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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11:32

예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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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란?

우리는 생명을 거저 받았다. 거저 받은 생명 중 일부를 주어 다른 하나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아픔은 평생 간직할 그윽한 기쁨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집사가 있었다. 그는 골수 기증 협회에 연락하여 자료를 받아보고 그 자료를 목사님께 드렸다.그 목사님은 얼마 전에 딸이 입원할 때 눈물이 앞을 가리고 정신이 없어서 운전을 못할 정도라는 말을 설교 시간에 하신 분이었다. 그는 당연히 목사님이 꺼져가는 생명의 등불에 기름을 붓는 이 일을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한주 두주, 한 달 두 달 기다려도 반응이 없었다.

그 집사는 마침 그 자료가 필요하여 목사님에게 자료를 가지고 계시냐고 전화했다. 목사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집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교회가 사회의 필요에 그토록 무관심할 수 있을까? 왜 교회가 생명을 찾는 일에 발 벗고 나서지 않을까? 이러고도 어떻게 이웃 사랑을 강단에서 말할 수가 있을까? 자기 딸의 아픔에는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남의 딸의 아픔에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자기의 골수를 기증하기는 두렵지만 자기 자식에게 골수가 필요할 때는 애타게 호소하는 사람,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는 힘쓰지만 사회의 아픔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러고도 어떻게 이웃 사랑을 강단에서 말할 수가 있을까? 고민하던 여집사는 이 교회에 찬양이 살아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여운이 있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여집사가 말한 찬양이 무엇일까? 교회에서 노래 부르는 것만 찬양이 아니다. 성경종교에서 예배하는 모든 행위는 찬양이다. 성경종교에서는 예배와 찬양을 종종 호환해서 사용한다. 예배란 무엇일까?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라면 집에서 인터넷 방송을 들으면 된다. 말씀을 듣는 것이 예배라면 집에서 성경을 읽으면 된다. 기도하는 것이 예배라면 집에서 기도드리면 된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예배라면 조용한 산에 올라가 명상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면 된다. 헌금하는 게 예배라면 매주일 우편으로 헌금을 보내면 된다. 이 모두를 종합한 게 예배라면 아무데서나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예배를 위해 교회에 가야할까?

예수께서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러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실 때 여인이 말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20)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21,23)

예수께서 예배의 장소에 대한 여인의 관심을 예배하는 시간으로 옮기셨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이 때’가 언제일까?

야곱이 얍복강 여울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누가 곁에 왔다. 야곱은 그가 적인 줄 알고 붙들고 놓지 않았다. 드디어 태산 같은 이가 이름을 물었다. 야곱이 자기의 이름을 말 하자 그가 말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사람(Man)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창 32:26)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한 후에는 형과 화해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그런 것처럼 평화의 때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이다. 야곱이 그의 문제가 해결 된 후에라도 영원히 하나님에게 붙들려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흔적을 남겨 두시고자 하셨던 게 아닐까? 하나님은 힘이 없어서 붙잡혀 계신 게 아니라 환도뼈를 칠 기회를 찾고 계셨던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이 지쳐서 쓰러질 때가 되었을 때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다. 환도뼈의 위골은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갈 6:17)이다. 환난 중에서 ‘예수의 흔적’을 받은 야곱은 그의 운명이 야곱의 운명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으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오실 때 그분은 사람(Man)으로 오셨으며 야곱은 하나님과 사람들(men)로 더불어 싸웠다.(창 32:25,28)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독의 정점에서, 혼돈 가운데서, 터지고 찢어짐 가운데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들 속에 숨어 계신다.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야곱이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하나님께만 매달렸듯이 매일의 생활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싸운다면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시자 야곱이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시고는 야곱에게 축복하셨다.(창 32;29) 야곱에 복을 받고서야 안심하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형 앞에 나갈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과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자하는 질문 위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신다. 이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이 때’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웃으며 부딪치는 사람들이 정말 그리스도 안에 형제된 자들일까? 지금 다니는 교회를 떠나 좀 떨어진 교회로 가면 몇 사람이나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을까? 어쩌면 일 년이 지나도록 한 사람도 전화하지 않을지 모른다. 개인적인 관계가 없으면 매 주일 만나는 얼굴도 남이다. 교회에서 웃는 웃음은 형식일 뿐이다. 만나서 개인적으로 식사를 한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깊이 교제한 사람만 연락을 유지한다. 그와 같이 매주일 교회에 나오고 매일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그 하나님은 나와 관계없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 말씀에 감탄하며 눈물을 흘려본 경험, 말씀이 좋아 싱글벙글 웃어본 경험을 가져야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한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진행되고 있는 인류역사를 무 베듯이 중간에 자르는 일을 하실 것이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하면 대단히 불리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하나님을 선택하면 대단히 불리한 상황에 놓일지라도 하나님을 선택하려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져야 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이 때’는 하나님과 더불어 그러한 경험을 확인하고 사람과 더불어 개인적인 교제를 갖는 시간이다.

부모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녀들이 그 앞에 모이는 시간이다. 자손들이 사오십 명이 모였어도 참석하지 않은 하나의 자녀로 인해 부모는 속을 끓인다. 어쩌면 그것이 제사의 유래일지도 모른다. ‘아들 딸들아 내가 죽더라도 일 년에 한 번씩은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라’고 말한다면 몇이나 그 부탁을 들어줄까? ‘일 년에 한 번씩 음식 차려놓고 제사를 드려라 내가 와서 볼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하여튼 자손의 모임은 부모의 기쁨이다. 예배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과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자하는 갈망으로 충만한 의식이다. 그 갈망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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