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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15:43

시편의 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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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50 편

시편의 대미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 150:6-

시편의 대미

시편은 그 대미를 열세 찬양으로 장식한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하는(2절) 이 찬양은 하나님의 성소에서와 권능의 궁창에서 울릴 찬양이요(1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올릴 찬양이다(6절)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고,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하고,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3-5절), 즉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찬양해야 할 찬양이다.

성경백성은 구름수레를 타고 우주의 어느 한 구석을 여행하는 것보다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상은 그러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타협과 굴종을 강요한다. 타협과 굴종을 강요당하는 숨 막히는 억압 속에서 성도들은 그 압력에 대결하지 아니하고 찬양한다. 찬양은 성도들이 고통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삶의 방식이다. 지구라는 감옥에 갇혀 질식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성도들의 삶, 그것이 시편이다.

세상 사람들은 욕망의 실현을 위해 간구하고, 고통에서 해방을 끌어내기 위해 감미로운 주문(呪文)을 외운다.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 고통을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하면서 고통을 이겨낸다. 어떤 사람은 빈민을 찾아 뛰어들고, 어떤 사람은 수도의 현장에서 침묵을 연습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에 매진하면서 고통을 풀어낸다. 고통을 승화시키는 언어는 다양하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찬양은 그들의 삶에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고통을 해석하는 매우 귀중한 언어다. 그러한 귀중한 언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나쁜 것은 그것이 행위의 공간을 좁혀온다는 것이다. 이때 성도들은 위로 열린 길을 통해 찬양의 수레를 타고 달음질침으로 행위의 공간을 넓힌다. 삶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가 죽음의 영역에 가까이 이를수록 찬양의 수레는 점점 빨라진다.

세상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 수행을 통해 진리를 터득한다. 붓다가 여러 가지 수행과 많은 덕을 쌓아 깨달은 것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이 덕과를 장엄하게 한 화엄의 핵심이다. 하지만 성도들은 자신들의 찬양이 후대가 겪을 치열한 싸움의 응원가가 되기를 갈망하듯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불길이 가열될수록 더욱 열렬히 찬양한다. 성도들의 찬양은 고통의 사슬을 끊고 유폐된 공간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함성이다.

노래는 놀이에서 파상된 말이다. 세상의 노래는 놀이다. 하지만 성도들의 찬양은 고통을 일순간에 분쇄하고 낡은 세계를 전복시켜 다른 삶을 열어갈 창조적 에너지를 내장한 영혼의 소리다. 세상의 노래는 흥겨워 부르기도 하고, 고통 중에 부르기도 하고, 슬픔 중에 부르기도 하는 감정이 표현이지만, 성도들의 찬양은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절실한 소리요, 가슴이 뛰고 목젖이 달아오르는 영혼의 떨림이다. 이 떨림이 화살처럼 대적하는 자의 가슴에 섬광처럼 꽂힐 때 대적하는 자는 물러가고 성도들 앞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노래란 시적 체험이다. 시는 노래로 다시 태어난다. 노래로 태어난 시는 바다에서 선원들을 불러 유혹하는 인어처럼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찬양은 새 시대를 여는 사건이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이 큰 파도가 되어 애굽 군사들을 덮칠 때 저들 앞에는 신천지가 열렸다. 태초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쁘게 소리”(욥 38:7)를 하자 우주가 열렸다. 성경의 찬양은 사건이 일어난 뒤에 부르는 송가가 아니라 사건을 열어가는 함성이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찬양하자 여리고성은 무너졌고(수 6:20) 여호사밧의 군대가 찬양하자 대적이 피차 살육했다.(대하 20:22)

시는 응집된 힘을 내장하고 있는 문학형식이다. 정지된 글이 아니라 운동하는 힘이다. 지식인은 시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연인은 시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고, 적을 치고자하는 자는 시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고, 승리를 기원하는 자는 시를 통해 승리를 열광하고, 고통 받는 자는 시적 상상력을 통해 고통을 승화한다. 시편은 평이한 언어 속에 그러한 힘을 비장하고 있다. 세상의 시처럼 촌철살인하는 글이 아니라 지극히 평이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찬양에 그러한 힘이 있는 것은 그것이 아무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롬 8:31)으로 충만한 때문이다. 그것을 안다면 성도들의 찬양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알 게 된다. 죽음의 길에서 성도들이 찬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성도들의 찬양은 깃털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하는 무기력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성도들의 찬양은 불길처럼 타오른다.

세상의 시는 반복을 통해 리듬을 일으키고 뜻을 강조하지만, 시편의 반복어법은 다른 어떤 설명이나 수식어로 대체될 수 없는 성도들의 춤이요, 인간의 의식세계를 흔들어 잠자고 있는 기억이나 소망을 불러 깨우는 격렬한 몸짓이다. 시편의 반복어법은 성도들의 찬양이 치열한 투쟁과 긴장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투쟁의 시간엔 반복적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발하시나이까!” “침묵치 마소서. 고요치 마소서”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의 시간을 끊는 고통이다. 자신의 시간을 끊어야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간 자들은 비록 이 땅에 몸을 두고 있지만 순결한 영혼의 소리로 하늘을 탐지한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 사람들에게 사망의 문턱에서까지 하늘을 탐지하려는 순결한 영혼의 소리가 이해될 턱이 없다. 그러나 순결한 영혼의 소리로 하늘을 탐지하는 성도들에게 하늘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이 다가온다.

시인은 평범한 글에 상징과 은유로 밀도를 더하여 시를 완성한다. 하지만 시편은 상징과 은유로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낸다. 상징과 은유는 하나님에 대한 통찰을 확대하는 기법이다. 상징이나 은유가 하나님의 권능을 약화 시키지 않는다. “해를 위해 하늘에 장막을 베푸”(시 19:4)신 장엄한 사건에 사용된 상징과 은유는 하나님의 권능을 장엄하게 확장한다. 인간이 죽을 때 그 장엄에 압도되어 숨을 멈출 수 있다면 행복한 게 아닐까?

고레스의 조서로 귀향한 유대인들 중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쓸 것이 공급되었다(느 12:47). 노래하는 사람들의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대하 20:22) 여호와께서 암만과 모압을 물리치셨다. 성경백성들에게 찬양은 승리의 함성이요 매일의 양식이다. 언어를 잃은 민족이 역사에서 버림을 당하듯이, 찬양을 잃은 민족은 성경역사에서 제외된다. 성경 백성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언어는 시요, 매일의 삶을 유지하는 양식은 찬양이다. 이것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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