38장부터 41장까지에서 욥에게 하시는 말씀은 사단의 고소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다.

   하늘의 신들도 손오공을 무서워했던 것은 털을 한줌 뽑아 입으로 불면 수 천 개의 손오공이 되서 나타나는 손오공의 능력 때문이었다. 무소불위의 능력을 행하는 어떤 자가 있다면 하나님도 그 앞에서는 의를 내세울 수가 없다. 바퀴벌레라 할지라도 죽지만 않는다면 하나님과 맞서 싸워볼만 하다. 게다가 창조까지 하는 바퀴벌레가 있다면 어찌 하나님도 그를 존귀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물으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 38:4)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8절)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28절)
네가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31절)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32)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33)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는 질문 앞에 사단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강자 앞에 약자는 할 말을 잃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욥 40:1,2)

   ‘누가 전능자를 대항하여 변박하겠느냐’는 말씀에서 변박하는 자를 사단으로 볼 때 이 말씀은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다 어디 갔느냐’ 하는 위로하는 말씀이다.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여라. 아직도 너는 내 판결을 비난하려느냐? 네가 자신을 옳다고 하려고 내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느냐?”(욥 40:7,8 표준 새번역).

   이 말씀은 욥기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을 보면 욥을 불러하시는 이 말이 정작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알 수 있다.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지니라”(40:10).

   이 말씀이 누구를 향한 말씀일까?

   “네 끓어오르는 분노를 그들에게 쏟아 내고, 그들의 기백을 꺾어 보아라. 모든 교만한 자를 살펴서 그들을 비천하게 하고, 악한 자들을 그 서 있는 자리에서 짓밟아서 모두 땅에 묻어 보아라. 모두 얼굴을 천으로 감아서 무덤에 뉘어 보아라.”(욥 40:11-13 새번역).

   아버지가 형을 꾸짖으면 동생은 아무 소리 못하고 잘못을 빌듯이 욥이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3) 하며 머리를 조아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잿더미에서 상처를 긁고 있는 욥이 아니라 ‘찬양을 탐하고 승리를 꾀하는’(욥 40:14 새번역) 사단을 책망하시는 말씀이었다.

   욥이 고통 중에서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욥 27:2)이라고 한 것은 유일신 신앙을 가진 자의 당연한 울부짖음이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자기의 의가 부정된다 할지라도 결코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27:4)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6절) 않겠다며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표명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불러 말씀하지 않으시고 욥을 불러 하나님의 권능을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의 권능은 인간의 위로다.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23:8-9) 하며 찾던 욥에게 “창으로 그것(리워야단)의 가죽을 꿰뚫을 수 있으며,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41:7)는 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11절)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직접 욥의 이름을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욥에게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고통 받는 자에게 나타난 아버지가 제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는 약자라면 그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나의 모든 상실을 회복시켜줄 능력이 있는 자만이 인간의 진정한 위로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단을 표상하는 “리워야단”(욥 41:1 새번역, 사 27:1)을 등장시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표적이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욥 41:34)인 사단임을 암시한다.

   욥에게 고통을 주어 하나님을 떠나게 하려 했던 마귀는 욥을 멀리 떠났다. 고통으로 인간을 시험하려한 일은 초음부터 어리석은 일이었다. 고통은 결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지 못한다. 고통은 한 손에 가시와 또 한 손에 길리앗의 향유를 들고 다가오는 천사다. 아픔의 상처는 또 다른 손에 있는 길리앗의 향유로 치유된다. 드디어 사단은 수치스런 얼굴을 감쌀 수밖에 없다.

   욥의 친구들을 통한 모든 고소들은 정당치 않다 하셨으나 욥이 고통 중에 하나님을 향해 원망한 모든 말들은 정당히 받으셨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마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지고 가서, 너희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번제를 드려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용서하여 달라고 빌면, 내가 그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두고 말을 할 때에,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않고, 어리석게 말하였지만, 내가 그대로 갚지는 않을 것이다."(욥 42:8 새번역).

이 말씀으로 우주 총회에서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다고 내 세우신 욥의 순전과 정직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효함이 선언되었다.

   엘리후는 왜 하나님의 용서에서 비껴갔을까? 엘리후는 처음부터 “듣기만 하겠다고 생각”(욥 32:7, 새번역) 했던 사람이다. 그는 방청인으로 따라온 자였다. 엘리후는 욥과 그 친구들의 논쟁이 지리멸렬하자 분을 참지 못하여 노를 발하는 것으로 논쟁에 개입하지만 그의 말에는 욥을 고발하는 악의와 진리가 뒤섞여 있다. 세 친구들의 고소에도 불구하고 욥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손을 놓지 않자 드디어 사단이 엘리후에게로 들어간 것이다. 만일 엘리후가 다른 친구들처럼 사단의 대리인이었다면 왜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친구들을 용서해주실 때 엘리후는 포함되지 않았을까?

   방청인의 준수사항 가운데는 발언이 금지될 뿐 아니라 피고, 또는 원고의 발언에 대하여 공공연하게 가부를 표명하거나 박수를 치는 행위가 금지된다. 준수사항을 어겼을 경우에는 퇴장당하거나 벌금형에 처해진다. 친구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에 엘리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방청인의 준수사항을 위반한 자가 법정에서 퇴장당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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