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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사상

   어떻게 지구상에서 아주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는 히브리 민족의 사상이 인류 문명의 보고가 될 수 있을까? 인류는 강을 중심으로 문명을 이루었다. 어떻게 강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온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인류 사대문명을 훌쩍 뛰어 넘어 인류 문명사의 신기원을 이룰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수수께끼를 히브리 하나님의 이름에서부터 풀어나간다.

   『히브리 사상』이 유대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그친다면 그것은 나와 관계없는 먼 유대 땅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히브리 신앙고백’을 통해 ‘과거가 미래로, 미래가 과거로’ 변환되는 ‘시간의 공시성’의 근원을 파고들어간다. ‘히브리 신앙고백’을 숙지한 뒤에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고 놀라움을 갖게 된다.

   “블레셋 사람들 편을 들어 싸움터에까지 나왔던 ‘히브리’ 사람들도, 이제는 돌이켜서 사울과 요나단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편이 되었다.”(삼상 14:21 새번역)

   이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과 히브리 사람들은 두 다른 편이다. 어쩌면 히브리는 언어나 인종에 따른 종족이 아니라 사회 계층에 따른 명칭이었다. 어떤 명칭이었을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하자 남편에게 요셉을 고발하는 장면에서 여인은 요셉에 대하여 ‘당신의 종 녀석’(창 39:19 공동번역)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이집트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과 같은 상에서 먹으면 부정을 탄다’(창 43:32)는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고향에서 텃세를 해야 대접을 받는 법, 한데 아브람은 대대로 살던 문명의 젖줄인 강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오면서 천민을 선택했다. ‘히브리’의 어원은 ‘이브리’에서 ‘건너오다’를 뜻하는 ‘아바르’로 거슬러 간다. 문명을 등지고 강을 건너 천민을 선택한 히브리 사상이 ‘어떻게 삶의 앞길을 비추는 지혜와 인류의 등불이 될 수 있었을까’를 저자는 ‘히브리 신학 주제’들로 논증한다.

   저자는 왜 히브리 사상을 인류 문명의 보고라고 서슴없이 말할까? 인류는 문명을 일구며 살아왔지만 사람이 만든 문명은 인간을 기계화한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은 고통 없이 찾아와서 고통을 가중시킨다. 이때 찾아오신 하나님이 그때까지 ‘전능자로 나타났으나 여호와로는 나타나지 않으신’(출 6:3) 하나님이다. 이때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은 수많은 이름들로 그 백성들에게 임하신다. 그 모든 이름들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다. 히브리 하나님의 이름을 듣는 모든 자들은 그 이름을 통해 문명의 해악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불타는 의지를 경험한다. 인간(人)의 행위(爲)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거짓(僞)될 뿐이다. 문명이 아무리 보기에 좋아도 인위(人爲)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인류가 참으로 갈구하는 문명이 될 수 없다. 오직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불타는 의지 안에서만 참 문명이 꽃 피는 것이다.

   히브리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는 곳에서 인류의 밝음이 빛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향해 ‘문화명령’을 발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고대 이스라엘은 모든 시대에 걸쳐 척박한 토지와 가혹한 기후, 그리고 거대한 제국들의 처절한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인 가나안 땅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이러한 정황에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처럼 문화명령은 그들 삶의 기초요 존재의 근거가 되었다”(167쪽). 이것은 타락한 후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지구별에 떨어진 소망 없는 인류에 대한 구원의 표상이다. 이 일은 수천 년 전 그리고 수만리 떨어진 히브리인들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여기 바로 나에게 발하시는 명령이다. 히브리 사상을 아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아는 일이요 그 명령에 순종하기를 요구받는 일이다.

   히브리 사상은 철학이 아니라 신학이다. 햇빛 아래서 말라버리는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불볕 아래서도 아름다운 생명을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에 대한 사유다. 히브리인의 모든 생각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인간의 삶으로 나타난다.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신학은 죽은 신학이요 생명의 하나님과 연계되지 않은 신학은 미라에 다름없다. 인간의 삶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을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모세의 지도력의 비결은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히 11:27)는 데 있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자신을 조용하게 하고 귀를 기울’(395쪽)이는 자에게 ‘세미한 소리’(왕상 19:12)로 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때에라도 ‘잠잠히 사랑’(습 3:17)하신다. 따라서 인간은 그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애 3:26)

   세상의 지식은 ‘배우거나 연구하여 알고 있는 내용’이요 지혜는 ‘사물의 도리를 잘 파악하여 삶에 이용하는 힘’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나를 사랑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요, 지혜는 ‘나를 사랑하는 분의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아 행하는 힘’이다. 히브리 사상이 삶의 앞길을 비추는 지혜와 인류의 등불이 될 수 있는 것은 히브리 사상의 주제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신학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아탑을 높게 쌓아도 나를 사랑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자를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류의 등불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히브리 사상의 배후에 턱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히브리 하나님의 유일신 신관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조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순종은 유일신 신관에서 출발한다. 태양을 섬기다가 달을 섬겨도 질투하지 않는 신은 ‘없는 신’이다. 인간을 만드시고 간섭하시는 실존적 존재만이 ‘고도의 윤리와 도덕을 요구하며 혼탁한 문명사의 곤궁을 밝히는 희망의 서광이 될 수 있다’.(20쪽) 유일신에서 출발한 ‘히브리 사상은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신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동인이 된다. 히브리 사상을 시대와 상황에 재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이 혼탁한 21세기 지구촌 문명사에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대안이 될 수 있다.’(275쪽)

   『히브리 사상』을 읽으면서 성경 용어의 히브리적 개념이 정리된 것은 너그러운 부자의 밭에서 낙수를 줍는 가난한 자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보아스의 품에 파고들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밭에 떨어진 낙수를 줍다 말고 망연히 서서 한시 빨리 성경의 품에 파고들고 싶은 충동에 가슴이 뛰고 있다면, 독자는 성경 하나님의 축복에 들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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