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마

by 소라 posted Jun 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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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와 레마

로고스

신약성경에는 두 개의 「말씀」이 나온다. 「로고스 logos」와 「레마 rhema」이다. 말씀이라고 번역된 로고스는 인간의 이성이다. 이성은 인격적 개체를 이루는 요소(要素)요 로고스는 인격체의 언어적 표현이다. 로고스는 미토스 시대에 미토스를 대항하는 개념으로 채택된 언어다. 예수 시대를 정치적으로 보지 아니하고 문화적으로 본다면 그 시대는 신화시대다. 신화시대에 요한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외칠 때 그 말은 ‘태초에 미토스가 아니라 로고스가 계시니라’는 말이다.

로고스와 레마를 성경에서 구분하기란 쉽지 않지만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새번역)

“Jesus was still teaching”(CEV)

하지만 킹제임스 판이나 개역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he preached the word unto them"(KJV)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개정개역, 개역한글판)

여기의 로고스는 우리가 말하는 그냥 말이 아니라 도(道)다. 씨 뿌리는 자는 로고스를 뿌리는 것이다.(막 4:14) 누가가 말한 ‘말씀의 목격자’(눅 1:2 새번역)는 예수의 목격자이다. 태초에 계신 말씀은 예수님이다.(요 1:1) 오순절에 베드로의 말을 받은 사람들은(행 2:41)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반드시 그렇게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로고스는 인격적이요 이성적이다.

레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인간이 의지하며 살아야하는 것은 「로고스」가 아니라「레마」다. 로고스가 문자적 말씀이라면 레마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실생활에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다. 로고스가 떡상의 떡이라면 레마는 입속에 들어가서 씹히는 떡이다. 아무리 로고스가 풍성해도 레마가 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나의 양식이 되지 않는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롬 10:17)에서 나는 것이다. 여기의 말씀도 「레마」다. 믿음의 씨앗은 로고스지만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은 「레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는 로고스지만 어느 날 그 말씀이 마음에 와 닿으면서 예수의 죽음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로고스」가 「레마」로 변한 것이다.

「레마」는 흔히 쓰는 ‘말’이다. 하지만 성경의 「레마」는 「로고스」로 인하여 능력을 갖는다. 바닷가에 수많은 조개껍질이 있지만 그 조개껍질을 귀에 가까이 대야 바다 소리가 들리듯이 수백만 권의 성경이 세상에 널려 있어도 성경 말씀을 귀에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는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성경이 로고스라면 내 귀에 가까이 하는 성경은 레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여기의 ‘말’도 레마다. 유대인들에게 로고스는 있었지만 그들의 영을 깨워 주고 생명을 주는 레마는 없었다. 레마는 귀를 가까이 대고 듣는 로고스의 심장 소리다. 성경을 로고스로 읽는 사람은 이성의 벽에 부딪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말씀을 레마로 듣는 사람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막 14:72)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막 14:30)로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이 베드로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말씀하시는 분이 아무리 ‘진실로’ 말할지라도 그 말이 로고스에 머물면 그 말씀은 다른 귀로 새나갈 뿐이다. 하지만 닭이 두 번째 울 때에 그 말씀이 베드로에게 「레마」로 다가왔다. 베드로의 눈에서 눈물을 자아낸 것은 「레마」였다.

「레마」는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고 했을 때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당시에 처녀가 아기를 낳는 일은 돌 맞을 일이었다. 하지만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고 할 때 천사는 안심하고 돌아갔다. 천사의 말이 마리아에게 「레마」로 다가오자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의 몸에 수태되었다.

빈들에 거하는 요한에게 「레마」가 임하자 그는 요단강으로 내려가 회개의 침례를 전파했다.(눅 3:2,2) 고기잡이 어부인 베드로가 예수의 「레마」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질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다.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의 부름에 따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눅 5:5-11)

로고스가 글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심령에서 레마로 들리는 순간 인간은 그의 운명이 바뀐다. 「레마」는 인간의 운명을 바꾸고 상황을 반전시킨다.

‘죽기 전에 반드시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시므온이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보자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9)고 했다.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을 때까지 시므온의 생명을 붙든 힘은 「레마」였다. 「레마」는 인생을 살아가는 양식이요 인간을 평안에 이르게 하는 힘이다.

말씀이 풍성한 시대이다. 하지만 2000년 전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나 개인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릴 때 그 로고스는 내 속에서 「레마」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레마」로 말미암으며 그 「레마」를 들음에서 나는 것이다. 인간은 「레마」로 인하여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