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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21:18

하나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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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

창세기 4장에는 가인의 족보가 나오고 5장에는 셋의 족보가 나온다. 한데 두 족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인의 자손들은 성을 쌓고, 육축을 치고, 수금과 퉁소를 잡고,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지만 그들의 나이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세상문명에는 이바지 했지만 그들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 없는 것이었다. 셋의 자손들은 세상에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나이를 일일이 기록하셨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소중한 삶을 산 것이다.

가인의 계보가 간단한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하나님과 교통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날짜가 계산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생을 살았지만 헛살았다는 말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과 교통을 가질 때 그때부터 하나님은 날짜를 계산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떠날 때 그 달을 ‘해의 첫 달이 되게’(출 12:2)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새 삶을 시작한 때로부터 하나님의 날짜가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산 430년은 기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은 시간은 쓸데없는 시간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의 시간은 거듭난 날로부터 시작된다. 그 전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계산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하나님 앞에 계산되지 않는 날이 많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때로부터 솔로몬이 처음으로 성전을 건축한 때까지 몇 년이 경과했을까? 바울이 바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한 회당에서 말한다.

“광야에서 약 40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450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 13:18-22)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때로부터 솔로몬이 처음으로 성전을 건축한 때까지 광야 40년+광야에서 7족속을 멸하기까지 450년+사울 40년+다윗 40년(삼하 5:4)+솔로몬 전 건축을 시작하기까지 4년(왕상 6:1) =574년이다. 한데 열왕기 상에서는 같은 일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4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왕상 6:1)

574-484=90년 차이난다 왜 차이가 날까? 차이가 나는 것은 영적 원칙 때문이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이방인들에게 핍박을 받는다.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 섬겼다.(삿 3: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18년 섬겼다.(삿 3:14)

가나안 왕 야빈에게 20년 동안 학대받았다.(삿 4:2,3)

미디안을 7년 동안 섬겼다.(삿 6:1)

블레셋 사람의 손에 40년 동안 넘어갔다.(삿 13:1)

총 93년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면서 다 기록했지만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상태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산 햇수를 다 기록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날들은 그 백성들이 헛 산 것이다.

93년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긴 시간을 하나님은 계산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출되어 나왔지만 그들이 대적의 손아래서 종이 되어 자유롭게 살 수 없었던 때를 하나님께서는 그의 역사에서 제외하신 것이다.

한 평생 90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분은 80년, 어떤 분인 70년으로 계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계산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구원 받은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계산될 수 있는 시간이 얼마인가? 주님을 믿은 지 10년, 20년 지났는데 그 중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허비한 날자가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자. 사람의 뜻대로 보낸 날들, 하나님을 떠난 날들, 타락한 날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계산할 수 없는 날들이다.

애굽을 떠난지 ‘2년 2개월 20일에 증거궤가 보관된 그 성막에서 비로소 구름이 걷혔다. 이스라엘 자손은 시내 광야를 떠나서 구름이 바란 광야에 머물 때까지 여러 곳을 거쳐 행군을 계속하였다.’(민 10:11,12) 한데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열 하룻 길이었다.(신 1:2) 이스라엘 백성들은 2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광야에서 38년 동안 방황했다. 이 일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의 역사에서도 어떤 날은 계산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르에서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라고 하셨는데(창 12) 아브람은 데라와 롯을 데리고 가다가 하란에 머물렀다. 아브람이 우르에 있을 때도 하란에 있을 때도 나이가 기록되지 않았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부르셨다. 그리고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로 기록 되었다.(창 12:4) 그 75년 동안 아브람이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기 전까지의 75년은 잃어버린 날들이요 하나님에게 기억되지 않는 날들이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86세였다.(창 16:16) 아브람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고 하셨다. 여기 13년의 공백 이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그 동안 제단 쌓았다는 말도 없다. 새로운 계시나 약속도 없다. 잃어버린 날들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가진 경험이 있는가? 한 사람이라도 구원한 적이 있는가?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빛과 새로운 말씀이 있었는가? 하나님께 새로이 바친 헌신이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행한다면 그것은 모두 세월을 낭비한 것이요 하나님 앞에 없는 날들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할례 받은 나이를 99세라고 기록했다. 할례는 육을 제하는 것이다. 육체를 제하지 않은 날들은 잃어버린 날들이었다. 육에 속한 것은 벗어버려야 한다. 헛된 날을 보내면 안 된다. 할례를 받고 영적 나이가 시작된 지 1년 만에 이삭을 낳았다.

한 주인이 ‘놀고 섰는 사람’들을 불러(마 20:7) 포도원 안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말씀은 놀고 섰다는 것이다. 놀고 서있지 말고 일해야 한다. 하나님이 일하라고 정해준 밭은 포도원이다. 아무리 세상일을 많이 해도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놀고 서 있는 것이다.

직업을 버리고 전도하라는 말이 아니다. 포도원 안에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교회 안에 있으라는 말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어떤가를 묻는 것이다. 마음을 바쳐야 한다.

7,80년 짧은 날 중에 구원 받지 못한 날들을 빼면 얼마나 될까? 시간을 아껴야 한다. 우리가 헛되이 보낸 날들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황충이 먹은 햇수대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이다.(욜 2:25) 2,30년 헛되이 보냈다고 하지만 헛되이 보낸 햇수대로 갚아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루가 많은 날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목사님은 암이 걸려 요양원에 있는 4년 동안 44명에게 침례를 주었다. 잃어버린 날들을 회복하자. 지금 헌신해도 잃어버린 날들을 다 보충해주신다.

50년이 지나면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이 수고와 슬픔뿐이라면 그 모든 날들은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는 것이다.(시 90:9,10) 그러므로 지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 영원한 것이다.(요일 2:17)

나이를 묻는 것은 인생의 과거를 믿는 질문이다. 바로가 야곱의 나이를 물을 때 야곱이 대답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형을 속여 장자 명분을 빼앗고, 라반 밑에서 재산을 불리기 위해 산 세월들은 험악한 세월이었다.

지금까지 산 것이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지금 살아 있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았다. 하나님이 이 나이 되도록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8-10)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2,8)

나이를 묻는 것은 지난날들에 대한 대답이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질문이다. 지난 세월이 후회스런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새로 출발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해야한다.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았든 앞으로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돈이 없으면 벌면 된다. 건강도 회복 된다.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회복할 수 없다. 선한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빚진 자이다. 지혜로운 인생,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값지고도 가치 있는 삶, 더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위의 설교문은 이춘항 목사의 설교 ‘하나님의 시간’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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