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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2 07:26

계시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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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에 대한 오해

성경 말씀이 맞으면 믿고 틀리면 믿지 않으려는 태도는 계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계시에 대한 일반적 오해는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셨으므로 성경의 내용은 결코 틀릴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을 계시라고 할 때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보여주셨다는 뜻이지만,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얼굴이 그 말씀에 계시되어 있다는 뜻이다. 성경 말씀이 맞느냐 틀리냐는 성경 독자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성경백성들은 모세오경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쓰신 책이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이 아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아버지 같은 하나님이시기에 모세오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 독자의 진정한 관심사는 어떻게 성경에서 그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느냐이다.

성경 백성들은 성경의 지명이나 인명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거나 기록된 말씀이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과학과 부합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이외에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할 어떤 다른 대상이 없기 때문에 믿는 것이요 그 하나님에게 자신의 전인을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을 능멸하는 일이 각 시대마다 끊임없이 있어왔지만 성경을 이 땅에서 말살하지 못한 것은 그 안에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꿈틀거리기 때문이요, 세상 역사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성경의 역사가 세상의 어떤 베스트셀러보다도 이 땅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의지가 이 땅 곳곳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포유류인 박쥐가 왜 조류로 분류되었는가?(레 11:19) 되새김질하는 위를 갖지 않은 토끼나 오소리가 왜 새김질하는 동물로 분류되었는가?(레 11:5,6) 왜 남자 아이를 낳으면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케 되고 여자 아이를 낳으며 66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케 되는가?(레 12:4,5) 정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출 19:4 새번역) 나르는가?

성경은 그 시대의 문화와 그 시대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그린 책이다. 성경을 기록하는 당시에 박쥐를 새로 보았거나 토끼나 오소리가 새김질하는 것으로 분류되었으면 성경은 박쥐를 새로 기록하고 토끼나 오소리를 새김질하는 동물로 분류한다. 몇 천 년 후에 박쥐가 새가 아닌 것이 알려지고 자신의 똥을 다시 먹는 토끼나 오소리에게 반추하는 위가 없다는 것이 발견되더라도 성경은 그것을 고치지 않는다. 딸보다 아들을 낳으면 산혈이 더 빨리 깨끗해지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를 이해하는 그 시대의 문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미독수리가 날개로 업어 나르지 않고 강한 발톱으로 새끼를 살그머니 움켜잡고 나를 수도 있고 입으로 물어 나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지 못한다.

스데반은 순교를 앞두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행 7:15,16)고 말했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모셔다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사서 묘자리로 삼은 막벨라 굴에 안장하였다.(창 50:13) 세겜은 야곱이 묻힌 땅이 아니라 야곱이 하몰로 부터 은 일백 개를 주고 산 땅이다.(창 33:19)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이끌어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면서 금 일백 개로 산 땅이라고 했다.(수 24;32)

역대기는 아하시야가 40세에 왕이 되었다고 했으나(대하 22:2) 열왕기는 그가 22세에 왕이 되었다고 했다.(왕하 8:26) 아하시야의 부친 여호람이 40세에 죽었으므로(대하 21:20) 만일 아하시야가 40세에 왕이 되었다면(대하 22:2) 여호람은 태어나면서 아들을 낳은 것이 된다. 하지만 성경 독자들은 열왕기의 기록에 의해 여호람은 18세에 아하시야를 낳았다고 이해할 뿐이다. 다윗이 번제를 위해 사들인 타작마당과 소의 값이 사무엘하에는 은 50세겔(삼하 24:24)이요 역대상에는 금 600세겔(대상 21:25)이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하는 소리를 같이 가는 사람들이 들었으나 아무 것도 보지는 못했다.(행 9:7) 하지만 바울이 성전에서 잡혔을 때 그는 개종할 때의 경험을 말하면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 나더러 말하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행 22:9)고 했다.

이런 식의 잘못은 성경에 얼마든지 있다. 성경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잘못을 보면 큰 약점이나 잡은 듯이 방방 뛰지만 성경학자들은 그런 잘못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으며 성경독자들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아무리 성경의 기록이 상이하더라도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품성에 결함이 없다면 성경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는 그림의 배경은 시대마다 기록자마다 다를 수가 있어도 하나님의 얼굴의 내용, 즉 그분의 품성만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흐트러짐 없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얼굴을 그려냄에 있어 대강 지나지 않는다. 성경을 제대로만 읽는다면, 성경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자세히 기록된 책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성경독자들은 그것을 감사한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성경은 정보를 제공하는 도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계시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요,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에 힘쓴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하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관념적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랑의 경험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가르쳐서 아는 일이 아니다.(요일 2:27)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내려가면서 영의 눈을 밝혀 나의 삶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므로 일어나는 일이다.

성경을 많이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이 나의 아버지시라는 사실과 그분이 나를 향해 품으신 뜻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 성경을 많이 알지는 못할지라도 그것만 확실하다면 그의 인생이 바뀐다. 그게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무미하고 믿음 생활에서 능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말이다.

“이보게, 재미를 느끼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네.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 먹지 못했던 것을 먹는 것,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가는 것이네.”

『아라비안 나이트』에 의하면 재미란 새로운 경험이다. 실제로 뇌의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이 새로운 것을 성취했을 때 다량 분비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알 것은 다 알아버린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직도 인간이 재미를 느낄 남은 지식이 있을까? 수많은 성경 주석과 강해서가 나와 있지만 ‘인간을 권태롭지 않게 하는 유일한 존재’(래리 릭턴월터, 『잘 박힌 못』 40쪽)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여전히 미개척분야이다. 처녀림에 들어서는 마음으로 아직도 미개척분야인 성경의 첫 장을 연다면 1,600년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말씀들이 책에서 쏟아져 나와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영혼의 가슴을 마구 두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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