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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조선

성악을 전공한 뒤 평생 교직에 몸 담으셨던 조부는 제가 초등생 시절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조부의 유품 가운데 음반을 들고 왔지요. 음반 유통이 그리 자유롭지 않던 시절, 제게는 그야말로 '보물더미'와 같았습니다. 성악을 공부하셨기 때문이신지 특히 데카(Decca) 레이블의 음반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게오르그 솔티 지휘의 베토벤 교향곡 3번,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의 음반들을 그 때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그 가운데 동양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의 음반이 들어있었지요. 동양인이 서양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기만 했던 시절입니다. 'Kyung-Wha Chung'을 정경화로 읽어야 한다는 걸 깨닫기까지도 한참이나 걸렸습니다.

 

대를 잇는 연주자 사랑은 그 때부터 싹텄나 봅니다. 정경화 선생을 인터뷰하면서도 한참이나 떨어야 했습니다. 사반세기 전의 음반 표지 사진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부상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 직전에 인천으로 달려가서 정경화 선생의 바흐 협주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악장간 중간 박수가 쏟아지면 연주자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겠지요. 그 때 정경화 선생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활을 들고 있던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가더니 객석을 향해 활짝 웃으면서 '쉿'하고 침묵을 부탁했습니다. 표정 한번 찡그리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객석에 뜻을 전달하는 그 모습에서 관록을 새삼 느꼈습니다.

 

연주자를 사랑하는 건, 대가는 물론이고 반응도 전혀 기대할 수 없기에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다시 고쳐 말씀 드릴게요. 가끔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기도 하답니다. 그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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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먼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앙드레 프레빈)와 협연 직전, 연주를 취소했다. 비상이 걸린 교향악단은 3년 전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19세의 나이로 1위를 차지했던 바이올리니스트를 긴급 섭외했다.

젊고 가냘픈 아시아 여성 연주자가 리허설 무대에 올라오자, 단원들은 골려 줄 심산으로 당초 예정돼 있던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대신 갑자기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멘델스존은 두어 소절 만에 바이올린이 따라나와야 하기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죠. 단원들의 짓궂은 장난이었지만 100번은 연습해왔던 대로 반사적으로 연주에 들어갔어요."

이 연주회가 런던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세계적 명문 음반사인 데카(Decca)에서는 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전보를 보냈다. 결국 한 달 뒤인 6월, 같은 악단·같은 지휘자와 함께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데뷔 음반까지 녹음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탄 연주자는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공항에 잠시 내렸던 3시간 동안에도 공항 사무실에서 연습에 몰두한 뒤, 다시 영국으로 날아가 녹음에 임했다. 아시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던 '정경화 신화(神話)'의 시작이었다.

왼손 검지손가락 부상을 딛고 4년 만에 활동 재개를 선언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EMI 제공

 

왼손 검지 부상으로 지난 2005년 이후 4년간 연주를 중단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부상을 딛고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내년 유럽 데뷔 연주와 음반 발표 40주년을 앞두고 있는 정경화는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연주를 쉬었던 동안에 큰언니(플루티스트 정명소)가 타계했고, 편찮으신 어머니(이원숙 여사)를 돌보면서 줄곧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나는 바이올린 때문에 태어났고, 바이올린에 매혹됐으며, 바이올린에 미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완쾌 후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한 그는 "이르면 올 시즌부터 구체적인 연주 일정을 잡을 계획이며, 나 자신보다는 남을 위한 음악 활동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는 '정경화 재단'을 설립하고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후원에 나섰다. 정경화는 "1961년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지금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은 강한 개성과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악기를 대여해주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화는 "이들을 도와줄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연주를 해야겠다"라며 웃었다.

손꼽아 그의 복귀를 기다리던 팬들에게는 반가운 낭보도 있다. 정경화가 1973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첫 협연 무대에서 명(名)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연주했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실황이 36년 만에 음반(테스타먼트)으로 빛을 보는 것이다.

그는 "당시에는 조금이라도 내 연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끝난 뒤 복도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고함을 치곤 했다. 그 모습을 보던 거장 줄리니가 다가와 '때로는 여유를 갖고 느긋한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따뜻하게 조언해주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정경화는 "줄리니의 속도는 통상적인 빠르기보다 훨씬 느렸지만, 지금 들어도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정경화와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한 뒤 "그녀는 정말 완벽주의자다. 나는 만족스러웠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불만이었고 수없이 고쳐나갔다. 그 결과는 놀랍기만 했다"고 경탄했다. 정경화는 "적당히 편안히 하거나 타협해서는 결코 살아 있는 연주가 나올 수 없다. 연주자는 홀로 씨름하면서 울고 웃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활동 초기 '아시아'와 '여성'이라는 이중의 굴레가 버겁고 힘든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정경화는 "그렇기에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언제나 무대에서 쓰러져서 나온다는 각오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는 "100번이 아니라, 1만 번을 태어나도 다시 하고 싶을 만큼, 바이올린은 여전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벗"이라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danp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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