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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inewspeople.co.kr/news/read.php?idxno=4724

 

“법조인ㆍ신앙인으로 법과 성경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여왔다”

 

김태훈 기자 sangak@inewspeople.co.kr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고한실 박사 인터뷰
일본ㆍ미국 사법고시 최연소 수석합격, 36년간 미국 대통령 법률 자문위원 및 법률고문으로 활약,
재림교회, 성경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정통교회로 인식

고한실 박사(84세)는 제주에서 태어나 12살 때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간 후, 17세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것을 필두로 일본, 미국의 사법시험을 최연소에 수석으로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타고난 천재성으로 법조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그는 36년간 일곱 명의 미국 대통령 법률 자문위원 및 법률고문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높였다. 그에게는 법조인 이외의 또 다른 수식어가 붙는데, 그것은 바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다. 이에 본지는 고 박사를 만나 그에 대해 들어봤다.

유독 장난이 심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
   
 
 
고 박사는 제주도 아라리 산천단에서 한학자이신 아버지와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독 장난기가 많았고, 그의 장난기를 고치려 아버지께서 늘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매를 들었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가 여섯 살 때인 1932년 4월경 한라산록에 있는 ‘관음사’라는 절로 보냈다. 그곳에서 일과는 청정 도량을 청소하는 것이였지만 고 박사의 장난기와 대찬 성격은 여전했다. 한 번은 아침 청소가 끝나고 졸다가 삼분 정도 늦게 식사하러 방에 갔는데, 자신의 식사 그릇을 미리 펼쳐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밥과 반찬이 장판방 바닥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너무도 화가 난 고 박사는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장판방에 부었다. 방이 물바다가 되었음은 불 보듯 뻔했고, 장주지 스님과 다른 스님들은 그의 행동에 경악했다. 장주지 스님의 호출을 받고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을 때 고박사는 '방바닥에 내 밥을 놓았으니 이 장판방은 내 밥그릇이 아닙니까? 시간이 늦어서 물 말아 먹으려고 그랬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장주지 스님은 한참 생각하신 후 “이해는 가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마라!” 라고 주의를 주셨다. 이 일 후에도 고박사의 장난은 이어졌고, 결국 주지 스님은 고 박사의 어머니를 불러 도저히 감당하기 힘드니 지금 데리고 가라고해서 7살 때 관음사에서 쫓겨나기에 이른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라고 스님들은 입모아 얘기했고, 그는 지나칠 만큼 눈에 띄는 장난이 많았다. 또 다른 일화는 제주 신촌리 동수동의 한 친척집에 있을 때, 그는 서당에 다니며 골목대장을 도맡아 했다. 한번은 C소년의 집 담장 안에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고 박사가 나무에 올라가 감을 몇 개 땄을 즈음 주인이 내려오라고 했지만 내려오지 않자 사람들이 나무를 흔들기 시작했고, 나무에서 돌담으로 떨어져 돌담이 무너지며 돌들 속에 파묻히는 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한 부상은 꽤 심각해 6개월 동안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지만, 부모님의 정성으로 1934년 말 경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약소국의 서러움, 법관을 꿈꾸게 하다
1938년 일어난 사건은 장난꾸러기 고박사에게 법관의 꿈을 꾸게 만들었다. 1935년 4월 화북소학교에 입학 후 월반의 월반 끝에 1938년 일본 동경부립제일중학교(5년제)를 지원하고 고향을 떠나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 시모노세끼로 가서 동경행 완행열차를 타고 가던 중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서 보니 자신의 자리에 한 일본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이 자리는 제 자리입니다”라고 했더니 일본 남자가“뭐! 이 새끼 조센징”이라며 폭행을 가했다. 화장실로 피해 통곡하며‘내가 꼭 법관이 되어 저런 놈들의 버릇을 고쳐주겠다’며 법관의 꿈을 꾸게 된다. 그렇게 동경에 도착해 무작정 방을 찾았지만 조선인인 그에게 방을 내주는 이는 없었다. 한학자 아버지와 불교신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였지만 무의식적으로“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방을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오가와 하나’라는 할머니가 그에게 흔쾌히 방을 내줬다. 하지만 난관은 이뿐이 아니었다. 그가 지원한 동경부립제일중학교는 일본에서 제일가는 명문 중학교로 일본에서 수재들만 지원하는 학교였지만 그의 영특함과 노력은 일본 제일의 학교에 당당히 합격하는 영예를 안겼다. 그러나 그는 당시 우리 돈으로 약 이만 오천원 가량의 등록금이 없어 교감선생님을 찾아 등록금 납부 기한을 일주일 연기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고, 방을 빌려준 할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록금을 내고 입학할 수 있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학업을 마치게 되었다, 그의 노력은 학업적 성취로 드러났다. 15세 때 제일고등학교 입학, 17세에는 동경제국대학 법학부 1학년으로, 뿐만 아니라 1943년 일본에 간지 불과 5년 만에 일본 고등고시 사법과 최연소 수석 합격이라는 영예를 안고 1945년 1월20일 일본 육군에 소집 갑종간부후보생으로 입대, 일본 육군소위로 임명, 같은 해 7월 방년 19세에 부대원 중 제일 높은 계급인 육군중위로 진급했다. 

박정희 대통령, 닉슨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해방이 되던 날 고한실 박사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닥쳤는데, 그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병참부대원들에게 재고품을 나누어 줬는데, 이 일로 인해 UN군에 체포를 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조력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당시 그는 UN군 총사령부에 피의자 신분으로 가게 되어 체포 상태였지만, 여러 명의 UN 법무관들의 도움을 얻어 미국 법학 지식을 공부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을 통해 미국 사법시험에 응시하게 되었고, 일본 사법시험 최연소 수석합격(당시 17세)과 미국 사법시험에서도 최연소 수석합격(20세)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미 육군 법무관 겸 UN 고등 검찰관에 임명 되었다. 이로써 그에게는 일본 천황을 비롯해 국무총리 등 각계 고위층을 체포, 조사할 권한이 주어졌다. 그 시작은 그의 동경제대 선배이자 일본 전 후생 장관인 ‘기시 노부스케’의 담당 검사로 활약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그는 ‘기시’ 장관에게 6개월을 구형했고 재판장으로부터 6개월 판결을 받아 '기시' 장관은 만기석방 되었다. 아울러 판결 날로부터 1년 후에는 공직에 취업할 수 있다는 증명서까지 써줬다. 그 고마움을 기억한 ‘기시’ 장관은 10여년 후 일본총리가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한실 박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고, 이를 계기로 고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이 맺어지게 되었다.
그 후 고국의 초청으로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1974년 8.15 광복절 경축행사장에서 있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1956년 7월경에 일본을 방문한 미국 닉슨 부통령은 UN 고등검찰관 고한실 대령을 찾았다. 닉슨 부통령은 점심을 같이하며 고한실 박사에게 미국에서 활동할 생각이 있는지 의사를 타진하였다. 그 후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미조리 대학교 법대 교수로 근무할 때 닉슨이 미국 제3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축전을 보냈더니 취임식 초청장을 보내 주었다. 첫 만남 후 12년6개월이 지난 1969년, 백악관에서 다시 만난 닉슨 대통령은“외국인으로서 미국 헌법을 연구하는 자가 없으니 고박사가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했고, 이에 흔쾌히 응하게 된다. 3년 뒤 1972년 5월 그의 연구의 결실인 [미국 법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이 나오고, 그 책의 서문은 닉슨 대통령이 써주게 된다. 또한 책은 미국 국회도서관 우량도서로 등록된다. 1956년의 인연과 닉슨대통령의 연구 제안을 시작으로 고 박사는 대통령 법률자문위원이 되었고, 후로도 일곱 대통령의 법률 자문위원 또는 법률고문으로 36년 간 활동하게 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와의 만남
   
 
 
12살 때 고국을 떠난 고한실 박사는 올해로 73년째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난 그는 모국어 사랑이 남달라 ‘어떻게든 모국어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1970년 그는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워싱턴 한인침례교회에 나갔다. 하지만 목사님들간의 불화로 교회가 갈라지게 되고 당시 담임목사님을 따라 믿음을 이어간다. 후에 담임 목사는‘남 침례재단’(미국에서 제일 큰 종교단체) 한국부장으로 취임함에 따라 장로교회로 옮기게 되는데,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1년 후 고 박사는 집사로, 5년 후 장로, 그리고 10년 후에는 수석 장로까지 되었다. 1978년경에는 워싱턴 개신교회들이 모여‘워싱턴 한인 교회 협의회’를 창설, 고 박사는 워싱턴 한인 교회 협의회 교육위원장 직을 맡게 된다. 당시 워싱턴에는 사이비 종교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이를 시정하고자 워싱턴 한인교회 협의회(회장 정현철 목사), 워싱턴 YMCA(이사장 고한실 박사), 재미 한국문화협회(회장 고한실 박사)에서 한 번씩 사이비 종교에 대한 세미나를 가졌다. 당시 세미나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이단의 기준’에 관한 것이었는데, 세미나에 참석했던 침례교 목사가“안식일교도 이단이다”라고 하자, 안식일교회 장로가“성서적으로 안식일교회가 왜 이단인지 설명 해 달라”고 질문하자 침례교 목사는 당황하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사회를 보던 고한실 박사는 청중들에게“안식일교회가 왜 이단인지 말씀 드릴테니 연구할 시간을 달라. 10년 이내에 답을 하겠다”고 공언을 한 것이다. 후에 그는 안식일 교회의 모든 서적을 섭렵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 서적들에서는 이단에 관한 작은 단서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단을 찾기로 하고, 성경을 23번 통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이단에 관한 단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 박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있어도 일요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찾지 못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이단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정통교회라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이후 고박사는 빌리 그레함 목사를 비롯한 미국 내 개신교회의 여러 유명한 목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모두들 안식일교회는 이단이 아니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의 연방의회 상원 원목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베리 블랙 목사가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안식일교회가 이단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1996년 9월 15일 고박사 부부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되었다. 후일 그는 조지 W 부시대통령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안식일교회에 대해 10여년 연구 끝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되었다”고 했더니 “잘했다”고 칭찬하였다. 이렇게 고 박사 부부는 침례를 받고 명실공이 안식일교회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나는 법조인으로서 내 양심껏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신앙인으로서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며 그가 안식일을 지키는 일의 타당성을 설파했다.

깨끗하고 정직한 교회로 단연 으뜸
   
 
 
고 박사가 강조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이하 재림교회)는 수많은 종교와 종파들 중에서도 단연 깨끗하고 정직한 교회로 통한다. 재림교회는 외래종교이면서 유일하게 한국인이 들여온 종교로 일반적으로 ‘안식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데 18세기 초 침례교인인 윌리엄 밀러는 성경연구를 통해 복천년 사상과는 달리 예수께서 역사적으로 천년기 전에 재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나 밀러가 예언했던 1844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일부는 원래 자신의 교회로 돌아가고 초교파적으로 모였던 이들 중 소수가 남아서 예언을 다시 해석하고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시한부 종말론이 비성경적인 견해임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면서 각 교파별로 가지고 있던 성서적 교리들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1860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안식일 기별과 재림의 소식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1863년에는 정식으로 조직을 갖추어 선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재림교회는 1904년에 전해져 6ㆍ25전쟁 등 근ㆍ현대사 속에서 한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종교로 인식되어 왔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파하며 오늘날 한국 선교 106년, 선교 1세기를 넘어 2세기에 들어서고 있다. 그 규모로는 1874년 첫 선교사 앤드루스(J. N. Andrews)를 스위스에 파견한 이래, 전 세계에 매우 신속히 복음을 전파하여 UN이 집계한 232개국 중 203 개국에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2008년 말 세계선교본부의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에 66,000여 교회가 있으며, 신자수는 16,000,000 명을 넘어섰고, 2008년 한 해 동안 백만 여명의 새 신자가 침례를 받고 입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한 해 동안 매일 2,800여 명씩 재림교회에 입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에는 900여 명의 목사들과 900여 개의 교회와 30여 개의 학교, 6개의 병원, 40여개의 외국어학원, 출판사, 식품회사 등 각종 기관이 있으며, 산하 기관에서 일하는 교역자만도 3600여 명에 달한다. 사실 그간 재림교회가 한국에서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해 이단으로 오해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성경의 진리에 충실한 정통적인 개신교회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나라에 복음을 전한, 명실공이 세계적인 교회로 평가받고 있는 시점이다. 

웰빙문화를 선도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교회
   
 
 
재림교회는 영국성서공회, 미국성서공회, 빌리그레이엄 전도협회, 세계교회협의회 등 세계적인 기독교 공인기관들과 101권의 권위 있는 신학자들의 서적들을 분석한 결과 재림교회를 기독교 보수 정통교회로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4년 6월 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연합회에서 출판한 ‘정통과 이단 종합연구서’에서 정통 복음주의 기독교로 분류했다. 이러한 재림교회는 ‘마음과 몸과 영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는 성서적 가르침을 기본 이념으로 ‘전인회복’을 강조하며 금주, 금연 그리고 몸에 해로운 육식조차 가급적 피하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때문인지 재림교회 교인들은 타 종교인들보다 남달리 건강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여러 연구기관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재림교인들은 일반인들보다 평균 7~8년 이상 장수한다고 한다. 또 재림교회는 복음전파와 더불어 교육, 의료, 출판, 건강, 복지, 구호, 환경, 식품, 미디어등 다양한 사회 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별히 교육과 의료, 구호 사업은 복음 전파와 더불어 가장 먼저 시행함으로 소외 받는 사회계층에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전하고 있으며, 건강, 식품, 환경, 출판, 미디어 사업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켜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한 재림교인들의 헌신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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