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2009.05.21 12:40

시간장수

조회 수 1313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간 장수 이야기

                                                             - 김용철

서울 명동 지하 상가에
나는 시간 파는 가게를 하나 내고 있습니다.
제법 짭짤한 재미를 보는 장사랍니다.
젊은 남녀들은 가게 안을 힐끗 들여다보고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 든 사람들은 자주 발걸음을 멈추고
어슬렁어슬렁 찾아 들어옵니다.

이 장사는 밑천이 많이 들지 않아 좋습니다.
남들이 쓰다 버린 부스러기 시간들을
사방에서 끌어 모아 파는 겁니다.
상점 간판은 간결한 말로 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싸게 팝니다>라는 굵은 글자 밑에
<시간은 돈>이라는 빨간색 토가 달려 있을 뿐입니다.

시간을 싸게 판다는 간판의 말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우리의 술수에 불과합니다.
손님이 말하는 시간의 용도 여하에 따라
어떤 건 값을 꽤 높이 매기거든요.

가령 삶에 유용치 않은 일에 시간을 쓴다는 고객이라면
당치도 않게 높은 가격을 붙이고
그 대신 쓰다가 남으면 반값으로 환불해 주기도 합니다.
시간의 진가를 아직 모르는 젊은 손님들은
비싼 돈을 주고 시간을 사 가고도 금방 써버리고
다시 빈 손으로 찾이 들어옵니다.
생활에 유익한 일에 쓴다는 시간이라면
값을 좀 낮게 붙입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이런 상품을 많이 찾는데
거기에도 용도가 다양합니다.
팔순을 맞은 노모의 계속 장수를 위해
시간을 사 들이는 효녀 아가씨가 있는가 하면
교통사고로 호흡이 곤란해진 어린 아들의 앞날을 위해
시간을 산다는 애절한 어머니도 있고
대학입시가 박두한 고삼 딸아이에게 도움이 될까싶어
시간을 사 주겠다는 아버지 손님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상점에 대통운이 터졌습니다.
소박한 옷 차림의 노인 신사 한 분이 걸어 들어와
우리 물건을 있는대로 다 사겠다는 겁니다.
그 많은 시간을 몽땅 사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한편 신이 나기도 했지만
이 손님의 속셈이 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왜 그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를 내가 묻자
그는 간결하게 그리고 아리숭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많이 필요할 수 밖에요. 나무 한 그루를 심는 데서도
장차 그 그늘 아래서 쉴 사람을 생각해야 하잖아요?
앞일을 내다보며 생각하는 일에 엄청난 시간을
요한다는 걸 아시지요.”

상점 문을 나서는 노신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가입을 원하시는 분 관리자 2011.04.10 170954
공지 ※자유게시판 이용안내※ 2 관리자 2009.04.28 187451
63135 한국으로 전화하는 방법 관리자 2009.04.28 24774
63134 한글 입력이 어려울 때 관리자 2009.04.28 17775
63133 2009년 안교교과 52기억절 관리자 2009.04.28 18382
63132 http://www.shym.org 관리자 2009.05.01 18972
63131 뱀에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 file 관리자 2009.05.01 21266
63130 어째 이런 일이? file 관리자 2009.05.01 15422
63129 missing link? 아직도 찾고 있는 사람들 file 관리자 2009.05.19 15463
63128 이와같은 때엔 file 관리자 2009.05.19 16640
63127 콜라 너무 많이 마시면 관리자 2009.05.19 15616
63126 어쨌든 한번 웃게 해 주는 내용이네요... file 관리자 2009.05.19 20238
63125 그녀의 삶 자체가 기적이었다 file 관리자 2009.05.20 17410
63124 포도의 향기 file 관리자 2009.05.20 17473
63123 What a wonderful world - Louis Armstrong file 관리자 2009.05.20 20305
63122 뉴욕 신종flu (돼지독감) 확산일로 관리자 2009.05.20 14711
63121 별 빛 찬란한 밤과 새벽으로~ 관리자 2009.05.20 16328
» 시간장수 관리자 2009.05.21 13134
63119 20/20 (05-15-09) 관리자 2009.05.21 18267
63118 20/20 (05-22-09) Growing up with tourette syndrome 관리자 2009.05.24 15759
63117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 : 휴대폰 (?) file 관리자 2009.05.27 1683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57 Next
/ 3157
Copyright© 2011 www.3amsda.org All Rights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