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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5 09:26

깡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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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깡패를 아는가?

세상은 정상적인 사람만 사는 사회가 아니다.

사실은 누가 정신병자며

누가 바른 생각을 가진 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평화 쪽이면 우리는 지지하고

전쟁 쪽이면 우리는 반대한다.



그런데 전쟁 불가피론자들도 평화를 위해서요

반전 주의자들도 평화를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작은 전쟁으로 큰 전쟁을 막을 것이냐

아니면 전쟁을 반대하므로 전쟁을 막을 것이냐?

즉 전쟁으로 평화를 지키느냐

반전으로 평화를 지키느냐?이다.



그 상대가 정상 집단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반전으로 평화를 지켜야 한다.

작은 전쟁도 용납될 수 없다.



2 월 20일자 donga.com에 올라온 기사를 보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미국과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공격은

한반도에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이런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 자체에 대해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태도는 정상인을 향해서는

당연히 가져야 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비정상인들에게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911 테러가 있은 뒤에

박노자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이성 잃은 '응징 전쟁'이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지금 진행중인 미국의 보복 행위는

반대로 미국의 지도부에 `현대성'의 도덕적 가치도

합리적 판단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현대적으로 해석된 종교적 가치들의 핵심은

개개인의 생명인권의 무조건적인 존중이다.



주범으로 거론되는 빈 라덴이 아프간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테러와 관계도 없는 아프간 사람들을

폭탄과 경제적 봉쇄로 처참하게 굶기고 죽이는 것은

전근대적 집단주의에 의거한 테러보다 수준 높은 행동인가?"



박노자 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테러에 대한 무력적인 응징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집단에 대한

정상인의 반응이 그렇게 단순한 것일까?



2003 년 2월 15일

라시에라 대학의 김원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숨 막히는 미국의 위선에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아서,

폭격에 맞아 죽을 이락의 민중과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아서,

이 전쟁이 인류의 전쟁사를 또 다른 궤도 위에 올려 놓을 것같다는

두려운 예감을 억제할 수 없어서,

전 인류의 운명을 멸망으로 이끄는

암흑의 행진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어느날 후손들이 그 때 우리 조상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가고 물을 것 같아서,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 듣더라도, 그들의 저주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그들 앞에 최소한도 부끄럽지는 않고 싶어서,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반전의 목소리가

저 미친 정치가들의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해서.... 그 곳에 갔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가 모두 한결같이 갖는 마음이지만

비정상적인 집단과의 평화가 반전 시위로 가능할까?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노대통령 당선자의 말과

무차별 보복을 규탄하는 박노자 교수의 말과

반전을 행동으로 보여준 김 교수의 결단을 존중한다.



그러나 비정상인에 대한 정상인의 대응이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 위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제시하며

그들을 정상인으로 볼 수 있는지 물으려고 한다.



협박과 억압을 업으로 삼으며 자기의 잘못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사람들

강자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하지만 상대방의 약함을 보면 사정없이 짓밟는 사람들

노력을 들이지 않고 수입을 얻으려는 사람들

따라서 가진 자의 것을 빼앗는 행위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는 사람들

욕심이 끝없어서 남의 것을 갈취하는 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

제 마음대로 정한 법을 나라나 국제법 위에 두는 사람들

자기에게 있는 작은 아픔 때문에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사람들

남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으며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남을 결코 믿지 못하는 사람들

다자간의 협상에서 다자의 논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남을 죽여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혼자 있을 때는 순한 듯 하지만 무리가 되면 힘을 앞세우는 사람들



만일 우리들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겠는가?

과연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정상인으로 대하여야 하는가?



영어로는 갱이라고 하지만 우리 나라말로는

패자를 붙여 깡패라고 한다.

저들은 패를 이루지 않으면 힘을 쓰지 못하며

오직 패를 이룬 뒤에야 힘을 쓰는 겁쟁이들이다.



저들은 연약한 여인의 빚을 재촉할 때에라도

무리를 지어 찾아간다.

깡패에게는 야인 시대에 나오는

건달과 같은 낭만이 없다.

당시 건달에게는 의리가 있었으며 진실이 있었으나

지금 깡패에게는 의리도 진실도 없다.



정상인에게 있어서 약속은 깨뜨릴 수 없는 성역이요

그것을 깨뜨리는 것은 곧 인격의 모독으로 여겨지지만

깡패에게 있어서의 약속은

그것이 저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당연히 깨뜨려야 하는 족쇄이다.

저들에게 있어서 약속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정상인이 깡패를 만나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은

저들은 수시로 말을 바꾸며

저들의 잘못을 상대방에 떠넘기는 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때문이다.



사회는 마땅히 이들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

만일 이들에게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사회는 말할 수없는 혼란에 빠지며

양민은 무차별적으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



만일 이락과 북한이 위에 열거한 속성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면

저들은 마땅히 깡패 집단으로 분류되어야 하지 않을까?



협상 테이블에서 협상을 하면서

잠수함을 내려 보내고

상대국을 방문하면서도

영공을 침입하는가 하면

평화를 말하는 대통령의 취임식에

미사일 발사를 실험하는 사람들

이들을 과연 정상 집단으로 볼 수 있을까?



저들은 협박과 억압을 업으로 삼으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수입을 얻으려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진 자의 것을 빼앗는 일은 합법적이요

남의 것을 갈취하는 데는 피도 눈물도 없으며

남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아 의논 상대가 되지 않는다.



과연 저들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저들은 상대방을 죽여야 자기네들이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들의 머리에는 오직 혁명과 투쟁뿐이다.

백성이 굶주려도 저들이 원하는 것은 식량이 아니라 적화통일이다.



이러한 저들의 속성이 마치 깡패 집단과 같다면

국제 사회는 저들을 깡패 집단으로 분류하여

깡패들을 재제하듯이 저들에게 제재를 가해야 하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은 강자 앞에 강하고 약자 앞에 약하지만

저들은 약자는 사정없이 짓밟고 강자 앞에선 한없이 비굴하며

상대방의 약한 점은 제 빨리 파악하여 공격하지만

저들에게 분명한 해가 될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과연 이런 자들에게 힘 외에 보여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깡패에게는 저들이 강한 줄로 착각하게 하여서도 안 되며

저들을 동조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벌이는 반전 시위가 합당한 일일까?



만일 반전 시위가 저들에 대한 동조 시위로 착각될 경우

저들은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저들이 테러를 자행하며 자유국가들을 협박하는 것은

오만한 미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백성들을 억압한 저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겐가 전가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깡패들의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저들은 백성 착취의 명분으로

자본주의 타도를 내세우고 있는 바

착취만 자행하고 타도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저들의 착취는 계속될 수없다.



일은 하지 않고 착취에 능한 깡패들은

계속적인 착취를 위해서

계속적으로 명분을 만들어 나간다.



노력을 들여 생산을 증가시키기 보다는

공갈협박으로 상대방의 부를 갈취하는 일이

더 쉬운 자들에게 있어

전쟁과 테러는 정권 유지의 수단이다.



저들은 수시로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저들 국민에게 보여야 하는 바

2003 년 2월 20일 오전 미그기로 추정되는 북한 전투기 1대가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13 ㎞쯤 남하했다가 2분여 만인 10시5분경

북쪽으로 되돌아간 그러한 도발 행위는

백성 착취의 책임을 남한에 돌리기 위한 명분으로서

절대로 필요한 일련의 행동들이다.



합참 공군작전과장 오성대(吳成玳) 대령은

"항로 등을 통해 침범 의도를 면밀히 분석 중"이라고 말하면서

"북한군의 NLL 침범 및 도발 행위가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을

심히 우려한다"며 "북한 당국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고 강조했지만

다 소용없는 말들이다.



저들의 구호는 언제나 혁명이요 투쟁이다.

혁명과 투쟁을 앞세운 자들이 계속적으로 도발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정상인은 자기의 문제를 자기 안에서 해결하지만

비정상인은 집안의 문제를 집밖에서 해결하려 한다.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은 비정상인이

자기의 문제를 집 밖으로 끌고나간 좋은 본보기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문제 해결책은 혁명과 투쟁이며

그 대상은 자본주의 국가들이다.



저들은 자국내에서 일어난 문제를 결코 자국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다.

저들은 문제 해결 방법으로 테러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테러는 일종의 선전포고이다.



1941 년 12월 7일 일본이

해군함재기로 진주만을 기습했을 때

미국은 이 사건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여

태평양 전쟁에 개입함으로

제국주의 일본에 민주화를 가져다 주었다.



어찌하여 인간 폭탄으로 6천여명을 죽인

911 사태를 선전포고로 보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아프간이나 이락이나 북한에

빠른 민주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진주만의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이 미국을 공격한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미국이 저들의 원한을 산 여러 가지 이유들을 말한다.



만일 미국에 대한 원한으로 테러를 자행했다면

그 원한이 해결되든지

더 나아가 미국이 멸망한다면 저들이 조직을 해체할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미국에 대한 원한이 테러의 진정한 이유는 아니다.



저들이 테러를 통하여 선전포고를 암시한 것은

백성의 피로 홍수를 이룰지라도 싸워야 할 이유가

저들 내부에 있다는 말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일카에다는

아직 정부 조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저들의 궁극 목표가 저들의 이상 국가임을 생각할 때

저들이 테러를 자행한 진정한 이유는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저들 자신들의 처지이다.



저들은 저들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인간을 폭탄 삼으며 인간을 방패 삼아 대응한다.



"이라크 민간 시설물에 대한

인간방패를 자원한 14명의 외국 민간인이

2 월 11일 바그다드에 도착한데 이어

수십명의 자원자들이

13 일 터키 주재 이라크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았다.



이들은 특히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게

방패가 돼줄 것을 요청,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방패 자원자들은 바그다드 중심부를 흐르는 티그리스강 다리에

'여기를 폭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라는 현수막을 내걸었으며

바그다드 시내 공공건물에도 반전 깃발을 달았다."



2 월 20일자 한국일보에는

드디어 "만델라 대통령의 전 부인인

위니 만델라 여사가

미국의 이락크 공격을 막기 위한

인간 방패를 지원하고 나셨으며

미스 독일 알렉산드라 보드야니코바도

전쟁을 막기 위해 이락을 방문할" 것이라고 전한다.



이러한 행동은 언 듯 보기에

평화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깡패는 이러한 앞잡이들을 이용하여

저들의 행동을 합리화 시킨다.



깡패는 패를 이루어야 힘을 쓰므로

첫째는 저들을 고립시키야 하는데

위와 같은 인간 방패 운동과

최근에 남한에서 행해지고 있는 반미 운동들이

저들에게 어떻게 이해될까?



반미 운동이 저들에게 공산주의 지지운동으로 이해된다면

저들은 고립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해방 전선의 전위대로 착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남한 사람들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육이오를 모르는 안일한 세대의 발상이다.

육이오는 같은 민족이라도 공격이 가능하다는 증명이다.



강대국의 생명에 손실을 입히는 일은

강대국의 개입을 초래하는 바

그 싸움에는 결코 승산이 없음을 계산하고 있는 저들에게

반미 운동은 남한을 해방(?) 시기키 위한 빌미를 제공한다.



한 반도에서 육군을 철수하고

공군과 해군을 보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만약 한국민이 미 육군의 철수를 원한다면

한국은 미국의 민간인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한국에 주재할 필요를 느끼도록 매력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북한이 미군 철수를 그렇게도 원하는 것은

강대국의 생명을 취했을 때 오는 수습할 수 없는 사태 때문인바

강대국 국민이나 군인의 부재는

저들에게 적화 야욕의 불을 지필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남한에서 일어난

반미 시위나 반전 시위는

북한 지도층이 수십년 동안 바라던 바이다.



미국의 핵무기 간섭에 대하여

미국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다른 나라는 핵무기를 갖지 못하느냐고 묻는 것은

왜 경찰은 총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반에게는 총기가 규제되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나라에서는 경찰이 치안을 맡아야 하듯이

국제 사회에서는 치안을 맡아야하는 국가가 있어야 한다.



경찰이 없다면 치안이 유지되지 않듯이

국제사회에 경찰국가가 없다면

국제사회는 힘을 남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 많은 양민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며

국제 사회에는 곧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만약 국제사회에 경찰 국가가 필요하다면

그 나라는 과연 어느 나라일까?



그 나라는 첫째 힘이 있어야 하고

국민을 주인으로 받드는 일에 충실해야 하며

자유를 실천하는 일에 성실하여야 한다.

그러한 기준으로 볼 때

무장을 허락하여 경찰 국가로 삼을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물론 유엔이라고할 수 있으나

유엔은 여러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저들 각자의 이념을 앞세운지 오래되었다.



미국이 도덕적으로 퇴폐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미국은 민주 이념에 충실하며

백성의 자유를 실천하는 일에 성실한 나라로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미국에 수출하는 양으로

나라의 경제가 좌우될만큼

경찰의 임무를 수행할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양민들이 죽을 것이라며 분노하지만

독재자들에 의해

더 많은 양민들이 학살당하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타개하여야 하는가?



몇 달간 전쟁을 하므로 양민이 죽는 것보다

잘못된 정치로 수년동안 양민이 죽는 숫자가 더 많다면

우리는 계속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야 하는가?



올바른 정치 하에서 재해로 양식이 끊어졌다면

당연히 식량을 공급하여야 하지만

잘못된 정치하에서

도와주는 양식이 군량미로 사용되고

도와주는 돈이 살상무기로 둔갑되는 사회에 대한

계속적인 도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03 년 2월 21일 저녁 8시 SBS의 뉴스에서는

북한 당국과 함께 전국적으로 실시한 모자 영양실태 조사결과

급성 영양실조 어린이의 비율이 평양시가 4%

함경남도는 12%로 나타났으며

만성 영양실조 어린이 비중은 남포시의 경우 25%에 그쳤으나

함경남도는 두배 가까운 48%에 달했다고 한다.



물론 도와주는 양식이 군량미로 사용되고

도와주는 돈이 살상무기로 둔갑되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적으로 도아주어야 한다는데 나는 동의한다.

노 당선자는 뉴스위크 최신호(2월3일자)에 게재된 회견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날 경우

북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이러한 관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 정권의 안보와 정상적인 대우, 경제지원 등

그들(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준다면

그들은 핵 야심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깡패가 저들의 간절히 원하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것으로 만족하여 저들의 주먹을 스스로 자제할까?

그것은 깡패의 속성을 모르는 말이다.



깡패는 상대

과연 방이 알거지가 되도록까지

수탈한 뒤에야 놓아준다.



저들의 요구는 끝을 모른다.

수억불을 갖다 바쳐도 대화를 이루지 못한 저들에게

노대통령은 얼마를 주고

저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 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수억불을 갖다줘도 전투기로 영공을 침범하고

간절히 원하는 바를 제공하겠다는 대통령의 취임식 날에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는 북한 정치인들의

간절히 원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것은 노 당선자가 말하는 바와같이

정권의 안보나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저들의 간절히 원하는 바가

식량문제라면 식량을 주면 된다.

만일 저들의 간절히 원하는 바가

문명 사회라면 문명을 공유하면 된다.



만일 저들의 간절히 원하는 바가 정권의 안정이라면

저들 국가를 인정해주면 된다.

만약 저들의 원하는 바가 정상적인 대우라면

협상 테이블에서 이야기하면 된다.



그러나 저들의 간절히 원하는 바는

노당선자가 말하듯이 그런 안일한 것이 아니라

적화 통일이라는 사실이다.



즉 저들이 원하는 것은 경제적 도움이나

올바른 대우가 아니라

남한의 주권 전체를 원한다는 말이다.

저들의 요구는 남한 전체를 취하기 까지 끝을 모를 것이다.



나는 우리의 도와주는 양식이 군량미로 사용되고

도와주는 돈이 살상무기로 둔갑되는 한이 있더라도

저들의 목적이 적화 야욕이 아닌 공존이라면

계속적으로 도아주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저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양식도 기술도 문명도 아니라

적화 야욕이라는 사실이다.

저들에게 있어 남한의 해방(?)을 시도하는 일은

권력 유지에 절대적인 것이다.



옛날 같으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쳐들어가서 위정자를 처단할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이락이나 북한의 양민들이

잘못된 정치하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유국가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의 악랄함이 이렇게 온천하에 공개되었는데도

아직 반미를 부르짖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위정자를 제거하려 한다면

온 세계는 미국을 원망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악랄함이 만천하에 더 널리 공개되기 까지

양민의 고통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악랄함을 알지 못하는

고통을 모르는 세대가

사회주의의 악랄함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이락과 북한의 주민들은 더 많은 시간을 고통당해야 한다는

이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지금까지 미국이 여러 전쟁에 개입하였지만

미국이 참여한 전쟁은

일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국제적 패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였으며

미국이 가지고 있는 살상용 무기는

그 종국이 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2월 24일에 있은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 노 당선자는

"많은 아시아나 유럽의 지도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 자국의 가치체계를

주입하려 한다고 보지 않는가"고 반문하면서

" 미국이 요구하는 새로운 질서는 주로 정의지만

그것은 또한 일방주의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donga.com)

그러므로 미국의 지나친 간섭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노당선자는 미국이 요구하는 새로운 질서는 정의라고 말했지만

정의가 바로 서야 된다는 요구는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 전 인류의 요구이며

그가 취임사에서 말한 정의의 분배는

한국민의 요구가 아니라 전인류의 요구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인류는

정의를 위하여

어떤 대가도 치뤄야 한다.



미국은 정의를 위하여

희생하는 일에 앞장 선 나라이다.



미국은 이 절대 가치를

온 세계에 주입시키고자 노력하는 바

정의를 이해하는 민족에게는

절대로 감사한 이 요구가

정의를 모르는 나라에겐

지나친 간섭이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미국의 요구를

지나친 간섭으로 생각하면서

정의를 위하여 희생할 각오를 보이지 않는다면

과연 그 나라에서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의를 모르면

작은 평화를 위하여 반미를 외치고 반전을 외친다.



나는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TV에서 보았다.

성조기를 불태우며 대통령을 모독하는 도발적인 반전 시위와

We support our troop.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들 중

누가 진정으로 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인가?



2002 년 12월 16일, 성공회 대학교 사회과학부 정해구 교수는

아래와 같은 요지의 글을 주간 한국에 실었다.

<12 월 7일 전국 곳곳에서 미군 전차에 의해 사망한 두 여중생 사망에 대한 항의시위가 보여주듯 반미운동은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냉전 해체 이후 미군의 한국 주둔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해가고 있다. 더구나 남북이 화해를 이루어가는데 그들은 장애로 인식될뿐더러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한국민에게 전쟁 위협에 대한 우려를 증대시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두 여중생에 대한 미군 전차의 압살과 그 처리에 있어서의 비인간적이고 고압적인 미군 당국의 태도는 특히 젊은 사람들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든 것이다. 왜 우리가 우리 땅에서 남의 군대에 의해 이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반미 항의시위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위의 글에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걸림돌이냐 아니냐는

여기서 취급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이번 압살 사건에 대한 미군의 태도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거스릴 수 있는

비인간적이고도 고압적인 태도였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여중생 압살 사건의 전모를 알아보자.

2002 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미2사단 44공병대의 차량들이

군사 작전을 위한 행군을 하고 있었으며

효촌리 56번지 지방도로변을 심미선, 신효순

두 여중생이 걷고 있었다.



현재 밝혀지지 않는 것은

민간의 접근이 잠시 통제되는 그 시간에

어떻게 두 여중생이

그 도로를 걷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두 여중생은 도로변은 안전하리라고 방심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지

지방도로의 폭은 3m 40cm인데 비해

이날 사고를 일으킨 장갑차는

지뢰 제거용 대형 장갑차로서

도로보다 훨씬 폭이 넓은 3m 67cm이다.

그리고 장갑차 운전병의 시야는

전방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도로변이 훨씬 더 위험하다.



이 상황에서 사고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무전병의 연락인데

도로변의 두 여학생을 발견한 무전병이 황급히 건

첫번째 연락은 조작 실수로 연락되지 않았으며

두번째 연락을 받고 워커 마크 병장이

장갑차를 급회전시킨 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 일으켰다.



왜냐하면 이때 두 여중생은 이미 탱크 옆에 부딪쳐

도로변에 쓰러져 있었는데

옆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무전병의 연락만 받고 급히 방향 전환한 것이

오히려 두 여중생을 압사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6개월 후 전혀 예상치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대통령의 사과 직후

Los Angeles Times 지를 비롯한

2002 년 12월 15일자 미국 일간지들에는

십만 명의 인파가 운집하여 대형 미국 국기를 찢으며

영어로 크게 "악의 축 조지 부시"라고 쓴

피켓을 든 한국인들의 사진이 톱기사로 실렸다.



여중생 과실 사고는 의정부 경찰 수사대와

한국 군 수사대와 검찰 수사대가 수사한 후에

우발적인 사고임을 발표하였다.

대한민국 변호사 협회에서도 두 병사에게

아무런 범죄가 없음을 천명하였다.



미군 수사대에서도 오히려

네 명의 지휘관들을 징계했을지언정

두 병사에게는 우측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참작하여

재판 때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그리고 유족들과의 합의도 끝나고

국제 규정 이상으로 넉넉하게 보상금도 지불하였다.



과연 이러한 가운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여중생 사건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미국 대통령의 사과 이후에

그런 반미 시위를 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만일 의도적 반미 시위가 아니라면

추모식에서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의 나라 국기를 찢는 이유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미국은 6.25 당시 한국군 총병력이 십만이었을 때

북한의 탱크가 철원을 넘어 단숨에 서울까지 쳐들어 오던 날

즉시 파병하였던 우방이다.



우리나라가 외국에 이백 명의 평화 유지군을

파송하는데도 막대한 비용이 들거늘

하물며 미국은 한국 전쟁 동안

십만 명의 병력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현재 미국 총병력이 오십 만임을 감안할 때

미군 전사자의 십만 병력은 실로 엄청난 숫자이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 십만 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희생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두 여중생의 목숨이 소중하듯이

미국인들에게도 십만 명의 젊은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를 위한 그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그만두더라도

이번 사건에서 미군이 고의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바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갑차의 치명적 단점은 운전병이 옆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갑 사단에는 행진 중의 장갑차에

접근하지 말라는 금기 수칙이 있지만

한국군 훈련 중에도 장갑차 옆에 있던 병사가

압사당하는 사고가 잦았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는 운전병의 잘못일까

안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않은 한국군 당국의 잘못일까?

과연 미군이 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법을 어기며 비인간적이면서도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였는가?



지난 12월 20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Daum 에서는 "당선자에게 바란다"라는 주제로

핫이슈 토론을 진행했다.



네티즌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대미 관계에서는 'SOFA 개정'(70.7%)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았는데

과연 SOFA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SOFA 란 대한민국 법무부가 발표한대로

군대 파견국가가 공무 수행중 범죄에 대하여

군대 파견국이 재판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과 미국 간에만 수의한 조약이 아니라

국제법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온 원칙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외에도 독일, 일본 등

84 개국과 SOFA 협정을 맺고 있으며

공무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재판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준 사례가 없다.



대한민국 국군도 1960년대에

월남에 맹호와 청룡 두 부대를 파병하였을 때

동일한 권리를 행사하였으며

2002 년 2월 키르키즈 공화국에

의료지원단을 파병하면서 체결한

키르키즈 SOFA 협정에는

한국군인의 공무 중 범죄에서부터

사생활의 범죄에 이르기까지

한국군이 관할권을 가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키르키즈 공화국의 한국군인은

사사로이 여자에게 성폭행을 하여도

키르키즈 법정이 아니라 한국군 군정에서 재판받는다.



키르키즈 경찰은 그 어떤 범죄에 대해서도

한국 군인의 신병을 연행할 권한이 없다.

만일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한국군이 다른 나라의 평화를 위해

피를 흘릴 수 있겠는가?



타국에 파병 중인 병사의 범죄는

타국의 법이 아니라 자국의 법에 따라

심판 받는다는 SOFA에 의해

낯선 타국법에 대한 두려움없이

병사들이 성실한 봉사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SOFA 의 규정에 따라 이번 일도

한국 당국에 수사는 의뢰하되

신병은 미군측에 넘겨졌는데

이것을 개정해야 된다면

앞으로 한국군이 타국에서

타국법에 의해 재판 받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SOFA 의 이 단순 명료한 사실을 모르고

소파 개정 요구 시위를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한다면

이것은 몰상식한 백성이요

비합리적인 백성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훈련중에 있은 과실치사 사건에 대하여

소파협정을 무시하고 국민 감정만 내세워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21세기의 선진 국민다운 행위가 아니다.



대한민국 검찰도 진상을 철저히 조사한 후

우발적인 사건이라 발표한 바 있는 사건을 내 세워

반미 감정을 선동하는 것은 그 저의가 어디에 있으며

혹시 그 주동자가 적국의 사주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SOFA 협정을 준수한 미군의 처사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은 생명의 존엄성 앞에 사과하였다.



그 사과가 미흡하다 하여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미국 국기들을 찢는 것은 무슨 행위인가?



과연 이것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십만명의 젊은이를 희생한 우방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표현하는 방식인가?

어떤 사람들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노력을

패권국가를 향한 미국의 오만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을 보자

북한은 세계 주요 미사일 수출국 중 하나일만큼 군사 강국이며

전쟁 도발의 화약고와 같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지금 남북을 잇는 철도 공사를 하고 있다.



유럽 수출의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6.25 동란 때 인민군 기갑 사단을 수송했던

그 철도를 우리 손으로 다시 복원하는 것은

국가 안보가 걸린 큰 모험이 아닐 수없다.



만약 우리나라에 주한 미군이 없다면

과연 이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은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미국의 성실한 노력을 바탕으로

남북을 관통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만일 미국의 관심이 정의 실현이 아니라

타국의 주권 침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면

과연 우리가 이러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미국의 성실성을 믿으면서

미국을 반대하는 모순의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하기 전 날

북한은 이미 변화 중이며

그들을 범죄자가 아닌

협상의 상대로 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북한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겠다고 하면서

북한은 핵 개발을 선택하든지

체제 안전과 경제 발전을 선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제안은 정상인에게는 당연한 제안이다.



그러나 저들이 범죄 집단은 아닐지 모르지만

저들은 비정상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적화 통일이요

통일 대통령으로 김정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민은 그 자리를 김정일에게 줄 수 있는가?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라고하는 것은

깡패에게 주먹을 포기하라는 말인데

깡패에게 주먹을 포기하라는 말은

목숨을 버리라는 말이요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는 말은

그들의 체제를 해체하라는 뜻이다.



저들은 평화를 위해 핵을 사용하겠다며

그럴 듯이 말할터이지만

저들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그것으로 상대를 위협할 것이다.



경제적 도움을 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에

저들은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였다.

그것은 저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밖에서 풀어야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이제 나라가 살만해졌으니

미국의 간섭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과 의견을 같이하지 않으면

미국이 졌던 많은 부담을 한국이 져야하는데

그러기에는 아직 갈길이 요원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의 공평 분배를 원하지만

약속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집단과

과연 정의 분배가 실현될 수 있을까?



지난 25일에 있은 취임사는 감동적이었다.

만일 우리의 상대가 정상 집단이라면

우리는 모두 박수를 치며 감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격할 수만은 없었던 것은

우리가 대화하여야 할 상대가 비정상 집단이라는 것이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은 깡패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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